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세상을 정복하라

대 바실(Basil the Great)은 이렇게 말했다 :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은 진리의 지식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것, 우리로 하여금 망각하게 하는 것, 흥분, 정욕을 일으키는 것. 혹은 불안을 일깨우는 것을 피해야한다. 되도록 헛된 일에 대한 요란함과 열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주님을 섬길 때에는, 많은 일로 염려하지 않고 항상 필요한 한 가지만 염두에 두어야 한다"(눅 10:41).
목욕을 하려면 먼저 옷을 벗어야 한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시는 분에게 다가가려면, 우리 마음을 덮고 있는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옷을 벗어 피부를 드러내지 않으면 건강에 좋은 햇빛이 우리의 피부에 닿을 수 없다. 성령의 치유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옷을 벗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되 눈에 뜨이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의 즐거움이나 쾌락, 위안이나 여흥에 기여하는 것, 우리의 눈과 귀, 입 등 감각을 즐겁게 해주는 모든 것을 부인해야 한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마 12:30), 세우지 않는 것은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욕구와 사회적인 관습들을 하나씩 벗겨 내자. 갑작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신중하게, 그렇지만 철저하게 벗겨 내자. 우리를 세상에 묶어 놓는 끈들을 서서히 풀어 버리자.
어떤 행사에서 초청, 콘서트, 개인 재산, 특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 모든 것을 귾어 버리자. 그것들은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좇아온 것이며, 우리 영혼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2:16).
그렇다면 세상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세상이 죄악되고 유형적인 것이라고 상상해서는 안된다. 이집트의 성 마카리우스는, 세상이란 마음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생명나무로부터 차단하는 어두운 불길이라고 했다. 세상은 우리를 붙들고 감각적으로 만족시켜 주며, 우리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한다(요 17:25).
우리의 욕망과 충동은 세상에 속한 것이다. 시리아의 아이작 성인은 그것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부유함을 좋아하는 것, 여러 종류의 물건을 수집하고 소유하려는 욕망, 육체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명예욕(이것은 탐심의 근원이다), 다른 사람들을 정복하며 결정적인 인물이 되려 하는 욕망, 권세욕, 자신을 자랑하며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으려는 욕망, 칭찬을 받으려는 욕망, 육체적인 행복에 대한 관심 등. 이것들은 모두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우리를 무겁게 속박한다.
이런 것들로부터 해방되려면, 이 목록을 참고로 하여 자신을 성찰하며,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서 무엇을 대적하여 싸워야 하는지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좁은 골짜기 및 그 골짜기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탈피해야만 넓은 곳을 볼 수 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 6:24).골짜기를 여행하면서 동시에 고지를 여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로 올라가는 일을 쉽게 해주며 무거운 짐을 보다 쉽게 벗어버리기 위해서, 되도록 자주 이렇게 질문하라 : "나는 이 칵테일파티에 참석함으로써 나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하는가? 나는 여행을 함으로써, 혹은 이 책을 구매함으로써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려 하는가? 누워서 책을 읽음으로써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할 수 있을까?"(고전 9:27)
우리의 습관과 복음이 명령하는 생활 방식에 따라서 이 질문을 바꾸거나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다"(눅16:10)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고통은 우리가 좁은 골짜기 -우리가 육체의 정욕 안에서 몸과 정신의 소욕을 따라 살고 있는 곳- 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준다(엡 2:3).
우리는 부단히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자신에게만 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동료에게 이러한 질문을 적용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심판석에 앉게 되며, 그것에 의해서 우리 스스로가 심판을 받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절제에 의해 획득했던 것을 상실하며, 한 걸음을 전진하지만 열 걸음을 후퇴한다. 그 때에 우리는 자신의 고집과, 진보하지 못한 것과, 교만 등으로 인해 눈물을 흘릴 것이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