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남의 죄와 나의 죄

이제 자신의 비참함, 부족함, 사악함을 알게 되었으므로, 우리는 세리처럼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외쳐야 한다. 그리고 "보십시오. 저는 세리보다 훨씬 더 악한 사람입니다. 저는 바리새인을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교만하게 '하나님, 내가 이 사람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
그러나 성인들은 말하기를, 자기 마음의 어두움과 육신의 연약함을 깨달은 사람은 이웃을 판단하려는 욕망을 완전히 상실한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어두움을 뚫고 모든 피조물 안에서 빛나는 천상의 빛이 분명하게 반영되는 것을 본다.
우리 자신에게 큰 죄가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의 죄를 감지할 수 없다. 이처럼 완전함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감지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깨달은 후에야 우리는 완전해질 수 있다. 이처럼 완전함은 약함에서 나아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시리아의 아이작이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한 결과가 우리에게 수여된다. 그리고 우리가 다가가면 원수는 급히 쫓겨난다.
여기에서 원수란 무엇인가? 물론, 과거에 뱀의 형상을 취했던 자, 그 이후 계속 우리 안에서 불만, 조급함, 분노, 탐심, 두려움, 번민, 걱정, 증오, 게으름, 낙심, 의심,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비참하게 하는 모든 것 및 우리의 이기심과 자기 연민에 뿌리를 둔 모든 것을 일으키는 자이다.
사랑의 아픔으로 자신이 주님께 복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들의 복종을 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기의 소원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조바심을 내며 불안해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도로테우스 수도원장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훈련을 했으며,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그가 원하는 대로 된다고 설명한다.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킨 사람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받을 것이다(막 11:24).
자신을 높이지 않는 사람, 자신의 처지를 살피며, 모든 사람이 자기보다 더 유명하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일이 닥쳐도 십자가에 달린 강도처럼 자기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두려움이나 고통이나 걱정이 있겠는가(눅 23:41)? 그는 끊임없이 자기의 내면에 있는 게으름의 정체를 폭로하기 때문에 게으름은 그에게서 떠나간다. 이미 엎드려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낙심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낙심이 그의 내면에서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삶에 거하면서 주님에 대한 자신의 시야를 어둡게 하는 모든 악을 미워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미워한다(눅 14:26).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의심이 자리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주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를 맛보고 깨달았기 때문이다(시 34:8). 그를 지탱해 주실 분은 주님뿐이시다. 그의 사랑은 꾸준히 크게 자라며, 아울러 그의 믿음도 성장한다. 시리아의 아이작이 말한 것처럼, 그는 자신과 화목했으며, 하늘과 땅이 그와 화목했다. 그는 겸손의 열매를 거두어들인다. 이 일은 좁은 길에서만 일어나는데, 그 길을 찾는 사람이거의 없다(마 7:14).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