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fol1-29to35 (/36) 
 
■ 달콤한 만남의 장막을 찢어주소서
 
29.  장막이란 원하시면 끝내달라는 엄청난 담판을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가지 장막을 말 할 수 있는데
1) 현세적인 것은 모든 피조물을 의미하고,
2) 본성적인 것은 순수하게 본성적인 움직임과 경향들로 이해하고,
3) 감각적인 것으로서 단지 영혼과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삶을 말하는 육체의 일치로 이해한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지상의 우리 장막이 무너지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는 줄 안다 (고후 5:1) 고 한다. 
 
하나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처음의 두 가지 장막들은 반드시 찢어야 한다. 이 일치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거부되고, 모든 욕구들과 본성적 애착들이 억제되고, 영혼의 본성적인 작용들이 이미 거룩하게 되었다. 
 
이 모든 장막들은 영혼이 무심했을 때 불꽃과 담담한 만남을 통하여 영혼 안에서 찢어졌고, 그래서 일치가 이루어졌다.  
 
영적인 정화에서 영혼은 위 두 가지 장막들을 찢어버리는 일을 마치고 여기서부터 하나님과 일치를 이룬다. 
 
이제 감각적인 장막 3번째 장막만 찢어버리면 된다. 
 
30.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영혼들의 본성적인 죽음이 비록 다른 죽음들과 본성적으로 비슷하다 할지라도 그 방식과 원인에 있어서 대단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죽음(영혼과 육체의 분리)은 일반인 (병사, 자연사) 보다 더 탁월하고 훨씬 힘과 가치가 있는 사랑의 만남과 은총의 충격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죽음은 장막을 찢을 수 있었으며 영혼의 보석을 가져갈 수 있었다. 
 
십자가의 요한은 이런 죽음을 백조의 죽음 (죽을 때 아주 부더럽게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같이 사랑의 달콤한 만남과 대단한 충격들로 죽어간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공경하던 성실한 사람들의 죽음은 고귀하다(시 116:15). 
 
여기에서 영혼의 모든 부유함이 합쳐지면서 하나가 되고, 영혼의 사랑의 강물이 저 멀리에 있는 바다로 들어간다. 
 
그곳은 바다처럼 넓어 영혼들이 모두 합쳐지면서 영혼의 보물들이 모두 집결되며, 찬미한다 "의로운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사 24:16) 
 
31. 영혼은 하나님 나라를 완벽하고 확고하게 소유하기 위해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는 하나님께서 영혼으로 하여금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도록 허락하시며 영혼에게 주셨던 덕들과 선물들에 대한 비밀을 틀어 놓으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랑과 찬미로 바뀌며, 허영이나 추측에 끌리지 않는데, 온 반죽을 부풀릴 불완전함의 누룩이 이미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전 5:6; 갈 5:9)
보다시피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모드 것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빌 1:23) 그물에 걸려 있고 자유를 방해하고 묶어 놓은 것같이 느끼게 하는 본성적 삶의 엷은 장막을 찢는 ㅇㄹ 밖에 없다. 그랴서 "달콤한 만남의 장막을 찢어 주소서"라고 말한다. 
 
32.  장막으로 부르는 3가지 이유
1) 정신과 육체 사이에 있는 관계 때문이고,
2) 하나님과 영혼을 갈라놓기 때문이고,
3) 밝은 것(거룩함)이 투시 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촘촘하거나 툭툭하지 않은 (아주 얇은) 장막과 같기 때문이다. 
 
영혼은 다른 삶의 힘을 느끼기 때문에 이 세상의 삶의 연약함을 보게 되고, 영혼에게는 무척 얇은 것으로, 마치 거미줄로 엮은 장막으로 여겨진다.
이런 것에 대하여 다윗은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시 90:4)
이사야는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비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사 40:17) 라고 말한다.
영혼에게는 이런 정도이며, 모든 사물들이 영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 스스로도 역시 자기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혼에게는 오직 자기 하나님만이 전부이다. 


33.  "장막을 찢어주소서"  영혼은 왜 장막을 "끊어주소서" 혹은 "없애주소서" 하지 않고 "장막을 찢어주소서" 했는가? 
 
1) 이 만남에 대하여 아주 정확하게 말해야 하는데 참으로 적합한 표현은 끊거나 없애는 것보다 찢는다는 것이다. 
 
2) 사랑은 충격적이며 힘찬 어루만짐과 같고 사랑의 힘과 같기 때문에 그 효과가 끊거나 없애는 것보다 찢는 것에서 더욱 잘 더러나기 때문이다. 
 
3) 사랑은 그 행위가 짧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행위가 짧을 때 더욱 힘차고 더 영적이며, 함께 뭉쳐진 덕이 흩어진 덕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며, 사랑은 진료 안으로 형상이 들어가는 것처럼 잠깐 사이에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영혼이 스스로 이루는 아무런 행위도 없고 단지 신랑을 위한 준비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인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 안에서 잠깐 사이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영혼 스스로 이루는 행위들은 절대로 관상과 사랑의 완전한 행위가 될 수 없고 단지 가끔 그렇게 될 수 있는데, 그때는 하나님께서 정신 안에 사랑과 관상의 행위들을 만들어주실 때이다. 
 
잘 준비된 영혼은 관상과 사랑의 행위에 많은 시간을 머물러 있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영혼은 정신을 차리는 데 시간을 모두 소비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물에 젖은 나무에  불이들어가기 위한 불처럼 그대로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잘 준비된 영혼은 마른 장작에 불 붙드시 순식간에 사랑의 행위가 뚫고 들어간다.
이런 사랑에 빠진 영혼은 찢어버리는 짧은 순간을 원한다. 
 
4) 삶의 장막이 더욱 빨리 끝나기 때문이다. 
 
끊어버리는 것과 없애버리는 것은 약간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며, 때가 돠거나 혹은 완결돠기까지 또 다른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찢는 것은 기다리거나할 다른 아무것도 필요없다. 
 
34.  사랑의 힘과 자기 안에서 분명한 갖춤(정화)은 영혼에게 초자연적인 충격이나 만남(죽음)을 통하여 삶이 즉시 찢어지기를 청하거나 원하라고 보챈다. 
 
이 단계에 있는 영혼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당신과 함께 재빨리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이 때 하나님은 저 사랑을 통해 아주 짧은 시간에 완전하게 해 주신다. 
 
이렇게 사랑의 행위들이 이 세상에서 짧은 시간에 완결되는 것인데,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서 하나님을 뵙지 못하는 가운데 머물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35.  성령의 내적인 덮음을 만남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삶이 끝나기를 원하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완덕의 순간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육체가 들어 올려지고 영혼을 태워버리기 위해 만남이라는 방식으로 영광스럽고 거룩한 덮음이 영혼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 "육체가 들어 올려지고 영혼을 태워버린다"는 것은 육체로부터 영혼을 끌어내고, 영혼이 정화의 끝에 이르렀다는 것이며, 영혼의 실체를 하나님처럼 만들어 주면서,  그리고 거룩하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항상 영혼을 꿰뚫고 들어가시는 만남이 진정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영혼을 받아 주셔서 하나님의 존재로 만들어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받아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혼을 만나 주셨고, 성령 안에서 영혼을 격렬하게 감싸주셨기 때문인데 영혼들의 힘을 북돋아주실 때에 그 은혜를 베푸심 (교통)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영혼의 만남이다. 
 
이 만남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탁월한 것이기 때문이고, 영혼이 격렬하게 기뻐하기 때문에 "달콤한"이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재빨리 해방시키고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장막을 찢어주소서" 등등 대담해진다. 
 
36.  요약  
                                                                                                                   201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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