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순종

자신의 이기적인 의지를 정복하기 위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될 또 하나의 도구는 순종이다. 성 존 클리마쿠스는 말하기를, 순종하여 자신의 육적인 지체들을 잘라내면 그만큼 더 신령한 지체를 섬길 수 있다고 한다. 순종은 우리의 무덤이며, 거기에서 겸손이 생겨난다.
우리는 자유 의지에 의해서 자신을 노예로 넘겨주었음을 기억해야 하며, 십자가를 통해서 이것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노예 상태를 통과하여 참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노예는 자기의 뜻대로 행할 수 없다. 그는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아마 사람들은 '나는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할 것이다. 성인들은 "지도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대답한다(히 13:17). "그러면 누가 나의 지도자입니까?" "참된 지도자를 발견하기가 어려운데, 어디서 지도자를 찾을 수 있습니까?"
거룩한 교부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교회는 이것도 이미 예견해 왔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시대 이래로, 교회는 모든 교사들을 능가하는 교사, 어디에서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우리에게 가까이 올 수 있는 교사를 주셨다. 우리가 도시에 있거나 시골에 있거나, 결혼했거나 독신이거나,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교사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는 항상 그 분에게 순종을 표할 기회를 소유한다. 그 분의 이름을 알고 싶은가? 그 분의 이름은 거룩한 금식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금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에게는 우리의 기도도 필요하지 않다. 완전하신 분께서 자기가 지은 피조물이 드릴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하신다거나 그런 것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간절히 기대하시지도 않는다. 그러나 존 크리소스톰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은 허락하신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제물은 우리의 자아이다. 우리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자아를 제물로 드릴 수 없다. 자아를 제물로 드리는 법은 순종을 통해서 배우며, 순종은 실천을 통해서 배운다. 가장 훌륭한 형태의 실천은 교회에서 규정한 금식일과 절기에 의해서 제공된다.
금식 외에도 우리가 순종해야 할 다른 선생들이 있다. 우리가 그 교사들의 음성을 식별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를 만나준다. 아내가 우산을 가지고 가라고 하면, 아내의 말에 순종하여 우산을 가지고 가자. 직장 동료가 함께 어디에 가자고 하면 그에게 순종하여 함께 가자. 젖먹이 어린아이는 말을 하지 않지만 자기 곁에 있으면서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한다. 할 수 있는 한 아기가 원하는 대로 하여 순종을 실천하자. 수도원의 수련 수사라고 해서 세상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순종을 실천할 기회가 더 많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직업이나 이웃과의 거래에서도 순종을 실천해야 한다.
순종은 많은 장애물을 제거해 준다. 우리가 마음으로 무저항을 실천하면, 자유와 평화를 획득한다. 우리가 순종하면, 가시나무 울타리라도 길을 내준다. 그 때 사랑이 활동할 넓은 공간이 확보된다. 우리는 순종함으로써 교만, 반대하려는 욕망, 우리를 단단한 껍질 안에 가두는 고집과 독선적인 지혜 등을 깨뜨린다. 그 껍질 안에 있는 한 사랑과 자유의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순종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기뻐해야 한다. 그런 기회를 일부러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우리를 독선에 빠지게 할 위선적인 복종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순종의 기회,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순종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혹시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그대로 흘려보낸다면, 자신을 책망해야 한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것은 순풍을 만났을 때에 제대로 항해하지 못한 선원과 같다.
바람의 입장에서 보면, 선원이 그 바람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상관이 없다. 그러나 선원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모든 수단은 성삼위께서 우리에게 주신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