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fol 3-70to76  (/85) 
 
■ 어둡고 눈이 멀었던 
 
70.  알아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감각을 환하게 비추시고 밝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시각이 볼 수 없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어둡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장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시고 영혼의 목적이다.
이 빛이 연혼에게 비춰지지 않을 때에는 제아무리 탁월한 시력을 가졌다할지라도 어둡다. 
 
영혼이 죄의 상태에 있거나 혹은 다른 것들에 대한 욕구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눈이 먼 것이다. 
 
하나님의 빛이 영혼에게 비춰진다 할지라도 눈이 멀었기 때문에 영혼의 무지라고 하는 영혼의 어두움을 보지 못한다. 
 
영적으로 높은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주시기 전에는 영혼은 하나님의 엄청난 보물에 대하여 모르거나 깜깜했다. 
 
71. 하나가 어두운 곳에 있다면 다른 것은 람흑속에 있는 것이다.
암흑 속에 있다는 것은 ㄴㄴ이 멀었기 때문이며,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 있다는 것은 죄가 없는 상태에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두가지 방식 곧
1) 자연적인 것들에 대한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며,
2) 초자연적인 들 것에 대한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에 입각해서 영혼이 말하는 것은 고귀한 일치에 이르기 전에 자신의 감각이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주께서 "빛이 있어라 (창 1:3)" 말씀 하시기 전까지는 어둠이 영혼의 감각의 동굴의 심연을 덮고 있었다(창 1:2). 
 
영혼의 빛이신 하나님께서 비추어 주시지 않을 때에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서라면 영혼에게는 엄처안 암흑이다. 그래서 거룩한 빛을 향하여 는을 들 수가 없으며,  영혼의 생각에도 포착되지 않는다. 이제껏 보지도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거슬 탐낼 수도 없고 단지 암흑만을 탐낼 것인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만 단지 하나의 암흑의 인도를 받으면서 다른 암흑으로 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시 19:2)와 같이 암흑(밤)은 단지 암흑(밤)으로 인도할 수 밖에 없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시 42:7)
말하지면 심연(깊은 바다)이 심연을 부르듯이, 유유상종으로 서로 교류하듯이 빛의 심연은 또 다른 빛의 심연을 부르며, 암흑의 심연은 또 다른 암흑의 심연을 부른다. 
 
전에 이 영혼에게 주셨던 은총의 빛으로 영혼의 정신이 지니고 있는 심연의 눈을 비추어주었으며, 거룩한 빛으로 눈을 뜨게 해주었고, 자기 스스로 유쾌하게 해주면서 하나님 안에서 영혼의 거룩한 변화라고 하는 은총의 또 다른 심연을 불렀다.
그래서 감각의 눈을 매우 밝아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되었으며,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빛이, 즉 영혼의 자연적인 빛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빛이 모두 하나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초자연적인 빛만 비춘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은 태양 빛과 하나되고, 다른 빛이 죽지 않으면서 단지 태양빛만 비춘다 (창 1:14~18) 
 
72. 영혼이 다른 것에 맛들이고 있었던 만큼 눈이 멀었던 것이다.
이성적이며 최고 높은 감각의 눈멀음은 욕구인데, 마치 이성의 눈에 백내장이 끼거나 구름이 덮이는 것과 같다. 
 
감각에는 어떤 맛을 주문했던 만큼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의 위대함을 보기에는 백내장이 없을 때보다 주문한 그 만큼 눈이 멀었다. 
 
영혼이 갖게되는 가벼운 욕구나 게으른 행동일지라도 이는 매우 커다란 것이기 때문에, 영혼이 원하는 욕구와 기쁨 뒤에 있는 모든 거룩한 위대함을 방해하기에 충분하다.
                                                                                                                     
 
73. 욕구를 가지고 있는 영혼은 하나님의 일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기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하여 욕구와 만족을 온전히 밖으로 내던져야 하며, 하나님의 일을 욕구와 만족과 함께 판단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갇할 것이기 때문이며, 
반대로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것인 양 생갇할 것이기 떼무니다. 
 
판단의 눈 위에 백내장이나 구름이 드리워지 상태에서는 백내장이나 구름을 하나님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은 감각 위에 있는 백내장 밖에 못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각에 포착되지 않는 분이시다. 
 
이런 방식으로 감각적인 욕구와 만족은 높은 단계에 있는 일에 대한 깨달음을 방해한다. 
 
74. 욕구와 만족이 정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열성이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 안에 아직도 동물적인 것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아직도 정신에게는 비열하고 초라한 것, 즉 단지 감각에 도달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살기 때문에 이것을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정신에게 있어 매우 가치있고 높은 것은 감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지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말씀과 같이 육에 속한 동물적(현세적)인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에게는 어리석음이며,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주) 동물적인 인간이란 아직도 본성적인 만족과 욕구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75.  연혼이 하나님늘 원할 때항상 초자연적인 욕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그럼 욕구의 힘을 부어주실 때 하나님을 원하는 것인데, 이것은 본성적인 것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 사실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부어주실 때까지 매우 조금, 아니 거의 아무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당신을 알리기를 원하실 때까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영적인 것들에 대한 욕구에 매달리기 원한다면우리는 우리 본상적 욕구를 키우는 것이다.
그때에는 눈에 백내장이 끼게 하는 것이며 동물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본성적 감각과 욕구라는영적인 것을 이해하거나 판단하지도 못할 것이다. 
 
76. 영혼의 감각은 전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빛이 없었고 자기의 욕구와 애착으로 인해 장님이 되었기 때문에, 어두웠다.
그러나 자신의 깊음 동굴과 함께 하나님과 거룩한 일치릉 톤하여 이제는 빛늘 받았고  밝아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관의 능력들이 동굴들과 함께 밝게 비추는 빛과 같이 되었다.


                                                                                                                   201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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