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금식.

능력에 맞는 적절한 금식은 철야 기도에 도움을 줄 것이다. 수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잔뜩 먹은 상태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잘 먹어서 살진 사람에게는 삼위일체의 지극히 피상적인 비밀조차도 알려지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오랫동안 금식함으로써 본을 보이셨다. 주님은 마귀를 쫓아내신 후에 사십 일 동안 금식하셨다. 우리가 주님보다 더 선한가? 과거에 천사들은 나아와서 주님을 섬겼다(마 4:11). 그들은 우리를 섬기려고 기다리고 있다.
존 클리마쿠스는, 금식은 다변(多辯)을 제어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긍휼을 위한 통로이며, 순종을 보호해주는 호위병이다. 그것은 악한 생각들을 파괴하며 마음에서 부정함을 뿌리 뽑는다. 금식은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배가 고프면 마음이 겸손해진다. 금식하는 사람은 맑은 정신으로 기도하지만, 무절제한사람의 정신에는 불순한 환상과 생각이 가득하다.
금식은 사랑과 헌신의 표현이다. 우리는 금식을 통해서 천국의 만족을 얻기 위해서 세상의 만족을 희생한다. 우리의 생각은 혀의 유혹과 먹을 것에 사로잡혀 있으며, 거기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금식은 이기적인 욕망과의 싸움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단계이다. 기도와 금식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선물이며, 한번 그것을 맛본 사람들은 그것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
금식하는 동안에 인류에게 금식의 가능성을 주신 분을 향한 감사하는 마음이 성장한다. 금식은 우리가 어렴풋이 보아왔던 영역에 들어가게 해준다. 우리 주위와 내면에서 발생하는 삶의 여러 가지 표현들과 모든 사건들이 새로운 조명과 새롭고 풍성한 목적을 획득한다.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 생각으로 행하는 철야 기도가 아니라 명확한 철야기도를 하게 되고, 골치 아픈 탐색을 하는 대신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조용히 받아들이게 된다. 표면적으로 크고 어리둥절한 문제들이 마치 만개한 꽃받침처럼 그 중심을 드러낸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과 철야를 함께 행함으로써, 들어가고 싶은 곳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거룩한 교부들이 금식을 측정자로 사용한 이유를 발견한다. 많이 금식하는 사람은 많이 사랑하며, 많이 사랑한 사람은 많이 용서받는다(눅 7:47). 많이 금식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받는다. 교부들은 "적당한" 금식을 권한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금식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영혼에게도 해가 되기 때문이다. 또 갑자기 금식을 시작해서도 안 된다.
모든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며, 각 사람은 자신의 직업과 본성에 유의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음식 중에서 어떤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좋지 않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이 찌게 하거나 식욕을 돋우는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향이 강한 음식, 육류, 술이 들어간 음료, 단지 입을 즐겁게 해주는 음식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 외에 값이 싸며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먹어도 좋다. 교부들이 말하는 "적당한" 금식이란 하루에 한 끼를 먹되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먹지 말고 가볍게 식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