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fol 4-1to17  (/17) 
 
■ 넷째 노래 
 
                        얼마나 유순하고 사랑스러운지!
                        내 마음 속에서 깨어나시고
                        은밀하게 홀로 머무시는 곳, 
                        당신의 감미로운 숨결 속에
                        선과 영광 가득하고, 
                        나를 얼마나 미묘하게 사랑하시는지! 
 
설명 
 
1.
영혼은 신랑을 존경하고, 일치를 통하여 신랑께서 영혼 안에서 가끔 이루어주시는 
놀랄만한 두 가지 효과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 두 가지효과가 각각 이루어지는 방식과 이때에 영혼 안에서 넘쳐흐르는 효과에 대하여 주목하면서 엄청난 사랑으로 자기 신랑에게로 돌아선다. 
 
2.  첫째 효과는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깨어나심이며, 그 방식은 영혼이 다정함과 사랑을 준비하게 한다.
    둘째 효과는 영혼이 느끼는 하나님의 숨결이며, 그 방식은 숨결 안에서 영혼에게 전달되는 영광과 선익이다.
여기에서 영혼에게 넘쳐흐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혼을 미묘하고 부드럽게 사랑하시는 것이다. 
 
3. 당신이 영혼의 유일한 주인이듯이 영혼 안에 은밀하고 고요하게 머무시는데 단지 당신의 집이나 침대에 머무시는 것처럼 머무시는 것뿐만 아니라 내 가슴 속에 아주 밀접하게 일치하여 머무십니다.
이것은 대단히 부드럽고 달콤합니다. 
선익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는 달콤한 숨결 속에서 이루시는 당신의 깨어나심은 나에게는 달콤합니다. 
 
이때에 영혼이 꿈에서 깨어나 비슷한 느낌을 끌어들이는데, 사실 영혼이 여기서 그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 얼마나 유순하고 사랑스러운지!
     내 마음 속에서 깨어나시고!       
 
4.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여러가지 방식의 깨어나심을 마련하시는데 그것을 다 기록한다면 절대로 끝낼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영혼에게 이루어주시는 깨어나심은, 영혼에게 이루어지는 대단한 선익과 숭고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깨어나심은 말씀께서 영혼의 실체 안에서 이루시는 움직임인데 대단한 주권과 영광과 엄청난 부드러움이기 때문에 영혼에게는 자신의 부드러움을 되돌리기 위해 모든 발삼 향과 향기로운 것들돠 세상의 꽃들이 뒤범벅되고 진동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모든 나라들돠 세상의 주권들, 그리고 하늘의 모든 권능과 덕이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뿐 아니라 모든 덕과 실체와 완전함,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우아함이 빛나고, 모두 똑같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처럼 여겨진다. 
 
모든 것들이 그분 안에서 생겨나고 (요 1:3), 또한 모든 것들이 그분 안에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것같다(행 17:28). 
여기에서 양혼 안에서 대단한 황제께서 움직이시는데(사 8:60) 그분의 권좌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빌 2:10)을 데리고 오신다. 
세 인물들 안에 있는 것들은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면서"(히 1:3) 모든 것이 하나로 움직여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영혼 안에 있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이 땅의 움직임과 함께 움직인다. 
이렇게 움직이실 때에 수행원들이 그분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왕자께서 수행원들을 데려오신다.* 
 
* 주)  천체의 움직임이 태양 주임이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5. 영혼은 천상과 지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힘과 수명과 생명을 가지게 되는가를 보게 된다. 
 
영혼이 그분의 무한한 탁월하심과 함께 그분의 그분의 존재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들 자체에서보다는 그 존재에서 하나님을 더욱 더 잘 알게 돤다. 이것이 바로 깨어남의 기쁨인데, 하나님을 통하여 피조물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인을 통하여 결과를 아는 것이지 결과를 통하여 원인을 아는 것은 이차적 인싣이고, 그 반대로 원인을 통하여 결과를 아는 덧은 본질적 인식이다. 
 
6.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으신다. 그렇다할지라도 영혼에게는 움직이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영혼은 하나님에 의해 새로워졌고 움직여졌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영혼이 자기 안에서는 거룩한 삶과 존재와 모든 피조물의 조화를,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는 그들의 움직임을 대단히 새로움으로 바ㅏ본다.
지혜는 다른 모든 것들의 움직임보다 재빠르다는 것이다. 
 
영혼은 이 움직임 안에서 움직여졌고 본성적 시각의 꿈에서 깨어나 초자연적인 시각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남 이라는 이름의 영혼에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7. 하나님께서는 영혼이 보는 대로 그렇게 항상 움직이시고, 다스리시고, 피조물들에게 존재와 덕과 우아함과 선물들을 주시면서, 그리고 당신의 힘과 현존과 실체로 인해 피조물들이 당신 안에 머물도록 해주시면서 존재하신다.
영혼은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계시는 분이심을 보며, 피조물 안에 계심을 본다. 
 
영혼은 하나의 행동에서 자신 안에 머무시는 거룩한 인격체의 탁월함을 보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임가 이루시는 것을 본다. 
모든 피조물이 그런 것처럼 영혼이 하나님 안에 실체적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영혼에게 드리워졌던 많은 장막과 휘장 가운데 몇 개를 치워주셨다는 것이다.
이때에 어렴풋이 보이는 그분의 얼굴은 우아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8. 우리의 존재 양식에 따라 다른이들을 판단하는데, 판단을 할 때에는 객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서부터 주관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게으르고 자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게으르며 주무신다고 여긴다. 
다윗이 "깨어나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시 44:23)
사람들에게서 보았던 것을 하나님께 적용한다. 
 
사람들이 자고 있고, 맥이 풀려 있으면서 오히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4)고 한 것처럼하나님께서 깨어나시고 일어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9. 온갖 좋은 선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약 1:17),  인간 스스로는 좋은 덧을 이울 수 없다.
우리들의 깨어남은 하나님의 깨어나심이며, 우리들의 일어남은 하나님의 일어나심이다. 다웃이 말했드시 우리를 두 번씩 일으켜주시고 깨워주시는데 우리가 자고 있었고 두 가지 나쁜 버릇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이 스스로는 절대로 기억해낼 수 없는 꿈 속에서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며, 단지 하나님만이 영혼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고, 깨워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는 아주 적합하게 하나님의 깨우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내 마음 속에서 깨어나시고 
 

■ 내 마음 속에서 께어나고


10. 하나님의 체험이라는 이 깨어남에서 영혼이 알고 느끼는 것을 말로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여기서 "깨어남"이란 자기 마음 속이라고 말하는 영혼의 실체 안에서 하나님 체헌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 안에서는 절대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수천 개의 덕들의 소리와 탁월함의 거대하고 힘이 있는 소리들이 들린다.
이 소리들 가운데 자리 잡은 영혼은 마치 깃발을 세운 군대처럼(아 6:4) 공포에 젖어 굳어진 채로 있으면서 동시에 피조물의 모든 우아함과 달콤함으로 부드러워지고, 구ㅏ엽게 되었다. 
 
11.  그러나 의심이 생길 것이다. 사실 죽을 지경이 되지 않고서라면 영혼 안에는 견뎌낼 힘이나 능력이 없다고 하는데 육체의 연약함 안에서 강력하 하나님의 은총을 영혼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영혼이 보는 것은 천사가 아니라 탁월함의 거대한 소리와 영혼과 두려움의 권력과 모든 피조물들의 우아함을 모두 갖춘 얼굴을 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영혼이 얼마나 더 신실했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욥은 "~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욥 26:14)라고 묻는다.  
 
욥은 다른 곳에서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욥 23:6)
그분의 위대하심(큰 권능)의 무게로 자신을 짓누를지도 모른다고도 한다. 
 
12. 영혼이 그렇게 영광스럽고 힘이 있는 깨어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실하지 않는 이유 두 가지
1)  영혼이 이미, 완덕의 단계에 있으면서 영혼의 내적인 부븐이 매우 정화되어 있고 정신을 따르고 있으므로 아무런 상실감을 느끼지 않으며, 이런 영적인 교류 안에서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지않았거나 정화되지 않은 감각과 정신이 종종 느끼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훌륭하게 해주시고 선물을 주시려고 영광과 위대함을 드러내시며, 본성을 보호해주시면서 상실감을 느끼지 않도록 호의를 베푸신다.
본성이 아니라 정신에게 사랑돠 부더러움으로 당신의 위대하심을 드러내시지만 영혼은 이것이 육체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혹은 육체 밖에서 이루어지는지 모른다(고후 12:2)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곳은 모세에게 당신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오른 손으로 보호해 주셨던 것이다(출 33:22~23)
이렇게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대단한 온유함과 사랑을 느끼는데 그만큼의 능력과 주권과 위대함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13.  "신방에서 나오는" 영혼의 "신랑처럼"(시 19:5) 당신의 권좌에 숨어 계시다가 영혼에게 나오시는데,  영혼에게 기대시고, 당신 주권의 표상물로 연혼을 어루만져 주시며,  마치 향제처럼 영혼을 껴안아주신다.
거기에서 영혼은 향기를 내뿜는 왕비의 복장을 하는데 이 복장들은 모두 하나님의 놀랄만한 덕들이다. 
 
황금의 번쩍임은 애덕이며, 값비싼 보석들이 빛나는 것은 아래와 위의 실체들에 대한 지식들이며, 말씀 (그리스도)의 얼굴은 영혼인 여왕에게 덮어주고 입혀주는 우아함으로 기득 차 있다.
이렇게 해서 하늘의 임금의 덕들로 감싸였고 변화된 연혼은 왕비와 같이 보이며, 그녀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란 "왕비는 황금으로 단장한 여러 가지 옷을 입고 당신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시 45:10)라고 다윗이 했던 말뿐이다. 
이덧은 모두 영혼의 심오한 실체 안에서 일어나는 거5이기 때문에 영혼은 이렇게 말한다. 


 

■  은밀하게 홀로 머무시는 곳. 
 
14. 자신의 가슴 속에 은밀하게 머무신다고 영혼이 말하는 것은, 달콤한 껴안음이 이루어지 곳인 영혼의 실체의 깊은 곳을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영혼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영혼들의 실체 안에 은밀하게 숨어서 머무시기 때문이다. 만일 이렇게 하시지 않는다면 영혼들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머무심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세속의 것들과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욕구와 만족이 거의 없는 영혼은 그분께서 더욱 홀로, 좋아하시면서, 그리고 마치 당신 집처럼 지배하시고 통치하시면서 머무시는 곳인데 혼자이실수록(영혼의 욕구와 애착이 없을수록) 더욱 은밀하게 머무신다. 
 
이런 영혼에게는 아무런 욕구도 없으며 다른 영상들이나 형상들은 물론 어떤 피조물에 대한 애착도 없으므로 신랑이 최고로 은밀하게 머무시는데, 신랑은 하나님 외에는 오직 혼자서 순수하게 있을수록 더욱 밀착되어 내적으로 친밀하게 안아주신다. 
 
비밀리에 머무신다는 것은 껴안아주심 때문에 악마가 끼어들 수가 없으며,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려고 하는 인간의 지성조차 파고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완덕에 이른 영혼에게는 비밀리에 머무시지 않는데, 영혼이 이런 친밀한 껴안음을 자기 안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깨어나심에 따라서 그런 것이지 항상 그런 것은 아닌데, 신랑이 깨어나실 때에 영혼에게는 이제껏 자고있던 곳인 자기 가슴 속에서 깨어나시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제껏 잠자고 있던 곳에서 영혼이 하나님을 느꼈고, 만족스러웠다 할지라도 꿈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신랑과 같았을 것이다. 
 
둘 가운데 하나라도 잠자고 있었다면 둘 사이에는 깨어있을 때까지 사랑과 지식이 교류되지 않는다. 
 
15.  오! 자기 가슴속에서 하나님께서 쉬시면서 머무심을 항상느끼는 영혼이 얼마나 행복할까! 
오! 그런 영혼에게 아직도 아주 작을 지라도 오점이나 잡음이 있다면 신랑의 품속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모든 소일거리를 끊어버리고 거대한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이 영혼에게 얼마나 적합한 일인지!
신랑은 통상적으로 자기 영혼의 실체 안에서 신부를 껴안은 채 잠자고 있는 것처럼 계신다.
그래서 영혼은 이것을 잘 느끼고 늘 기뻐한다.
만일 영혼 안에 신랑이 사랑과 지식을 교류해주시면서 깨어계셨더라면 영혼은 이미 영광 속에 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영혼 안에 계시면서 영혼을 위해 아주 깨어 계시다면 영혼은 어떻게 될까? 
 
16.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치의 단계에 이르지 않은 다른 영혼들에 대해서도 언짢아 하지 않으시는데 이들 모두가 은총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영혼들 안에도 신랑이 머무시지만 영혼들을 위해서 은밀하게 머무시는 것이다. 이런 영혼들은 통상적으로 신랑을 느끼지 못하고 단지 신랑께서 그들을 달콤하게 깨워주실 때에만 느낄 뿐이다. 
 
이 깨워주심이란 영혼과는 상관이 없는 종류의 것이며, 꼭 신랑을 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영혼에게처럼 악마나 지성에게도 매우 은밀한 것이다. 
 
감각의 움직임을 통해서라면 아직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인데 일치에 이르기까지는 감각적인 것들이 다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그들이 전적으로 영적인 존재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영적인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어떤 움직임들이나 행동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완덕에 이른 영혼에게 신랑이 해주시는 깨워주심 안에서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완전한데 모두 신랑이 이루어주시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깨어나면 숨을 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영혼이 하나님 안에 계신 성령의 숨결로 기이한 즐거움을 느끼는 가운데 영혼은 지극히 영광스러워지고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다음 구절들을 노래한다. 
 
    당신의 감미로운 숨결 속에,
    선과 영광 가득하고, 
    나를 얼마나 미묘하게 사랑하시는지!  
 


17. 선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고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미묘한 사라인 이 숨결에 대하여 만일 말로 한다면 그것은 매우 
초라한 것이 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불어 넣어주시는 그 숨결 안에서 신성에 대한 숭고한 깨달음의 깨어남을 통하여 신랑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깨달음과 같은 비율로 성령을 영혼에게 불어넣어주시고, 그때에 성령 안으로 최고로 깊게 영혼을 빨아들이신다. 
 
그리고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본 것에 따라서 거룩한 미묘함과 우아함으로 영혼과 사랑에 빠진다.  
 
그 숨결은 선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그 숨결 안에서 영혼을 선과 영광으로 가득 채우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오하심 안에서 모든 언어와 감각을 뛰어넘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
아멘. 
 
                                                             사랑의 산 불꽃
                                                              (십자가의 요한)    
                                                                                                      2015. 1. 20.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