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지난 20년 동안, 세속화가 심화 되었지만, 아울러 영성에 대한 관심의 회복도 크게 증가되었다. 영성에 대한 관심의 회복은 어느 정도는 세속화의 심화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960년대에 "세속 도시"와 "하나님의 죽음"을 찬양하던 사람들이 70년대에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동방 신비주의의 주역으로 현저하게 방향을 전환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사회는 완전히 세속적이거나 완전히 비종교적으로 되지 않았으며, 현재의 영성 부흥이 사회의 모든 집단에게 동일하게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다. 우리 문화는 그 일반적인 태도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종교에 있어서도 대체로 보수적인 면을 유지하고 있다. 참 영성의 가장 큰 반대자는 보수적인 종교이다. 무신론은 그러한 종교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종교를 거부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전통보다 더 심오한 기독교 전통들의 자원들을 보다 깊이 탐구하게 되었다. 우리는 동방에서 비기독교적인 영적 훈련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데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동방 기독교 전통의 재발견 역시 마찬가지로 놀라운 현상이다.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정교회는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되어 있다. 많은 서방 기독교인들은 정교회의 보화들 -정교회의 신학, 전례 생활, 우리의 피상적인 종교 생활을 풍성하고 깊게 해줄 수 있는 기도의 내면 생활에 대한 관심 등을 이제 막 알기 시작한 단계에 있다. 이 책은 원래 40년 전에 스웨덴어로 출판되었던 것으로서, 저자인 Tito Colliander는 동방 교회의 영적 전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동방의 성인들의 금언집에 의존하면서, 서방독자들에게 정교회 영성의 분위기를 제공하려 한다. 정교회 신앙은 교리적 공식들의 체계나 수집물이 아니다. 'doxa"라는 단어는 "영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정교회 신앙에서는 "풍성한 영광'에 관심을 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신학 의식에 뿌리를 둔다. 신학의 목적은 인간의 삶을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정교회 신학과 영성의 중심에는 신화(thosis), 즉 인간됨에서 하나님으로의 들려 올려짐이 놓여 있다. 이것이 전례, 모든 예배와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성찬 예배의 목적이다. 그러나 전례의 중심성은 정교회 신학자들이 "성례로서의 세계"라고 표현하는 것을 배경으로 한다. 물질 세계는 영의 원수가 아니라 도구이다. 모든 영성은 물질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다.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St. John Damasacene)이 표현한 것처럼, 우리는 물질의 창조주께서 "물질이 되셨고" 물질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물질을 존중한다. 그러므로 정교회의 영성훈련에서는 창조와 성육신이 중심을 차지한다.
덕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금욕적인 작가들의 생각은 이렇게 전례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물질을 통해서 신적인 것을 전달 받는다는 의식(정교회 예배에서 중요한 성상들을 통해서 표현됨)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그들은 진정으로 스스로의 진보에 관심을 갖는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지도자, 영혼의 가장 심오한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귀중한 책은 자기 계발을 위한 개인적인 지침서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정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대중화된 종교를 “사유화”하는데 반대한다. 그들은 공동생활의 필요성, 전례와 관상의 일치, 성례전적 공동체의 필요성 등을 강조한다. 또한 그들은 “깊이 있는 진보”의 필요성과 영적 싸움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대체로 “마음의 청결” 획득, 예수 기도의 실천을 통해서 임하는 내면의 고요와 정적(hesychia)의 획득을 강조한다. 홀로 고독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는 영적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닫게 된다.
서방 교회에서 정교회의 신앙이 재발견된 것은 기독교의 일치 추구의 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든 신학이 잃어버렸던 바 신비주의 기도를 중시하는 특성에 대한 의식을 회복하려 할 때에 중요하다. 모든 신학은 사회 신학이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인 생명”, 그리고 성삼위의 사회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 세계 사람들은 대체로 이처럼 신비한 것과 사회적인 것의 일치를 상실하고 있으며, “경건주의자들”과 “사회적 행동주의 자들”로 나뉘기도 한다. 그러나 정교회에서는 그러한 구분이 없다. 개인적인 "마음"(정교회 용어로는 인격의 중심)의 삶과 인간 사회의 집단생활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수덕자의 길"은 우울한 길이 아니며 세상을 부인하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화(神化)를 목표로 삼는 영광의 길이다. 이 소책자는 묵상하면서 서서히 거의 암송할 정도로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으로서, 우리가 한 단계의 영광에서 다음 단계의 영광으로 이동할 때에 우리의 영적 자원이 될 수 있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