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자기와의 관계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내면의 골방에 계신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내면세계로의 여행을 해야 한다. 우주여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여행이다. 피상적인 삶에서 떠나 내면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야 우리는 참된 자기를 발견하고 진정한 삶(authentic life)을 살 수 있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은 고독과 침묵, 기도와 성찰 등이다. 자신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치유와 내적 정화를 경험한다. 치유와 정화는 자기가 온전히 회복되어 가는 과정이자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가능하게 해 주는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이다.

 

 

1. 자기와의 관계 : 핵심원리

 

1) 영적 삶의 핵심으로서의 내면성의 추구

 

영적 삶의 핵심은 내면성의 추구이다. 내면의 삶을 산다는 것은 세상과 유리되어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삶만을 추구하며 사는 것을 말하거나 자신의 내면에만 관심을 두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밖을 향하던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중심으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나와 이웃과 세상을 만나는 것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과 시각으로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영적 삶은 우리 마음 안에 들어가 우리의 내면의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나를 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존재의 중심으로서의 마음

 

'마음'은 성서에 나오는 심리학적 개념으로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고 통일하는 중심기관을 상징하는 개념이다. 마음은 우리존재의 중심으로 하나님과 자신과 이웃이 만나는 자리이다. 성경은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3:11). 또 우리 마음은 하나님의 전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장소이다(고전 3:16).

교부 어거스틴은 내면의 성소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하였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신다. 우리는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골방에 숨어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요한 카시안은 골방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내면의 골방인 마음으로 들어가 그곳에 계신 아버지와 친밀한 사귐의 기도를 드리라는 것이다.

현대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마음이 깊고 넓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우리의 의식 세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요, 무의식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깊고 넓다. 어쩌면 무의식의 세계는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역사를 다 포함하고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내면세계로의 여행은 신비롭고 무한한 것이다. 인간의 자아를 심리학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거짓 자아'(false self)'참 자기'(true self)로 말할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죄로 인해 타락한 자아, 옛 본성에 사로잡힌 자아가 있다(4:22). 이 거짓 자아는 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세상의 헛된 영광(vain glory)을 추구한다. 그런데 참 자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자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게 된다. 우리는 이 거짓 자아를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아(new self)를 덧입어야 한다(4:24).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참 자기를 발견하기 위하여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3)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의 상관관계

 

칼뱅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출발점은 인간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참 자기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당신을 알게 하시고, 나 자신을 알게 하소서!"(Noverim te, noverim me)라고 한 뜻은 참 자기는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야 나를 알 수 있으며, 참 나를 발견해야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곧 참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 발견과 참 자기의 발견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내면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단순히 나만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그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닦아 청결한 마음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대로 나의 본래적인 모습과 이웃을 바라볼 수 있다. 여기서 만나는 이웃은 나와 분리된 이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로 연결된 자매와 형제로서의 이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긍휼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4)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오솔길

 

숲 속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있듯이 마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오솔길이 있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든 성령님의 주도적인 인도하심을 헤아리며 믿음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단 하나가 아니라 매우 다양하고 많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어떤 특정한 길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각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독창적인 자신만의 오솔길을 선택하여 그 길을 통해 내면의 성소에 이를 수 있다. 각자 자기 고유의 여정을 걸을 수 있지만 교회 전통 안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취하는 내면의 오솔길이 있다. 그것은 고독과 침묵, 자아성찰이다. 이제 마음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을 살펴보려고 한다.

 

 

 

2. 고독과 침묵

 

현대사회의 특징을 세 가지로 표현한다면 '소음', '분주함', '군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분주하고 복잡한 사회에 살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일이나 행사, 또는 인간관계에 이끌려 살아간다. 언론과 대중매체도 수많은 말을 만들어 내지만 진실된 말은 별로 없고, 대부분은 빈말, 거짓말, 피상적인 말뿐이다. 우리는 친구와 이웃과 수많은 말을 하지만, 거기에는 진실이 없고, 힘이 없어 빈말로 돌아올 때가 많다. 이 모든 것은 고독과 침묵이 결여되어서 오는 결과이다. 결국 우리는 소음과 분주함, 복잡함 속에서 하나님을 잃고, 자신을 잃고, 동료 인간을 잃어버렸다.

 

1) 역사적 근거

 

성경은 고독과 침묵에 대하여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모세는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생활했다. 광야는 고독의 장소이다. 모세는 깊은 고독 속에서 내면의 소리를 들었고, "내 백성을 구원하라."는 소명을 받았다(3:1~5).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이긴 후, 이세벨 왕후의 위협이 두려워 호렙산까지 도망갔다. 그는 절망과 무기력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은 바람 가운데도, 지진 가운데도, 불가운데도 계시지 아니하고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다. 엘리야는 깊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왕상 19:11~12).

신약성경에서 세례 요한은 어린 시절을 광야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1:80). 그는 고독과 침묵 가운데서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았다(3:2). 예수님도 고독과 침묵을 좋아하셨다.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하면서 소명을 받았고(4:1), 분주한 사역 중에도 자주 한적한 곳(원어, 광야)을 찾으셨다(4:42, 5:16, 6:12, 11:1).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상에로의 '전진'과 세상으로부터 '퇴수'(retreat) 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막의 교부들에게 고독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였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고 순교가 끝난 시기에, 교부들은 날마다 죽는 순교의 삶을 살기 위하여 사막으로 들어갔다. 사막은 고독과 침묵만이 흐르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내면이 더 잘 드러난다. 교부들은 자신의 죄와 정욕과 싸우면서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힘썼다. 그 결과 내면에 정화가 일어났으며 '진정한 인간' (authentic human)으로 변화되었다.

 

2) 고독과 침묵의 영성 이해

 

고독(solitude)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홀로 머무는 시간과 공간을 말한다. 홀로 머무는 공간은 광야일 수도 있고 산 속일 수도 있으며, 도시 한가운데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디서든지 홀로 머무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홀로 머무는 이유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또한 내면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자신을 대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주함, 복잡함과 소음 속에서는 내면으로 들어갈 수도, 자신을 살필 수도 없다.

고독과 비슷한 것은 외로움(loneliness)이다. 고독과 외로움은 홀로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둘은 서로 다르다. 노인들의 외로움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혼자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버림받은 느낌이다. 외로움은 절망과 무기력을 낳고,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고독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자신과 동료 이웃과 함께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

침묵(silence)은 일차적으로 말 없는 상태 또는 말의 중지를 말한다. 우리는 말이 없기 위하여 소음에서 떠나고, 고요함 가운데 머무를 수 있다. 그런데 엄밀히 보면 침묵도 하나의 말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침묵은 '언표(言表)되지 않은 말'이라고 하였다. 침묵은 표현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이다. 침묵이 표현될 때 말이 된다. 따라서 침묵과 말은 상반되지 않는다.

침묵은 말을 길러 내는 장소다. 침묵 속에서 말이 길러지고 정제된다. 침묵 속에서 나오는 말은 참되며, 진실 되며, 힘이 있다. 그러나 침묵이 없는 말은 빈말이고, 잡담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보다 바른말을 하기 위하여 침묵이 필요하다.

침묵의 목적은 보다 깊은 데 있다. 침묵은 단순히 말하지 않거나 참된 말을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침묵은 우리 마음의 생각을 잠잠히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 세계는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심지어 육신이 잠을 잘 때도 생각은 멈추지 않고 일어난다. 침묵은 이런 생각과 잡념을 멈추게 한다. 그래서 우리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집중하게 한다. 우리의 의식이 하나님께 집중할 때, 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다. 그 음성을 듣기 위하여 침묵하는 것이다.

고독과 침묵이 영성생활에 주는 유익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침묵한다. 하나님은 침묵 가운데 계신다. 중세의 한 신학자는 "하나님은 침묵 자체이시다."라고 하였다. 침묵 가운데서 떠오르는 소리는 분명 하나님의 음성이다. 목회자에게 가장 큰 유혹은 말은 많이 하는 것에 있다. 말을 많이 함으로써 내면의 영적 열기가 빠져나가 버리고, 결국은 탈진하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는 침묵 속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말로 가다듬어야 한다. 그럴 때 목회자의 말이나 설교는 진정성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이다.

둘째, 침묵은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다. 우리는 외적침묵(고요한 장소와 시간)과 내적침묵(생각의 멈춤)을 통하여 내면세계로 들어간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참 자아가 있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참 자기를 만난다. , 하나님 발견과 자기 발견을 위하여 침묵하는 것이다.

셋째, 고독과 침묵은 우리의 자아를 변형(transformation)시킨다. 우리 자아의 대부분은 사회에 의해서 강요되었다. 성공과 출세, 탐욕은 사회에 의해서 강요된 자아요, 조작된 자아요, 거짓 자아(false self)이다. 고독은 이런 거짓 자아와 투쟁하는 장소이다. 고독 속에서 거짓 자아는 헛된 영광임을 안다. 고독 속에서 거짓 자아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자아(new self)가 태어난다. 그러므로 고독은 자기변형(self transformation)이 일어나는 용광로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고독과 침묵은 자비로운 사람을 만들어 낸다. 자비심(compassion)은 고독 속에서 길러진다. 우리가 고독 속에 머물수록 친절하고, 남을 돌보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모든 사물에 눈이 뜨이게 되고 주변에 있는 것들에 애정을 갖게 된다. 어떤 인간도, 피조물도 나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고독 속에서 돌 같은 마음이 살같이 부드러워지고, 닫힌 마음이 고통 받는 이웃과 피조물에게 열린다. 그래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게 되며,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더욱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비로운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고독과 침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한 거기서 얻은 사랑과 자비심을 가지고 나갈 때,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실현할 수 있다.

 

고독과 침묵의 실제

다음과 같은 준비와 방법론으로 고독과 침묵을 훈련해 볼 수 있다.

첫째, 침묵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라. 교회, 작은 방, 사무실 등 홀로 머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나 좋다.

둘째, 고독의 침묵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라. 새벽은 방해받지 않고 그런 시간을 갖는 데 아주 유익하다. 만약 새벽기도의 시간을 고요와 침묵의 시간으로 삼는다면 다음과 같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자는 말씀을 짧고 간단하게 전한다. 말씀 속에서 기도할 제목을 찾는다.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응답하고 필요한 간구의 기도를 드린다. 충분한 간구 또는 대화의 기도를 드린 후 침묵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고요한 음악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음악은 기도하는 사람이 내면의 깊은 고요로 이끌림을 받고 침묵 가운데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너무 큰 볼륨이나 강렬한 음악은 감정을 자극하여 오히려 마음의 고요를 깨뜨릴 수 있다.

만약 아침 시간에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면 하루에 두 번 정도시간을 정하여 고요한 장소에 머물면서 한다.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눈을 감는다. 성령께서 침묵의 기도를 인도해주시도록 도움을 구한다. 어떤 특별한 형식이나 형태에 매인 침묵기도를 드리기보다 마음의 골방으로 내려가 그곳에 은밀히 계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고요하게 머문다. 어떤 특정한 생각이나 개념을 넘어 우리의 마음의 수준에서 영적교통이 일어나고 있음을 믿고 머물도록 한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시간은 약 20분 정도이다. 20분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데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침묵 속에 마음의 느낌을 의식해 본다.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주로 평화, 안정, 감사, 만족 등을 느꼈다고 한다.

혹 낮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혼자서 어디로 이동할 때도 고독과 침묵을 훈련할 수 있다. 그때 조용히 마음의 침묵을 유지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고 성령님께 기도를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 눈을 감고 우리의 의식을 마음으로 집중한다. 그리고 숨을 천천히 고르게 쉬어 본다.

밤 시간을 고독과 침묵의 시간으로 가져볼 수도 있다. 저녁식사 후 공원이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우리의 의식을 걸음걸이에 집중한다. 밤이 주는 포근함과 여유를 느껴 본다. 밤하늘의 별을 응시한다. 별은 무한한 상상력을 일으킨다. 밤은 침묵의 시간이다. 밤의 침묵은 휴식과 평안함, 포근함을 가져다준다. 이것을 위해 먼저 컴퓨터나 TV를 끄고 밤을 보내 보라. 그렇게 하면서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살펴보라. 단순하고 조용한 가운데 잠자리에 들면서 그 기분을 느껴 보라. 그렇게 잠든 후 아침에 일어날 때 기분이 어떠한지 점검해 보라. 그러면 아마 일상의 날과 다른 느낌을 경험할 것이다. 저녁 시간과 아침 시간은 서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경 한 구절을 정하여 말씀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라. 예를 들어,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70:1)라는 말씀이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18:13)라는 말씀으로 기도한다고 해 보자. 먼저 숨을 들이쉴 때 앞 구절을, 내어 쉴 때 뒷구절을 암송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입술로 반복한다. 입술로 하다가 마음이 암송할 때까지 계속한다. 마음이 암송하면 입술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이때 하나님의 현존이 내 안과 주변에 가득함을 느낄 것이다.

넷째, 자연묵상은 고독과 침묵 훈련의 좋은 장이며 자원이다. 쉬는 날 하루는 야외로 나간다. 자연이 있는 곳은 어디나 좋다. , 나무, 시냇물, , 들풀 등과 같은 것을 천천히 응시해 보라. 그리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연과 대화를 해 보라. 무엇보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자연 만물 어디에나 계신다. 자연과 함께 머물 때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느껴 본다.

다섯째, 목표점검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일 년에 한두 번은 기도원이나 수양관에 머물면서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한다. 고요한 곳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계획해 보되, 1, 5, 10년 단위로 작성해본다. 그리고 다음 해에 이 계획을 확인해 보면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여섯째, 말씀묵상을 하면서 침묵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먼저 성경을 읽은 후 고요히 10분 정도를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기를 조용히 기다리라. 산책이나 운동할 때 읽은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되새김질해 보라.

일곱째, 영적일기를 쓰는 것도 침묵과 고독의 좋은 훈련이다. 영적일기는 고독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적는 시간이다. 내게 일어났던 사건과 함께 나의 느낌을 적어 본다. 영적일기에서는 기쁨이나 슬픔, 만족이나 아쉬움, 분노와 같은 느낌을 솔직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내면에 있는 생각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적어 보라. 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지 살펴보며 그것을 일기에 정리하여 기록하라.

고독과 침묵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a way of life)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계속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무엇보다도 하루의 일과 속에서 고독의 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기도원이나 수양관과 같은 곳에 올라가 모든 삶의 분주함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피정 기간을 가져 보라. 이때는 주로 침묵의 시간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도 고독과 침묵이 삶에 체득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3. 성찰의 기도

 

1) 성찰의 기도에 대한 이해

 

매일의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활동하심을 살피고 그분께 응답하는 영적 실천을 '성찰의 기도' , 또는 '의식성찰'(examination of consciousness)이라고 부른다. 기독교 전통은 성령의 빛에 의지하여 자신의 내면과 삶을 살피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하심 안에서 살아가는 영적 실천을 강조해 왔다. 시편에 보면 자리에 누워 마음을 살피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이것은 곤란 가운데 처한 성도로 하여금 삶의 복잡한 상황에서 한 발 물러서서 마음을 성찰하라는 영적가르침이다. 다윗은 곤경 속에 있었지만 침상에서 잠잠히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평안, 신뢰를 체험하게 되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노래했다.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God knowled -ge)과 나를 아는 지식(self knowledge)이 경건생활의 중심이 된다고 강조한다. 나를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조명을 통한 매일의 성찰이 습관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칼뱅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핵심이란 자신을 살펴 이제부터는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며 지배하는 자기부정에 있다고 말한다.

리처드 백스터는 참된 목자(TAe Reformed Pastor)에서 목회자들이성찰을 실천해야 할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 형제들이여,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마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우리는 정욕과 열정과 세상적인 것의 추구를 떠나서 믿음과 사랑으로 열심히 살아가야 하며 가정에서 많은 시간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날마다 마음을 보살피지 않고 부패케 하는 것을 정복하지 아니하며,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이러한 작업을 평생을 두고 꾸준히 해 나가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어긋나게 되어 당신의 마음은 굶주리게 될 것이다.

"이렇듯 성찰은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건강한 영적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영적 실천이다. 의식성찰은 하루 중 15분에서 20분 정도 조용한 시간을 내어서 내면(의식)의 흐름에 관심을 두면서 하루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내적 흐름을 관찰하여 하루 동안에 하나님이 어떻게 나의 삶속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셨는가를 살피고,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루 동안 나의 존재와 삶은 어떠하였는지를 살피는 것이 바로 의식성찰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에 대하여 성찰한다고 했을 때 양심성찰을 생각한다. 양심성찰은 하루의 생활 속에서 내가 범한 잘못들을 찾아내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의식성찰은 양심성찰과 달리 잘 잘못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하심을 살피는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임재하여 활동하셨으며, 또 임재하고 활동하신 하나님께 내가 어떻게 응답하며 살았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 하나님과 나의 본래적인 관계 안에서 나의 삶과 내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결국 의식성찰은 "하나님의 사랑에 내가 어떻게 더 응답할 것인가?"라는 관계의 관점에서 행하는 영성훈련이다.

우리가 자신을 성찰한다고 해서 자기 분석이나 자아 인식이 이 기도의 목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이다. 그러므로 성찰은 우리의 내면을 향해 서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이다.

 

2) 성찰의 기도를 위한 지침

 

첫째, 감사의 기도로 시작하라.

성찰의 기도는 감사의 기도로 시작한다. 왜 성찰을 감사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을 볼 때, 우리는 본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존재이다. 내가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존재와 나의 삶,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가 더 깊은 믿음의 삶을 살아갈수록, 우리는 더욱 가난해지며,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채워지게 된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은 항상 우리 안에서 의식의 일부가 되어야한다. 그래서 이런 감사를 우리의 의식적인 앎의 차원으로 가져오기 위하여 이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아마도 그 은혜들이 주어지는 순간에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 있다. 이 순간에도 우리는 매우 다른 관점으로 그 선물들을 보게 된다. 선물이 크고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으며, 아니면 작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성찰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점점 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참으로 마땅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가를 항상 의식하며 사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점차적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며, 이런 앎만이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둘째, 성령의 조명을 위하여 기도하라.

성찰의 기도의 두 번째는 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것이다. 성찰은 단순히 자신의 자연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하루를 돌아보며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삶 속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은 영적인 일이다. 영적인 것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이성과 상식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 깨달음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온전히 알고 나의 존재 가능성을 다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내 자신의 신비에 대하여 보다 더 잘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실 때,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찰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깨닫는 문제요, 내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민감하게 응답하는 문제이다.

셋째, 하루 동안의 내 자신과 삶을 성찰하라.

성찰은 하루의 모든 시간과 사건 안에서 살아온 내 자신과 그 안에서 활동하신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하루 동안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은 두 단계로 실시할 수 있다. 먼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동안에 내가 경험한 사건들, 내가 행한 일들, 만남들, 대화들을 영화 필름을 돌리듯이 성령의 조명을 구하면서 살펴보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짧게는 1분이나 2분이면 가능하다. 여기서 어떤 분석적인 시각으로 대화나 삶을 면밀히 성찰할 필요는 없다.

그 후 위와 같이 오늘 하루 삶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그려지면,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하루의 삶을 돌아본다. 오늘 하루 동안 내가 행한 일들, 만남들, 대화들 가운데 나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는 내면 성찰을 통해 감사, 기쁨, 평화, 불안, 염려, 원인모르는 침체, 분노, 원망 등 다양한 감정들이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내면의 움직임들을 본다고 했을 때, 모든 느낌이나 감정들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내면의 움직임들 중에서 특별히 어떤 강한 감정이나 느낌이 존재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떤 경우는 강렬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내면의 어떤 흐름을 볼 수 있게 된다.

성찰에서 감정이나 느낌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의 섬세한 흔적을 보고자 함이다. 이는 감정이나 느낌이 자신 내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말이나 행동은 쉽게 포장할 수 있다. 생각도 어느 정도는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느낌이나 감정은 자발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내면의 감정이나 느낌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하심에 내가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또한 처한 상황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해 주는 내면의 거울과도 같다.

이 내면의 흐름에 대한 성찰은 보이는 행동의 잘못이나 결과를 넘어서 우리의 경험이나 행동의 배후에 어떤 뿌리가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복된 악습이나 계속해서 범하는 잘못에 접근하여 다룰 때에는 그 행동이나 결과만을 보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극복할 힘을 달라고 요청하는 기도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온전히 치유되기 위해서는 그 문제의 뿌리를 파헤치고 다루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내면 성찰을 통해 바로 이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빛에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느낌이나 감정의 흐름에 주목할 때 우리의 관심을 끄는 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발견했다면 이제 주님 앞에서 물어볼 수 있다. 내가 오늘 경험했던 어떤 감정이나 느낌의 출처는 어디인가? 만약에 내가 오늘 깊은 감사와 마음의 고요를 가졌었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내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그때의 감사와 평강의 출처는 바로 임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어려운 삶 안에서도 소망을 느꼈었고 삶의 의지를 경험했었다면 바로 그것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겠는가?

또한 우리는 내면 성찰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슬픔이나 아픔을 느낄 수도 있다. 비록 현실에서는 우리가 그 감정이나 느낌의 출처가 되는 어떤 문제로 인해 아파했을지라도, 성찰 중에 주님과 함께 그 아픔이나 상처들을 바라볼 때는 다른 마음으로 그 문제들을 대할 수 있게 된다. 성령님께서 우리로 그 문제의 근원을 바로 직면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마음을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이어서 우리의 아픔 가운데 함께해 주시면서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내면의 깊은 흐름을 살펴보는 성찰을 통해 우리는 분명하게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 임재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가 있다.

넷째,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주신 은총에 감사하라.

하루 동안 내면의 흐름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하심으로 우리는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의 진실된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성찰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그 사랑과 활동하심에 어떻게 응답하였는가를 보면서 뉘우침과 용서를 구하고, 깨달음을 주신 주림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다. 용서 구하기에서 중요한 점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이 예수님 앞에 서서 그 사랑의 현존을 느끼면서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했듯이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죄로 인해 아파하고 새로운 삶을 갈구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

다섯째, 내일을 위하여 필요한 은혜를 구하고 주기도문으로 마 무리하라.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 안에서 자신의 참된 모습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며, 내일을 위하여 필요한 은혜를 구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주님이 주신 기쁨, 감사, 평강,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주기도문' 으로 성찰을 마친다.

 

3) 성찰의 기도의 실제

 

의식성찰

먼저 하루 중 고요한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 15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이 적당하다. 낮 동안 직장에서도 잠시 시간을 내어 실천할 수 있고, 저녁때는 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실천할 수 있다. 의식성찰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단계를 갖는다.

 

 

· 감사기도 드리기 : 오늘 하루 동안 나를 돌보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성찰을 위한 거 룩한 공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의 모든 존재와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성찰을 통하여 체험적으로 깨달아 감사할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한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나의 의식의 일부가 되 고, 감사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한다.

성령의 조명 구하기 : 성령님은 어두운 내 영혼의 방을 환히 밝혀 주시는 등불과 같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켜 야 그 안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이 보이듯이 하나님께 서 우리와 항상 항께 계시더라도 성령께서 불을 비춰 야 볼 수 있다. 겸손하게 성령의 조명을 구한다.

하루의 삶의 성찰 : 성찰은 두 단계로 나누어 실천한 다. 첫째 단계에서는 하루 동안 내가 경험한 사건이나 내가 만난 사람, 대화나 행동들을 하나님의 임재와 활 동하심의 관점에서 돌아본다. 둘째 단계에서는 하루 동안 내면의 흐름을 보는 것이다. 내면의 흐름을 통하 여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있었는가를 살펴본다. 또한 하나님의 활동하심에 내가 어떻게 응답하는 삶을 살았는가를 살펴본다.

뉘우침과 용서를 구하는 기도 : 성찰을 통하여 발견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여기서 단순히 내가 죄에 빠지고 넘어졌다는 사실보다는 우리 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마음에 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통회의 기도를 드린다.

내일을 준비하는 기도 : 내일을 위하여 필요한 은총을 구하고 주님의 기도로 마친다.

 

 

 

말씀 안에서 하루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

'말씀 안에서 하루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은 아침시간에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결단했던 내용에 비추어 내가 어떻게 하루를 살아왔는지를 살피는 기도시간이다. 먼저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이나 밤에 고요한시간과 장소를 정한다.

 

 

감사기도 드리기 : 성찰기도를 위한 공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하루를 살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은혜와 여러 여건들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린 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기본적인 자세이 다.

성령님의 조명을 구하기 : 성령님은 어두운 내 영혼의 방을 환히 밝혀 주시는 등불과 같다. 성령님에서 내 모습과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서 오늘 하나님의 말 씀을 따라 살고자 했던 나의 삶이 어떠하였는지를 잘 볼 수 있도록 성령님의 조명을 구한다.

하나님의 말씀 기억하기 : 오늘 아침에 내가 하나님께 로부터 받은 말씀이 무엇이었는지를 상기하고 그것을 기록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하루의 살을 돌아보기 : 아침 에 받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오을 나의 삶에서 구 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했는지를 살펴본다. 또한 그 말 씀에 비추어서 내가 오늘 어떻게 살았는가를 살펴본 다.

감사와 용서의 기도드리기 : 하루 동안의 삶 속에서 베 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에 온전 히 응답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하나님의 용 서를 구한다.

마무리 기도 : 하루를 마무리하는 감사기도와 주의 기 도를 드림으로 성찰기도를 마친다.

 

 

 

4. 치유와 정화

 

1) 하나님과 친밀한 영적 사귐의 조건으로서의 치유

 

원래 인간은 에덴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있었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자신의 참된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의 단절을 초래하였다. 하나님과 함께 에덴을 거닐며 행복하게 살던 인간이 소외되고 상처받은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러한 우리 인간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으며,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놓으신 하나님과의 화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가지며, 다른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 안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어 일그러진 성품이 변화되어야한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사귐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쓴 뿌리들이 깊이 박혀있다. 예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내면의 상처까지도 치유하신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육체의 질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죄까지도 용서하셔서 그를 온전하게 하셨듯이, 우리를 고치시되 온전히 고치시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치유하기 원하신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치유하시는가?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회개'를 촉구한다. 회개는 우리의 잘못과 허물을 깨닫고 뉘우쳐서 자기중심적인 삶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방향 전환이다. 회개란 단순한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행위와 삶의 변화를 포함한다. 하나님 밖에 머무르는 나의 모든 생각과 삶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거짓된 자신의 모습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여기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피상적인 차원의 변화만으로는 완전히 새로워질 수 없다. 이러한 치유와 정화는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야한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는데, 눈에 보이는 부분만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 존재하는 어두운 기억과 상처들, 문제의 뿌리까지 다 드러내고 치유해 가신다. 그 과정을 통해 개인은 점차 더 깊은 수준까지 치유되고 회복되어진다. 치유를 통한 정화와 하나님과의 친밀한관계의 회복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하지만 자신의 거짓된 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정화되며 치유함을 선물로 받는 일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치유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 믿음으로 그 은혜에 신실하게 응답하는 실천을 요구한다.

 

2) 치유와 정화를 위한 훈련의 실제

 

하나님께 분노를 표현하는 기도

첫째, 화의 감정과 만나라.

기도할 자세를 취하여 성령님의 도움을 구한다. 화가 나면 이에 수반하는 신체적 반응이 일어나는데, 어깨가 경직되거나 얼굴이 굳어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호흡이 거칠어진다. 이때 심호흡을 천천히 크게 몇 번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내 안에 있는 화를 주목하여 바라본다. 화의 감정과 만나기를 할 때, 화난 감정을 빨리 없애거나 무시, 또는 억압하지 않는다. 화나게 한 사람의 얼굴과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 본다. 화나게 한 사건을 떠올림으로 화의 감정과 만난다. 억울하고 화난 심정을 기록하는 것도 화를 깊이 만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화를 깊게 대면하라.

화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씀을 읽는 것이 화와 만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화를 표현하는 성경말씀을 읽는 것은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토로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사용하는 것이며, 말씀을 묵상하여 교훈을 얻고 그것을 적용함으로 화난 감정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분노를 표현했던 욥이나 시편 저자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화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깊게 경험함으로써 묵상과 토설하는 기도를 준비한다. 화를 표현하는 성경말씀으로는 욥기 16:8~17; 시편 10:1~18; 13:1~6; 17:1 ~15; 22:6~21, 28, 31, 35; 54; 55:1~8; 61:1~2; 109:1~31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많은 말씀을 읽기보다 마음에 와 닿는 몇 절을 반복하여 읽고, 그 말씀과 함께 머무르면서 나의 감정과 깊이 만나도록 한다. 감정이 충분히 경험되면 토로하는 기도와 묵상이 가능해진다.

셋째,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묵상하라.

화를 깊게 대면하고 그것을 느낀 후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나를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느끼시는지를 상상해 본다. 예수님의 심령과 나의 심령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화난 상황과 심정을 예수님께 말씀드린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들어본다. 아무 말을 못한다 하더라도 나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을 느끼면서 십자가의 주님 앞에 충분한 시간 동안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십자가의 주님 앞에 머물러 있으면 어느덧 내 안에서 분노와 원한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임재와 평강, 그로 인한 영혼의 자유와 기쁨이 나를 충만히 채우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과 평강으로 우리를 채울 때까지 충분히 주님 앞에 머물러본다.

넷째, 주님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주님의 기도로 마무리하라. 묵상을 통해 주님이 내게 주셨던 은혜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잠시 헤아려 보면서 감사를 드린다. 이때 다시 주님께 아뢸 것이 있으면 아뢰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도 있다. 새로운 미래를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님께 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기도를 하면서 끝을 맺는다.

 

마음의 상처나 아픈 기억을 치유하는 기도

과거의 고통이나 상처, 아픔 또는 슬픔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이것을 위한 단계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가질 수 있다.

 

 

· 마음에 상처를 준 사건 가운데 무엇을 가지고 기도할 것인가를 정하라.

· 상처를 경험한 그때의 장면을 회상하면서 그 장면으로 돌아가라.

· 그때의 경험이 충분히 되살아나면 주님을 그 자리에 초청하라. 주님께서 어떻게 그 사건 속에 계셨는지, 주님이 어떻게 바라보고 계셨는지, 주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물으며 묵상한다. 지금 주님이 나에게 하 시는 말씀을 들어 본다.

또는 마음에 상처를 준 사건은 떠올린 후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이때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본다. 십자가의 주 님을 바라볼 때 주님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자 연스럽게 주님과 대화한다.

내면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도록 하라. 아픈 과거의 기억은 가지고 묵상하며 기도할 때 부정적인 감정들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주님 께 대한 분노, 원망, 불평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 다. 이때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무시하거나 억누르 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 있 도록 한다.

· 주님의 치유를 경험하면서 마음에서 감사와 기쁨, 평 강이 임할 때까지 기도를 반복하라.

 

 

 

 2-2 자기와의 관계.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