천국으로 띄우는 글

 

 

찬미 예수 마리아 요셉

 

성삼위의 영광 안에서 지복직관을 누리시는 성녀, 예수의 데레사여,

세월 덧없어 내가 스페인을 떠나온 지도 벌써 다섯 해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하면 태양의 나라, 투우의 나라, 집시의 나라이기보다 나에게 있어서는 당신이 태어나신 카스티야가 먼저 생각나고 신비가들이 별인 양 꽃인 양 떨기지어 피어나고 빛나던 나라로 더욱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내가 그 땅에 2년 남짓 살면서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시던 물과 꽃과 들을 누비며 거룩한 자취들을 찾아 순례하던 일이 엊그제 같이 새롭습니다. 내 마음에 자리잡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그 성스러운 추억들‥‥

내가 맨 처음 아빌라를 본 것이 1960년 시월 초사흗날(당신의 어린 따님 데레사 축일) 합이었나 봅니다. 국경으로부터 천리가 님는 여행길에 밤새도록 시달리다가 혼잡하기 이를 데 없는 기차 속에서 그래도 깜박 눈을 붙이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데, 이윽고 나는 몸이 추워오는 것을 느끼며 "아빌라, 아빌라." 하는 소리를 꿈결에 들었던 것입니다. 벌떡 깨어보니 꿈처럼 아련한 아빌라의 성곽‥‥ 다시 눈을 비비고 고쳐 앉았을 때는 서녘 하늘에 추석 달이 비껴 떠 있고 천 년 묵은 둥그런 성이 안개 속에 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마지막으로 엮어놓으신 영혼의 성의 착상을 이 성에서 얻으셨으리라 싶을 만큼 그 신비로움에 나는 바보같이 어리둥절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후닥박 뛰어내려 싱그러운 당신의 체취에 흠뻑 젖고 싶었습니다만 달리는 기차는 이를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 뒤 당신은 내 소원을 풀어주시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마드라스에서 고다르라도르 저쪽의 아빌라를 그려보던 나는 드디어 세 차례의 성지순례를 실컷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데레사 일색으로 화한 '돌과 성인들의 도시' (Ciudadde Cantos y Santos) 아빌라!

나는 당신이 태어나신 그 집터 위에 세워진 성녀 데레사 수도원을 보았습니다. 소꿉장난하며 노시던 조그마한 동산도 보았습니다. 151544일 태어나신 지 팔일 만에 세례를 받으신 성요한 성당의 돌로 깎은 세례확도 보았습니다. 사람이 죽어야만 하나님을 뵐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곱 살 때 오빠 로드리고와 함께 집을 빠져나와 목이 잘려 죽으려고 어딘지도 모르는 이교도들의 땅을 찾아가다가 말을 타고 뒤쫓아 달려온 숙부한테 붙들렸던 성 밖의 콰토르 포스테도 보았습니다.

아다호 시내 건너편 언덕에는 하얀 양들이 뛰놀고, 살라망카 대로변에는 그때의 돌십자가가 고스란히 가장 높은 데 위치하기로 세계에서 으뜸이고, 성당 겸 요새로 지어지기로 세계에서 하나뿐이고, 스페인뿐 아니라 프랑스를 통틀어도 고딕양식으로는 맨 첫번째라고 하는 주교좌 성당, 오색찬란한 색유리들, 설화석고의 제단들, 베루게테의 명화 등등 하고 많은 걸작들이 있었습니다마는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그리 빛나지 않는 마돈나의 성화가 아니더이까?

열세 살 때, 어머니 베아트리스를 여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대성당의 그 성화 앞에서 서럽게 울면서, "이제부터는 당신이 내 어머니가 되어주소서." 하고 빌으셨다던 그 자리, 나는 차마 거기서 발길을 돌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스물한 살에 수도원에 들어가 개혁 수도회를 창건하시고 떠나시기까지 27년간을 사시던 엔카르나씨온은 옛 모습 그대로 성문밖 조용한 곳에 있었습니다. 한때 180명이나 되는 수녀들이 득실거리던 그 수도원‥‥ 침묵과 고행의 규칙은 있으나마나 수시로 드나드는 손님들 등찰에 '기도의 집'이라기보다는 '도둑의 소굴'이 되어버린 곳‥‥ 외로우신 아버지의 눈물조차 모르는 채 오로지 주님만을 섬기고픈 마음 하나로 들어왔던 수도원이 그 꼴이었을 때, 당신은 얼마나한 환멸과 고독을 맛보아야 하셨습니까?

자그마한 수도원에 어울리지도 않게 널찍한 응접실이 네 군데나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방문객이 얼마나 붐비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한 군데에는 무서운 두꺼비의 그림이 있었고, 그 옆방에는 돌기둥에 묶여 피투성이가 되신 예수님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신 자서전에 쓰신 바와 같이 수도에 정진하는 이들이 시간을 낭비하면서 바깥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일이고, 얼마나 주님을 욕되게 하는 노릇인지를 주께서 친히 당신께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수도회의 개혁자로 당신을 정하신 주님은 이따금 당신께 나타나 보이시고, 드디어 그 사명을 깨달은 당신은 학덕이 겸전한 신부들에게 의견을 물으셨으니, 그 중에서도 성프란치스코 보르지아와 베드로 알칸다라 성인과 거룩한 대화를 하시던 응접실이 초라한 모습 그대로 이층에 있었습니다.

수도원 안에도 악마는 살고 수도자마다 참다운 수도자는 아닌법이라, 당신이 예수님을 뵈러 왔을 적에 동료들은 당신을 악마에 흘렸다고 빈정거렸고, 당신이 보다 엄격한 규율을 지향했을 때에는 위선자로 따돌리며 갖은 박해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큰 일을 위한 밑거름이고, 부활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1571106일 엔카르나씨온에서 일어났던 일은 그런 난동 그런 승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때 그일은 중세기에서나 볼 수 있는 웃지 못할 활극이었습니다. 성교황 비오 5세께서 특파하신 순찰사 베드로 페르난데스가 당신이 세우신 개혁 수도원 생활이 그 옛날 이집트의 은수생활에 못지않은 것을 보고 나서 당신의 높은 덕을 알아보고 당신을 엔카르나씨온의 원장으로 임명하자, 아빌라는 온통 뒤끊는 가마솥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민생활이 곧 신자생활이던 당시의 생활도 생활이었지만, 좁은 고장의 어느 집안치고 엔카르나씨온과 연줄이 닿지않는 집안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도원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 원장 임명이 그다지도 큰 충격을 주었다면, 수도원 안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 웃지 못할 활극이 거기서 별어졌던 것입니다.

스페인 제왕들의 뒷받침과 스페인 신학자들의 지도적 역할로 트리엔트 공의회가 신앙의 원천을 확립하고 교회 자체의 규율 쇄신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지도 십 년이 가까워오지만 정작 그 스페인 땅,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 수도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쨌든 그날, 가르멜회 관구장이 고위 성직자들과 아빌라 시의원, 그리고 기사들과 함께 성문을 나와 엔카르나씨온을 향했습니다.(물론 당신도 그 틈에 끼여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들이 수도원 정문 앞에 다다랐을 즈음, 수도원 안에서는 난장판이 벌어졌지요. 마치 한 손에 창을 든 네메시스(희람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가 오는 것처럼 수녀들은 인해전술로 문을 꽉 막아버리는가하면, "어용 원장 물러가라.", "선거권 박탈이다.", "우리는 순명하지 않겠다." 따위의 아우성이 뒤범덕이 되었습니다.

딴은 그럴 만한 이유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수도회의 관례에 따라 원장은 선거로 뽑는 것인데 순찰사의 특명으로 수녀들은 자신들의 투표권을 무시당했다는 것이고, 그런 경우 수녀들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인상을 남들에게 주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엄률 수도회를 세우겠다고 - 물론 장상들의 허가가 있었습니다마는 - 자기들을 버리고 나갔던 장본인이 십 년 후에 원장으로 들어오는 판이요, 더군다나 당신은 "여태까지 수도원에 얹혀 살던 일가붙이를 다 내보내지 않으면 원장직을 수락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세웠으니 헐하게 살던 수녀들은 몸부림을 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관구장 일행이 성당 협문으로 들어가서 원장 임명장을 낭독하고 부드러운 말로 수녀들을 설득시켜보았으나 반대파들은 아랑곳없이 떠들어대고 당신께 삿대질을 하면서 당장 때려죽일 듯이 범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도원 전체가 이렇듯 반대한다면 별도리가 없다고 체념해버린 관구장이 마지막으로 "그럼 전원이 반대입니까?" 하였을 때 가타리나 데 카스트로가 나서서, "아닙니다. 찬성입니다. 우리는 절대 지지입니다."라고 외치지 아니했던들 승리는 영영 반대파의 것이 될 뻔하였습니다. 그녀가 "떼 데움"을 선창하자,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지지파들이 따라서 노래를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장을 받아들인다는 표시였습니다. 반대파들은 이를 악물고, "두고 보자. 원장 착좌식 때 보자. 완력으로 밀어낼 테니."하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한 난동 속에서도 당신은 마치 풍랑을 만난 배 안에서 고요히 주무시던 예수님처럼 그저 평화로울 뿐이었습니다. 착좌식을 거행할 때 당신은 원장 자리에는 성모님의 그림을 모셔놓고 그 손에다 수도원의 열쇠를 쥐어드리고, 부원장 자리에는 성요셉의 성화를 모신 다음 성모 마리아상 아래에 엎드려서, "나는 원장이 아닙니다. 성모님이 원장이십니다. 나는 다만 당신의 비천한 종일 따름입니다."라고 하셨을 때, 살기등등하던 폭풍우는 씻은 듯이 가라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뒤 생산이라고는 전혀 없는 단체에서 130명이나 되는 수녀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도 큰 일이었지만, 그보다도 오랫 동안 쌓이고 쌓인 악폐들을 뿌리뽑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까?

때는 르네상스 시대라서 갑자기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에 수도자들의 마음이 들뜨고, 로마에서는 소위 놀랑패(Girovagos)들이 거리를 휩쓸고 다녔기 때문에, 교황 바울로 4세께서 이를 단속하고자 특별칙령을 내렸어도 밤거리에서 붙들린 수사들이 백 명을 님었다는 소문이 나돌지 않았습니까?

무엇보다도 트리엔트 공의회가 특히 여자 수도원에서의 금입제(Clausura)를 재확인하였고, 당신은 완전한 기도를 위하여 완전한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셨으니, 우선 금입제부터 철저히 지키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때 있었던 우스운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누군지는 몰라도 어느 지체 높은 기사가 그 전에 하던 버릇대로 수도원으로 어느 수녀를 추근추근 방문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그런 위인과의 면접은 백해무익인 줄 아시고 번번이 면회 허가를 거절하셨지요. 창피를 당한 기사는 그래도 제 체면 깎이는 것이 싫었던지 살창 밖에 버티고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길래 당신은 수녀를 시켜서, "다시 이 수도원의 문덕에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왕명으로 목이 떨어질 줄 아시오." 하고 매섭게 잘라버리셨던 것입니다.

당신은 밖으로부터 침입하는 페스트를 막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혼 지도에 자격이 모자라는 신부들을 재치있게 멀리하는 한편, 그 대신 영성계의 체험이 많고 학식이 높은 십자가의 성요한을 모셔들였습니다. 글을 좋아하고 선비들을 존경하는 당신이 예수회 신부들과 손을 끊고, 아빌라에서 학명을 떨치던 베드로이바녜스, 지금까지 신학계의 거성으로 알려진 도미니코 바녜스와 같은 도미니코회 신부들을 스승으로 모시기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편협하고 몰이해한 지도자들한테 시달린 나머지 영성의 이론과 경험을 갖추신 성요한을 맞아들임으로써 수도회의 바탕을 굳건히 하신 것이었습니다.

두서는 없습니다마는, 당신이 글을 쓰실 적에 생각나는 대로, 붓 가는 대로 써 내려가시고, 한번 쓰고 나서는 다시 읽거나 고치는 법이 없으셨다니 나도 한번 그런 식으로 적어보겠습니다.

이야기는 거슬러올라가 말머리를 1962년으로 돌리겠습니다. 그 해가 "나의 생애에 있어 가장 행복된 해"라고 하면 당신은 웃으시겠지마는 정말 그러하였습니다. 그 해는 다시 거슬러올라가 성요셉 수도원에 성체가 봉안된 날인 1562824일로부터 꼭 사백 돌이 되는 해이므로 교황 요한 23세께서 '성녀 데레사성년'을 반포하시어 당신의 성지를 순례하는 자에게 전대사(全大赦)를 윤허하셨으니, 나에게 그런 복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귀국 일자는 다가오고 호주머니는 탕진되어가고 인제 가면 언제 또 오랴 싶고 해서 나는 관광객이면 으레 찾는다는 안달루시아, 재비야의 히랄다, 코르도바의 메스카타, 그라나다의 알람브라와, 사크로 몬테의 집시, 그리고 꼭 보려고 했던 돈 키호테의 라만차 같은 것도 다 집어치우고 되도록이면 짧은 시일을 알차게 오직 당신의 성지만을 순례하는 데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 아닙니까? 순례를 한답시고 당신 덕분에 호강만 실컷 했으니 말입니다.

운전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를 세내어 가는 곳마다 일류 호텔에 묵으면서 톨레도에서는 당신의 창안으로 세계에서 맨 처음으로 세워졌다는 성요셉 성당과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갇히셨던 유적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한편, 타호 강 언저리에서 자고새(Perdiz) 요리를 맛보며 교회사에서 유명한 톨레도 회의가 열렸다는 자리를 내려다보던 일이며, 호텔 방까지 십자가가 걸려 있는 아빌라에서는 당신의 글귀와 초상화로 장식되어 있는 라스트로에서 양구이에다가 '성녀 데레사의 노른자'라는 별미를 특산 포도주와 함께 즐기던 일이며, 세고비아에서는 맨발의 수도자인 당신이 몇번이고 지나다니시던 흙 한 줌 시맨트 하나 없이 돌로만 세워졌으면서도 근 이천 년을 끄떡없이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상수도를 눈앞에 바라보면서 코치닐로 아싸도(애저구이)와 트루차(송어)를 만끽하고 명사들의 사인북에 서명을 하던 일이며, 마지막으로 살라망카의 길, 한때 당신이 길을 잃고 밤새껏 헤매시던 산도 들도 아닌 끝없는 그 길, 달걀 하나 구할 수 없어서 겨우 무화과 몇 개로 만족해 하면서 마지막 죽으러 가시던 그 길을 시속 90마일로 달리던 그런 일들이 어찌 호강이 아닐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 성녀가 주님으로부터 얻어주신 호강이었습니다. 그러길래 어디를 가나 혈혈단신 외로운 나그네였을망정, 하늘의 새나 들의 백합처럼 그느르시는 섭리의 손길이 계시어 어느 누구에게 손을 내밀거나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도 남부럽지 않게 멋을 부려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마저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실상 나의 모든 호사는 당신이 피땀으로 벌어놓으신 공덕의 결과였습니다. 사백 년 뒤에 이국 나그네가 당신이 닦으신 공덕의 열매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당신이 좀과 동록이 해치지 못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고 가져가지 못할 보화를 하늘에 쌓아두신 까닭이요, 그리스도의 핏줄로 이어진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통하고 있기 때문이니, 기리사이다, 주님의 자비를 영원토록 기리사이다.

돌이켜보면, 당신이 완덕의 길을 엮어서 바녜스 신부에게 띄우시던 1567, 그러니까 쉰두 살이 되시던 해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만 15년 동안 해발 3천 미터의 두루엘로를 비롯하여 세비야의 평지에 이르기까지 동분서주하시던 여정은 무려 26675 리가 되었습니다. 방페 끼고 창 비껴들고 '명마'에 올라탄 돈 키호테가 허구한 날 천하를 편력했어도 미치지 못한 그 장찬 거리를 섬섬약질이 오직 성경과 십자가를 뫼시고 다니셨을적에 그 길이 얼마나 멀고 고단하였겠습니까?

여름이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땅에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태양은 뙤약별을 퍼붓는데, 더구나 '스페인의 프라이팬'이라고 불리우는 안달루시아의 한여름은 5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 가로수 하나 없는 그 홍진만장(紅塵萬丈)을 때로는 맨발로, 때로는 로씨난테가 아닌 나귀나 달구지로 오가야 하셨습니다.

진종일 내리쬐는 해를 이고 끝없는 먼짓길을 걷다가 어두워서 숫막을 찾아들면, 그곳은 돈 키호테에 나오는 '색시'가 있고 마리토르네스가 있는 숫막이었습니다. 부랑배들은 수녀들을 놀려대고 술꾼들은 밤새도록 마시며 난장판을 벌이고, 게다가 방안에는 온갖 물것들이 덤벼들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들판 한데서 밤을 지내신 적이 몇몇 번이었습니까?

겨울 들어 장마철이 되면, 다리가 없는 시내에 큰 물이 졌을 때라도 무서움 없이 뛰어들어 건너셨고, 비가 철철 새는 여관방에서 차가운 밤을 지새우지 않으셨습니까? 봄 가을이 되면 고달프기만 하던 길도 제법 즐거워져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아름다운 꽃, 넓고 파아란 들판, 그리고 밝은 물들을 바라보며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찬미할 때, 마부들은 그들대로 흥얼거리며 신바람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포장마차 안에서는 마치 이동 수도원인듯 종 대신 방울 소리에 따라 기도와 노동과 휴식의 생활이 규칙적으로 진행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밖에서는 산초 판사들이 떠들어대며 음담패설로 킬킬거렸습니다. 말끝마다 "안 됩니다.", "하지 마시오."를 달고 다니는 수녀 같으면 상소리가 나올 때마다 "숙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하면서 낮을 붉혔겠지마는 당신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미리부터 그 멋진 솜씨로 맛난 음식을 만들어두었다가 그들 입에서 상소리가 튀어나오면, 얼른 그 진수성찬을 들이대셨습니다. 그들이 먹는 동안에는 입담도 구수하게 성서 이야기, 성인들 이야기 등 당신의 독특한 유머를 섞어가며 들려주셨으므로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뿐 구습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장장 167km를 다니시는 동안에 고르지 못한 일기며, 야박한 사람들에게서 겪으신 그 고통을 어찌 이루 다 말할수 있으리이까? 심지어는 펠리페 세가(Felipe Sega)와 같은 교황사절조차 당신을 가리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싸대는 여자, 말안 듣는 고집쟁이, 신심을 빙자하여 몹쓸 사설을 꾸며내고 트리엔트 공의회와 장상들의 명령을 거스려가면서 봉쇄를 뛰쳐나와 돌아다니는 여자, 여자들은 가르치지 말라는 성바오로의 가르침을 어기면서 스승이랍시고 남을 가르치는 여자"라고 욕을 퍼붓지아니했습니까? 누구보다도 공정하고 점잖아야 될 교황사절이 남의 말만 듣고 자기 입을 더럽힐 때야 그보다 못한 위인들은 어떠했다는 것도 뻔한 사실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바로 성요셉 수도원 개원식 날에 있었습니다.

당신 말마따나 그 '비둘기 집'이 가까스로 마련되어서 새벽 종소리와 함께 미사가 올려지고 성체가 모셔지고 성녀가 손수 만드신 수도복으로 네 사람의 착복식이 있었던 역사적인 그날, 온통 아빌라 성이 난리를 만난 듯이 뒤집혀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조그마한 종 하나 살 돈이 없어서 구명 뚫린 종을 헐값으로 들여왔는데, 사람들은 그 야릇한 종소리를 듣고 하나씩 둘씩 몰려와서 거지 같은 집, 거지 같은 수녀들을 보고 나서 고개를 저으며 쑤군대는 소리가 마침내 온 고을을 불더미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빌라에는 이미 수도원들이 많은 데다가 당신들이 모든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절대 청빈을 지키는 수도회를 세우셨으니, 그들은 경제적 뒷받침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그 하찮은 수도원이 자기네 집터를 침범이라도 하는 듯, 수녀 네 식구가 자기네 빵을 앗아가기나 하는듯 야단들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성녀에게 돌을 던지기까지 했겠습니까?

그 난리통에 시장은 직원들을 데리고 달려와 굳게 잠긴 문 밖에서 "문을 열라. 안 열면 부숴버린다. 수녀란 것들은 어서 빨리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 하고 호령호령하다가 초라하나마 한쪽방에 성체가 계시는 것을 보고는 그도 믿는 사람인지라 하는 수없이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직성이 풀리지 않은 그 시장은 이튿날 시의회를 열어 아빌라의 주교 대리, 각 수도회 원장과 신학자들 및 고관과 유지들을 모아놓고 갖은 비난과 욕설을 퍼부은 끝에 수도회를 세우려거든 연금이 있는 회로 하든지, 그렇지않으면 먼저 성체를 거두고 수녀들을 해산시키고 수도원을 헐어버릴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얼씨구나 하고 난동을 되풀이하는가 하면, 신부들은 성당의 강론대에서까지 성녀와 수도원에 대한 비판을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다 수도원 밖에서 일어난 일들이었고 오히려 약과였습니다.

정말 못 견딜 일은 집안에서 일어난 싸움이요, 박해가 아니었습니까? 가뜩이나 인물 잘나고 재주가 뛰어나서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어오던 터에 이런 끔찍스런 일이 벌어졌으니, 엔카르나씨온의 수도원장은 당신을 불러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녀들은 그때를 틈타 얼씨구나 하고 쫑알거리는 것이었습니다.

"! 수도회를 개혁한다더니, 그래 어른도 몰래 감쪽같이 일을 꾸미는 게 개혁자가 할 노릇인가?" "우리 수도회가 헐어서 못 쓰겠다면 무엇 때문에 27년이나 살아왔나?", "침묵이니 금입제니 하지마는 우리만 깨뜨렸나? 개혁사업한답시고 들며 나며하던 사람은 누구인데!", "그래, 돈 한푼 없이 수도원을 세운다니 수녀들을 모두 굶겨 죽일 작정인가?" "아무튼 수녀 하나 때문에 온 고을이 떠들썩하고 수도원의 명예를 여지없이 떨어뜨렸으니, 벌을 받아도 금고형 감이야, 금고형 ‥‥‥."

그즈음 베드로 알칸다라 성인은 아빌라에서 멀리 떨어진 아레나에서 임종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성녀가 연금 없는 절대 가난한 수도회를 구상하고 계실 때, 모든 사람이 반대해도 오직 혼자 지지해주시던 성인, 공사 도중의 성요셉 수도원을 가끔 찾아주시고 그 완성을 보시자, "이 집이야말로 정말 성요셉 집이로구나. 영낙없는 베들레헴 숫막이야." 하시면서 기뻐하시던 성인‥‥ 성인은 그 동안 일어났던 슬픈 일들을 들으시고 병석에서 기꺼워하시며 당신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창립에 즈음하여 이렇듯 극심한 반대가 있는 것을 나는 기뻐합니다. 이는 그 수도원이 주님의 영광을 크게 떨칠 것을 악마가 시기하여 없애려는 표이니, 절대로 연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과연 악마가 하는 짓이 아니고서야 세상이 그렇듯 들고 일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시의회에서 다만 한 사람, 당신을 변호하던 바녜스 신부님의 발언은 지당하였습니다.

"‥… 불과 네 사람의 수녀가 시 한구석에 들어앉아서 자기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 그렇게도 나라에 큰 손해가 되고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되겠습니까? 그 때문에 회의를 열어서 여러분이 여기 모여야 했습니까? 적군이 쳐들어와 이 고장을 포위라도 했단 말입니까? 염병이 들어와서 모두 다 죽게 되었답니까? 아니면 굶주려서 고생을 한답니까? 당장 이 고을이 성당밑으로 꺼진답니까? 발은 벗고 말이 없고 덕만 있는 가난한 수녀들 때문에 아빌라가 소동을 피워서 되겠습니까? 이렇게 하찮은 일을 가지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회의가 소집되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아빌라의 체면이 깍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이 사업을 없애려고 전력을 다하지마는 그것은 아무 쓸데없는 일입니다. 본시부터 나쁜 사업이라면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실테니, 그런 것은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쁘기는 커녕 예수님이 명하신 일이었기에 악마가 그토록 헤살을 놓아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 원장 수녀는 그앞에 무릎 꿇어서 겸손되이 아뢰는 당신의 말씀에 누그러졌고, 법적 투쟁으로 수도원을 끝까지 없애버리려고 했던 시의회도 마지막에는 경비가 없어서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떨어졌어도 당신의 돈줄을 대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의 절대 신뢰, 절대 청빈의 반석 위에 세워진 성요셉 수도원은 비가 내리고 창수(漲水)가 밀려오고 바람이불어 닥쳐도 꿋꿋이 서 있었고 아직도 서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번 그 수도원을 눈에 익도록 찾아갔습니다마는 하직차 마지막으로 갔을 적에는 다행히도 성년(聖年)이라 사방에 흩어져 있던 성녀의 유물들은 한데 잘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읽으시던 책, 쓰시던 토기, 수놓아 만드신 제의, 말 안장과 지팡이, 언제나 뫼시고 다니시던 십자가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찌르르 해오는 것은 베개와 북이었습니다. 보지 않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베개‥‥ 짚도 베도 아닌, 그렇다고 여느 목침도 아닌 나무토막‥‥ 울통불통 옹이투성이를 그나마 거멀못으로 마구 찍어놓은 통나무 두 쪽‥‥머리 뉘일 자리마저 없으시던 주님을 본뜨려 하심인지, 요조숙녀의 그 아리따움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베개를 들여다 본 순간, 나는 소름이 오싹 끼쳐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놓여있는 피리와 북은 또 얼마나 대조적이었습니까? 그에 얽힌 이야기는 재미있고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세기 때는 웬일인지 물을 꺼려해서 독일 여자들은 일 년에 한 두 번밖에 목욕을 하지 않았고, 프랑스 귀족은 몸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에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지 않습니까? 귀부인들이 향수를 몸에 지니고 다닌 것은 멋보다도 오히려 필요 때문이었다고 하는 그 시절에 청결을 즐기시던 성녀만큼은 물을 좋아하시고 수녀들에게도 물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깨끗이 하여도 고 시절에 그리도 많던 물것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으셨지요. 더구나 가르멜의 수도복은 꺼끄러운 털이라 해충들이 번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입니다. 금단의 성역에 그놈들이 들어왔을 때, 당신은 수녀들과 함께 해충 몰아내기를 벌였습니다. 십자가를 한가운데 뫼시고 피리 불며 북치며 거동을 하는데, 그때 당신이 만드신 즉흥시를 수녀들과 함께 번갈아 가며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서투른 솜씨로 여기 그것을 옮겨봅니다.

 

"새옷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하늘의 임금이시여

무례한 족속에게서 지켜주소서, 이 수도복.

 

십자가 모셨으니 , 따님들 힘을 내시라.

빛이신 예수님께 도우심을 빌라.

당신은 이 어려운 때에 그대들의 보호자.

무례한 족속에게서 지켜주소서, 이 수도복.

 

기도를 드릴 때면 이 몹쓸 짐승들

신심이 여린 마음 괴롭히나니

님 향한 일편단심 한결같거라.

무례한 족속에게서 지켜주소서, 이 수도복.

 

죽으러 온 몸이 무서울 것 있을손가?

이까짓 것쯤이야 무서울 리 없는 것.

님께서 이 고생을 면해주시리.

 

새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하늘의 임금이시여,

무례한 족속에게서 지켜주소서, 이 수도복."

 

청정한 신심, 무아의 희생, 열애의 기도로 주님과 일치하여 그 전능의 팔을 움직이게 하시는 성녀에게 그까짓 해충을 몰아내는 일쯤이야 무엇이 그리 대수로웠겠습니까? 거동이 끝나자마자 해충은 싹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피리와 북은 해충을 없애는 데에만 쓰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도생활에 있어서 해충보다 독충보다 더 지겹게 여기시던 애수와 우울증을 쫓는 데에도 쓰셨습니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남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드는 무서운 이기질", "우울한 수도자 단 한 사람이 수도원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고도 남는다.", "아무리 악마가 우리에게 해를 끼쳐도 우리의 상상력과 나쁜 기질, 특히 우울증만큼 해를 끼치지는 못한다."라고 하신 당신은 "집안을 망치는 우울한 수도자들과 같이 사느니보다 차라리 수도원을 아니 세우는 편이 낫다."라고 하실 만큼 새침데기와 청승꾸러기를 질색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근심하는 성인은 서글픈 성인"이라는 말마따나 "주여, 침울한 성자들에게서 나를 구하소서."를 입버릇처럼 뇌이시던 당신은 "제아무리 완전한 영혼일지라도 배수구가 있어야 한다."라고 갈파하셨습니다. '배수구'란 말이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당신의 증인 마리아 데상호세의 보고가 떠오릅니다.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는 당신 딸들에게서 슬픈 기분을 없애주시려고 전력을 다하시어 고행 못지않게 레크리에이션을 한 '배수구'로 명하시었습니다. 수도원 안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얻지 못하면 밖에서 찾게 되고, 세속으로부터 레크리에이션을 얻게 되는날엔 수도자로서 끝장이 나는 까닭입니다. 고행을 일삼는 사람들은 레크리에이션을 거름처럼 더럽다 할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거름이야말로 메마른 땅을 살찌고 기름지게 하는 법이니 레크리에이션은 우리에게 이런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줄도 모르고 예수의 아녜스 수녀는 당신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부시며 수녀들과 함께 자작시를 노래하며 흥겹게 노시는 것을 보고 거동이 점잖치 못하다 하며 언짢아 할 때, 당신은 그녀 방에 들어가 빙그레 웃으시면서, "염려하지 마. 인생을 살자면 이런 것도 다 필요하다네." 하시지 않았습니까?

요즈음 젊은 세대는 걸핏하면 '배출구(out let)'를 내세웁니다. 아득한 옛날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미학에서 연극이란 일상생활의 생리적 · 심리적 울분을 '카타르시스', 즉 배설하는 데 효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히스테리에 걸린 처녀를 요셉 부로이야가 카타르시스 요법으로 치료하여 정신분석의 기원을 이루었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진 사실입니다. 성녀는 철학을 안 배우고도 위대한 철학자의 이론을 아셨고, 프로이드와 부로이야를 사백 년 앞선 인간심리의 심층을 통찰하시는 정신의(精神醫)셨습니다.

"사랑 없이는 진리를 깨치지 못한다."라고 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대로 인생이란 과학적 분석이나 철학적 논리만으로는 속속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말마따나 '많이 생각하기보다 많이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라야 인생을 이해하고 진리를 터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이 사랑한 마음, 지독히도 많이 사랑한 당신의 마음. 그 마음을 지니신 채 당신은 세상을 떠나셨고, 상기 그 마음으로 '사랑님' 곁에서 사랑하고 계시지만, 나는 그 심장을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보았습니다. 당신이 바로 이 책에서(완덕의 길, 409) "인생은 하룻밤을 지새우는 초라한 숫막'이라고 가르쳤듯이 예순일곱 해의 숫막살이가 끝나 마지막으로 그 심장의 고동이 멋어버린 알바 데 토르메스‥‥. 언젠가 당신이 살라망카의 수도원장에게 편지를 쓰시면서 "토르메스 강이 보이는 암자 하나를 가지고 있소. 나는 거기서 자기도 하는데, 침대에 몸을 누이고 그 물소리를 듣는 것이 내게는 크나큰 낙이라오."라고 말씀하시던 알바 데 토르메스‥‥.

일찍이 자서전(95)"들을 바라보며 물과 꽃을 보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것들 안에서 나는 창조주를 되새겼습니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책과 같이 나를 일깨워주고, 마음을 가라앉혀주었습니다."라고 적으셨던 당신인만큼 파아란 들, 고요한 강물, 아리따운 꽃들이 있는 알바 데 토르메스야말로 성녀의 지상과 천국이 한데 어울리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아아, 눈을 지그시 감으면 시방도 내 마음속에 고요와 밝음이 흘러드는 양 평화롭고 잔잔한 강이 굽이치는 그 고장‥‥. 거기 썩지 않은 당신의 유해와 심장을 모신 안눈씨아씨온 수도원은 조출하기만 하였습니다.

15829월 하순께, 당신은 '지금처럼 일찍이 자리에 누워보기는 이십 년 만에 처음이오."라고 하실 만큼 극도로 피로를 느끼시다가 103일 오후 5시경, 당신은 아주 몸져 누우시어 이승에서는 마지막으로 영성체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때 성체가 더디 오시는 틈을 타 눈물을 글생이면서 둘러서 있는 수녀들에게 하시던 말씀은 너무나 당신다운 겸손한 성녀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따님들, 그리고 어른님들,‥‥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부디 회헌과 규칙을 충실하게 지키십시오. 각자가 할 일을 어김없이 다한다면, 성녀가 되는 데 딴 기적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못된 수녀가 여러분께 보여드린 나쁜 모범일랑 아예 본뜨지 마시고,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드디어 성체가 임하자,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은 채 일어나 두 무릎을 끊고는 희색이 만면하여 외치셨습니다.

"내 주, 내 님이시여, 이제야 그 바라던 때가 왔습니다. 떠날 때가 왔사오니 자, 가사이다. 귀양살이에서 풀려날 시간이 왔사오니 그리던 님을 뵈오리다‥‥‥."

성체를 영하고 난 다음에 당신은 몇 번이고 "주여, 결국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를 되풀이하면서 자모이신 교회의 딸로 살다가 교회의 딸로 죽는 영광을 감사드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날 밤은 게쎄마니의 밤‥‥. 운명을 앞둔 그 밤은 밤새도록 쓰거운 잔을 마셔야 할 밤이었습니다. 엄위하신 주 대전에 나아가는 모든 성인이 그러하듯이 죄 없는 당신이었건만, 더구나 평소에 "당신은 사랑과 두려움으로 주님을 섬기라."고 가르치셨던만큼 다윗의 시편 제50편을 외우시면서 "하나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 당신의 면전에서 날 내치지마옵시고, 당신의 거룩한 얼을 거두지 마옵소서.‥‥ 하나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나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보시나이다‥‥‥."라고 자비를 애원하셨습니다.

아아, 역사의 그날 104‥‥, 믿음은 끝나고 바람은 쓰러져서 사랑과 사랑이 직관으로 합치던 날, 살아 생전에 당신이 지어부르시던 노래로 미루어 죽음 아닌 당신의 죽음이 얼마나 복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못 죽어 죽겠음을" (Mueroporque no muero)라는 시의 졸역을 몇 마디 추려서 여기 적어보겠습니다.

 

"사노라 나 안에 아니 살며

높이곰 살기가 원이로라.

어져 못 죽어 죽겠음을.

… … … …

님이 내 포로 되시는 꼴

보고지고 보고지고

어져 못 죽어 죽겠음을.

 

아으 지루타 이승살이

머흐도 머흘사 귀양살이

항쇄 족쇄 이 감옥에

영혼이 묶여 사노매라.

벗어날 일 기다림만도

뼈 저리는 아픔일라

어져 못 죽어 죽겠음을.

… … … …

… … … …

내 안에 사시는 내 님에게

목숨아 무엇을 내드리겠나.

살뜰히 그 님을 뫼시려니

너를 버려야 하겠구나.

님 두고 내 사랑 또 없느니

차라리 죽어서 뵙고지고

어져 못 죽어 죽겠음을."

 

알바 데 토르메스‥‥, 침묵과 고요가 흐르는 강, 쇳소리 바큇소리가 없는 조용한 시골 땅은, 이십 년 동안 서른 군데의 남녀수도원을 창건하시느라 십오 년에 삼만 리를 두루 다녀야 했던 '싸다니던 여자', '거둠의 기도', '고요의 기도'를 가르치신 성녀가 잠드시기에 가장 알맞은 자리였습니다. 1570년에 몸소 이룩하신 그 가난한 수도원은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떠나신 당신의 유해를 모시기에 가장 알맞은 자리였습니다. 평소에 자신을 가리켜 "개미 새끼, 구더기 새끼, 대 죄녀"라고 하시던 겸손한 성녀 당신이 아니십니까?

거기 성당 제단의 한옆에 안치된 당신의 심장에서는 자서전(29)에서 직접 말씀하신 대로 천사가 불붙는 황금 살촉으로 쩔렀다는 그 자국을 사백 년 뒤에도 역력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죽으면 으레 썩는 몸뚱이, 숨 거둔 당신의 몸이 차디찬 재가 되었다 해도 이상할 리 있겠습니까마는, 어느 누구의 마음보다도 높고 깊고 넓은 사랑으로 불타던 그 마음의 그릇이 썩어버렀던들 너무 아깝고 서운할 뻔하였습니다.

이집트의 미라가 삼천 년을 넘어 내려오고, 모스크바의 레닌묘에는 아직도 그 시체가 썩지 않고 있다지만, 그런 것과는 달리 방부제 하나 없이 몸과 함께 고스란히 당신의 심장은 오로지 하나님의 힘과 고마우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살아 생전에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님께 바치고, 있는 그대로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겸손이란 진리 안에 거니는 것"이라 하실 만큼 거짓과 꾸밈을 싫어하셨는데, 돌아가신 후에까지 숨김없이 그 마음을 드러내시는 듯하였습니다.

나는 당신 나라 사람들이 세계 칠대 경이(The seven Wonders ofthe World)에다 하나를 더 보태어 팔대 경이라고 자랑하는 에스코리알과 그 성전 바로 밑에 있는 제왕들의 판테온을 보았습니다. 호화찬란하기로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그 팔각당에는 카롤루스 1세를 비롯하여 펠리페 2, 알폰소 12세까지의 제왕들의 대리석 관이 있었습니다.

파리의 앵발리드에서는 나폴레옹의 무덤도 보았습니다. 생전처음 보는 붉은 쑥돌도 쑥돌이려니와 덩그런 그 모습은 대프랑스황제의 위엄을 풍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 넘겨다 보이는 여러 국기들은 비록 삭았을망정 그의 숭전 기념물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당신 말씀마따나 "모든 것은 끝나고 님만이 남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왕들의 능침이 제아무리 화려하고 위엄이 있다손 치더라도 "저 속에 카롤루스가 있다.", "이 속에 나폴레옹이 있다."는 말투대로 그들은 백골로 있을 따름이며 서명하나, 호령 한마디로 남의 운명을 좌우하던 위풍도 삭아빠진 기폭이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한때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차지하였던 중남미와 필리핀은 이미그들의 영토가 아니며, 프랑스의 영웅이 빼앗았던 나라들은 그때의 지도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입니다. 나는 그 제왕들의 무덤앞에서 누구 한 사람 머리 숙이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도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심장 앞에서는 저절로 무릎이 꿇리는 것은 어인 일이었습니까?

당신에게는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은 돈 키호테의 명예가 없습니다. 바다를 건너 총칼로 얻은 모험가들의 황금과 땅이 없습니다. 턱 끝으로 남을 부리던 제왕들의 권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겸손과 청빈과 순명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덕을 꽃피게 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있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마음‥‥

사람들이 없어질 돈과 이름과 권력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울때,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나 하나'를 무한대로 키우려고 애쓰고, '나 하나'의 이름을 빛내고자 '나 하나'의 나라를 세우려 했을 때, 당신은 '나 하나'를 무한소로 없애고, 오로지 님의 이름을 빛내며 님의 나라를 키우고자 마음의 세계로 찾아들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끝나고 님만이 남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잘보셨습니다. 당신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끝나는 모든 것에서 이탈하심으로써 영원히 현재하시는 님을 얻으셨고, 그러기에 님과 함께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겼습니다. 완덕의 길에 대하여 몇 마디 덧붙여볼까 합니다. 성녀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1562년 바로 개혁의 보금자리인 성요셉 수도원을 창건하시던 그해 겨울이었습니다. 기도의 집을 마련하신 당신은 기도생활의 길잡이, 관상생활의 밑절미를 수녀들에게 이바지하고자 엄동설한 깊은밤에 그들이 자는 틈을 타 불기 없는 독방의 싸늘한 돌바닥 위에서 이 천고의 명편을 엮어 내려가신 것입니다. 사실 기도의 정신과 기도의 생활이 없는 수도원이라면, 사람이 삼십은 고사하고 삼천, 삼만 인들 그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에스코리알의 도서관에서 그 원본을 보았습니다. 진서, 고서, 희본들은 물론, 순수 금글씨로 써놓은 책들 가운데 당신의 그 원고는 얼마나 초라한 것이었습니까? 지금 세상 같으면 휴지감도 안 될 값싼 종이에다가 멋들어지게 갈겨놓은 당신의 그 원고들이 먹통과 깃붓과 함께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걸음을 멈춘 채 바보처럼 서서 당신의 청빈이 빛나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생각하면 당신이 그 글을 구성하고 쓰시던 때는 트리엔트 공의회 시대였고 지금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시대입니다. 사백 년의 시차가 두드러지는 만큼 두 시대의 양상도 매우 달라졌습니다. 중세기의 수도원장이 다락 같은 말을 타고 전후 좌우 옹위하는 가운데 행차하는 것을 본다면, 지금 사람들은 아연실색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 으레 있는 일이었습니다. 휘황한 샹들리에, 찬물 더운물이 나오는 화장실, 전기 냉장고와 에어컨이 있는 수도원을 그때 사람이 본다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수도생활의 형태도 그 옛날 은둔생활에서 수도원생활로 발달한 것 이상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사람을 멀리 피하고 사회를 외면하는 양 사막이나 광야를 찾아다니던 은둔자들, 그 뒤를 이어 성곽처럼 높은 담을 쌓고 대궐 같은 상아탑 안에서 기도와 노동을 일삼던 수도회들, 말하자면 개인 성화(聖化)에 치중하던 뱃날의 수도생활의 형태는 차츰 희미해지고, 오늘날에 와서는 수도복도 수도원도 없이 사회를 도장(道場)으로 삼고 대중과 어깨를 나란히하여 오직 섬김으로써 되도록 사회에 참여하는 수도회 아닌 수도회들마저 생겨나 그리스도의 사도와 거룩한 교회의 증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시대의 양상에 따라 수도생활의 형태가 바뀌어가고있습니다만 그 본질과 정신이야 변할 리 있겠습니까? 행인지 불행인지 교회 쇄신과 그 현대화가 바티칸 공의회의 중요과제로 다루어진 후부터 가틀릭 세계는 과도기의 진통을 겪고 있는 현실이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성직자나 수도자까지 도) 마치 교회의 본질이나 진리 및 윤리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한 줄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백 년 전 당신의 생활과 사업을 본다면, 무조건 구세대의 것이라 하여 골동품처럼 여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의 현대화란 것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그 절대조건으로 교회의 내면적 쇄신이 앞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님들은 교회의 현대화를 표방하고 훌륭한업적을 남기기는 하셨지만, 먼저 해야 할 교회의 내면적 쇄신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그 현대화는 너무 지나쳐서 교회의 세속화는 슬픈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가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트리엔트 시대에 당신이 교회의 딸로서 영성 세계의 기수가 되신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절대적 청빈 그 자체가 의미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과 고행 그 자체가 가치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맨발을 벗고 산다는 그 자체가 무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습니까? 인도의 중들은 그보다도 더 무서운 고행들을 하지않습니까? 알을 위하여 점질이 필요하듯이, 내용과 목적을 위해서는 형식과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과 방법은 어디까지나 형식과 방법일 따를이며 무엇보다도 알짜는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는 당신을 가리켜 "스페인 여성의 전형", "가장 완전한 가르멜 수도자"라고 합디다마는, 당신에게나 우리에게나 스페인과 가르멜 같은 것은 껍질이요 형식일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길, '완덕의 길'을 몸소 걷고 가르쳐주신 거기에 당신의 성녀다움과 신비학의 스승다움, 그리고 성비오 10세의 표현을 빌린다면, "성학자" (Doctora) 다우신 점이 있다 할 것입니다.

당신 스스로 성요셉 수도원으로 살러 가시던 그날 그때까지 써오던 데레사 데 쎄페다 이 아우마다(Teresa de Cepeda yAhumada)라는 이름을 버리시고, 그 대신 예수의 데레사(Teresade Jesus)로 고친 것은 온전히 예수님의 것으로 살겠다는 뜻이었고, 돌아가실 때에도 '교회의 딸'로 살다가 죽는 영광을 감사하여 마지않으셨으니 알짜 예수님의 것으로 살고 교회의 딸로 죽는 마당에 껍질이 무에 그리 대수롭겠습니까?

당신이 남기신 모든 저작, 그 중에서도 이 완덕의 길이 오늘뿐 아니라 언제까지라도 태양을 바라보고 사는 식물들처럼 하나님께 향하는 마음이 있는 한, 기도하는 인간의 등불이 되는 까닭이 실상 여기에 있으리라 믿습니다.

평소에 당신은 스스로를 가리켜 "개미 새끼, 구더기 새끼, 대죄녀"라고 부르셨다지만, 개미 새끼의 발만도 못한 위인이 성녀의 글을 옮긴답시고 더럽혀놓는 주제에 완덕의 길의 길을 들어 감히 무어라 할 수 있으리까마는, 비록 깊은 뜻은 알아듣지 못할망정 몇 가지 가슴에 사무쳐오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선 완덕의 길이라는 표제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1577년 당신이 톨레도에서 오빠 돈 로렌쓰 데 에페다에게 띄우신 편지에 "내가 말하는 바는 우리 아버지(주의 기도)라는 책에 있으니, 거기서 기도에 관한 것을 많이 발견하실 것입니다."라고 쓰신 것으로 보아 이 책의 버금 제목이 "우리 아버지", "주의 기도", 그 내용 역시 기도생활임이 틀림없습니다. 아마 당신 생각으로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길이 바로 완전한 기도를 하는 길로 통하고, 따라서 잘 기도하는 인간이 곧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인간,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을 떠나버린 현대인에게 이 얼마나 아쉬운 인간입니까? 사실 이미 16세기 때부터 인간은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하는 교회를 떠났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드려야 할 그리스도를 떠났으며, 빌어야 할 하나님을 떠나 19세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했습니다. 자율적인 인간이 되고파서 아버지의 집을 멀리 떠나온 탕자, 집을 나오면서부터 아버지를 잃어버린 그는 드디어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큰 흉년이 든 먼나라에서 바야흐로 아쉬움을 느끼는 탕자,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하여도 아무도 주는 이 없는 탕자(15:14-16 참조), 그가 얼마나 불쌍하게 되어버렸습니까?

소위 과학시대에 산다는 현대인은 로켓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면서 우주를 정복한답시고 기고만장합니다. 당신이 천국에서 내려다보시면, 그 모습이 마치 종이 비행기나 고무풍선을 공중에다 띄우면서 기뻐 날뛰는 어린아이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진종일 장난감에 팔려서 정신없이 놀다가 해질녘에야 길을 잃고 제 집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허랑방탕하게 놀던 때가 탕자에게는 즐거웠듯이 장난감에 팔려 있는 그 순간만큼은 집 생각, 아버지 생각이 안 날 만큼 즐거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간뿐, 어느덧 마음은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님을 위하여 지어진 마음, 님 아닌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마음이기에 그분 아닌 모든 것은 다 '쥐엄나무 열매', 님이 아니시면 그것마저 줄 사람도 없으니 어찌 허전함 느끼지 않겠습니까? 인간이란 '제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닌, '받아서 있는' 존재로서 마치 탕자가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고 그가 없앤 재산조차도 어버이한테 받아서 쓴 것처럼 받아서 있는 인생이요, 얻어서 가지는 인생이고 보면, 아쉬워하는 마음은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닌가 합니다.

복음의 탕자가 스스로 돌이켜. "나는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구나.",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진실된 고백이 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누가복음 15장의 이 대목에서 인간이 자신의 무능과 비참을 있는 그대로 느낀 나머지 구원을 찾아 아버지께 돌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탕자가 빈곤과 죄의식에서 '일어나' 아버지 집을 찾아가는 것이 스스로의 '없음'을 사무치게 깨달아 '있으신 분 - 야훼님'께 귀의하는 마음, 말하자면 인간이 종교에 귀의하는 마음과 통하는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표현이겠습니까? 듣자니 옛날에 가장 높던 뉴욕의 성패트릭 주교좌 성당은 마천루의 무더기에 눌려서 낮은 건물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현대형의 인간은 아버지가 필요없다 할 만큼 너무나 커져버렸고, 교만하도록 너무나 자율적인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야말로 탕자처럼 스스로 돌이켜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모름지기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한테로 돌아와야만 스스로의 무능과 비참을 살필 수 있고, 아버지 앞에 있는 자기를 보아야만 어린아이가 되어서 그 무능과 비참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고, 나아가서는 아버지의 전능과 자비에 자신을 내맡기어 안심 입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재회, 이것이 곧 아우구스티누스가 'Religio' (종교)Re-eligere(재선택)에서 비롯한다고 본 의미 내용일 것이고, 이것이 곧 기도행위일 것입니다. "치마 두른 아우구스티누스"라고 일컬어지도록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을 꿰뚫은 당신이 기도를 정의하여 "나를 사랑하시는 님과 단둘이 이야기하면서 정답게 사귀는 것"이라 하시고, 기도 없는 인생은 잃어버린 인생이고 참다운 인간은 기도로써 이루어져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깨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인가 합니다. 그렇습니다. '님과 정답게 사귀는' 기도로써 인간은 '당신 모습따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을 닮을 수 있고, 하나님을 완전히 닮게 될 때 인간 완성의 절정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빛 앞에 있는 몸이 어두울 리가 있겠습니까? 불 앞에 있는 몸이 차가울 리가 있겠습니까? 거짓된 인간도 진리 앞에서는 참다워지고, 죽어가는 목숨도 생명을 대하여 살아날 것입니다. 기도하는 인간은 거울 앞에 조용히 끓어앉는 여인과도 같습니다. 그는 행여 님이 싫어할세라 미운 데를 고쳐나갑니다. 또한 기도하는 인간은 하나님을 앞에 뫼시고 ''라는 인간을 그리고 쪼아가는 사실파의 예술가입니다. 죽는 날까지 자기 부정의 고된 일을 쉬지 않으리니, 햇빛을 마주 보고 사는 꽃인 양 그는 아름답게 피어갈 것입니다.

도시 없다가도 있고, 있는 듯 없는 몸이신 그분을 마주 대할 때마다, 높으신 그 영광이 오직 두려워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흠숭과 찬미를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있으심''없음'을 벗하시어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 더할 수 없는 그 고마우심에 저절로 감사가 솟아날 것입니다. 말갛게 쓰레질을 한 방이라도 햇살이 창틈으로 스며들면 무수한 티끌이 드러나는 법, 하물며 밝으심, 맑으심 그 자체와 함께 마주 앉았을 때 인간은 제 더러움을 사무치게 깨달아 용서를 빌며 한시바삐 그 때꼽을 씻으려 할 것입니다.

성녀여, 이러한 인간 완성의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그것은 이미 구복주의(求福主義) 종교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신령께 비는 "태워줍소사, 늘려줍소사, 불려줍소사."도 아니며, 더군다나 액막이 살풀이를 하는 무당의 기도일 수도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마따나 "우리는 하나님의 거지‥‥‥,"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라고 말씀하시었으니 "너희 즐거움이 충만하기 위하여 구하라, 곧 받으리라."라고 하심도 인간은 오로지 기도로써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겠습니다. (), (), (), ()이 아쉬운 하나님의 거지가 바로 그 진, , , 성이신 하나님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기도라고한다면 구하여 받고, 찾아서 얻는 인생의 즐거움이 어찌 아니 충만하다 이르겠습니까?

기도가 이러한 것이기에 당신은 영혼의 성머리말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 성의 문이 곧 기도다."라고 하시었고, 십자가의 성요한도 그의 노래의 노래풀이에서(노래 제29) "너무 활동적인 사람들, 자기네의 설교나 바깥일로 세상을 에워쌀 것으로 아는 그들이 그런 시간의 절반이나마 기도로써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일에 소일한다면, 훨씬 더 교회를 이롭게 하고 훨씬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라고 못박은 것이아니겠습니까?

그렇건마는 현대는 격동하는 시대, 노출의 시대로서 단테가 신곡의 천국편에서 부르던 노래가 다시 듣고 싶어지는 시대인가 합니다.

 

"이렇거늘 하계에서는 아니 자면서 꿈을 꾸고

진리를 믿고도 아니 믿으며 말을 하나니

보다 더한 죄와 수치가 여기에 있도다.

 

하계에서 너희가 철학을 하며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니, 겉모양의 애착과

그의 사념이 이렇듯 너희를 들뜨게 함이로다.

… … … …

… … … …

 

그것을 세상에 심기에 얼마만한 피가 소용되는지

그리고 겸손되이 그것에 곁을 주는 자

그 얼마나 기꺼운지는 생각하는 이 없도다.

 

누구나 돋보이고자 애를 쓰고

제 재주를 다루며 설교가들도 그렇듯 꼼꼼하기는 하나

복음성경은 들어서 말하지 않는구나."

 

 

'돋보이고자 애를 쓰고, '겉모양의 애착'에 들떠 있는 시대‥‥. 진리를 믿는 듯하면서도 아니 믿으며 말만 하는 세상‥‥. 성경의 말씀을 심는 데 피가 소용됨을 모르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기쁨인 줄 모르는 이 시대에서는 그저 눈에 띄는 사업이나 떠들썩한 말소리만이 판을 치는 것 같습니다. 말도 좋습니다. 일도 좋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얼이 깃들지 아니한 일들이 세상을 에워싼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생각하면 당신처럼 가날픈 여성으로서 사람들을 말과 글로 가르치신 분도 드물 것입니다. 당신처럼 연약한 몸으로 그토록 많은 일을 남기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할 때 당신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 말과 글들이 신비로운 진리를 간직하고 그 일들이 영원한 가치를 지니기에 앞서 '사랑하는 님과 이야기하면서 정답게 사귀심', 즉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관상과 활동을 일치시킨 당신의 생활이 있었고, 성토마스의 "먼저 관상하고, 그 관상한 바를 그 다음에 전한다."는 진리가 있건마는 한심할손 우리들은 그 생활, 그 진리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아니, 우리에게는 그러한 기도는커녕 당신이 이 책에서 강조하신 기도의 전제조건마저 없습니다.

첫째, '이탈'이 없습니다. 님 아닌 누구, 님 아닌 무엇에 정을 붙이고 애집과 애착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 어떻게 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딴 데 있거늘 어찌 님과 정다운 사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둘째, 이웃 사랑이 없습니다. "당신이 제단에 예물을 갖다 바치려 할 때에 형제가 당신에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당신의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물러가서 당신 형제와 화해하시오. 그 다음에 와서 당신의 예물을 바치시오."라고 주께서는 명하셨거늘, 사람을 미워하면서 그를 내신 하나님과 어찌 감히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셋째, 겸손이 없습니다. 빌어 먹고 사는 '하나님의 거지'가 제힘, 제 재주라 뽐내면서 제 덕으로 잘사는 줄로 알고 있으니, 아쉬움을 모르는 거지가 오직 불쌍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더욱 깊이 캐들어가보면,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없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요, '고요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렸으니 하나님과 이야기할 터무니가 없습니다. 내가 없고서야 님과의 대화가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교황바오로 6세가 공의회에서 다음의 쇄신을 말씀하시면서 각자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심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현대인은 제 집을 나가서 다시 들어갈 열쇠를 잃어버렸으니 무룻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내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 말씀은 현대사회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성사적(聖事的) 존재로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님과의 대화가 앞서야 할 것이고, 또 그 열쇠가 되는 고요한 인간부터 되어야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정말이지 우리가 사랑하는 님과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고, 모처럼 그분과 하는 이야기나마 대화가 아닌 독백이 되어버리는 이유는 스스로 고요한 인간이 되어 있지 못한까닭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젊은이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습성은 오솔길이 아니면 으슥한 골목길을 좋아합니다. 어두워가는 황흔이 아니면 밤거리를 좋아합니다. 되도록이면 시끄러움을 멀리한 곳이라야 그들의 조용한 대화가 피어나는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우리는 '님과 단둘이 이야기'할 만한 고요를 잃었습니다. 우리의 시청각을 앗아가는 것들이 하도 많아서 거기에 눈과 귀가 팔리다 보면 어느덧 마음까지 '' 밖으로 튀어나와 그야말로 정신 나간사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니 제 소리 제 말을 할 수도 없고,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기도하기에 앞서 우리의 마음가짐이 고요해야 된다는 것을 미리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속세를 떠나서 깊숙한 카르투시안이나 가르멜 같은 봉쇄수도원을 찾아가야만 고요를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몸은 비록 심산유곡의 암자 안에 들어앉았더라도 마음은 훨훨 날아 화택의 이 꽃 저 꽃을 찾아다닐 수 있고, 시끄러운 저자 한가운데서 바쁜 몸일지라도 마음만은 고요하지 말란 법이 없으니 말입니다.

성녀는 누구보다도 저 '그윽한 속'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들으셨습너다. 좋아하시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탐독하시고, 그 책 제십권 이십칠장의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님을 찾아 당신의 아름다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라는 대목에서 당신은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성아우구스티누스가 하신 말씀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여러군데에서 하나님을 찾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어수선한 영혼에게 있어 대단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원하신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고 같이 즐기고 싶으면, 구태여 하늘로 올라갈 것도 없고 큰소리로 말할 필요도 없다는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대단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히십니까? 아무리 낮은 소리로 말하더라도 하나님은 아주 곁에 계시니 우리 말소리를 들으실 것이고, 그분을 찾아가는 데에는 날개가 필요없을 것입니다. 오직 고요 속에 ''를 두고 '나 안에서' 당신을 보면 그만인 것입니다."

이만했으면 아우구스티누스라도 당신의 글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다만 몇 마디, 이 말씀을 뒷받침하는 당신의 "작은 세네카"(십자가의 성요한)의 노래 풀이가 듣고 싶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디에 그대를 숨기신고?"의 시구를 이렇게 풀었습니다.

"온갖 피조물 중에 짝 없이 아름다운 영혼아, 님은 당신이 숨어 계시는 곳이 바로 네 자신이라고 내게 말씀하시는구나, 이것이야말로 크게 기쁘고, 흐뭇한 일. 너 바라는 모든 행복이 이렇듯 네 가까이, 아니 네 안에 있다니‥‥. 대죄 중에 있는 영혼이라도 하나님이 떠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치는 것은 너무나 흐뭇한 일이다."

옳거니, 그러기에 주께서 '그윽한 속'이라 가르치신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오직 고요 속에 나를 두고, 나 안에서 당신을 보면 그만이어니!" 이것이 바로 교황의 말씀대로 잃어버렸던 내 집 열쇠를 도로 찾는 내적 인간이겠고, 따라서 공의회를 따라사는 길이겠습니다.

기도의 문으로 '영혼의 성' 깊숙이 들어가 거기서 님과 함께 단둘이서 이야기하는 사람, 정답게 사귀는 사람, 이미 나 자신 안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사시는 것을 믿고 느끼는 사람은 태산의 무게를 지닌 사람이며, 완전한 인간입니다. 그가 세상에 그립고 두려울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이러한 인간이 되신 성녀이기에, 몸이 수도원 안에 있거나 밖에 있거나 마음은 매양 주님 안에 뿌리를 박고 성령칠은(聖靈七恩)으로 꽃을 피우셨으니, 기도하는 인간이 완전한 인간임을 몸소 보이시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성녀여, 여기까지 쓰다 보니 당신이 흔히 하시던 말투대로 '무엇을 써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평수도자 후안 델라 미세리아가 당신의 초상화를 그렸을 때의 일입니다. 당신은 장상의 명을 어기지 못하시어 그림이 다 될 때까지 참고는계셨지마는, 막상 다 된 그림을 보시고 나서 다음과 같이 우스갯 소리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후안 수사님, 주께 용서를 빌어야겠습니다. 나를 그리신다고 미운 눈꼽쟁이를 그려놓았으니."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남아 있는 그 단벌 초상화는 우리가 보아도 당신다운 고운 모습을 엿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님께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그 후안이 아니라 죄스러운 이 후안입니다. 프랑스의 어린 데레사는 알아도, 그 어머니이신 대데레사 당신을 모르는 독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당신의 모습을 그리는 체 해보았으나 워낙 다채로운 성녀의 생애요, 신비로운 사랑이라 애당초 일개 속한(俗漢)이 성녀께 글월을 올린다는 것부터가 무엄한 짓이었습니다.

성녀여, 후안의 초상화를 웃어주시었듯이 너그러이 용서하소서. 기도는 만능이라 하신 당신이시니, 더욱이 영광의 나라 삼위일체 곁에 계시는 지복의 몸이시니, 우리에게 은혜를 빌어주소서.

"당신의 천상 진리로 우리를 길러주시고"(성녀 데레사 미사 기도문) 이승에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을 체현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바티칸 공의회로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그럼, 오래지 않아 성삼위 앞에서 만나뵈을 그날을 기다리면서 이만 줄이나이다.

 

시월 상달, 성녀의 축일을 나흘 앞둔 밤

불초 최요한 합장

 

붙임.

완덕의 길을 옮김에 있어 성녀가 맨 처음 성요셉 수녀들을 위하여 쓰신 에스코리알(Escorial) 원본, 그 다음에 추고를 하신 Valladolid 원본,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출판을 예상하시고 다시 쓰셨다는, 그러나 당신의 서명이 없는 소위 Toledo 원본, 이 세 가지 중에서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낫다는 Valladolid 원본과 정평있는 Silverio de Santa Teresa예수의 데레사 전집 3권을 대본으로 삼았삽고, "수녀들에게 타이르는 말" 역시 이책의 제6권에서 뽑았습니다. 그 동안 불초가 참고한 책을 적어 올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P. Silverio de 8. Teresa-OBRAS DE S. TERE8A DE JESUS - 9Vols., El Monte Carmelo, Burgos.

Don Vicente de la Fuente-ESCRITOS DE SANTA TERESA. -2Vols., M. Rivadeneyra. Madrid.

Fr. Efren de la Madre de Dios-SANIA TERESA DE JESUS-Obras completas, BAC, Madrid.

Antonio Comas -SANTA TERESA DE JESUS.-ObrasLa VidaCamino de perfeccionLas Moras, Vergara.

Luis Santullano - SANTA TERESA DE JESUS.- Obras

completas, Aguilar.

D. Miguel Mir, pbro. - SANTA TERESA DE JESUS. - Su Vida, su Espiritu, sus Funciones, Maid.

Fr. Diego de Yepes-VIDA DE SANTA TERESA DE JESUS.-Buenos Ayres.

Jorge Pap asolli-SANTA TERESA DE AVILA. - Studium, Madrid.

William Thomas, Walsh - SANTA TERESA DE AVILA- Espasa, Calpe.

P. Gabriele di S. M. Maddalena-LA VIA DELL' ORAZIONE.-Roma.

P. Crisogono de Jesus-SANTA TERESA DE JESUS.- Barcelona

P. Nazario de Santa Teresa-LA PSICOLOGIA DE

SANTA TERESA. -Avila.

A. de Castro AIbanan-POLVO DE SUS SANDALIAS. - Salamanca.

Juan Dominguez Berrueta-FILOSOFIA MISTICA ESPANOLA, Madrid.

P. Sabino Jesus-SANTA TERESA DE AVILA. - A traves

de lacritica literana, Bilbao.

El Conde de la Vi naza-SANTA TERESA DE JESUS. - Ensayo critico, Madrid.

Antonio Alamo Salazar - SENDA EMOCIONAL DE ALBA DETORMES. -Palencia.

Marcelle Auclair-LA VIE DE SAINTE THERESE

D'AVILA.-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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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