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한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며 사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주거나, 누구의 말을 따라 듣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음성과 모습을 알고 따라가는 삶을 바랄 것입니다. 자신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 그분의 깊은 마음을 따라 사는 삶을 바랄 것입니다. 아가서 신부의 주님을 사랑함으로 병이 났다는 고백처럼, 다윗의 왕으로 있기보다는 하나님의 성전 곧 그분의 거룩하고 의로운 품에서 그분을 바라보며 살기를 바란다는 고백처럼,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이 어떤 분이지를 이해하고 그분을 향하기를 바라는 것은 진실한 성도의 바램이자 고백이 아닐까 합니다.

 요즘 저는 프란시스 쉐퍼의 책(전집중 1권:거기계시는 하나님과 이성에서의 도피)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들을 쉐퍼는 제시하고 있는듯 합니다. 우리들은 과연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고 더욱 사랑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들을 해봅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뒤범벅이 된 세상, 진리가 진리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모든 것이 다 옳다라고 말하는 상대주의적인 시대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믿는 진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제시하여 주신 진리인지 아니면 세상에서 배우고 익힌 의견인지를 알지 못하고, 분별하려고조차도 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쉐퍼 목사님은 이런 류의 사람들은 불가지론자와 하나 다를바 없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는듯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은채, 주변 사람들의 말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맹목적으로 신앙생활하려는 사람들, 진실로 자신이 추구하는 있는 것이 올바른 진리인지 고민하고 살펴보고 점검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채, 그냥 그대로 그속에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불가지론와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부르나 진정으로 내용이 없이 예수님이 누구이며 어떤 분인지를 역사속에서 시공간속에서 성경속에서 우리의 삶속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며 살아간다면 오늘 우리의 믿음은 정말 부끄러울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글들에서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러기에 하나님처럼 기억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의지할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의지적으로 향할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을 알듯이 이해할수는 없어도 인격적으로 마땅히 인간으로서 알아야 하는 만큼 바르게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이해하고 알수 있도록 역사와 시공간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분, 우리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계시하고 우리가 어떤 길들을 걸어야 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를 나타내주는 분이기에 우리는 그분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안일한 과정이 아니라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할 것입니다. 싸움은 곧 육신과의 싸움이 아닌 많은 것들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선택의 싸움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 이해하고 알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성과 경험과 의지가 통합되어 단일한 그 무엇에 이르고, 이 단일함으로 통합된 것이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포괄하나 그것을 넘어서는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어거스틴은 진정한 신앙(True Religion)에서 신앙은 때가 되면 지성과 육신적인 바램이 결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바램을 만들어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영혼과 마인드와 힘을 다해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처럼 우리의 지성과 의지와 감정이 살아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그분을 참되게 예배하는 삶일듯 합니다.

 늘 하나님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라고 여기에 오는 모든 분들이 날마다 진보하고 성숙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