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영성의 정의

 

 

 

1. 일반적 정의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시대나 교회를 부정적인 측면에서 언급할 때 흔히 '영성이 결핍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포괄적이고,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은 영성을 특정한 종교나 전통을 해석해 주는 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전통이나 교리적 해석을 덧붙이지 않은 채, 영성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추구한다면 보다 보편적인 이해와 공감대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단순하게 '인간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으로부터 영성의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다니엘 헬미니악(Daniel A. Helmi -niak)에 의하면, 영성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에 의해서 부여된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것이므로 하나님보다는 인간 자신을 먼저 들여다봄으로써 영성의 객관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성 아래에서 인간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칼뱅이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느 것이 먼저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방법론적으로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영성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한다.

 

 

2. 영성에 대한 성경적 정의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영성에 대한 의미도 다양해진다. 먼저 구약에서 영성을 생각한다면 창세기 2:7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성경은 흙으로 빛은 어떤 모양에 생기를 불어넣었더니 생령, 혹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여기서의 '영혼'이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존재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부여된 전체를 의미한다. '영혼'이라는 용어는 실제로 '생명'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88:3; 33:28). 실제로 '네페쉬' 라는 말은 '영혼'이라는 의미보다는 '생명'이라는 말로 더 자주 번역되고 있으며, 구약성서 속에서 그 말은 흔히 '생명' 또는 '생명 현상'이라는 말과 결합되어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흙, 곧 땅의 먼지로부터 만들고 그 속에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사람은 '살아 있는 영혼' 이 되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이 말하고 있는 '영혼'이란 형체 없는 어떤 것이라기보다 이미 보이는 형체 안에 담겨진 어떤 존재(생명)를 의미한다. 따라서 '네페쉬'라는 단어는 '활력에 차 있는 생명 현상'을 나타내며, 인간이나 동물처럼 형체 안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명의 원리'를 말한다.

창세기 2 : 7에서 흙으로 빚어진 어떤 형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은 보이는 형체에 생명이라는 숨결을 공급했다는 의미이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에 의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살아 있는 실체로 나타났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영성적인 존재라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 존재가 지속적으로 지탱되고 유지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숨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속적인 숨결을 통해서 스스로의 현존감을 인식한다면, 그는 하나님과의 교류를 경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포괄적인 의미의 영성은 인간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근간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자아인식을 하고 있는 생명이 곧 영성의 뿌리임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육체적인 삶 자체가 영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인간관을 말할 때 사람들은 자주 인간 존재의 구성요소들을 기능적으로 설명하면서 특정한 영역만을 영성이라는 범주에 넣으려 한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인간을 향한 다양한 표현은 인간의 구성요소들을 설명하려는 것보다 통합적인 인간을 전제로 하면서 전인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각각의 특징들을 '영적', '육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울신학에서 인간을 정의할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큰 틀의 용어로서 '영적' 이라는 말과 '육적' 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바울은 육체를 지닌 한 개인을 때로는 육적인 것, 즉 세상적인 것을 향하고 또 때로는 영적인 것, 즉 하나님의 것을 향하는 존재라고 보고 있다. 바울이 육적이라는 말을 영적이라는 말과 대조해서 사용할 때 전자는 죄악의 경향을 말하고, 후자는 순결하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모든 가능성을 지닌 존재를 '영성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42~50에서 육적(σάρκινον), 혼적(ψυχικόν), 영적(πνευματικόν), 육체적(σωματικόν)이라는 네 용어들을 동시에 모두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지니는 각각의 특성을 설명하는 기능적인 용어이지, 인간을 구성하는 어떤 요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육체를 지닌 존재로서 그것이 육적으로 또는 혼적이나 영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이 육적이라 함은 죄악적인 속성을 지향하는 것을 말하며, 인간이 영적이라 함은 한 인간이 하나님의 것을 지향하는 속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유형의 모습을 지녔든지 간에 인간은 육체적(σωματικόν)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 육체 안에서 모든 것이 통합될 때 그런 존재를 비로소 인간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보여 주고 있는 실체의 의미와 일치한다. 그는 이데아만이 실체라는 플라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온갖 실체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라고 했다. 형상은 여러 실체 속에 반복적으로 깃들 수 있으며, 그것이 수적으로 셀 수 있는 뚜렷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질료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것도 실체이면서 형상과 질료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실체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바울은 ''(πνεμα)이라는 말과 '영혼'(ψυχή)이라는 말을 중립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그 둘을 ''(σϖμα)이라고 하는 단어 속에 통합시키고 있다. 바울은 인격성의 진정한 실현의 모습을 '영혼의 몸'이라고 하기보다는 '영의 몸'으로 표현한다. 고린도전서 15:44에서 바울은 이를 육의 몸(영혼의 몸, σϖμα ψυχικόν )에서부터 영의 몸(σϖμα πνευματικόν)으로의 전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육체라는 동물성이 비육체적인 신성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로 형성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변형되고 있는 육체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영과 육의 완전한 통합의 가능성을 씨로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영혼의 몸이라는 가능태로부터 영의 몸이라는 현실태로의 이행 과정을 함축적으로 '영성'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약성서와 바울신학이 동시에 보여 주고 있는 인간이란 완성되어져 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의 내적인 능력으로 자아의 완숙을 이루어 갈 수는 없으며, 성령에 의해서 고양되고 정화되고 조명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그가 비록 동물적인 속성 외에 그 속성을 초월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더라도, 그 초월성을 제한적인 육체 안에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성령의 개입이 필연적이다(8:16).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수여되는 성령의 이끄심에 응답해 가며 자기성숙을 이루어 가는 육체를 '영적인 사람'이라 하며, 그러한 과정을 포괄적으로 '기독교 영성' 이라 말할 수 있다.

 

 

3. 의식적인 경험으로서의 영성

 

영성에 대한 그동안의 연역법적인 접근으로부터 귀납법적인 접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은 사람이 버나드 로너건(Bernard Lonergan)이다. 그는 영성과 의식을 상호 교환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두 종류의 인간 의식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는 대상을 인식하는 의식이 있고, 다른 하나는 대상을 인식하는 그 주체를 인식하는 의식이 있다고 제시했다. 예를 들면 소리를 듣는 것을 인식하지만, 동시에 소리를 듣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도 한다. 색을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색을 보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침내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이며, 그 색깔이 무슨 색깔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전자를 객관적인 대상에 대한 의식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주관적인 대상에 대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대상에 대한 주체적인 관찰이고, 후자는 결코 관찰의 대상일 수 없으며 경험으로 알려질 뿐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전자를 반추적 의식(reflecting consciousness)이라 하며, 후자를 비반추적 의식(nonreflecting consciousness)이라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반추적 의식과 비반추적 의식은 동시적이며 상호 수반적으로 일어나는 의식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을 읽는다고 할 때 우리는 대상으로서 책을 인식하고 동시에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인식한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인식하는 그 대상과 일치함으로써 그 책에 담긴 지식을 얻는다. 이러한 활동을 계속하면서 스스로를 끝없이 인식의 주체로 만들어 가는 실존을 ''이라 한다. 그렇다면 그 영은 어떤 대상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대상화하면서 인식하도록 하는 그 어떤 경험적인 실존이라 할 수 있다. , 영이란 우리로 하여금 비반추적 경험을 하도록 허락하는 그 무엇이다. 그 경험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영적 본질을 경험하고, 영은 비반추적 경험이 표현하는 그것이다. 영은 어떤 내용을 말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수용성을 지닌 실존이다.

이러한 인간의식의 속성을 정리해 볼 때, 의식 혹은 영은 의식적인 의도성, 역동성, 개방성, 자기 초월성, 진정성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영은 그 영의 궁극적인 목적, 즉 모든 실재를 완전히 장악하고 도달하였다고 할 때까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재평가하고 재조정해 가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의식 혹은 영은 인식, 이해, 판단, 결단을 향하여 움직이는 끝없는 인간의 실존이며 의식적인 의도성이다. 이 러한 인간의 영은 구조적일 뿐만 아니라 규범적이다. 의식이 경험하고 이해하며 판단하고 결단한다는 것은 인간됨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구조화된 인간의 영이 인간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 그 움직임은 일관성과 완전성을 기대한다. , 알려져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것들을 향해서 움직인다.

그러므로 '인간이 된다는 것'에는 '그 인간이 어떻게 되어야한다'는 규범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영의 일이다. 그래서 로너건은 인간 의식과 영을 경험적인 차원에서 서로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연구는 영성을 인간학적인 입장에서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며,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간의 하나님 형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4. 통합적인 영성의 이해

 

지금까지 보여 준 영성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 인간되게 하는 그 무엇이며, 그러한 과정들을 포괄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기독교적인 측면에서 인간이 인간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단순히 '하나님과 나'라는 존재가 '나와 당신'의 관계로 발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어떤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이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어 가는 동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며, 그리스도와 사랑의 일치를 이루어 가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에 의해 인간은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님과한 지체를 이루게 되며, 그것이 인간을 보다 인간 되게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전통에서 영성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 육체를 지닌 인간은 점점 영성적인 존재가된다.

여기서 영성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특성을 말하기 보다는 조화롭고 온전한 전인이 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게리 하보(Gary L. Harbaugh)는 인간이 전인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인 존재로서, 사고하는 존재로서, 감성적인 존재로서,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를 실현해 가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전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육체적, 정신적, 감성적, 사회적인 영역이 성령의 개입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조화롭게 통합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총체적으로 영적인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바는 영성을 인간 존재의 어느 한 부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삶을 이루어 가는 모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첫째, 과거적인 물음으로써 "나의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가?"라고 물어야 한다. 둘째, 현재적인 물음으로써 "나의 처한 상황이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가"라고 물어야 한다. 셋째, 미래적인 물음으로써 "나의 선택이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한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것은 윤리적 명령이라기보다는 성령 안에서 성숙을 향한 자발적인 물음들이다. 그러므로 영성과 성령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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