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면의 전쟁

우리는 외부의 속박을 벗어 버림으로써 내면의 속박도 벗어 버리게 된다. 우리가 외면적인 염려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동안에, 우리의 마음은 내적인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의 싸움은 하나의 수단으로서, 그것 자체는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성인들은 그것을 병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으로 비유한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은 건강을 되찾는 유일한 수단이다.
항상 "우리의 절제에 의해서는 결코 덕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부주의하여 광산의 수갱에 갇힌 사람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갱도를 판다고 해서 빠져 나갈 길을 만들 수 있겠는가?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과 어두움에서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 지상에서 보내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이와 반대되는 행동은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이 말에서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구원, 복음의 명령, 그리고 교회의 거룩한 성례로서 세례 받을 때에 주어진다.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러나 올바르게 사용하면, 그것들은 자유와 빛에 이르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우리는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휴식과 수면과 즐거움을 누릴 많은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거나 하찮은 일을 할 때에도 깨어 일해야 한다. 우리는 손에서 곡괭이와 삽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기도요, 금식이요, 깨어 경성함이며, 주께서 명령하신 모든 일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마28:20).
우리 마음이 그러한 훈련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의지력을 동원하여 그것을 복종시켜야 한다. 죄수는 무슨 상을 받는가? 과연 상을 받는가? 수고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는 자유에 대한 사랑 안에서 느끼며, 소망과 믿음 안에서 손에 연장을 든다. 일을 하면, 소망과 사랑과 믿음이 성장한다. 자신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할수록, 그만큼 그의 상은 더 커진다. 그는 자신을 죄인 괴수로 여기며, 동료 죄수들과 동일하게 여기게 된다.
그는 세상에 있는 죄인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동료들이 희망을 잃고 체념하여 잠을 자거나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 일을 한다. 그는 보물을 발견하지만 덮어둔다(마 13:44). 그는 내면에 천국을 가지고 다닌다. 언젠가는 밖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다닌다. 그는 지금은 참된 자유를 거울로 보지만(고전 13:12), 자신이 이미 자유하다는 소망 속에서 본다 :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것이 아니니"(롬 8:24).
바울은 거기에 포함된 것은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죄수가 실제로 자유를 얻어 누리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세상의 죄인 중 하나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이미 자유의 세상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태초에 아담이 누렸던 자유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회복된 자유이다.
우리도 죄수처럼 소망 안에서는 이미 자유하지만, 구원의 성취는 우리의 지상 생활 저 너머에 놓여 있다. 그곳에서만 우리는 분명하게 "나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는 명령을 우리 인간은 세상에서 성취할 수 없다(마 5:48). 그렇다면 왜 그 명령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성인들은 "우리가 지금 일을 시작하기위해서, 그러나 영원을 바라보면서 시작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인간의 자유의 목표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동료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고 테오판 주교는 말한다. 자유의 외침은 "회개하라!"이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부르심이 주어져 있다.
무엇을 위해서 수고하는가? 자신의 세속적인 행복을 위해서인가? 어떤 짐을 지는가? 세상의 염려와 관심이라는 짐인가? 성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세상에 계시는 동안 세상적인 행복을 생각한 적이 없으며 세상적인 염려를 하지 않으셨던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하며 세상의 반대라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무엇을 얻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리스도처럼 살며, 천사들이나 사람이나 책으로부터가 아니라 주님 자신에게서, 주님의 삶에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빛과 행위로부터 배운다. 이런 사람들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며. 나 자신이나 나의 행동이나 말을 자랑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는가? 영혼을 위한 안식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유혹, 걱정, 치욕, 침 뱉음, 두려움. 근심, 그밖에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것이다. 이것이 존 클리마쿠스의 설명이다. 그것은 기독교인에게서 기독교인에게로 전파되어왔다. 그리스도의 멍에와 짐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면 쉽고 가볍다는 진리를 새로운 심령들은 경험에 의해서 거듭 깨닫는다. 그러나 중간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여, 끝까지 견디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마 10:22).
그러므로 우리는 지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확고부동하며, 항상 주님의 사역 안에서 충만하며,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의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전 15:58). 일단 일을 시작했으므로, 회개에 합당한 행동을 쉬지 않고 행해야 한다. 중간에서 쉬는 것은 후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