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기도드리는 자세

이런 방법으로 기도를 실천하는 동안, 육체의 고삐를 풀지 말아야 한다. 시리아의 아이작 성인은 육체는 괴롭히지 않고 마음으로만 슬퍼하면서 드리는 기도는 마치 불완전하게 자란 태아와 같다고 비유한다. 그런 기도에는 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도 안에는 자신을 부름받은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소수의 사람 중 하나로 여기는 교만과 자만의 씨앗이 들어 있다(마 22:14).
이런 기도를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많은 오류의 근원이 된다. 비록 우리가 자신의 육적인 포옹으로 천국을 붙잡았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만일 마음이 육적인 것에 묶여 있다면, 우리의 보물도 육적인 것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기쁨은 불순한 것이 되며, 교회의 부름을 받아 교사로 임명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사람들을 가르치고 회심시키려 하며, 말이 많으며 자제력이 부족한 것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육적인 정신에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며, 다른 사람의 반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견해를 위해서 열띤 논쟁을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육체의 훈련을 게을리 함으로써 마음을 겸손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된 기쁨은 고요하며 한결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강권한다(살전 5:16). 그것은 세상이 빛에게서 등을 돌린 것 때문에 슬피 우는 마음에서 나온다. 참된 기쁨은 슬픔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성경에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고(마 5:4), 이제 자신의 육적인 자아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으니 이후에 영적인 자아와 더불어 웃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눅 6:21). 참된 기쁨은 위로의 기쁨, 자신의 연약함과 주님의 자비를 아는 지식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이며, 이를 드러내고 웃는 웃음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기쁨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세상적인 것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도 즐거워 할 수 있지만, 세상적인 것으로 인해 화를 내거나 속상하거나 슬퍼할 수도 있다. 그의 정신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러나 우리 주인 되시는 분의 기쁨(마 25:21)은 영원히 지속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금식과 엄격함으로 육체를 훈련하는 동시에 혀를 제어해야 한다. 말이 많은 것은 기도의 큰 원수이다. 중언부언하는 것은 기도에 방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주의하게 내뱉은 말에 대해서 심문을 받을 것이다(마 12:36). 방을 깨끗이 하려는 사람은 거리의 홀을 방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마음에서 이미 지나간 사건들에 대한 잡담이나 한담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혀는 불이다(약 3:5-6).우리는 조그만 불이 큰 불로 번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불이 붙었을 때에 공기를 차단하면, 불은 꺼진다. 우리가 정욕에 공기를 공급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서서히 꺼진다. 만일 화가 날 때에는, 말을 하지 말며 표면적으로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주님만이 우리의 고백을 들으실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타는 나무의 불을 시초에 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속이 상해 있다면, 셈과 야벳처럼 침묵의 외투로 그것을 덮는 것이 좋다(창 9:23). 그렇게 함으로써 남을 판단하려는 욕망이 큰 불길로 번지기 전에 끌 수 있다. 그릇에 물을 담듯이 침묵 안에 기도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깨어 지키는 기술을 실천하는 사람이 제어해야 할 것이 혀만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자신을 돌아보며(갈 6:1), 자신의 존재의 깊은 곳까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측량할 수 없이 큰 창고를 발견하는데, 그곳에는 억제해야 할 많은 기억들과 생각들과 환상들이 요동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에 진흙을 덮어 버릴 기억을 일깨우지 말며, 과거의 죄라는 흙에 뿌리를 내리지 말자. 토한 것을 먹는 개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잠 26:11).
우리의 욕망을 다시 깨우거나 상상력을 풀어 놓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일에 관한 기억을 되살려서는 안된다. 마귀가 좋아하는 싸움의 장소는 우리의 상상력이다. 그것을 통해서 마귀는 우리를 이끌어 자기와 교제하게 만들고 자기에게 동의하며 행동하게 만든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 안에 의심과 걱정의 씨를 뿌리며, 논리적인 추론과 증명, 무익한 질문과 대답을 하려는 시도를 심어준다. 그런 일을 만날 때에는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라는 시편의 말씀으로 대처하자(시 119:115).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