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개혁교회의 영성

 

 

1. 현대 개혁교회에 대한 도전적 요소

 

다원주의라는 문화적 상황에서 '영성' 이라는 말은 매우 급속하게 퍼져 나가고 있으며, 이제는 매우 자연스럽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영성'이란 말은 오늘의 교회 현실을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상징적인 용어로 이해할 수 있다. 도날드 블러쉬(Donald G.Bloesch)는 그의 저서, 경건의 위기(TAe Crisis of Piety)라는 책에서 현대 개혁교회가 점점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주된 원인을 경건생활의 결여라고 진단한다. 이런 경향은 개혁교회 노선에 속한 교회일수록 더욱 심화되어 있다고 블러쉬는 지적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이 개혁교회의 특성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인지, 아니면 그 특성에 대한 편협한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살펴보면 진정한 개혁교회의 영성을 이해할 수 있다.

 

 

2. 개혁교회의 영성

 

개혁주의의 전통에 서 있는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영성'이라는 용어를 반가워하지 않는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는 영성이라는 말을 물질적인 생활이나 현실적인 삶과 분리되는 또 다른 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영성이란 깊은 사고보다 느낌을 더 선호하는 감정주의적 성향이 짙으며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주관주의와 자기도취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조화의 문제이다. 영성이 감성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나 결코 지성적인 작용을 배제하지 않는다.

조화로운 영성이란 내면과 관련된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으로 통합되는 삶의 방식이며,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지성적이고 객관적인 통찰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개혁교회의 전통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성'이라는 용어는 여전히 자연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개혁주의 자체가 뚜렷하게 개인적이기보다는 공동체적이고, 감성적인 체험보다는 객관적인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이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투쟁하는 수도자의 영적인 움직임에 의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공동체를 책임지고 있는 목사들의 관점'으로부터 출발되었기 때문이다(Fritz Busser).

영성을 논할 때 그 중심점은 흔히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후기 중세 시대, 특히 스콜라 시대의 영성의 관심이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면, 개혁가들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느냐?"에 그 관심을 두고 있었다. 개혁가들의 영성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그 주도권이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있었다.

중세적인 분위기의 영성이 하나님 그 자신을 추구하고 열망했던 것에 비하여 개혁가들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소명의식을 강조했다. 존 리스(John H. Leith)에 의하면, 개인적인 영성의 변화나 성장보다는 하나님의 계약백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의 소명의식 실현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개혁교회 영성은 신앙적인 확신에 의하여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감당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러한 개혁교회 영성은 내면적인 전인성을 추구하는 영성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영성- 으로서의 이해를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만으로 개혁교회 영성을 단정해버린다면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비교적 경험과 지식의 양쪽 측면을 견지하고 있는 종교개혁가 칼뱅의 신학을 통하여 다른 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칼뱅은 기독교강요 곳곳에서 영성이라는 말 대신에 '경건'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칼뱅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화의 생활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우리의 모든 생활에는 어떤 경건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라고 할 정도로 경건은 그 신학의 근간이 되었다. "경건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이요 중간이요 끝이다. 그것이 완성되는 곳에 부족한 것이란 없다."라고 말했듯이 경건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칼뱅은 기독교강요의 어디에서도 '경건'이라는 항목을 따로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의 저서 전체를 통하여 경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강요를 출판하면서 프랑스 국왕 프란시스 1세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는 글에서도 그것을 쓰는 목적은 '종교에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된 경건의 생활을 이루게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기독교강요 초판의 제목을 "경건의 개요와 구원의 교리에서 알 필요가 있는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기독교강요(1936년 라틴어판)라고 붙였다. , 칼뱅 자신은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신학의 총서'(summa theologiae)라기보다는 '경건의 총서'(summa pietatis)라고 했다. 그의 신학적인 사고의 바탕에는 경건에 대한 열망과 가르침이 깊고 넓게 깔려 있다.

칼뱅은 자신의 대표적인 작품인 기독교강요의 저술 목적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알고, 그와의 일치된 삶을 향해 순례여행을 하는 동안 영적투쟁을 겪어야 할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일치의 삶이란 외적인 경건뿐만 아니라 내적인 신비적 경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성도들의 그리스도와의 일치된 삶을 '성령의 내주하심' 혹은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칼뱅은 영성생활의 최고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머리와 지체들과의 결합, 즉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내주하심을 간단히 말하면 신비로운 연합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최고로 중요시한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내주하는 방식에 대해서 칼뱅은 "아버지와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신성의 충만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의 안에서 우리도 신성 전체를 소유한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믿음을 통해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존재 안으로 날마다 스며들어 성화되어져 가는 과정이다. 이 신비적 연합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의적인 개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믿음 안에서 저절로 되어지는 수동적인 일만도 아니다. 칼뱅은 칭의론을 다루기에 앞서 기독교강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오며 어떤 효력이 따르는가"라는 제하의 제3권 제1-9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서 자기를 부정하고 내세에 대한 묵상을 통하여 허무한 현세생활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적극적인 성화와 그리스도와의 존재론적인 일치를 추구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개혁교회 영성의 특징을 요약한다면, 경건에의 경험과 실천이다. , 공동체 안에서 소명을 실현하고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것이다. 이 외적인 경건의 실천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다시 말하면 외적인 경건은 내면적인 하나님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계시에 대한 인지와 주관적인 하나님 체험, 그리고 지성적인 추구와 동시에 감성적인 경험이 조화를 이룬 것이 본래 개혁교회 영성의 진면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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