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쾌락을 탐하는 욕망을 버리라

성경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발견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고 했다 :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니라"(눅 13:24).
이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박해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서 발견된다. 우리는 자신의 심각하고 위험한 악을 어느 정도는 극복하지만, 거기서 멈추고 마는 듯하다. 우리는 작은 욕망은 제멋대로 자라게 내버려 둔다.
우리는 남의 것을 횡령하거나 도둑질을 하지는 않지만,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홍차나 커피를 많이 마신다. 우리 마음에는 여전히 욕망이 가득 차있다. 우리는 뿌리를 제거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자기 연민이라는 흙에서 솟아난 가시덤불 주위를 배회한다.
우리의 자기 연민을 공격하자.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좋지 않은 것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 연민을 버린다면, 곧 이 모든 악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는 좋은 것임을 이해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사물을 옳게 바라보지 못한다. 우리가 자기 자신만을 불쌍히 여긴다면, 결과적으로 우리의 지평선은 완전히 폐쇄되며, 우리의 사랑은 우리 자신에게만 묶이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을 자유롭게 해 주면, 악은 우리에게서 떠날 것이다.
우리에게 파멸을 초래할 연약함과, 그리고 편안함을 원하는 욕망을 억제하며, 그것들을 공격하자. 쾌락에 대한 갈망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 그러한 갈망이 호흡할 수 있는 공기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자신에게 엄격해야 하며, 육적인 자아가 난폭하게 요구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된다. 모든 일은 되풀이 할수록 강해지지만, 양분을 얻지 못하면 죽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관문은 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빗장을 꼭 닫았지만 뒷문을 활짝 열어놓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악은 교활하게도 다른 모습으로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 대신에 딱딱한 매트리스에서 자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가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며 말을 절제한다면 어떨까? 만일 우리가 말은 절제하면서도 음란 소설을 읽는다면 어떨까? 만일 우리가 소설을 읽지는 않지만 감상에 젖거나 상상에 빠져 지낸다면 어떨까? 이것들은 모두 형태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즉 이들은 쾌락욕을 충족시키려는 만족을 모르는 갈망의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즐겁게 지내려는 욕망, 성공하고 만족한 삶을 살려는 욕망을 근절해야 한다. 우리는 슬픔, 가난, 고통, 곤경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주님의 명령 -헛된 말을 하지 않는 것,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 것,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 음란한 생각을 품지 않는 것, 화를 내지 않는 것등- 을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명령을 무시하지 말고 따라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아도 된다면, 자비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것들을 명령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마 16:24)고 말씀하셨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