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정결케 하라

우리는 지금 벌거벗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하려 한다. 그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정복하려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싸움의 승패는 자기 박해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이기적인 의지가 지배하는 한,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면, 진정한 위대함을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의 자유에만 매달린다면, 참된 자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참된 자유에 동참할 수 없다.
성인들의 심오한 비밀은 "자유를 찾으려 하지 말라. 그러면 자유가 그대에게 주어질 것이다"라는 것이다.
성경은 흙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고 말한다. 인간은 땀을 흘리면서 고통스럽게 흙을 경작해야 할 것이다. 흙인 인간 자신, 인간의 본질이다. 거룩한 교부들의 권고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리아인 에프렘(Ephraem the Syrian)은 "작은 불을 끄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 어떻게 큰 불을 끌 수 있느냐?"고 묻는다. 큰 고난에서 해방되려면, 작은 욕망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하나의 길다란 쇠사슬처럼, 혹은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그마한 "무죄한" 결점 즉, 단 것을 좋아하는 것, 말이 많은 것, 호기심,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 등을 정복하지 않는다면, 나쁜 습관이나 큰 죄를 제어해도 유익을 얻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크든 작든 우리의 모든 욕망은 동일한 토대, 자신의 의지만을 만족시키려는 무절제한 습관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삶은 정복되어야 한다. 인류의 타락 이후, 인간의 의지는 오로지 자아를 위한 심부름만 해오고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이기적인 삶을 대적하여 싸워야한다. 지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싸워야 한다.
무엇을 질문하고 싶어도, 질문해서는 안된다! 커피 두 잔을 마시고 싶으면, 한 잔만 마시라. 시계를 보고 싶어도 보지 말라.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참으라. 누구를 만나고 싶어도 참고 그대로 집에 머물러 지내라. 이것이 자기 박해이다. 이런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목청 큰 의지를 잠잠하게 한다.
이것이 정말로 필요한 일이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교부들은 이에 대해서 "그대는 오래 된 더러운 물을 완전히 비우지 않은 채 항아리에 깨끗한 물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쓰레기가 가득한 방에 귀한 손님을 받아들이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 요한은 주님을 보려는 사람은 주님의 깨끗하심 같이 자신을 깨끗이 한다고 말한다"(요일 3:3)고 대답한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우리 마음에 쌓여있는 먼지와 쓰레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더러운 바닥과 창문을 깨끗이 닦고 열어야만, 우리가 주님의 성소(聖所)로 준비하고 있는 방에 빛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에게서 나는 곰팡이 냄새 때문에 밖에 내 쫓기지 않기 위해서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한다(눅 13:28).
매일, 매 시간 이렇게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주님께서 거룩한 사도 야고보를 통해서 명하신 일을 행하게 된다. 야고보는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4:8)고 했다. 또 사도 바울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하자"(고후 7:1)고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는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리라'(막 7:21~22)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6)고 권면하셨다.
안에서부터 깨끗하게 하라는 가르침을 따를 때에,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마음을 조금도 깨끗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손님방을 닦고 정돈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님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 방이 손님 마음에 들까?" "손님이 그 방에 머무실까?"라고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온통 손님에게 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청소를 마친 후에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그것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니세타스 스테타토스(Nicetas Stethatos)는 사람의 내면에는 세 종류의 본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육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라도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살려 하는 사람이며, 본성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하며, 그리고 영적인 사람은 자기에게 해가 되더라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사람이다. 첫번째 사람은 인간의 본성 이하의 사람이며, 두번째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며, 세번째 사람은 본성 이상의 사람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영적인 사람은 신령하게 생각한다. 그의 소망은 죄인 하나가 회개할 때에 천사들이 기뻐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눅15:10), 그 죄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도 이렇게 생각해야 하며, 이러한 소망 안에서 일해야 한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고 하시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게서 육적인 본성에 속한 것을 죽일 때까지는 자신에게 휴식을 주지 말며, 평안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짐승 같은 것의 모든 표적을 추적하여 무자비하게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갈
5:17).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여 독선적이 될 것을 염려하거나 영적으로 교만해질 것을 염려한다면, 자신을 살펴보라. 그리고 독선적인 사람이 될 위험이 있는 사람은 눈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라.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얼마나 독선적인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