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영성의 생명력

 

Roots That Refresh, Alister McGrath, 종교개혁시대의 영성,

박규태 (서울: 좋은 씨앗, 2005), pp. 23-37.

 

 

 

빛은 희망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1914년의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고, 눈앞에 닥쳐 온 전쟁의 기운을 유럽의 주요국들이 체감하기 시작할 무렵, 많은 유럽인들에게 이 빛은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처럼 보였다. 191483, 런던의 화이트흘(White hall)에 있는 집무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던 당시 영국 외상 그레이(Grey) 자작(子爵)은 이 음울한 기운을 간파하면서, 그 해 여름에 벌어졌던 냉혹한 사건들이 암시하는 바를 되씹고 있었다. '온 유럽에서 등불들이 꺼져가고 있구나.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등불들이 다시 켜지는 것을 못 볼 거야.' 어둠이 내리기 전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면서, 희망의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듯 빛은 깜박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로부터 400년 전에는 정반대의 정서가 뒤덮고 있었다. 1535, 여러 해에 걸친 독립 투쟁 끝에, 마침내 제네바 시는 강국이었던 사보이(Savoy)공국(公國)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이 신흥 독립시는 정치와 종교 양면에서 과거와 인연을 끊고,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중요하고도 새로운 종교의 힘 -종교개혁- 에 동조하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 해(1536)에는 장 칼빈(Jean Calvin, 1509-1564)이 제네바에 도착하여 제네바 복음주의에게 꼭 필요했던 방향감각과 목적의식을 제공하게 된다. 1535년에 제네바 시의회는 이미 그 미래의 세력들에 동조하는 결의문에 서명하기로 했다. 그리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울려 퍼지게 될 그 도시의 모토를 선택했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밝아오도다' (post tenebras lux).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동터오는 것처럼 보였다.

종교개혁을 수용하기로 한 제네바 시의 결의는 당시 대부분의 북구(北歐) 대도시들의 모범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당시 유럽의 여러 도시들에서 움트고 있던 새로운 정치 질서 이상의 것이었다. , 하나의 새로운 기독교 영성(靈性)이 창조되어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충실하고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 시대와 그 시대를 맞이하던 도시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이 책이 주제로 삼는 것이 이러한 영성이다.

종교개혁의 영성을 연구하는 것은 낭만주의적인 기풍에 탐닉하는게 아니다. 모든 것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지나간 황금 시절을 동경하는 것처럼,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를 곱씹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희미하게 바래버린 사진들을 감상에 젖어 들여다본다거나, 지나간 시대와 그 시대의 평안함을 갈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과거의 사건들과 그 시대의 인물, 그들의 사상들이 지금도 갖고 있는 잠재력을 유익하게 사용하려고 그것들을 끈기 있게 살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기독교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 그 시대의 여러 풍성한 자산들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이는 현재 기독교의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에 기초한 자각(自覺)이며, 나아가 그에 대한 여러 가능성 있는 대안들을 숙고하려는 의지와 결부되어 있다. 종교개혁은 고전 복음주의의 영성의 탄생을 목도한 바 있다. 현대는 바로 그 영성을 알아야 하고 그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가 요구하는 영성

 

역사가들은 역사 속의 여러 시대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종교개혁이 '근대 초기'의 여명기에 서 있었다는 데 널리 동의한다. 종교개혁은 중세와 근세의 연결점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두 갈래 길, 곧 쇠락의 길로 접어들던 중세와 새롭게 떠오르던 근대가 갈라지는 분기점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가 현대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종교,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 분야의 많은 발전상들은 그 기원을 유럽의 종교개혁에 두고 있다. 물론 16세기보다 훨씬 후대에 발생한 것들로, 그 기원이 계몽주의 또는 프랑스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주요 발전상들도 많다. 현대의 모든 양상을 종교개혁을 통해 내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상황과 맞닿아 있는 요소들이 있으며 그것은 아주 중요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것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개혁자들이 우리 시대의 관심사, 근심거리 그리고 열망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의 저작들에서 지금과 동일한 시대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역사를 되새김질 하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종교개혁의 세력은 중세의 몰락과 더불어 서서히 밝아오던 새 시대를 연결하는 기독교적인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개발해야만 했다. 중세는 근대가 새롭게 요구하던 관심사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종교개혁은 평범한 시민들이 점점 주도적인 세력으로 등장하는 '도시'라는 새로운 세계와 복음을 연결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시도로 보인다.

현대 서구 사회의 근본적인 기원을 이때의 유럽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의 영성이 우리 시대와 직접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영성이 새로운 사회 질서의 필요에 부응해 발전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대의 서구 사회는 16세기 유럽이라는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연결고리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없어서는 안 될 연결고리들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오늘을 사는 신자들이 그것들을 발견하여 선용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 연결고리들이 현대의 삶이 갖는 모든 측면들과 결부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예상해야 한다. 결국,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에는 "종교개혁과 그것이 남긴 유산은 조금도 영성을 담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이 얘기는 기독교 역사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종교개혁적인 영성' 이라는 문구 자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며, 하나의 자기모순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곧 쇠락하여 폐기처분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그 사실을 인식하면서 이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즐거움이다. 최근의 학문 연구가 낳은 성과들에 비추어 볼 때, 종교개혁을 이끌던 많은 인물들은 목회, 영성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동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안녕에 열정어린 관심을 가진 이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지루하지만 종종 두려움을 자아내기도하는 일상이라는 현실의 토양에 자신들의 신학이 견고히 뿌리내리기를 갈망했다. 순전한 기독교 영성을 향한 그들의 탐구는 다음과 같은 신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은, 그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들이 부닥치는 정신과 경험 그리고 사회를 밑바닥부터 철저하게 바꾸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새롭고 순전한 기독교 영성을 추구한다면, 다른 것보다 먼저 루터와 칼빈 같은 인물들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 학자들은 초기의 관점들을 대부분 내다버렸다. 예를 들어 로마 가톨릭 계통에서도 종교개혁자들을, 유달리 곤고하고 불안했던 한 시대에 창조력을 발휘하여 기독교 신앙을 다시 전하고 적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저술가요 설교자들로 보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나아가 중세 교회를 산산조각내고 그 통일성을 파괴한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정치와 사회 분야에서 나타났던 흐름들이라는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정치면에서 절대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 역시 이런 흐름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종교개혁이 기독 신앙과 교회가 세속의 길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세속화에 따른 부정적 파급 효과를 상당수 억제했다고 논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제는 종교개혁자들을 중세 후기 교회가 가지고 있던 강팍함 때문에 그들 시대의 교회와 어쩔 수 없이 단절해야만 했던 이들로 보려는 추세가 많아지고 있다. 낡은 포도주 부대는 잠재력이 풍부한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었다. 뒤늦은 깨달음 덕분에, 우리 역시 종교개혁자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교회가 그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도전과 기회에 부응하고 몸부림치면서 응당 행동의 준거로 삼았어야 할 옛 사상들을 불러일으켰던 사람들이었다.

종교개혁이 결국 교회에 분열을 가져 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그 개혁자들은 결코 이런 분열을 일으킬 의도가 없었으며, 실제로 그 분열을 보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역사가 말해준다. 16세기의 가장 커다란 비극 중 하나는 교회를 내부로부터 갱신시켜 새로운 모습이 되게 하겠다는 이상(理想)에 사로잡혔던 이들을 대부분 강제로 교회 밖으로 축출했다는 점인데, 이는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타협이라는 말조차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정작 어떤 이상도 없던 데서 비롯된 것 같다. 탁월한 루터 연구 학자인 하인리히 보른캄(Heinrich Bomkamm)은 교회 갱신을 부르짖는 자신의 호소가 마치 소귀에 경읽기와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루터가 타져 들었던 고뇌를 유려한 필치로 그려냈다.

 

당시의 신학과 교회의 모습들을 비판했던 루터는 '자신의' 교회로부터 쫓겨나고 말았다. 그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그리고 고통스럽게 기도하고 탄식하며 분노하는 가운데 교회의 그릇됨을 고소한 것은 '다른' 교회가 아니라 '그의' 교회였기에, 그는 자신의 교회로부터 축출 당했던 것이다. 그가 행동하고 말하며 글로 썼던 모든 것은 그 교회에 맞서기 위함이 아니라, 그 교회와 교회의 안녕을 위하여 한 것이었으며, 결코 어떤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를 축출했던 당시의 로마교회에게 그의 주장은 전혀 새롭고 또한 낮선 요구였다. 이전에도 교회에 여러 차례 개혁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개혁이었지, 루터가 제기하면서 시작된 내부로부터의 개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부로부터 일어난 교회의 갱신으로 인식되었던 종교개혁은, 그 결과 전혀 다른 것을 낳았다.

이 점을 인식하면 요즘 들어 가톨릭 교회 안에서 복음주의 영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등장하면서 그에 대한 공감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길이 열리게 된다. 그들이 이 복음주의 영성을 선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가톨릭 신자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6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탈리아, 에스파냐 그리고 프랑스의 가톨릭 교회에 소속되어 있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복음주의 영성 양식들을 순용하게 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톨릭 교회 안에 남아 있었고 최고위 성직을 맡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그런 상황이 정반대로 변하면서, 가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복음주의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이는 가톨릭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몇 가지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끔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대는 우리를 견고히 받쳐주고 있다. 현대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복음주의가 점점 더 영향력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 되고 있으며, 현대 교회가 고를 수 있는 정당하고 실현가능하면서도 흥미로운 선택안으로 복음주의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것을 곧 가톨릭교를 포기하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비록 때가 늦었지만, 16세기의 정치 기류 때문에 당시 가톨릭 신자들이 구현할 수 없었던 기독교 영성의 한 고전 양식을, 되찾는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복음주의 영성은 분열되지 않는다. 그것이 분열되게 된 것은 다만 지나간 한 시대에 위세를 부리던 정치 때문이었다.

루터가 1513년부터 1519년 사이에 쓴 저작들 도처에서 분명하게 말하듯, 그에게는 결코 어떤 분열된 교회를 새로 세울 의도가 없었다. 온 세계에 '보편성'을 갖고 있던 그리스도의 몸에서 또 다른 몸을 분리하여 '루터파'를 세우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의 포부는 자신도 그중 한 지체였던 한 몸 된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상과 소명을 내부로부터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이 자신을 '루터파 신자로 부를 것이라는 생각은 루터에겐 단지 저주일 뿐이었다.

 

결코 내가 누군가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다! 하잘 것 없고 비천한 죽은 몸뚱아리뿐인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자녀들을 하찮은 나의 이름이 붙은 명칭으로 부르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릴 수 없다! 결코 그럴 수 없다! 절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나의 벗들이여, 우리가 견고하게 붙들고 있는 가르침들을 주신 그분의 이름을 좇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자.

 

종교개혁의 영성은 다른 것이 아닌 기독교 영성 그 자체이며, 대장간에서 고철을 불에 녹이고 달구어 두들기고 담금질한 다음 새로운 모양의 쇳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과정 곧 단련(鍛鍊)이라는 과정을 거쳐, 당시 서구 문화의 새 시대가 제기하는 요구들에 적합한 새로운 양식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기독교가 근대 유럽에서도 그 생명력을 계속 유지하고자 했다면, 이러한 단련은 절박한 요구였다. 중세 시대에, 저물어가는 중세 세계와 기독교가 점점 더 강고(强固)하게 결합될수록 오히려 접점 평범한 민중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에른스트 커티어스(Ernst Curtius)는 우리가 '중세 기독교' 또는 '중세의 영성'으로 일컫는 대부분이 실제로는 그 성격과 기원으로 보아 사실상 모두 수도원 기독교 또는 수도원 영성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간과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던 학자다. 역사적 실증주의는, 슬프게도 중세의 이런 영성 양식들이 수도원 바깥에는 지극히 제한된 영향만을 끼쳤으며, 심지어 성직자들에게도 그리하였다는 점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사실상 모든 영역에 걸쳐, 수도원 안에서 자라던 풍부한 영성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못했다. 수도원 영성은 수도원이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형성된 것이었기에, 보통사람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삶의 방식과 외관이 그려졌다. 종교개혁과 더불어 유럽의 대도시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사고와 행동 방식의 요람이요 그것이 녹아든 도가니로 등장하면서, 영성이 형성되는 중심은 차츰차츰 수도원으로부터 시장터로 옮겨 갔다.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과 그 상황들이 철저히 고려되면서, 영성 면에서 새로운 생활양식들이 창조되었다.

이런 추이를 들여다보면 근대 서구 문화의 형성 과정에서 그 중심에 자리한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종교적인 변화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의 영성은 그 출발부터 어떤 미래를 함축하는 사상을 대변하고 있었으며, 근대 서구 사회에서 등장하던 요구들과 어떤 높은 상관계수로 연결되어 있었다. 중세의 쇠퇴는 어쩔 수 없이 중세의 영성 양식들이 갖고 있던 잠재력의 감퇴를 동반하였는데, 이것들은 특별히 중세의 사상 및 제도들과 광범위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낡은 종교는 새 시대가 유례없이 압력을 가하며 제기해 오는 도전들을 감당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이 새 시대의 상황과 생활 방식에 연결시키려고 이루어진 하나의 끊임없는 시도였다. 종교개혁의 영성은 기독교 전통에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그것을 '고전'이라고 묘사하는 것이 온당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발전해 가던 새로운 상황들이 던지는 질문에 충분히 답할 수 있었기에 '근대' 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고전과 근대를 뒤섞음으로써, 종교개혁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전달하기에 적절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 점은 더 상세하게 고찰할 만한 내용이다.

 

기독교의 정체성을 다시 자각하다

 

종교개혁은, 그 근본을 놓고 본다면, 기독교의 정체성과 순전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였다. 사실, 기독교회는 늘 관성(inertia)에 기울어지곤 한다. 여기서 말하는 관성이란 교회에서의 삶과 사유(思惟) 속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변함없이 선하다고 주장하는 어떤 뿌리 깊은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곧, 현재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거나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하여 제기되는 어떠한 비판적인 입장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말한다. 발전에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에 도전하는 것을 싫어하는 어떤 경향이다.

바로 여기서 종교개혁은 근본을 뒤흔드는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며, 그 기여는 오늘날도 '프로테스탄트 원리'로 알려져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종교개혁과 그 유산에 자양분을 공급한 가장 심오하고 강력한 원천은 창조성으로 충만한 저항 정신, 그리고 선지자들의 그것과 같은 비판정신이었다. 창조성이 넘쳐나면서도 비판 정신이 살아 있는 이 원리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역동적으로 이해하며, 이 계시에 비추어 기독교회를 다시 성찰하고 갱신하도록 그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소명에 기초하고 있다. 고전적 복음주의 영성은 신앙 공동체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곧 자신의 사상, 제도 그리고 행위들을- 이 계시에 비추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며, 이는 결국 성경으로부터 그 양분을 공급받아 이루어지는 회복, 갱신 그리고 개혁이라는 하나의 독특한 전형(典型)을 낳게 된다. 그런 전형은 제일 먼저 종교개혁, 바로 그것이 일어났던 그 시기에 뚜렷이 나타나게 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자신을 개혁하는 교회이어야 한다'는 종교개혁 표어로부터 우리는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종교개혁은 하나의 일회성 사건으로 이제는 과거 속에 깊이 파묻혀 버린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하나의 과정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종교개혁의 영성을 연구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리스도인이 모든 차원에서 - 우리가 영성이라 부르는 신앙과 삶의 공유영역에서 -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끊임없이 묻게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중세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어떠한 의문도 없이 일어난 진전들에 대하여 때늦은, 그러기에 상처투성이였던,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역사는 돌이킬 수 없다는 관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세 교회가 나아갈 방향과 존재 이유를 잃어버렸다고 확신함으로써 기독교의 순전성을 추구하려 했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뿌리를 추구했기에, 뿌리를 잊은 공동체는 이 세상에서 존재할 이유를 망각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단순히 1세기 지중해 동안(東岸)의 세계를 16세기 서유럽에 옮겨 심으려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사건들과 현재와 연관을 맺게 할 과거의 판단 기준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종교개혁의 신학과 영성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과거의 자원이 현재와 연관된 생명력을 가진다는 취지의 내용이 될 것이다. 과거로 돌아감으로써, 사람들은 선택 가능한 방안들과 여러 가능성들을 인식하게 되며, 영감으로 가득찬 이상을 잠간이나마 볼 수 있게 되어,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확신과 자각을 갖고 미래를 대면하게 된다.

그러기에 종교개혁의 영성을 연구한다 함은 몇몇 분파들의 시각들에 미리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다. 또 교회의 연합을 지향하는 이 시대에, 기독교 역사의 한 분열 시대를 향하여 건전하지 못한 관심을 기울이려는 것도 아니다 (가톨릭 계열의 저술가들이 종교개혁의 신학과 영성의 가치를 점점 더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를 충분히 뒷받침한다). 오히려 이는 서구 기독교회 역사에서 형성과 창조의 중요한 시대와 오늘날 우리의 사고가 서로 부딪치게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에서, 종교개혁이 설파한 사상은 우리의 사상과 다르다. 때때로 그 개혁이 내건 전제들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창조성이 흘러넘치는 과거와의 대화가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신학의 성숙을 증명하는 표지는 과거의 유산이 제기하는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사상과 행태 그리고 가치가 어떤 경우에도 과거보다는 낫다고 자연스레 생각하는 경향에 의문을 제기해야한다. 종교개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급해 줄 자원이 많다. 단지 1990년에 등장했기 때문에 1540년에 등장한 사상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은 자신을 복음주의자로 간주하는 현대 교회의 지체들과 특별하게 연관되어 있다. 개신교(Pmtestantism)는 현대에 하나의 주요한 종교 세력으로 계속 그 세()가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 (Protesant)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이상 명확하지 않다. 대체 '개신교'란 무엇인가? 어떻게 그 정체성을 자각하고 목적의식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다른 기독교 전통들에는 없는, 개신교가 계속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을 개신교 전통 안에 선 사람으로 간주하는 이들은 누구든지 프로테스탄트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금 발견해야 한다.

어딘가에 도달하려 할 때, 어디로부터 출발했는지 아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전 세대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었던 통찰들을 되찾아 그 가치를 평가하고, 나아가 그것들을 우리의 사고에 통합하여 끼워 넣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개혁은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의 사유 방식과 행동 방식의 기원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개신교 같은 운동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는 쉽사리 잊혀질 수 있다. 후기 개신교는 초기 종교개혁이 가지고 있었던 신선함, 생명력 그리고 성경 실증주의에 자주 손상을 가한 일련의 과정들을 보아왔다. 종교개혁으로 돌아가는 것은 후기 정통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복음주의의 순진성, 창조성, 신선함 그리고 활력을 다시 되찾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후기 개신교라는 틀 안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안겨주는 탁월한 능력이 있으며, 나아가 그들에게 조용히 도전장을 내밀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거기에 활력을 불어넣게 한다. 칼 바르트(Karl Barth,1886-1968)와 위르겐 몰트만(rurgen Moltmann,1926-)은 개신교 전통 안에 선 현대 저술가들로서, 초기 개신교의 사상으로부터 심오하고 확실한 영향을 받은 뚜렷한 본보기다.

그러기에 종교개혁 영성을 연구하면 개신교 전통의 근본 사상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복음주의가 나온 반석을 살펴보고, 복음주의의 정체성과 목적을 다시 자각하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문제들과 기회들을 조망하는 역사의 어떤 참고 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근래에 전 세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 안에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그들에게 전달되었던 복음주의의 유산으로 돌아가려는 욕구가 많이 자라나고 있다.

자신에게 생명력을 부여한 원천을 무시한다면 그 뿌리가 사라지게 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영성과 신학을 연구하면 개신교를 견고히 해주는 종교적 전통과 책임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영성은 종교개혁과 어떠한 양식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다음 장에서는 이 고전적 복음주의 영성의 기본적인 특징을 그려보겠다.

 

 

  ref1_종교개혁 영성의 생명력.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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