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값비싼 진주

모든 지식을 박탈당하고, 모든 선한 생각이나 행위가 결여되고,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희망을 잃은 우리는, 마치 낡아서 소용이 없는 넝마처럼, 길가의 돌멩이처럼 무감각하며, 벌레 먹은 버섯처럼 부식되고, 해안으로 밀려온 물고기처럼 생명이 위험하며, 자신의 이와 같은 배반으로 인해 슬피 눈물을 흘리면서 전능하신 분, 우리의 심판자요 창조주요 아버지, 우리의 구주, 진리의 영, 생명을 주시는 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는 탕자처럼 자신의 무력함을 깊이 의식하면서 더듬거리며 말할 것이다 :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눅 15:21).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우리는 자신의 무능함을 알며, 전능하신 분 앞에 먼지와 같음을 깨닫고, 우리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주님이 지으신 이웃을 향한 사랑이 자라나오며, 그분과 함께 타오르게 된다. 주님은 측량할 수 없는 존재 안에서 그들을 눈여겨보신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리는 것으로 족하다.
이상하게도 우리가 자신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갈수록 자아에서부터 더 멀리, 그리고 높이 올라가게 된다. 우리 삶의 표면적인 상황은 동일하다. 우리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기르며, 직장에 출근하고,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낸다. 우리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것을 떠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외면적인 삶에 관련된 모든 일을 행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아를 포기했다. 우리는 한 가지를 받기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했다.
" …만일 내가 당신을 소유한다면, 세상에서 무엇을 더 요청할 수 있을까요? 쉬지 않고 기도하며, 조용히 당신에게 매달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의 노예가 되고, 어떤 사람은 명예의 노예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재산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유일한 소원은 당신에게 매달리는 것입니다"라고 성 존 클리마쿠스는 말한다.
자기 포기를 포함하는 기도가 우리의 진정한 삶이 되면, 우리는 오로지 기도만을 위해서 기도에 전념하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 진정으로 귀중한 일은 하나님과의 동행(창 6:9) 뿐이며, 거기에는 하늘나라와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포함된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를 품는 사람에게는 죽음도 없고 질병도 없고 세상의 소란함도 없다. 그는 이미 영생으로 들어가서 모든 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서 밤낮으로 거룩한 씨가 싹을 내어 자라지만, 우리는 그 방법은 알지 못한다. 우리 마음의 밭은 저절로 처음에는 싹을 내고 다음에는 이삭을 내며, 그 다음에는 익은 곡식을 낸다(막 4:27-28).
성인들은 꺼지지 않는 빛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라 쉬지 않고 깨끗하고 분명하게 걸어가는 마음의 빛이다. 그것은 신속하게 어두움을 뒤로 하며, 항상 그 날의 고지를 향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의 항존하는 특성은 지속적으로 정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꺼질 수 없는 영원의 빛이며, 시간과 물질의 베일을 통과하여 비추는 빛이다. 그러나 성인들은 한번도 이 빛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으며. 그 빛은 주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한 사람들, 자유로이 선택한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말한다.
좁은 길은 끝이 없다. 그것의 특성은 영원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순간이 시작의 순간이다. 현재는 심판의 날인 미래를 내포하며, 창조의 날인 과거를 내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영원히 모든 곳에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유일하신 분이 오시면, 시간과 공간 안에서도 다원성이 사라진다. 모든 일이 동시에,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지금 여기에서, 사방에서 발생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신이 찾던 것을 만난다. 즉 십자가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 구세주와 구원을 만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 영혼을 구하고 영생을 얻기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둔함을 떨치고 일어서며, "주님, 나로 하여금 선한 출발을 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이라고 기도하자.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