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기 사랑에서 그리스도 사랑으로

테오판 주교는 "우리가 자아에서 벗어 나온다면, 누구를 만나게 될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만난다"라는 대답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존재의 중심이 자아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이동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이웃이시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쏟아 붓고 있는 모든 보살핌과 관심과 사랑이, 그 때에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에게로, 그리고 이웃에게로 이동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가 오른손으로 행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되며, 은밀하게 구제를 행하게 된다(마6:3-4).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진정으로 비물질적인 방법으로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롬15:14)가 될 수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 행하는 모든 시도는 우리 자신의 것이며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거짓된 것이다. 특히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유익한 것처럼 보이며 선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만족의 늪으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서서 혼동을 느끼기 쉽다.
그러므로 자선 바자회 등의 일로 바삐 활동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어떤 형태든지 간에, 많은 일로 바삐 활동하는 것은 해가 된다.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정확하게 성찰해 보면, 이처럼 겉보기에는 분명히 자기를 내어주는 행위 중 많은 것이 우리 자신의 양심을 무마해야 할 필요성에서 솟아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만족시키고 즐겁게 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습관에서 솟아나는 것을 알 수 있다(롬 15:1).
사랑과 평화와 완전한 희생의 하나님은 자아를 즐겁게 하려는 부산함과 열정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그것을 시험해 보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의 평화가 흔들린다면, 만일 우리가 낙심한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조금이라도 화를 낸다면, 우리는 계획했던 선한 일을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그 근원이 진흙탕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혹시 그 이유를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 외면적인 장애나 반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의 뜻을 하나님께 굴복시키지 않은 사람들만 만난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장애물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진실로 이기심이 없는 행동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그 무엇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다. 오로지 나 자신의 계획, 나 자신의 소원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쉬는 것, 먹는 것, 혹은 동료를 위해 봉사하는 것등- 을 위할 때에만 외면적인 상황이 방해받을 수 있으며,그때에 우리는 슬퍼한다.
그러나 생명, 즉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는 좁은 길을 발견한 사람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단 한 가지인데, 그것은 곧 자신의 죄악 된 의지이다. 만일 그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데 시행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는 나머지를 위해서는 전혀 계획을 세우지 않을 것이다(약 4:13-16).
그러나 이것이 성인들의 또 다른 비밀이다.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기독교인은 아무 것도 자기 원대로 하지 않으신 분(요5:30), 구유에서 태어나시고, 사십 일 동안 금식하시고, 밤새도록 깨어 기도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악한 영들을 쫓아내시고,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분, 마지막에는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분께서 행하시는 대로 행해야 한다(요일 2:6).
우리는 이러한 태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되풀이 하여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자 : "나는 하룻밤이라도 철야 기도를 한 적이 있는가? 단 하루라도 금식한 적이 있는가?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악한 영을 쫓아낸 적이 있는가? 욕을 먹고 매맞을 때에 나는 저항하지 않는가? 나는 진실로 육을 십자가에 못 박고(갈5:24)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았는가?"
이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자신을 부인해야 하는가? 진실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은 "나는 행복한가?",혹은 '나는 만족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로 자신을 부인한다면, 그러한 질문은 우리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행복이나 하늘의 행복을 원하는 소원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완강한 의지 때문에 우리 영혼이 불안하고 분열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을 포기하며 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달리 노력하지 않아도 나머지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