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겸손과 깨어 경성하라

내면의 행복에 종사하는 사람은 매 순간마다 네 가지를 필요로 한다 : 겸손, 깨어 경성함, 원수에게 저항하려는 의지, 그리고 기도.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생각 속의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지배하며, 그것들을 마음의 문에서 밀어 내며, 우리의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들을 즉각적으로 멸하는 일이다(시 137:9).
겸손은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교만한 사람은 영원히 쫓겨난다. 원수를 즉각적으로 알아보며 우리 마음에 악이 깃들지 못하게 하려면 깨어 경성해야 한다. 원수를 인식한 순간에 저항하려는 의지가 세워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요 15:5), 우리가 싸움에서 의지해야 할 토대는 기도이다.
작은 예를 들어 보자. 깨어 지킴으로써, 우리는 원수 -예를 들면 동료에 대해서 좋지 않은 생각을 하려는 유혹- 가 마음의 문 앞에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는 즉시 저항하려는 의지를 일깨워 유혹을 몰아내지만, 다음 순간 퇴보하여 '나는 정말 재빠르게 행동했군!' 하는 자만하는 생각을 품는다. 이런 경우에 우리는 겉보기에는 승리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끔찍하게 패배한 것이다. 겸손을 잃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그 싸움을 주님께 맡긴다면, 교만으로 흐르는 성향이 제거되어 우리는 자유하게 된다. 곧 우리는 주님의 이름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이 전쟁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보여준다. 악한 충동은 재빨리 흘러 들어오므로, 가능한 한 빨리 제압해야 한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악한 자의 모든 화전"(엡 6:16)인데. 그것들은 쉬지 않고 날아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 다"(엡 6:12).
첫번째 단계로 악한 충동으로 시작되며, 그 다음(두번째)에는 악의 충동에 깊이 참여하면서 악과 교제하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악을 동의하게 되며, 네번째 단계에서는 그 악이 시키는 대로 범죄 하게 된다. 이 네 단계가 순간적으로 잇달아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어느 정도 약화되어 우리가 그것들을 분리시킬 수도 있다.
충동은 문을 두드리는 세일즈맨과 같다. 우리가 그를 안으로 들여보내면, 그는 자기가 판매하는 물건에 대한 말을 시작하는데, 그 물건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그 사랑을 내보내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의 뜻과는 달리. 그의 말에 동의하여 그 물건을 구매하게 된다. 우리는 악한 자가 보낸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길을 잃는다.
다윗은 악한 충동에 대해서 '내가 그 땅에 있는 모든 거룩하지 못한 것을 곧 멸하여 내 집에 사특한 사람이 거하지 못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모세는 악에 동의하는 것에 대해서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출 23:32)고 말한다. 시편 1:1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다룬다고 교부들은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하며‥‥ 성문에서 원수와 이야기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다(시 127:5).
그러나 성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그리고 사탄이 빛의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했다는 것을 알 때(고후 11:14), 우리는 모든 충동과 감정과 모든 종류의 환상을 마음에서 몰아내어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에게는 선한 충동과 악한 충동을 구분하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그 일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시 127:1)임을 잘 알기 때문에, 주님을 신뢰하여 그 일을 포기한다.
우리는 마음에 저급한 생각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며, 우리 마음이 온갖 잡동사니들이 모여 소란한 장터처럼 되어 결국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도둑과 강도들은 이곳에 모여들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의 사자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평화, 그리고 평화의 주님은 그러한 장소를 피하여 도망하신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도를 통해서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말씀하셨으며(약 4:8), 친히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고 교훈하셨다(막 13:33). 만일 주님이 오셔서 우리 마음이 더럽고 우리가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신다면,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 25:12)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 시간은 항상 이곳에 임재하여 있다. 지금일 수도 있고 다음 순간일 수도 있다. 천국과 마찬가지로 심판의 시간도 항상 우리 마음에 현존하고 있다.
만일 파수꾼이 깨어 지키지 않는다면, 주님도 깨어 지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주님이 깨어 지켜 주시지 않으면, 파수꾼의 깨어 지키는 것이 헛수고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의 문을 깨어 지키며, 쉬지 말고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결코 원수를 직접 쳐다보지 말자. 저항할 수 없는 사람과 논쟁을 벌이지 말라. 원수는 수천 년 동안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단번에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술책을 알고 있다. 우리는 마음 밭의 복판에 서서 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즉시 사방에서 우리 마음을 보호해줄 것이다. 주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전후좌우에서 지켜주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유혹을 당할 때에 그것을 조사하거나 되새겨 보거나 심사숙고할 문제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더럽게 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되며, 동시에 원수가 거의 승리한 것이 된다. 우리는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주님께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에서 유혹을 빨리 떨쳐버릴수록, 그만큼 더 빨리 도움이 임한다.
결코 자신을 신뢰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선한 결심을 하거나 '그래. 내가 해결할 테야'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크든 작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유혹에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그것이 나에게 다가오는 즉시 나는 실족할 것이다. 자만심은 위험한 공모자이다. 우리가 자신의 힘을 믿지 않으면 그만큼 더 확실히 견딜 수 있다. 우리는 연약하며, 마귀의 조그만 공격에도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렇게 하면 놀랍게도 마귀가 우리를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다면, 곧 어떤 악도 우리에게 임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하게 될 것이다(시 91). 기독교인에게 임할 수 있는 유일한 악은 죄이다.
만일 나중에 우리가 실족했기 때문에 후회한다면, 만일 우리에게 자책과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가득하면, 그것은 우리가 옳지 못한 길에 서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자기 신뢰이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지 않았음에 놀라며 감사한다. 그는 적절한 때에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여전히 패배한 상태로 엎드려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속히 일어나서 기도를 시작한다.
버릇이 없는 아이는 넘어지면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칭얼거린다. 그 아이는 동정과 위로의 어루만짐을 찾는다. 우리는 아무리 아파도 소란을 피워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싸우는 사람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넘어지지 않는 것은 천사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고, 그리고 다시는 방심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아담처럼 여인이나 마귀, 혹은 다른 외면적인 환경의 탓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실족한 원인은 우리 자신 안에 있다. 주인이 우리 마음에서 떠나시는 순간, 도둑과 강도들이 마음 안에 들어와서 마음대로 파괴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자.
누군가가 어느 수도사에게 물었다.
"수도원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넘어졌다가 일어나고, 넘어졌다가 일어나고, 또 넘어졌다가 일어납니다"고 대답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넘어지지 않는 순간은 드물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처럼 용서와 은혜, 그리고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며,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자(엡 2:5).
우리는 자유와 은혜를 구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를 도망쳤다가 잡혀 와서 주인 앞에 엎드려서 용서를 구하는 종이라고 생각하자. 우리가 시리아의 아이작 성인처럼 행동하면서, 위로 올라가는 길을 발견하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죄의 짐을 버린다면,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게 될 것이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