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fol 2-23to31 (/36)   그리고 모든 빚을 갚아주시고
 
23. 이 말은, 여기에서 영원한 생명의 맛을 즐기기 때문이며, 이 상태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고통의 보상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올바른 보상을 받았고 만족스럽다고 단순하게 느끼는 것많이 아니라 엄청나게 과분한 선물을 받은 것으로 느낀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신랑이 백 배로 갚아 주겠다는 약속의 진실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마 19:29; 막 10:30) 
 
영혼이 겪었을 만한 아무런 역경도, 유혹도, 아픔도, 고통도 없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백 배의 위로나 기쁨도 없다. 그래서 "그리고 모든 빛을 갚아주시고"고 한다. 
 
* 주) 마 19:29 - 여러 배를 받고
        막 10:30 - 백 배를 받되 
 
24.  영혼이 갚아졌다고 느끼는 빚들이란, 통상적으로 많은 고통과 역경들을 먼저 거치지 않는다면 어떤 영혼도 이 높은 단계의 약혼(영적 혼인의 단계를 말함)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 (행 14:22) 
 
이 단계는 역경이 지나갔으며, 영혼이 정화되었으므로 이제부터는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기 때문이다. 
 
25.  이 단계에 온 이들이 겪는 아픔들은 
고통과 비탄, 두려움, 세상으로부터 오는 유혹  3가지이다. 이것을 나누면 
 
감각 부분 : 유혹, 메마름, 걱정이 있고
정신 부분 : 역경, 암흑, 압박, 무의탁, 유혹과 고통이 있다.
이것은 영적이고 감각적인 부분들에 따라서 정화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장 높은 단계(영적 혼인)의 일치는 역경과 유혹들로 굳건하게 되지 않았거나 고통과 암흑과 압박으로 정화되지 않은 영혼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한편으로 감각이 정화되고 강해지면 다른 한 편으로 정신이 가난해지고 정화되고 준비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정화되어야 하는 정도에 따라서 일으켜주신다. 
 
26. 하나님께서 영혼과 감각에게 허락하시는 역경을 통하여 영혼은 덕들과 용기, 그리고 고통과 함께 완덕을 얻게 되는데 덕은 약한 데에서 온전하게 되며(고후 12:9), 욕정을 다스리는 데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불(애 1:13)이나 망치 (렘 31:18)가 아니면 예술가의 생각대로 철을 다스릴 수 없는 것과 같다. 
 
27. 하나님과 일치의 완덕의 상태에 도달하는 이들이 적은 것은 ;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이 완전하게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강도가 높은 수고를 견뎌내는 그릇(영혼)을 별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다듬기 위해 은혜를 주셨지만 그들 가운데 아주 작은 것에 강하고 충실한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 25:21~23, 달란트 비유)
하나님은 이런 시험에서 약한 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고행의 고통을 통하여 정화하시지 않으신다.
사실 영혼들이 보여주어야할 대단한 용기와 굳건한 의지가 더 필요했었다.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이들을 첫번째 고통과 고행들을 통하여 데려가시기 원하실 때 오히려 그들은 그런 고통을 원하지 않고, 생명으로 이끄는 좁을 길(마 7:14)을 벗어나 멸망으로 이끄는(마 7:13) 위로의 좁은 길을 찾으면서 도망친다. 
 
자기들이 하나님께 청한 것을 주시기 시작할 때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하나님께 아무런 여유를 드리지 (준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완덕의 단계에 이르기를 원하면서도 그들은 고통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영혼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그릇으로 남게 된다. 
 
그들은 아주 작은 고통이나 통상적으로 자기들이 견뎌내는 하찮은 것에 매달리려고 하면서 아직도 그 길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네가 세상의 기쁨과 평화를 간직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모든 일에서 관능들의 전쟁을 위해 무장을 하거나 어떤 처지에서도 관능의 움직임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네가 어떻게 더 깊은 곳이라고 하는 정신의 고통과 역경의 격렬한 물결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지 모르겠다. 
 
28.  정신에 관한 일들 (영성생활)은 세상과 자신에 대하여 죽으면서 하나님 안에서 정신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시시하고 외적인 것에 대해서도 인내와 성실함으로 이겨낸다면 하나님께서 내적이며 영적인 고통을 통하여 더 깊은 곳을 정화시키고 깨끗하게 하시려고, 더 깊고 커다란 행복을 주시려고 너에게 눈길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매우 잘 섬기며, 잘 섬기기 위해 인내와 꾸준함을 갖춘 이들의 삶과 행동은 하나님의 마음에 잘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선물과 상급을 주시기 위해 더욱 참혹한 유혹을 이겨내도록 하는 탁월한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탄들 앞에서 했던 욥의 행동들이 마음에 드셨기 때문에 나중에 그를 더욱 커다란 인물로 만들어주시기 위해 즉시 욥에게 엄청난 고통의 은혜를 베푸셨다. (욥 1:2; 43:12)  
 
29.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끌어주기 원하시는 영혼들에게 그들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우월성에 따라서 이와 마찬가지로 해주신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을 만큼 높이 올려주시기  위하여 유혹을 겪도록 허락하신다. 
할 수 있을 만큼 높이 올려주신다는 것은 바로 거룩한 지혜와 일치에 이르는 것이다.
(시 11:7, 정직한 자가 하나님을 볼것임) 
 
영혼에게 이 지혜는 아직도 다윗이 말한 은이지만 더욱 일치를 이루게 될 때에는 영혼에게 금이 될 것이다. 
 
30. 영혼에게는 외적이든 내적이든, 영적이든 육적이든,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고통과 격정들을 마치 당신의 선과 치유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으로 여기면서, 일치를 위한 건강함이므로 고통과 격정들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능력을 가지신 분의 영(정신)이 당신에게 내려오신다 할지라도 그곳을 피하지 말고, 대단한 꾸준함과 인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는 나쁜 습관들이라는 우리의 불완전함과 죄들의 뿌리를 잘라버릴 것이다.  
고통과 압박과 유혹들과의 투쟁은 영혼의 나쁜 습관들과 결함들을 없애주며, 영혼을 정화하고 강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하나님께서 내적.외적인 고통을 겪게하실 때에는 아주 높은 단계를 위해 견뎌내면서, 열정적으로 완덕에 이르기 위해 주어지는 하찮은 것으로 이해하면서 고통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31. 이 상태에서 영혼은 모든 것이 잘 되었고 "암흑인 듯 광명인 듯" (시 139:12)  역경에 참여했던 것처럼 지금은 위로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고후 1:7) 임을 잘 알고 있다. 
 
이 구절은 마치 다윗이 "우리에게 여러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시 71:20~21) 
 
이 일을 십자가의 요한은 영혼이 궁전의 문 앞에서 있던 모르드개에 비유했다.
모르드개는 자기 생명의 위협 때문에 참회의 옷을 입고 성읍 광장에서 울었고, 에스드가 보낸 옷도 입지 않았다. (에 4:1~3), 어떤 상급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에 6:3),  마침내 영혼의 모든 고생과 섬김은 보상을 받는다.(에 6:10~11) 
 
이는 자기 신랑의 나라에서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도록 해준 것이다. (에 8:1~2, 15) 
 
단지 보상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그의 영성생활을 몹시도 망쳐놓았던 불완전한 것들과 욕구들이라는 자기의 원수들, 즉 유다인들이 죽은 것이다. 그래서 영혼은 "죽이면서 죽음을 삶으로 바꾸셨네." 
 
                                                                                                                      2014. 11. 24.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