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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는 생명과 명예를 가벼이 보야야 한다

 

 

1. 이제는 다른 문제로 넘어갑시다. 대수롭지 않은 것 같으나 이것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느 것이고 이만저만한 고생을 다 겪겠지만 특히 우리 자신을 거역하여 싸우는 일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일만 착수하고 나면, 주님이 영혼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시는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내리시는지 평생을 해도 못다 할 일들이 오히려 쉽게만 여겨질 것입니다.

수도자인 우리는 우리 힘이 미치는 일은 물론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주님의 사랑으로 자유를 포기하여 남의 손에 우리의 자유를 맡긴다든지, 고된 일, 재소(齋素), 침묵, 독방살이, 공동기도에 참여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제아무리 호강을 해보려고 해도 기회가 아주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적 극기를 피하려 하겠습니까? 극기를 해야 공도 완덕도 많이 이룰 수 있고, 그런 뒤라야 하는 일이 재미나고 수월해지는 게 아닙니까? 재미나고 수월해진다는 것은 아까 말한 대로 날마다 사소한 일에까지 우리의 아집과 아욕을 조금씩 끊어감으로써 얻어지고, 그것은 나중에 육체를 정신의 지배하에 들게 합니다.

2. 거듭하는 말입니다만, 그렇게 되려면 전부의 전부가 우리 자신의 안일과 걱정을 끊는 데 달려 있습니다. 이미 주님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이면, 그가 바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이 생명일 것이니, 자기 마음을 바치고 난 연후에야 무서울 것이 무엇이있겠습니까? 그가 정말 수도자요, 정말 기도하는 인간으로 주님의 은혜만을 흐뭇하게 여긴다면, 그분을 위하여 죽기를 원하거나 순교하는 것을 등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자매들은 벌써 알고 있지 않습니까? 착한 수도자, 주님의 친한 벗이 되고자 하는 이의 한평생이란 기나긴 순교라는 것을. '기나 긴' 그렇습니다. 한 칼에 목이 잘리우셨던 분들에 비하면 그것은 기나긴 순교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일생이 모두 다 짧고, 한평생이 아주 짧다랄 수도 있지만 우리 생명이 아주 짧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마음껏 한번 주님을 섬기겠다고 뜻을 세운지 한시간, 혹은 한순간후에 죽을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결국 끝이 있는 모든 것에 아랑곳할 게 없으니 시간마다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부지런히 아니 일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제일 안전한 길입니다.

3. 그러므로 매사에 우리의 뜻을 꺽기로 합시다. 내 말대로 조심성 있게 나아가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차츰 절정까지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편한 것을 찾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너무나 냉엄하게 들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은 자기를 끊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나며 이승에서부터 얻는 것이 많다고 왜 말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여기서는 여러분이 다 이 일에 힘쓰고 있는만큼, 큰 일은 다 한 셈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일깨우고 도와주고 저마다 앞을 다투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4. 힘써 조심할 일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 특히 남보다 낫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더 고참이다.", "내가 더 연장이다.", "일은 내가 더 했는데 나보다 저 사람을 더 알아주는군." 하는 따위의 말은 물론, 그런 생각조차 마음에 두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주님은 당신 수난을 보시어 우리를 구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끊어버려야지 머물러두거나 입밖에 내기만 하면 페스트나 마찬가지요, 무서운 해독의 온상이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알고도 가만두는 원장이 있다면, 주께서 여러분의 죄를 벌하시려고 그런 사람을 보내신 줄 알고 바야흐로 망할 때가 온 것이라 믿어 일대 위기에서 놓여나기를 주님께 열심으로 빌어야 할 것입니다.

5.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탈을 채 못한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기쁨을 주시는 때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토록 무섭게 역설하느냐고. 내가 어찌 이를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같이 하시는 것은 당신의 사랑을 위하여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도록 이끌자면 어떤 방법이 알맞는지 꿰뚫어보시는 그 무한하신 예지에서 하시는 것입니다.

수도원에 들어오는 것을 나는 '이탈'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수도원에도 별의별 장애가 다 있을 수 있고, 또 어디에서든지 완전한 영혼이면 이탈과 겸손을 지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환경이 중요한만큼, 훨씬 더 힘드는 곳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한 가지 다짐하고 싶은 것은, 명예욕과 재산욕은 수도원 안에서나 밖에서나 있을 수 있고, 그런 유혹의 기회가 적은 여기서는 그 잘못하는 죄과도 더욱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예욕과 재산욕이 있는 한, 수녀들이 아무리 기도로 - 옳게 말하면 묵상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완전한 기도를 해나가면 그런 악습은 없어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 오랜 세월을 보냈다 하더라도 절대로 크게 진보하지 못할 것이고, 기도의 진미를 맛보기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6. 자매들이여, '겸손이탈',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반성해보십시오. 사실 여러분이 이곳에 있는 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이름을 날릴래야 날릴 수도 없고, 아무리 벌어들일래야 이익 보기는 틀렸습니다. 그야말로 패가망신을 한꺼번에 하는 데가 이곳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각자는 스스로 겸손을 지니고 있는지 반성함으로써 자신의 향상을 알아낼 수있을 것입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 같으면, 엉겁결에라도 남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음으로써 악마가 다시는 시험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악마는 꾀많은 놈이기 때문에 반격을 두려워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악마가 그런 시험을 하면 할수록 겸손이 더욱 굳어져서 진보가 빠를 따름입니다. 그는 반드시 자기의 과거를 두루 살피며 주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 과연 본분을 다하여 그분을 섬겨드렸는지를 반성합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겸손의 모범이 되시고자 스스로 낮추신 그 망극하신 주님의 은혜와 자기의 죄와 그 죄값으로 벌을 받아야 할 곳(지옥)을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영혼은 오히려 굳세어지기만 하니 악마는 제머리통이 깨어질까봐 다시는 덤비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7. 내가 이르는 말을 잘 듣고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시험을 치르고서 자매들에게 도움을 주려거든 내적 겸손이 아니라 외적겸손을 닦기에도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이 악마를 쳐 이기고 재빠르게 그 유혹을 벗어나려거든, 그것이 오자마자 원장에게 천한 일 하나를 맡게 해달라고 부탁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능한 한 스스로 그렇게 해보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비위에 맞지 않은 일을 당하여 내 뜻을 휘는 법을 배워나갈 것이니, 주께서 그 길을 열어 보이실 것이고, 그러노라면 유혹도 오래 가지 아니할 것입니다.

주여, 주님을 섬기려 하면서도 제 이름에 미련을 두는 사람,그런 사람들에게서 우리를 구하소서. 여러분 보십시오, 이 얼마나 밑지는 장사인지를.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름을 빛내고 싶어할수록 더 잃는 법이고, 특히 남보다 나아 보이려고 하는 데에 더욱 그러하니, 세상에 완덕을 죽여버리는 독물치고 이만큼 해로운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8. 혹시 여러분은 '그만한 생각쯤이야.'하고 넘겨버릴는지 몰라도 깔보아서는 안 될 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거품처럼 커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잘난 체한다든지, 또 남이 나를 넘보지나 않나 하고 캐보는 따위는 수도원에 있어서 작은 일이 아닐 뿐더러 크게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그런지 아시겠습니까? 아마도 처음 한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에서부터 이것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마는 즉시 딴 수녀를 움직여서 대단한 일처럼 돋보이게 하고, 그리하며 다음과 같이 귀뜀해주는 것이 마치 큰 애덕 행위나 되는 듯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어찌 가만 있소." "인내를 주시도록 하나님게 빌겠소.", "저 모두 다 주님께 바치시오." , "성인이라도 이런 고생은 못 견딜 것이오."

이런 식으로 악마가 딴 수녀의 혀를 빌어서 그럴듯한 소리를 하게 되면, 모처럼 잘 참아보려던 사람도 허영심에 들뜨는 수가 있습니다. 참을만치 잘 참지도 못하는 사람을 보고 그러니 말입니다.

9. 이처럼 약한 것이 우리의 본성이라, 말로는 곧잘 "참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무엇이나 다한듯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들이 우리를 동정해주는 날에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럴수록 영혼은 공을 세울 기회를 하나씩 하나씩 잃어가고 약할 대로 약해져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악마가 더 몹쓸 무엇을 가지고 들어오게 길을 터주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여러분이 꾹 참고 살겠다고 결심을 한 때라도 어느 누가 와서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당신은 사람이 아닌 짐승이오? 그만치 모욕을 당했으면 꿈틀할 줄이나 알아야지."

친애하는 자매들이여, 제발 주님의 사랑으로 법니다. 이따위 꾸며낸 모욕에 남을 동정한답시고 그 실없는 애덕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실없는 사랑은 욥 성인의 친구들과 그 아내가 가졌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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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