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안에서 한마리의 나태한 돼지가 살고 있는것 같습니다.

항상 열심히 해려 해도 왠지 모를 나태한 자아가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지 않나 합니다.

늘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며 그분을 알고자 하지만,

때때로 자신안에서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중단하고 멈추려는 듯한

자신을 봅니다.

또는 하나님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 가운데에서 쉬이 만족하고 평안을 얻고자 하는 자아를 봅니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모여서 그들과 함께 그 분위기에 압도되고 자신의 감정에 취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에카르트는 인간의 깊은 곳으로 가면 아무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고요함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성도는 그 고요함가운데에서 정신을 놓고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힘들면 힘들다는 핑계로, 기쁘고 즐거우면 즐겁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살아가고는 있지 않은지 살펴봅니다.

주님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기 싫어서 뒷전에 미루고 가만히 쉬려하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듯이 매일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버리고 나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때에도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지 생각해봅니다.

어떤 상태에서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때에도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처음에는 그것이 힘들고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어느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런 상태로 느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펠렐롱은 자신보다도 하나님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듯이 우리또한 그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달에 책을 몇권이나 읽을까요? 평균독서량이 1.4권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한달에 두권은 읽지 않나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또한 말하면서

한달에 책 2권도 안읽는다면 세상 사람들보다도 못한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영적인 책들,  충분히 검증받은 깊이가 있는 책들을 골라보는 것은 어떤 호기심이나 감정에 의해서보다도

의지적으로 의무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치고 교부들이든 중세시대든 아니면 근대의 개신교 성도들중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듯 합니다. 깊은 기도가운데서 책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의 영감을 통하여 그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안에서 하나님의 영을 경험하고

또한 그러므로 말미암아 성도로서의 목적인 그리스도의 마인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책을 읽지 않는 자는 사역을 집어치워라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자신들의 제자에게.

비록 사역을 하는 사람이든 사역을 하지 않는 사람이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갈망과 노력은 공통적이요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와 독서를 통하여 많은 영적인 자양분들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오시는 분들도 열심히 앞선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모했으면 만났는지 알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고려수도원을 통하여 많은 깨달음을 얻어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