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fol 3-28to69 (/85) 
 

⊙ 여기서 부터는 상과 내용이 다르지만 깊은 연관관계에 있다.

◈ 영적 높은 단계에 오르게 되는 영혼들에게

    28~29  :  영적 지도의 원초적인 스승은 하나님

    30~62  :  영적 성숙에 방해되는 영적 지도자  (장님 안내자 1)

    63~65  :   악마                                                 (장님 안내자 2)

    66~67  :   영혼 자신                                         (장님 안내자 3)



■  감각의 깊은 동굴들은  (하)

        (*  영적 지도자)


                             28~29  :  영적 지도의 원초적인 스승은 하나님


28. 첫째로, 만일 영혼이 하나님을 찾는다면 자기 신랑이신 하나님께서 훨씬 더 많이(먼저) 영혼을 찾으신다. 그리고 만일 영혼이 신랑에게 자신의 사랑 가득한 갈망을 아뢴다면 이 갈망은 몰약과 유황과 온갖 종류로부터 나오는 향기가 풍기는 것처럼(아 3:6) 신랑에게 매우 향기롭다. 
신랑은 영혼에게 온갖 향유들의 향기를 보내주시고, 이것으로 영혼을 유혹하며 당신께 달려오도록 하신다.(아 1:3~4) 
 
매우 탁월하고 미묘한 다른 향유들을 주시기 위하여 영혼을 준비시키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준비시키시는 것은, 하나님의 도유기 허락하는 매우 미묘하고 순수한 준비 자세가 영혼에게 갖춰지고, 영혼의 모든 감관의 능력들 속에서 실체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때까지이다.


 
29.  하나님께서 영혼을 준비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원초적인 주동자이시며,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 영혼의 지성과 의지와 기억조차도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곳으로 영혼의 손을 붙들고 데리고 가시는, 즉 장님을 인도하는 어린아이시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영혼이 갖추어야할 아주 근본적인 주의사항은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신앙과 당신의 법에 따르는 완덕으로 정해 놓으신 길을 따라서 영혼을 이끌고 가시는데 장애물을 끌어들이지 않도록 관찰하는 것이다.  
 
영혼을 영적 여정에서 끌어낼 수 있는 장님 안내자들은 세 가지인데, 영적 지도자, 악마, 영혼 자신이다. 
 


  

  영적 성숙에 방해되는 영적 지도자  (장님 안내자 1) (중 2)



 30~62  :  영적 성숙에 방해되는 영적 지도자  (장님 안내자 1)


30. 영혼이 어떻게 이렇게 되는지 !
첫째로, 잠심과 완전함에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영혼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은 누구의 손에 자기를 맡길 것인가를 잘 확인하는 것이다. 
 
이 여정을 위해서, 적어도 자기에게 매우 탁월한 부분(관상기도)을 위하여, 혹은 중간부분(묵상기도)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부분에 따라서 적합한 지도자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영혼을 지도하기 위한 바탕은 지식과 분별력일지라도, 만일 순수하고 참된 정신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영혼을 이끌어 주실 때에 영혼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제대로 지도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그런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대부분의 영적 지도자들이 많은 영혼들에게 숫한 해를 끼치고 있다.  
 
31. 영적 지도자들이 정신의 특성들과 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리고 초보자들에게나 도움이 될 뿐인 천박한 방법으로 영혼을 지도하면서 통상적으로 영혼들에게 미묘한 기름부음을 놓치게 하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이 미묘한 향유로 영혼들에게 기름을 바르시며,  당신을 위해 준비 시키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데려가시기를 원한다할지라도,  영적지도자들은 영혼들이 초보자들보다 더 앞으로, 그리고 사색과 상상의 방법(묵상)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놔주지를 않는다.
결국 영혼들이 본성적 능력에서 빠져나오지도, 그것을 뛰어 넘지도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영혼은 아주 초라한  소득을 얻을 수 밖에 없다. 
 
32. 초보자들의 단계나 이들의 과제는 묵상을 하는 것이며, 상상력으로 사색적 행위와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묵상하고 사색하도록 주제를 제시해 주는 것이며, 영혼에게 적합한 것이라면 스스로 내적 행위와 더불어 영적인 일들에서 감각적인 맛과 기쁨을 이용하는 것이다. 
 
영적인 일들의 맛으로 욕구를 키우기 때문에 세속의 일들에서는 맥이 빠지고 감각적임 일들의 맛에 뿌리박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구가 이미 약간 커졌고 약간의 힘과 항구함과 더불어 어떤 방식으로든지 정신의 일들에 젖어들었을 때에는, 흔히, 하나님께서는 즉시 영혼이 젖을 떼도록 하시며 관상의 단계에 놓아 주시기 시작하신다. 어떤이들에게는 매우 짧은 순간에 이루어지는데 대부분의 걍우 그렇다. 
 
세속 일들을 더욱 빨리 놓아 버리는 영혼들은 감각과 욕구를 하나님께 맞추며, 하나님께서 이런 이들 안에서 기꺼이 역사 하시기 때문에 자기의 일을 정신으로 옮긴다.
이 때는 사색적 행위와 묵상을 놓아야 할 때이며, 기초적인 감각적 열정들과 기쁨을 포기해야 할 때이다.  
 
전처럼 사색을 할 수 없고, 감각을 통하여 기댈 곳이라고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영혼의 감각은 매마름에 머물게 되며, 영혼의 모든 자신들이 감각에 떨어지지 않는 정신으로 옮아간다. 
 
영혼의 모든 움직임은 감각에 의한 것이지만, 이 단계에서는  영혼은 수동자로 단지 받아들이는 존재일 뿐이고 영혼 안에서 움직여지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주동자로 주시는 분이시고 영혼 안에서 움직이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에게 깨달음과 거룩한 사랑이 함께하는 영적 선익을 주시는데, 그것은 사랑 가득한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은 영혼이 자신의 고유한 행위나 본성적 사색 없이 주어지는 것인데, 영혼이 이제는 전처럼 이런 행위나 사색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33. 이 시기는 첫 시기 (묵상시기)와는 달리 하나님께 이끌려 가야 하는 시기이다.
이전에는 묵상 자료가 주어져 묵상을 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것들을 없애야 하며, 묵상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묵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묵상을 하려 한다면 잠심으로 들어가기는 커녕 분심과 잡념이 들 것이다. 
 
영적 지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영혼을 묵상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전에 느끼던 맛이나 열정을 고수하려고 애쓰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만약 묵상을 고집한다면, 원초적 주동자에게 훼방을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영혼은 사랑 가득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특별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수동적으로 되면서 사랑의 조심성으로 눈을 크게 뜬 사람처럼 사랑가득하고 단순하고 소박한 결단과 경계심으 가지고 오로지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34.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시려는 것처럼 영혼을 소박하고 사랑 가득한 깨달음으로 대해 주시고, 깨달음과 깨달음이, 사랑과 사랑이 함께 하도록 영혼 역시 소박하고 사랑 가득한 경계심과 깨달음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로 하나님을 대해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주시는 대로 받아들이고 간직할 수 있으려면 받아들이는 방식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만일 영혼이 자신의 본성적인 능동적 방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저 선익을 받지 못할 것이며, 받는다면 단지 자연적인 방식으로 받을 뿐이다. 이렇게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본성적 행위에 머물고 말 것이다.
초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인 방식에 맞지 않으며,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께서 어떤 행위 안에서 영혼과 일치를 이루시려고 하실 때에 아무런 본성적 행위도 없이 그저 매우 수동적이며 조용하게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사랑 가득한 깨달음 안에서 초자연적으로 영혼에게 건네시는 선익에 훼방꾼을 두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고통을 겪으면서 정화의 수련을 하지만, 그 다음은 사랑의 부더러움 안에서 내적인 정화의 수련을 하는 것이다. 
 
사실 사랑 가득한 깨달음은 영혼의 자연적인 방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영혼에게 수동적으로 주어진다. 
 
영혼은 아무에게도기대지 말아야 하며, 아무런 사색이나 묵상도 하지 말아야 하고, 감각적이든 영적이든 어떤 맛에 이끌리지 말아야 하고, 다른 어떤 행위를해서도 안된다.
매우 자유롭고 모든 것을 없애버린 정신이 요구된다. 
영혼이 어떤 생각이나 사색, 혹은 만족에 기대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망칠 것이며, 불안하게할 것이고, 심오하고 미묘한 들음을 위해 필요한 감각과 정신의 심오한 침묵에 잡음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독 속에서 마음에다 말씀하신다. 영혼은 최고의 평화와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는 것을 듣고, 다윗처럼(시 85:8) 주님께서 영혼에게하시는 말씀을 경청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고독 속에서 평화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35. 영혼이 침묵과 들음 가운데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주님께서 영혼에게 원하시는 것을 위하여 자유롭게 되도록 사랑 가득한 경계심의 움직임을 잊어버려야 한다. 
 
사랑가득하 경계심은 단지 고독이나 내적인 한가함, 망각과 영적인 들음의 상태에 놓아진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만 사용해야 한다. 


   

36. 영혼은 항상 관상의 단순하고 한가한 상태에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에 묵상을 할 수 없고, 하게 되지도 않을 때가 올 것인데, 그때가 되면 묵상을 자기에게 끌어들이거나 영적인 맛이나 기쁨에 기대길 원하지 말고 오히려 기대지 않고 우뚝 서야 하며, 정신도 어떤 것에도 기대지말아야 한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런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런지 보리라"(합 2:1) 
 
설명 :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을 관상을 통하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감각에 들어올 수 있는 모든 움직임들과 깨달음들과 감각들을 자기 안에 붙들어 놓고, 이런 모든 것들을 간직할 것이 아니라 버리면서 정신을 차릴 것이고, 감각의 능력들의 하소연의 발걸음을 고정시킬 것이며, 나의 감관의 능력들을 버리면서 영혼의 고유한 움직임에 대해 아무런 상관을 하지 말아야 한다.  
 
순수한 관상이란 받아들이는 데 있다. 
 
37. 관상이라 하는 하나님의 언어와 높은 지혜는 침묵에 젖어 있거나 사색적인 깨달음과 맛에 기대지 않은 정신이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말하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사 28:9)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은 좋아하는 맛들을 떠나고, 특별히 지각이나 깨달음에서 벗어난 이들을 말한다. 
 
38. 오!  영적인 영혼이여, 먼지와 머리카락, 그리고 눈에 끼인 뿌연 것들을 없애고, 눈을 깨끗하게 하고, 태양이 너를 비추면 너는 분명히 보리라!. 
 
이집트의 노예생활(출 5:7~19)과 같은 자기 능력의 초라한 움직임들의 노예상태와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면서 평화 속에 머물라. 
 
영적 지도자여. 영혼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땅 (출 3:8,17)으로 인도하시오. 
 
사막에서 금은 보석으로 장식되었고 축제를 즐기던(출 32:2~3) 영혼이 이집트를 떠났기 때문에 감각적 부분이라는 자신의 부유함을 포기한 것이다. 
 
관상의 바다에 이집트인들이 빠져죽었고(출 14:27~28) 그곳에서 감각의 이집트인은 설 곳도 의지할 곳도 찾지 못하고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를 놓아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초라한 깨달음과 분별력과 유치한 사랑과 만족이라는 감각작용의 종살이와 한계로부터 벗어난 영혼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달콤한 만나를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영혼이 수고를 통하여 얻어내기를 원하신다. 
 
만나가 입안에서 녹는 맛이 너무 미묘하기 때문에 다른 맛이나 다른 것이 섞인다 할지라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영혼이 서서히 이 상태에 도달할 때에는 영적인 묵상이나 맛, 모든 기쁨에 대한 탐욕에 기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조심스럽고 단호하게 위의 것이나 아래의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무슨 보상을 받으려 하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고요함과 비움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을 빨리 실현할수록, 한가한 고요함에 민첩하게 도달할수록 그만큼 풍요롭게 거룩한 지혜의 정신이 영혼에게 스며들 것이다.  
 
영혼은 누구에 의해서, 어디에서,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종기가 낫고 사로잡혔다는 것을 사랑스럽고 부드럽게 느낀다. 그 이유는 자기의 고유한 움직임이 없이 영혼에게 은총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39.  거룩한 쉼과 고독 속에서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혜아릴 수 없는 유익함이며, 가끔 영혼이나 영혼을 지도하는 이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느낄 수 있는 것은 비움과 놀라움인데, 알아보려 하지 않을지라도 때가되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고독으로 이끌림과 세속의 모드 피조물들에 대한 권태와 함께 사랑의 부드러운 호흡과 정신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신의 것을 맛 보았다면 육체의 것은 유치하게 된다.
                              


40.  이 고요한 은총의 교류와 관상이 영혼 안에 새겨지는 축복을 영혼이 즉시 느끼지 못할지라도, 아주 은밀하고 대단히 미묘한 성령의 도유이기 때문인데 영혼에게 영적인 은총들과 선물들과 풍요로움을 은밀하게 채워주시는 것이다.
채워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덜함이 없이 하나님 처럼 해주신다. 
 
41. 성령의 매우 미묘하고 강렬한 색체 (다양성)와 도유는 그 엷음과 순수함 때문에 영혼 자신은 물론 영혼을 지도하는 이도 이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영혼을 즐겁게 해 주시려는 분(하나님) 만 이해할 뿐이다. 
 
아주 쉽게, 작은 움직임으로도 영혼은 그때를 자기 기억과 지성과 의지에 간직하기를 원하고, 감각과 욕구, 깨달음과 만족을 끌으들이기 원하는데 이것은 영혼에게 장애가 되고 영혼을 망치게 할 뿐이다. 
 
42. 이때에 생기는 커다란 해로움과 고통, 오점은 탁월한 칠보와 색채로 뒤덮인 상태에 이르지 못한 평범한 많은 영혼들을 잃어버리거나 혼란에 빠뜨린다. 
 
43. 하나님께서  영혼을 관상기도의 단계로 거두어들이기 시작하신 영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영적 스승을 찾는다는 것이 무척 힘들다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며 흔한 일이다. 
 
이제 영혼은 어떤 것에 대하여 묵상이나 생각을 할 수도 없으며, 천상의 것이나 지상의 것에서 어떤 만족도 느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끌어다가 고독한 한가함에 젖어들게 하시고, 고독에 빠지게 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영적 스승은 아무것도 모른다. 영적 스승이라고 하면서 단지 그렇고 그런 것만 가르치고 묵상을 할 줄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44. 영혼이 이미 사색의 단계를 지나쳤고, 
부정과 감각의 침묵, 그리고 관상이라고 하는 정신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관상 안에서는 영혼의 고유한 사색과 감각의 작용이 멈추며, 오직 하나님만이 주동자시고, 이때에 고독한 영혼은 침묵을 지키고, 영혼에게 은밀하게 말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마지막 단계에 이른 영혼에게 아직도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라고 한다면 바보스럽다. 오히려 마지막 단계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감관의 작용을 통하여 모든 영성가가 원하는 고요한 잠심의 단계에 도달했다면 바로 그때 감관의 작용들을 포기해야 한다.  
 
잠심에 도달하기 위해 감관의 작용을 통하여 계속해서 어떤 행위를 하려는 것은 퇴보하는 헛된 일일 뿐만 아니라 영혼에게 해로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이미 이르게 된 잠심을 포기하고 분심에 빠지게 될 것이다. 
 
45. 영혼의 영적 고독 안에서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탁월한 도유를 하는 것이다. 
 
영혼에게 무엇인가하도록 하는 아주 초라한 영성수련의 또 다른 향유를 덧씌우거나 첨부한다. 
영혼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새롭게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것은 대단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의 차이, 그리고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과의 차이이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서 초자연적으로 일을 하시는 것이며, 다른 것은 영혼이 홀로 자연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것은 자신의 본성적인 움직임을 활성화 시키는 것을 통하여 고독과 내적인 잠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서 이루시는 탁월하 업적도 잃어버리게 된다. 
 
     

                            

 영적 성숙에 방해되는 영적 지도자  (장님 안내자 1)

46. 영적 지도자들이 주의해야 하고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영혼의 주동자와 안내자, 그리고 선동자는 자기들이 아니라  성령이시기 때문에 영혼을 돌보는 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은 단지 영혼이 각각의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정신에 따라서, 그리고 하나님의 법과 신앙을 통하여 곧바로 완덕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영적 지도자들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이 자기 방식이나 자신의 고유한 조건에 영혼을 맞추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혼을 어디로 이끌고 가시려는 것이며, 그 길이 무엇인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만약 지도자가 그것을 모르다면  영혼들을 내버려두고 더 이상 혼란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고독으로 데려가시려고 하실 때,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영혼을 데려가시려는 정신과 길을 따라서, 영혼이 자신의 육적 영적 감각이 외적이며 내적으로 특별한 것들에 묶이지 않도록 여유를 주면서, 정신의 자유와 고요함과 커다란 고독으로 영혼을 데려가도록 애써야 한다. 
 
이때 영적 지도자들은 영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무슨 벌을 주거나 무엇을 주문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 영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영혼 안에서 무언가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영적 지도자들은 
1) 영혼이 지상이나 천상의 특별한 깨달음, 혹은 다른 어떤 지각, 또는 어떤 민족이나 기쁨에 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고독과 한가함 속에 머물게 하려고 애쓴다.
2)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순수한 부정을 하면서 비운 상태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애를 쓸 것이다.
3) 영적인 가난에 놓여 있도록 애를 쓸 것이다. 
 
이것은 주께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충고하시듯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단지 의지에 따르는 세속적이고 육적인 것들만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들까지 자기 소유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소유에는 영적인 가난까지 포함한다(마 5:3). 
 
이런 방식으로 영혼이 모든 것들을 스스로 비우거나, 포기할 때,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침묵 가운데서 은밀하게 은총을 주시는 것을 멈추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치 태양이 뜨오를 때 태양 빛이 자기 집에 많이 들어오게 하도록 창문을 여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지키시려고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시 121:4) 하나님께서 비어 있는 영혼에 들어 가실 것이고, 영혼을 거룩한 재화로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 
 
47.  마치 태양처럼 하나님께서는 영혼들에게 은총을 주시기 위해 영혼 위에 계신다.  
영적 지도자들은 감각과 정신의 비움과  벗어버림이라는  복음적 완덕에 따라서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영혼을 준비 시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더 이상 무엇을 채워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온갖 좋은 선물과 완전한 은사를 내려주시는 빛의 아버지(약 1:17)의 일이기 때문이며,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시 127:1)고 하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초자연적 예술가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각각의 영혼 안에 원하시는 집을 초자연적으로 지어 주실 것이다. 
 
영적 지도자들이여, 만일 네가 영혼을 준비 시킨다면 영혼이 자신의 본성적 애착들과 움직임들을 모두 없애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만일 영혼들이 자신의 본성적 애착들과 움직임들을 모두 없애지 못한다면 영적 지도자는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알아두어야할 것은 : 
지도자의 의무란 영혼을 이렇게 준비 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이란, 영혼은 물론 지도자도 모르는 방식과 형식으로 영혼의 발걸음을 초자연적인 선물로 이끄시는 것이다 (잠 16:9)  
 
만일 지성이 본성적이든 영적이든 특별한 지식으로부터 비워진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지성이 특별한 지식을 포착하려는 행위들을 많이 없앨수록 그만큼 지성은 초자연적인 촤고의 선물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EK.
 
48. 만일 지성이 분명하게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영혼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지성을 초월하시며,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고 다가갈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지성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지식으로부터 때어 놓아야 하고, 하나님께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해하면서가 아니라, 신앙을 통하여 믿으면서 걸어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는 영혼의 마음에는 들어가실 수가 없다. 
 
완덕에 나아가는데 있어서 뒤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지성이 점점 더 신앙에 매달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성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면서가 아니라 지성이 굴복한 채로 그분께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무런 지식도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분명한 지식들로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고 오히려 그분께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 
 
49. 영혼이 본성적 행위와 움직임에 있어서 의지는 지성이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랑하지 안흔다. 그러나, 
관상기도에서는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 당신을 부어주시기 때문에 확실한 깨달음이나 영혼이 사색적 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행위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영혼에게 빛과 사랑을 함께 주시는데 그것은 사랑 가득하고 초자연적인 깨달음이다. 
 
지성에 지식이 따르는 것처럼 의지에는 사랑이 따른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영혼에게 건네 주실 때 거룩한 빛과 사랑이 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같은 방식으로 지성과 의지라는 두 가지 능력에 지식과 사랑으로써 당신을 알려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더 세ㅔ 당신을 건네시고 상처를 주시는데 어느 하나의 능력에만 더욱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당신을 부어주실 때에는, 지성의 능력이 없이도 당신을 건네 주실 수 있다. 
 
50. 하나님께서 의지 안에 사랑의 순서를 정해주신다. 아가의 신부가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아 2:4). 
 
만일 특별한 깨달음 앞에서 의지가 사랑의 행위를 스스로 포기 한다면 관상의 깨달음을 통하여, 혹은 이런 것 없이도 하ㅏ님께서 의지 안에 은밀하게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취하게 만들면서 의지 안에서 사랑의 행위를 이루어주신다. 
 
51. 하나님께서는,  의지가 비워졌고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대한 특뱔한 애착이나 기쁨에 매이지 않을 때 사랑을 의지 안에 부어 주신다. 그러므로 의지가 비워지고 어떤 애착들에 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 안에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어떤 애착이나 기쁨의 맛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퇴보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께로 오르면서, 그리고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의지가 아주 특별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고, 아주 특별한 행동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의지가 어둡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부어주심 안에 있을 때에는 모든 특별한 것들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에 든다.
이 때에 의지는 저 고요함돠 고독함만큼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분명하게 보며, 다른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에 대한 기쁨이나 즐거움들이 거부되었고, 의지에게 언짢음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의지가 특별한 행위에 대한 기쁨과 만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감각적인 것들을 끌어안으면서 퇴보하지 않는다면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의지는 달콤하고 맛나는 모든 것들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잘 실현하는 것인데, 모든 것으로부터 비워져 있고 벗어버리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 영적 성숙에 방해되는 영적 지도자  (장님 안내자 1) (중 4)



52.  기억도 역시 자신의 형상들과 형태들에서 비워진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형상도 형태도 없으시기 때문에 기억에 형상들과 형태들이 비워졌을 때 하나님께 안전하게 다가갈 수 있다. 상상에 기대는 만큼 그만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상상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상상으로포착되지 않는 분이시다. 
 
53. 영적 지도자들이 아직 관상에 도달하지 못했고, 무엇이 묵상의 사색에서 빠져나가는 징표들인지 모르기 때문에 영혼이 나태하다고 생각한다. 
 
영적 지도자들이, 상상적 사색과 묵상의 길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거나, 양심성찰을 하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영혼에게 주시는 고요하고 고즈넉한 관상의 평화를 방해하고 망처놓을 뿐이다. 
 
잠심의 상태에서 감각은 무엇을 즐겨야할지, 어디에 기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도자들은 마치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것을 충고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영혼들의 기쁨과 열정을 추구하도록 설득시킨다. 그래서 영혼들은 아무것도할 수 없고, 묵상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미 그런 시기가 지났고 가야할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혼들은 이때에 이중으로 불안해하고 갈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자기의 가르침을 믿으라 하지만, 영혼들에게서 정신(영적인 것)을 뽑아버리는 것이며, 고독과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께서 영혼들에게 해주시는 고귀한 도유를 제거시키는 것이다. 
 
결국 영혼들은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런 이득도 없이 고통스러워하게 된다. 
 
54. 영혼들을 여기까지 데려오기 위해 하나님께서 무척 힘이 드셨다.
항상 원하시는 것처럼하나님께서 영혼들의 마음에다 말씀을 하실 수 있도록 영적 지도자들이 영혼의 감관의 능력과 작용을 비우고 고독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주도권으 잡으시고, 영혼 안에서 고요함과 평화의 풍요로움으로 영혼을 다스리시는 분이 되셨다.
그리고 영혼이 밤새도록 일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는 (눅 5:5) 감관의 본성적 행위들을 모두 제거하시면서 감각의 작용 없이 영혼들의 정신을 키워 주신다. 감각은 그 기능에 있어서  정신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55. 하나님께서는 고요함과 감각이 잠이 들었음과 멈춤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시는지를 아가서에 나타나는 매우 탁월하고 효과적인 간청에서 볼 수 있다.
(아 3:5; 2:15;  사 3:14)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걸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아 3: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를잡으라 '우리(영혼)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 2:15)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사 3:14)
고 하시면서 탄식하셨다. 
 
56. 영적 지도자들은 자기 열심 때문에 실수를 하는데 자기가 아는 것 이상은 더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라면 모두 자기 직무에서 잘 해야하는 의무가 주어졌기 때문에, 물불으 가리지 못하고 실수를 하는 지도자는 자기가 저지른 해로움에 따라서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란 특별히 앞으로 나아간 영혼들의 일처럼 몹시 중요한 것이고 아주 탁월한 일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눈을 바짝 뜬 채로 다루어야 하며, 그 일을 잘 알아맞히면 무한한 이익을 얻어낼 것이고 실수를 하면 역시 무한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57. 하나님께서 항상 도와주시는 이런 영혼이 영적 여정을 따라서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기도의 방식이나 혀익을 바꾸어야 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보다 훨씨 더 높은 차원의 원칙과 다른 정신이 필요하다. 
 
영적 여정에서 드러나는 단계들과 거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모두 다 알지 못하며, 또한 영적 여정의 어느 단계에서 영혼이 어디쯤 가고 있고, 어떤 이끌림을 받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도자라먄 적어도 자신은 아무러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영혼을 더 성숙 시키기위해 데려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생각지도 말아야 한다. 
 
58. 지도자여 너는 네가 밑작업을 하는 사람, 즉 영혼이 세상을 우습게 여기도록 하고 자기의 욕구들을 억제하도록 하는 사람 그 이상이 아니다. 조금 더 말한다면 조각가로서 영혼이 거룩한 묵상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일 것이다. 
 
너는 영혼이 언제 미묘한 색칠을 하는 최종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최종 완성 단계는 밑작업이 아니며, 조각하는 일도 아니고,  다듬는 일은 더욱 아니다. 
이것(완성)은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서 하셔야 한 일이지 않는가?  
 
만일 영혼이 항상 한 가지뿐인 네 가르침에 매여 있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하거나, 퇴보해야 할 것이며,  적어도 앞으로는 나아가지 못한다느 덧은 확실하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동상(영혼)에 색칠을 하시도록 허락할 것인가? 
네가 이 모든  작업을 다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며, 영혼이 절대로 너 외에 다른 지도자를 필료로 하지 않을 만큼 네가 그렇게 완벽하다는 것인가? 
 
59.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소질이 없는 영혼이라 할지라도 그가 너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네가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영혼을 다른 길로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영적 여정을 거니는 방식의 반만이라도 다른 이의 방식과 일치하는 영혼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 
 
"야간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함이요 내가 여러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2) 
 
영혼들이 너를 떠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만일 어떤 영혼이 다른 지도자에게 상담하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영혼을 지도하면서 부부 사이에나있는 질투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더욱 나쁘다. 오히려 너의 교만과 우쭐함, 혹은 또 다른 너의 불완전한 동기에서 오는 질투일 뿐이다. 
 
60. 일반저그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적 지도자들에게 화를 내시며 에스겔에게 말했던 것처럼 벌을 약속 하신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겔 34:10)
"~ 내가 내 양을 건져 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겔 34:10) 
 
61. 영적 지도자들은 연혼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하며,  그들이 더 좋은 지도자를 찾기 원할 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곳으로 영혼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62.  영적 지도자들은 초라한 신심을 갖춘 정신으로 세속의 옷을 입은 채 그리스도를 대충 찬미하면서 자신들도 생명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질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눅 11:52). 
 
장님 안내자 1:
영적 지도자들은 영혼들이 하늘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놔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 뿐만 아니라 "~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고 하신 말씀처럼, 영혼들이 들어가도록 부추길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들어가지 못하도록 억지를 부린다. 
 
이런 방식으로 지도자는 성령이라는 영혼의 생명을 망칠 수 있는 장님 안내자이다.(* 주) 


                                                                                                         



■  영적 지도자, 악마, 영혼 자신.  (중 5)




                            63~65  :   악마 (장님 안내자 2)
 
63. 장님 안내자 2:
잠심(거둠)의 기도 단계에서 영혼을 방해 할 수 있는 악마이다. 
악마는 자신이 장님이면서  영혼 역시 장님이 되기를 원한다. 
 
주) 영혼을 영적 여정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장님 안내자들은 세 가지인데 "영적 지도자", "악마", 그리고 "영혼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아주 높은 고독의 단계에서 영혼에게 성령의 미묘한 도유가 이루어지는데, 
'이때에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것뿐만 아니라 날아갈 것(*주)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악마는 대단한 슬픔과 질투를 느낀다. 그리고 이때에 영혼이 다 벗어버린채 혼자 있고, 자신의 얼굴이란 모든 피조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에 악마는 영혼에게서 아무것도 붙들 수 없다. 
악마는 감각적 약간의 깨달음으로 영혼을 황홀함에 빠지게 하려고 애쓴다.
악마는 아주 쉽게 영혼의 관심을 딴데로 돌리게 하고, 성령께서 엄청난 은밀함 속에서 활동하시는 고요함과 거둠으로부터 영혼을 빼낸다. 
 
주) 날아감 : 성령이 찾아오심, 혹은 성령의 교통이라 하면서 나아간이들의 단계에서 완덕의 단계로 나아가려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무아경의 현상이라 한다. 
 
영혼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만족과 특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영혼을 통째로 흡수하시는 일을 못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통째로 흡수하시는 일을 고독 속에서 하시는데, 고독하며 영적인 도유라는 방식으로 당신 안으로 영혼을 빨아들이시기 때문이다. 
 
64. 악마는 조금일지라도, 영혼에게는 큰 해로움을 끼치는데 영혼이 대단한 풍요로움을 잃어버리게 하거나 또는 초라한 미끼를 주면서 물고기를 잡는 것처럼 정신의 단순한 바다에서 영혼을 끌어낸다. 
하나님의 도유로 젖은 영혼이 "잔잔히 흐르는 실로아 물"(사 8:6)에서 처럼 헤엄을 치기 보다는 땅에서 수고하면서 제발로 걸어가도록 영혼을 물가로 꺼내어 기댈 곳과 발 디딜 곳을 준다. 
 
악마가 얼마나 잘 끼어드는지 놀랄 정도이다. 영적으로 높은 단계에 있는 영혼들에게 끼치는 작은 해로움이라고 하지만 다른  많은 영혼들에게 끼치는 커다란 해로움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악랄한 악마는 영혼을 속이고, 감각적인 것들을 가지고 영혼들의 감각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감각에서 정신으로 옮아가는 길목에서 오히려 악마가 대단한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영혼은 감각적인 부분인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려고 문 앞에 머물면서 신랑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다. 
 
악마는 영혼을 공격하기 위하여 높은 부분을 바라본다. 혹시라고 어떤 영혼이 높은 잠심에 들어가면,  악마는 그런 영혼에게 분심에 빠지도록 흔들어 놓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악마는 영혼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하여, 내적인 정신에서 다른 곳에 정신을 팔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급기야는 영혼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적어도 공포와 두려움과 육체적 고통, 혹은 외적인 느낌과 소문들로 영혼이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애쓴다. 
 
고귀한 영혼들의 풍요로움을 방해하고 못쓰게 만드는 것이 악마에게는 대단히 쉬운 일이다. 악마가 높은 단계에 오른 영혼들에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욥 40:23, 24; 41:22) 



65. 하나님께서 우리를 힘겨운 감각적인 것에서 멀어지게하면서 잠심과 고독의 상태로 이끌고 가시려고 매우 탁월한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실 때에는 또 다시 감각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주동자가 되시는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서부터 감관의 작용을 뿌리치고 방해를 받지 않으몀서 아무데에도 우리의 감관의 작용들을 끌어들이지 않도록 주의한다면, 악마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훼방을 놓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천상양식으로 배부르게 해주실 것이다.  
 
감관의 작용을 끌어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랑 가득하고 단순한 경계심과 함께 해야 하는데 그것은 내가 우리가 아무런 의욕도  갖지 않게 될 때를 말한다.
만일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자유로워지려는 것이 아니라면 영혼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느 것이고, 평화와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66~67  :   영혼 자신  (장님 안내자 3)


66. 장님 안내자 3:
영혼 자신이다. 영혼이 자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흔들리고 스스로 상처를 입는다. 
 
영혼은 단지 생각에 의한 사색이나 감각을 통해서만 무엇을 할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혼이 아무런 행위도 할 수 없고 감관의 능력들을 사용할 수 없는 곳인 고독과 비움 안에 영혼을 놓아주기 원하실 때에 영혼은 마치 자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때에 무엇인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분심이 들고, 메마름과 불만족으로 가득 차게 된다.  사실 이 영혼은 하나ㅣㅁ께서 은밀하게 준비시켜주실 때 영적인 침묵과 평화의 한가함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묵묵한 고요함으로 이끌어 가시려고 애를 씔 때, 영호 역시 상상과 지성으로, 그리고 스스로 노력으로 움직이려고 애를 쓰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마치 어머니가 자기 팔에 안고 가기 원하는 어힌아이가 자기 발로가려고 소리를 치며서 뒤뚤거리는 덧과 같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어머니 역시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된다. 
 
67.  이런 고요함에서 영혼이 조심해야 한다. 
 
이 때에 비록 영혼이 걸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낀다할지라도, 자기 발로 걸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걸어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당신 팔로 안아서(등에 압어서) 데려가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발걸음으로 걸어가지만 영혼은 그 걸음을 느끼지 못한다.  
 
비록 영혼이 자신의 감관의 능력으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느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라시는 주동자시기 때문에 영혼이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하신다. 영혼이 눈치 채지 못한다 해도 널랄만한 것이 아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감각이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며, 지혜의 말씀은 침묵 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연혼은 하나님의 손에만 맡겨드리고 자기의 고유한 손이나 다른 두 장님(영적 지도자, 악마) 안내자들의 손에도 자신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  
 
영혼이 어떤 것에도 감관의 능력들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안전하게 갈 것이다. 
 
                                                                                                                

68. 동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당신과 일치를 이루시려고 영혼에게 도유를 해 주시고, 성령의 매우탁월한 향유들과 함께 준비시켜 주실 때 통상적으로 영혼이 겪는 아픔은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도유가 매우 섬세하고 미묘한 것이라서 영혼의 심염에 이쓴 실체로 뚫고 들어가기 때문이며, 영혼을 준비시키고 맛을 느끼게 해쥐 때문이다. 또한 동굴의 거대하게 텅빈 공간과 함께 열망으로 인한 고통과 죽음 역시 거대하기 때문이다. 
 
주의할 것은,  만약 하나님과 영적 혼인의 일치를 위하여 영혼의 동굴에게 준비하셨던 향료들이 그렇게 탁월한 것들이라면, 하나님과의 일치에서 지니게 되는 지성의 지식과 의지의 사랑과 기억의 영광의 소유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확실한 것은 이 동굴에서 갖게 된 갈증과 배고픔에 따라서 이 동굴의 만족과 포만감과 기쁨의 정도가 결정돨 것이며, 준비된 상태의 빈약함에 따라서 영혼이 소유하게 되는 우아함과 감각이 느끼는 환희의 질이 결정되리라는 것이다. 
 

69. 영혼의 감각에 따라서 영적인 능력의 대상을 느끼고 즐기기 위해 영혼의 실체ㅏ 지니고 있는 덕과 힘을 이해해야 한다. 
영혼은 영적 능력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은총을 맛본다.  
 
그래서 기억과 지성과 의지라는 세 가지 능력을 영혼은 "감각의 깊은 동굴"이라고 부른다. 
 
이 능력들을 통하여, 그리고 이 능력들 안에서 영혼은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지혜의 위대함을 심오하게 맛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깊은 동굴이라고 충분히, 그리고 적합하게 부를 만하다. 그 능력들 안에 심오한 비식과 불의 등불들의 찬란함을 수욘항 수 있다는 것을 영혼이 느끼기 때문이며, 지식과 맛과 기쁨, 즐거움,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많은 다양한 것들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영혼의 감각 안에서 받아들이고 동의하는 것이다. 
 
감각이란 모든 것들에 감관의 능력들의 동굴들을 운용하면서 모든 것을 느끼고, 소유하고, 즐기기 위하여 영혼이 지니고 있는 능력과 덕이다. 
 
이렇게 육체적 감각들은 자기의 대상들에 대한 형상을 가지고 환상에 대한 보편적인 감각에게 다가가며, 보편적 감각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그릇이고 저장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그릇과 저장소가 된 영혼의 보편적 가막은 높고 숭고한 것을 소유할수록 빚을 많이 받고, 부유하게 된다.. 
 
                                                                                                                                    2014.1. 5.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