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장  분석심리학과 종교

 

 

 

 

개성화 과정이 종종 영적인 삶에의 입사식이나 종교체험과 비교 연구되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비교된다"고 했지 "동일시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융의 입장은 분명하다. 그는 이 문제를 연구할 때 심리학적인 관점을 버린 적이 없다. 오히려 형이상학이나 초월적인 영역에 들어가지 않고 심리학의 영역에 머물러서 그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고 그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것, 그가 체험한 것들만을 말하고자 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사실들도 모두 현상학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문제들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도 그 문제들에 관한 심리학적인 의미나 심리학적인 가치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그가 동정녀 탄생이나 삼위일체, 또는 성육신이나 그리스도에 관한 개념에 대해서 언급할 때, 그것은 그 개념들이 그에게 다른 많은 상징들과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표현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을 하나의 심리학적인 현상들로서 연구했으며, 그것들의 실제(lar?a1it?)에 관해서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있다. "나는 부처나 마호메트나 공자나 짜라투스트라는 물론 미트라(Mithra)나 아티스(Attis)나 시벨르(Cybele)나 마니(Mani)나 헤르메스(Hermes) 역시 일종의 종교 현상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덧붙여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심리학자들이 만약에 진정으로 과학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여러 가지 다른 종교의 진리 가운데서 어느 하나만이 유일하고 영원한 진리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은 종교적인문제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측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때에만 그들은 종교의 원초적인 체험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그들은 그 신앙고백이 어떻게 생겨났는가하는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융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가 인식의 인간적인 측면 또는 자연적인 측면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사실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 특별히 많은 크리스천들은 융의 탁월한 저작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융은 그 자신을 심리학과 상징연구 분야에만 국한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그렇게 하고자 해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도 초월적인 세계의 현존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 자신을 심리학 연구에만 국한시켰던 것은 그가 초월계에 접근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 세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말하자면 융은 그가 직접 경험했던 체험, 그가 알 수 있는 체험의 기반 위에 서서 연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가 연구하고 있는 종교적 사실들과 종교 자체를 혼동하지는 않았다. 하나님과도 혼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le soi)는 순전히 인간의 전일성(latotalit?)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기는 신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가 연구한 것들이 인간의 심층을 다루고 있는 것이며, 너무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그를 인간 정신의 가장 미묘한 문제들에로 이끌고 갔다. 말하자면 융이 비합리적인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다루었다는 사실에서 어려움이 생겨났던 것이다.

정신분석이 종교를 대신할 수는 결코 없다. 만약에 어떤 누군가가 그런 시도를 한다면 그것은 영적인 것을 말할 수 없이 훼손시키는 일이 된다. 정신분석은 다만 하나의 길()이며, 도구일 뿐이다. 정신분석은 그 자신이 무한한 것과 동일시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무한에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정신분석 작업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에의 탐구" 과정 속에서 우리는 진리의 보편성과 진리의 통일성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이미 자기(自己)에 도달했든지, 아니면 아직 도달하지 못했든지 간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내면적인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똑같은 과정을 밟아서 내면적으로 발달해 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언제나 상징이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인 입사식(入社式)을 통해서 그들을 진리에로 이끌고 있으며, 신을 다시 발견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융의 저작들 역시 이러한 체험의 소산일 것이다. 융은 그 자신이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나, 처음에 유물론(唯物論)과 프로이드 학설에 매료되었으나 점차 영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신경증의 발생이나 정신의 전일성(-) 형성에 영적인 것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융이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게 된 것은 그가 정신과 의사로서 한 과정 한 과정 경력을 쌓아가면서 이뤄진 것이었다. 융에게는 이 인식과 동시에 종교가 인간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것은 그가 신경증에 걸린 사람의 정신 상태는 물론 정상적인 사람의 정신 상태를 관찰한 결과 생겨난 것이다. 융에게 있어서 종교나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것들은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처럼 "인류 전체의 집단신경증"이 아니었다. 성인들에게 유아적인 동기가 아직 청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서 무엇인가를 보상하려고 작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종교란 자연발생적인 실재(寶在)로서,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욕구이며, 인간 존재가 균형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정신작용이었다.

융이 기독교도가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이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지성이 탁월했었고, 그 지성을 토대로 해서 자기(自已)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고 한다면 신앙에는 결코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이 위대한 학자가 발견해낸 사실의 가치를 하나도 저하시키지 않는다. 기독교가 융의 발견들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기독교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융의 발견들 속에서 기독교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어떤 원천이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기독교 학자들이 융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이 종교를 하나의 환상이나 신경증으로 파악했던 프로이드는 받아들이면서, 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는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융은 프로이드적인 유물론(唯物論)을 벗어나서 영적인 것들을 건드리고 있으며, 우리의 영혼을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으로 오도할 우려가 있어서 더욱더 위험하다고 말이다. 융을 이렇게 오해하는 것은 그야말로 유치한 판단이다. 이것은 집단무의식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오해이며, 따라서 융 심리학에 관해서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개성화 과정을 체험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다 분석가가 하는 일이란 상징에 의해서 표현되는 영혼의 내면적인 요청을 해석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은 그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따라서 살아가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거역할 수가 없다. 어떤 융 학파의 분석가가 비록 그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기독교에로 회심하는 것을 방해할 수가 없다. 그것은 어떤 융 학파의 분석가가 비록 그 자신이 기독교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 자신의 내면적인 요청을 따라서 불교나 회교로 개종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시간 계획에 분석가는 그 어떤 관여도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종류의 무지는 대부분 모든 직관적인 인식을 거부하고 있는 경직된 합리주의, 데까르트적인 성향에 기인하고 있다. 기독교에는 내면적인 삶에로의 부름이나, 자기(自己)에로의 귀환이 결코 낯설지가 않다. 오히려 분석심리학에서와 마찬가지로-물론 두려운 감정과 어떤 경우심한 공포가 수반될 수도 있지만-권장되는 수련 방법인 것이다. 융은 여태까지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만병통치적인 공식이나 이론을 주장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한 사람의 내면세계와 경험을 그 세계의 밖에서는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면세계란 체험자 자신이 스스로 살고, 그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영역이다.

융에게 있어서 심리학자는 영원한 개척자이다. 환자들의 각각의 경우는 모두가 새로운 사례이고, 개간해야만 하는 처녀지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상징의 표준적인 의미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종종 길을 잃었고, 잠시 멈추어 서서 길을 찾기도 하였다. 또한 그 상징들을 개인적으로 체험하고자 했던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융이 프랑스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알려져 있다고 할지라도 잘못 알려져 있는 것도 그가 어떤 하나의 상징만을 말하지 않고, 새로운 상징의 의미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아쉬워 할 수밖에 없다. 오래전부터 융은 신학자들이 그의 저작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빅터 화이트와 레이몽 호스티는 이러한 융의 바람에 응답했다. 우리는 독자 여러분들이 이 두 저작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이 두 저작은 매우 깊이 있게 융의 사상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융의 심리학이 영적인 영역에서 점유하고 있는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종교 연구에 있어서 융의 심리학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지만, 융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학자들의 저술 속에서 더욱더 확실한 진리를 보고, 그들의 신앙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융과는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들이 융의 저술 속에서 기독교 신학과 다른 모든 사상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끄집어 낼 때, 그들은 정당했다. 그러나 융의 사상 가운데서 기독교 신학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그렇게 깊이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분석 과정에서 발견되는 집단무의식 개념이 기독교 연구에 있어서도 대단히 유용하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집단무의식 개념은 많은 종교에서 행하고 있는 제의(祭儀)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하게 해 주고,그 제의의 의미를 확인하게 해 준다. 더구나 집단무의식은 기독교 교리들의 의미를 밝혀 주고, 깊이 탐구할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융이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크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의 사상 속에서 기독교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융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분석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이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가 하는 사실이다.

깊은 바다 속을 탐사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instrument)는 그 도구를 이용해서 발견해 낸 발견물들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분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신분석은 정신분석의 결과 알아낸 내용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에 관해서 보통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는 물론 프로이드에게도 상의하지 못한다. 만약에 융에게 신학자 같은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융이 인간의 무의식의 깊은 측면을 관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융을 그런 차원에서 연구하고, 그런 차원에서 판단해야 한다. 융은 한번도 자기 자신이 심리학자라는 주장을 거둔 적이 없다. 심리학만이 그의 영역이었고, 우리는 그를 심리학에서만 만나야 한다.

"나는 어떤 변증학(辨證學)이나 철학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과학을 한 것이다. 나는 하나의 종교를 창시하고자 하는 의향도 없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나의 저술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말하고 있다. 나는 종교의 체계 안에 머무르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종교 현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 우리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심리적인 사실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내 저작들이 그렇게 읽혀지고 있지 않은지 나는 모르겠다. 내 저술들에는 그 어느 다른 목적도 없다. 따라서 내 저술들을 과학적인 관점 이외에 그 어느 다른 관점에서 볼지라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에 대한 비판 가운데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비판들은 내가 과학적인 사실을 다룬 문제에 대한 언급이다. 그리고 내가 과학의 원리를 잘못 적용했을 경우뿐이다."

 

 

 1-6장 분석심리학과 종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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