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fol 3-18to28 (/85) 
 
■ 감각의 깊은 동굴 들은   (상)
 
18. 이 동굴들은 영혼의 감관의 능력들이다:  기억, 지성, 의지 이것들은 깊은 만큼 대단한 선익을 가져다주는 능력이 있는데, 무한한 것이 아니라면 채워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비워져 있을 때는 영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에는 영혼들이 기쁘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지 보게 될 것인데, 반대의 것은 다른 곳에 빛을 비추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감관의 능력들의 동굴들이 피조물에 대한 모든 애착으로부터 비워져 있지 않고, 정화되지 않고, 깨끗하게 되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깊은 능력의 엄청난 공허함을 느끼지 못한다. 
 
감관의 능력들이 무한한 선익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애착들도 영혼이 모든 점에 있어서 비워질 때까지 어떠한 선악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놀랄만하다. 
 
감관의 능력들이 비워져 있고 깨끗하다면 영적 감각의 갈증과 배고픔, 그리고 초조함은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대단한 느낌은 통상적으로 일치의 단계에 이르기 전이며, 이미 충만함을 느끼는 영혼의 정화와 조명의 단계의 끝에서 일어난다. 
 
비움은 준비 되었으나 하나님과 일치에서처럼 아직도 거룩한 것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움과 갈증의 고통은 죽음보다 더하다. 
 
이 고통은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참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한 것인데 거룩한 빛을 받지 않거나 죽지 않고서는 오랬동안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 동굴에 대해서 말한다면 
첫째 동굴은 "지성"인데 지성의 비움은 하나님께 대한 갈증이며, 다윗이 목마른 사슴에 비유한 것과 같이, 영혼이 준비 되어 있을 때 그 갈증은 더욱 거세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이 갈증은 하나님의 지혜의 물에 대한 것인데 그 지혜의 물은 바로 지성의 목표이다.. 
 
20. 둘째 동굴은 "의지"인데 의지의 비움은 영혼을 죽을 지경으로 몰고가는 하나님께 대한 배고픔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시 84:2)
이 배고픔은 영혼이 갈구하는 사랑의 완덕에서 오는 것이다. 
 
21. 셋째 동굴은 "기억"인데 기억의 비움은, 하나님을 차지함으로 말미암은 영혼의 파괴됨과 녹아내림이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애 3:19~20)
나는 기억과 일치 할 것이며 하나님을 대단히 생각할  것이듯이 내 영혼은 내 안에서 녹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이 이런 것들에 휩싸인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께 대한 희망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22. 동굴을 하나님니라고 부르는데 그 목적은 심오하고 무한하기 때문이다. 
 
영혼이 확실하게 준비된 상태에 머물러 있기 위해 필요한 무한한 상실의 생생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의지의 사랑의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소유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탐욕의 순간을 기대하기 때문에 사랑이 크면 클수록 더욱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다. 
 
23. 영혼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원할 때에는 영혼은 이미 사랑하는 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어떻게 고통스러운가? 
 
"천사들도 하나님의 아들을 보기를 원했던 그 갈망"(벧전 1:12)에는 아무런 고통도 초조함도 없다. 이미 사랑하는 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갈망이 크면 클수록 고통이나 아픔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기쁨과 충만함을 더욱 더 많이 느끼게 된다.  
 

                                                                                                                                          

24. 주목 항 것 : 영혼이 자기 안에서
은총을 통하여 하나님을 소유 하는 것과, 일치를 통하여 하나님을 소유 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1) (은총을 통하여)는 단지 서로 사랑하는 것이지만, 
2) (일치를 통하여)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 하나님 소유 : 하나님의 현존의 체험을 설명하는 것이며, 영혼 안에서 세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한다.
1) 본질적 (esencial)인 방법인데 모든 영혼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며, 이 현존을 통하여 영혼의 삶과 존재의 가능성이 결정된다.
2) 은총을 통한 현존 체험인데 은총으로 말미암아 만족 스럽고 기뻐하는 영혼 안에 하나님 머무시는 것을 말한다.
3) 영적인 애정을 통한 현존 체험인데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영혼에게 영적인 현존을 드러내시면서 영혼을 새롭게 만들어주시고, 기쁘게 해주신다고 한다.) 
 
이 차이는 영적 약혼(은총을 통하여)과 영적 혼인(일치를 통하여) 사이의 차이와 같다. 
 
약혼에서는 단지 약혼자와 같아진 동의 (예)만 있으며, 약혼자들이 오직 하나의
의지와 약혼한 남자가 약혼녀에게 우아하게 건네주는 장식품과 폐물들만 있을 뿐이다. 
아직 인격체의 일치가 없다. 
 
혼인에서는 일치는 물론이요, 인격들의 교류가 있다. 
 
영혼 자신이 순수하게 되었을 때, 아주 순수하게 정화되었을 때, 모든 것에 있어 하나님께 완전히 "예"라고 말씀 드렸을 때, 하나님과 영혼의 의지가 자유롭고 고유한 공감대 속에서 이미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영혼은 의지의 은총을 통하여, 의지와 은총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소유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바로 영혼의 "예"라는 응답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에 의한 진실하고 완전한 "예"를 영혼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 예 : 긍정적 동의에 의한 응답을 말한다) 
 
25. 이것이 말씀(그리스도)과 영혼이 이룬 영적 약혼의 높은 단계인데 신랑은 영혼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푸시고 영혼을 여러 번 사랑스럽게 찾아주신다.
모든 것이 혼인의 준비이다. 
 
영적 약혼은 피조물에 대한 애착이 철저하게 정화된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아직도 영혼은 라주 높은 차원의 일치를 위하여 영혼이 교양 있게 준비되도록 더욱 정화되고, 아름다워지고, 맑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하기에 필요한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많이, 어떤 이에게는 적게 필요한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맞춰서 해주시기 때문이다. 
 
예 : 에 2:2~4, 12. "처녀마다 ~ 정한 규례대로 ~ 몸을 정결케 하는 기간을 마치며. 
 
26. 약혼 시기에는 성령의 도유와 함께 이루어지는 혼인을 기다리는 것인데, 하나님과 일치를 위하여 아주 탁월한  향유로 준비될 때 영혼의 동굴들의 초조함은 흔히 극단적이며 미묘하게 된다. 
 
갈망은 더욱 더 미묘하고 깊어지는데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하나님과 일치를 위하 준비이기 때문이다. 
 
27. 퇴보도 할 수 있다.
단지 잘 나가는 영혼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랑을 찾아 혜매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서도 대단히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2014. 12. 9.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