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삭개오

우리도 삭개오처럼 주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가 있다(눅 19:2). 단순히 상상력에 의해서, 또는 신비적이고 정신적인 방법으로 나무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며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땅에서부터 기어 올라가기 위해서 삭개오처럼 사지의 힘과 세상적인 것들을 활용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한계와 몸무게를 의식하여 지혜롭게 행하면서도 두려워하거나 곁눈질을 하지 않는다면, 높이 올라가서 많은 사람들 -즉 우리의 세상적인 충동들- 보다 높은 곳에서 우리가 찾던 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어두움을 분명하게 의식하기 시작했으므로, 이제 전처럼 오락이나 사회생활에 강력하게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참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보았음을 깨닫는다. 아마 우리는 지금까지는 우리의 마음이 목적지나 조타수가 없이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항해의 목표와 의미가 확립되었다. 이제 우리는 넓은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배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제대로 항해했다면. 처음으로 그 배가 얼마나 작고 약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선한 의도를 나타내기만 하면, 주님은 항상 우리의 인도자가 되신다고 불가리아의 대주교 테오필랙트가 말한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집"은 우리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 '너는 나를 보려고, 다시 말해서 내게 네 마음속에 있는 길을 지나갈 때에 나를 알아보려고 나무에 올라가서 너의 세상적인 욕망들의 일부를 정복했구나. 그러나 네가 그곳에 앉아서 스스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면 서둘러 나무에서 내려와야 한다. 나는 겸손한 사람의 마음에만 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소유를 모두 나누어준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재물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고, 남은 것은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징수하여 착복했던 사람들에게 받은 금액의 네 배나 갚는 데 사용했다.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다(9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기심과 정욕이 지배하는 고향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창 12:1).
건강과 질병을 결합시킬 수 없듯이, 사랑과 부유함도 화목할 수 없다고 시리아의 아이작은 지적했다. 동료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조건 없이 내어 준다. 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삭개오는 이 사실도 깨달았다.
소유한 것이 적을수록 우리의 생활 방법은 단순해진다. 과다한 것들을 모두 내던져 버린 후에, 마음이 중심이 된다. 마음은 조금씩 핵심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데, 그곳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발견된다.
그렇게 되면 기도도 단순해진다. 기도들은 그 중심의 둘레에 모여 그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필요한 유일한 기도, 즉 자비를 구하는 기도가 발견된다.
죄인 괴수가 주님의 자비 외에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그에게 선물로 줄 물건이 있는가? 그에게 힘이 있는가, 자기 나름의 의지가 있는가? 그가 혼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그가 아는 것이 있는가?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자유자재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과연 이해하는가?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죄는 무.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는 공허함이요, 어두움이요, 부정이다. 죄인은 그러한 무 안에 거한다.
그가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소유를 줄이면, 그만큼 더 부유해진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에 있는 비워 놓은 방은 썩어질 물건들이 아니라 영생의 충만함, 사랑과 자비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의 집에 손님으로 거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러나 이러한 죄인이 어떻게 주님을 손님으로 맞을 수 있을까? 어두움 속에 있는 그를 주님이 바라보실 것이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그가 아무지 자신을 깨끗이 하려고 노력해도, 아무리 주님을 위해서 노력하고 일해도, 아무리 복음의 명령을 따르고 금식하고 온갖 방법으로 자기를 부인해도, 그는 자신이 심술궂고 말다툼을 잘하고 사랑이 없고 게으르고 조급하고 감사하지 않는 등 온갖 악에 다시 빠지는 것을 본다. 어찌 그러한 방에 주께서 오시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 "주님, 나를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당신을 섬기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맡기신 내 마음밭을 갈고, 그곳에서 가축을 먹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비천한 종에 불과하며,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당신의 은혜를 채워 주십시오."
그는 일을 통해서 믿음을 증가시키며, 기도를통해서 일할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일과 기도는 근접하여 살아가며, 마침내 그 둘이 서로에게 흘러들어가 하나가 된다. 그의 일은 기도가 되고, 그의 기도는 그의 일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성인들이 말하는 신령한 행위, 마음의 기도, 혹은 예수 기도이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