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6-4-1to17(8)
기도중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탈혼, 황홀, 탈거) 
 
테레사 수녀는 하나님이 영적 약혼을 맺기 위하여 하시는 일은 바로 탈혼으로 영혼이 감각을 벗어나는 때인 것같다고 말한다.  
 
이것은 흔히 정신이 박약한 사람들이 말하는 걸핏하면 탈혼이니 황홀이니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탈혼을 말한다.
진정한 탈혼을 말한다.
기도를 아니한 채로 있건만 문득 생각나는 말씀 한마디, 아니면 하나님 목소리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가 가르치는 마음가짐과 그 방법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깨끗하게 된 영혼을 하나님은 당신과 결합시켜주신다.
이것은 그 둘밖에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지만 그 사람 자신조차도 그 경위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어떻게 된것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누가 기절을 하거나 심한 발작을 하거나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와는 다르다. 
 
전에는 사람이 이 경지에서처럼 하나님의 일을 꿰뚫어보고, 하나님에 대한 깨우침과 빛을 이토록 얻는 것은 없었다고 말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죽은 듯이 기능을 잃고 감각 작용도 멎은 상태라면 도대체 영혼은 무슨 수로 이런 신비를 깨우치는지를 피조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영적 약혼과 결혼은 별 구분없지만 영적 결혼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영적 약혼과 결혼을 구분한다. 
 
사람이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면 주께서 그에게 천국의 일들 그리고 상상의 보임 (현시, vision)  같은 은밀한 사정을 열어 보이시는 것을 종게 여기시고, 그 사람은 이런 일을 디음에도 말할수 있으니 기억에 깊이 찍혀져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지성의 '보임'일 경우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런 것은 아주 드높은 것이어서 사람이 알아듣거나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감각이 기능을 회복하면 표현이 가능한 지성의 '보임'도 많다. 
 
비록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지만 영혼의 가장 그윽한 속에 깊이 찍혀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영혼 안에 깊이 새겨져서 하나님으로 밖에 믿을 수 없기에 이 순간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마치 야곱이 사닥다리를 보았을 때와 하던 것과 같다. 
 
모세도 역시 가시덤불 속에서 본 것을 다 말할 수 없었고 다만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그 말씀만 한것이 아니겠는가! (출 3:2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알아듣겠다고 캐고 따지고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이상 그 한조각이나마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고마움에 감사하고 감사하자. 
 
한 비유를 든다면 우리가 박물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잠간 들렸다가 나와서 별로 기억에 나지 않는다. 하나 하나 설명할 수가 없다. 다 보았다는 새악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보면 영혼의 가장 그윽한 속에 있을 그곳으로 우리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기 영혼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런데 탈혼 상태의 경우에 하나님은 그때마다 영혼에게 당신의 비밀을 열어보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맛에 빨려들어가는 그 맛, 이것이 영혼에게는 최대의 행복이다. 더 없이 행복하다.
그러나 어딴 때는 힐끔 보게끔 해주시는 때도 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 이상은 볼 수 없다. 
 
"보임"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려합니다. 
 
                  2014. 10. 22.
           고려수도원 박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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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