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오시는 모든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그리스도안에서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많은 백성들, 다시 말해된 진실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또한 그분의 은혜가운데서 살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먼 2천년전에 존재했거나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삶속에서 실제로 느끼고 마주하고 감겨하는 분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절대적인 분으로 모시고 대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삶을 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거나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저또한 그러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을 사랑하라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은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하신다는 말씀이나 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인정도 없고 굉장히 이기적이고 가혹하리만한, 그래서 우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알고 경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향을 더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땅에서 세상가운데에서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실제적으로 만났던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이나 교부들조차도 자신이 있던 곳에서 치열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던 사람이고, 오늘날 개신교의 역사에서도 하나님만을 사랑하면서 자신이 처한 세상에서 살았던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오히려 이런 분들은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또다른 위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믿는 것이지 세상과 완전히 결별되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14세기이 에카르트는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굳히 수도원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고 했다고 합니다. 왜냐햐면 이미 백성의 삶도 수도원의 삶만큼이나 힘들고 곤고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 자체도 이미 고난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구별되어서 거룩하게 산다는 것 또한 수도원의 삶만큼이나 어려울 것입니다. 노아나 에녹처럼 많은 사람들이 타락되어 세상가운데 살 때 그들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경외하는 삶이 그처럼 한결같이 어렵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외면적으로는 외롭고 힘들지만 그 안에서는 강렬한 생명이 약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관점이 바뀔 것입니다. 모든 것 속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그분과 함께 살므로 우리는 더 이상 외로운 존재가 아님을 느낄 것입니다.

 영성은 결코 인간의 본성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본성을 찾고 그 본성을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이 가족과 친적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아니라고 오늘 무지의 구름서문에서 말하고 있네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과 인간에게 드리는 사랑은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고 인간에게 줄 사랑을 주는 것, 그래서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영혼안에서 제자리를 찾는 것 이것이 영성의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모든 피조물안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발견하기까지는 믿음과 지식에 의한 어느정도의 수고가 필요하겠지만, 그 연후에는 우리의 자연스런 본성으로 갈망으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공자가 60이 되어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도 이것이 곧 하늘의 뜻과 부합되었다고 했듯이 우리가 하나님만을 향하는 연습을 한다면 그런 자세가 되어있고 어떤 환경속에서도 끊임업이 노력한다면 어느순간 이런 영역에 도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만을 향하는 것이 더 이상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라기보다는 이런 것들이 우리의 깊은 곳으로 자리잡고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우리의 눈이 열리게 되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시선안에서 산다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인 사라를 먼저 보낸후에 울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울었다는 것은 아마도 여기밖에 없지 않나 합니다. 그 강인한 하나님의 사람이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고난속에서도 울지 않았다는 그가 자신의 아내가 죽자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는 듯 합니다. 자신의 아내가 죽은 것을 슬퍼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이죠.

 참 충격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사람이 하나님 자신만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신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안에서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이 가슴깊숙히 자리를 잡고 파고들어서 깊은 존재로 자리잡는 것 이것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름답게 하나님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의 제자리를 찾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는 다른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알아갈 때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우리안에서 이루지는 듯 합니다.

 니콜라스 쿠사라는 뛰어난 신비주의자가 하나님이 내 생명을 사랑하시므로 나는 내 생명을 내 존재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영혼과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자세로 사는 사람에게는 또한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 또한 무한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런 삶을 여기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분들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