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영성의 기본 원리들

 

Roots That Refresh, Alister McGrath, 종교개혁시대의 영성,

박규태 (서울: 좋은 씨앗, 2005), pp. 39-78.

 

 

종교개혁은 복음주의 영성의 고전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 기독교는 살아 숨쉬는 대안으로 여전히 이를 인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종교개혁 영성의 거대한 잠재력을 탐구하려면 그 기본적인 특징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첫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는 종교개혁 시기에 서서히 그 모습을 갖추어 등장하였던 영성의 여러 접근들에 대해 간략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개관을 제시하겠다.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이 주제에 접근했다. 첫째는 종교개혁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던 특징들이고, 둘째는 개혁자들이 제 자리에 놓으려 했던 특징들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다루기에 앞서, '영성 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고찰해도 좋을 것이다.

 

 

영성의 본질

 

기본적인 의미에서, '영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지 그 사상만이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개개인과 공동체의 삶에서 눈앞에 드러나게 한 방식을 가리킨다. 영성은 사상과 삶, 신학과 인간 실존의 공존을 보여준다. 종교개혁자들에게 영성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당신의 인격을 드러내시며 보이신 행위에 대하여 신자들이 각자 그리고 함께 반응하는 것과 관련되었으며, 사실상 삶의 모든 면을 아울렀다.

나아가 종교개혁 영성은 종교개혁의 신학과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영성은 저 심층(深層)에 자리 잡은 신학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올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풍성한 양분을 섭취하는 것으로, 그 기독교 신학이 구체성을 띠면서 현실 속에 드러내 보이는 표현이 바로 영성으로 간주되고 있다. 종교개혁 영성을, 단지 우리가 실천할 일들을 적어 놓은 목록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핵심에서 너무나 빗나간 일이다. 이 영성을 밑받침하는 것으로 신학이 제시하는 토대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종교개혁 영성이 지닌 가치를 음미하고 그것을 우리가 사는 이 시기, 나아가 이 시대에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에게는 '종교개혁 영성'이라는 바로 그 문구가 어려움을 일으킨다. 개신교 전통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영성'이라는 말 앞에서 멈칫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역사 속에서 '영성'이 가톨릭의 종교 생활양식과 특별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언어는 그 뜻이 변하기 마련이다. '영성'도 가톨릭교와 맺고 있던 특별한 유대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개신교 전통 안에서 채택되는 경우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영성'은 종교개혁에서 유래하여 향취(香臭)를 물씬 풍겼던 개신교 전통의 용어들을 점차 대체하기 시작했다. 각각의 단어가 그 의미와 쓰임새에서 찬란한 역사를 함축해온 '헌신'(devotion), '경건'(godliness), '거룩' (holiness) 그리고 '신앙심'(piety)이라는 말들이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들 용어들이 '영성'으로 대치된 것은, 개신교 신자들과 가톨릭교도들 사이에 어느 정도 훈풍(薰風)이 불고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차원을 가리지 않고, 이 용어(영성)를 사용하는 데 더 이상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많은 가톨릭 신자들 역시 개신교의 영성 전통이 가진 풍성한 자원들을 끌어다 쓰는 데 갈등이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시고 당신의 권위로 인정하신 신앙의 방도(方途)를 끈질기게 탐색하는 작업은 역사의 물결을 따라 왕성하게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하여 일말의 근심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영성'이라는 용어가 역사 속에서 그것이 갖고 있는 관계 안에서 연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이 내세우는 전제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근심하는 이유는 바로 그 '영성'이라는 단어가 영에 속한 것과 육에 속한 것, 영혼과 육체, 묵상과 일상생활의 과격한 분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 '영성'의 주제는 평범한 일상이 가져오는 정신의 산만함에서 벗어나 영혼의 내면을 살찌워간다는 의미처럼 보인다. 정작 개신교 전통에서 더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던 언어들은 그것이 갖고 있던 중심 모습, 곧 신앙과 일상의 삶이 완전히 통합되는 모습을 더욱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다.

만일 우리가 바울이 진정 품었고, 루터 역시 충실하게 바울을 따라 외쳤던 생각을 되찾는다면, 신앙과 일상의 삶이 분리되는 것으로 영성을 이해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영적이다'(spiritual)는 것을 속세에서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지향하는 생명'이라고 주장했다.

근본 의미로 보면, 영성은 '영에 속한(영적인) 사람 (pneumatikos anthropos)을 빛어내어, 그에게 능력을 붓고 나아가 그를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바울은 바로 이 '영에 속한 사람 - 이 세상에 살며 세상의 요구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사람 - 이 믿음의 삶에 근원적인 충격을 준다고 권면한다(고전 2:14-15, 개역개정한글판15절의 'spiritual''신령한 자'라고 번역하였다- 역주). 복음주의 전통의 핵심 관심사 - 곧 성경과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들로부터 풍성한 앙분을 공급받았던 관심사 - 가 이 땅에서 그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을 그려내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복음주의 전통 안에서 '영성'의 참된 의미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전에 하나의 난점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종교개혁 영성'이란 말에 호소하는 것이 자칫 종교개혁과 연계되어있는 삶을 한정되고 좁은 시각으로 내다보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개혁은 여러 양상이 함께 나타난 운동이었다. (단지 몇 가지 점만 지적한다 할지라도) 개혁이 일어났던 문화, 사회 그리고 종교 상황의 차이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자들이 받았던 교육과 그들의 개성 사이에 존재하였던 차이점들도 반영하고 있다. (저자)의 연구서인 (유럽의 종교개혁을 낳은 지성의 원천) (The Intellectual Origins of the European Reformation, 1987)에서, 나는 신학 방법론에 관한 특정 쟁점들을 둘러싸고 종교개혁 내부에서 발견될 수 있는 다양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예를 들면, 루터는 성경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과 연관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츠빙글리는 성경이 담고 있는 순종에의 요구에 강조점을 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어떤 사항들에서는 내부에서도 신학의 커다란 차이를 낳기도 했는데, 성찬을 둘러싸고 루터와 츠빙글리가 펼쳤던 논쟁에서 그런 차이는 정점에 이른다. 이 책을 쓰면서 서로 다른 선택 방안들과 접근들이 독자들에게 유용하게끔 노력하였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내부에는 나로 하여금 수많은 주요 쟁점들에 관하여 그 운동이 갖고 있는 전망을 개괄할 수 있도록 하는 충분한 일관성과 수렴성(收斂性)이 널리 존재하고 있다.

 

사이비(似而非) 영성 형식들에 대한 비판

 

신령한 것을 가르친다고 할 때, 특별히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에 중심을 두게 되면서, 종교개혁자들은 그것을 성직자의 권위, 수도원 생활 그리고 면죄부와 같은 의문투성이의 행태 및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중세의 가톨릭 전통 안에서, 신령한(영에 속한) 일을 가르치는 자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권위를 내세우는 성직자로 간주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모든 신자가 성직자라는 루터의 교리(만인 제사장론)는 성직에 대한 이런 인식을 비판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제사장(성직자)으로 세움을 받았다. 설령 복음서에 기록된 사역자들이 어떤 명칭으로 불리웠다 해도, 그들과 평범한 신자들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어떤 구별이나 차이도 없었다.

중세의 가톨릭교는 '영적인 지위' (spiritual estate) (, 그들이 사제, 주교 그리고 교황이든 상관없이, 모든 성직자 계급을 가리키는 말)'세속적인 지위' (temporal estate) (성직자 계급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사이에 근본적으로 구분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루터는 이 구분이 이미 폐기된 것으로 무효이며, 그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해 낸 것에 불과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독일 귀족들에게 호소함) (Appeal to the German Nobility, 1520)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진정 신령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며, 따라서 직무가 다를 뿐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12-13절에서, 우리가 모두 각 지체가 갖고 있는 그 나름의 직무(역할)를 통해 다른 지체들을 섬기고 있는 한 몸임을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하나의 세례, 하나의 복음 그리고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세례, 복음 그리고 믿음만이 우리를 신령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평범한 사람들과 성직자들, 제왕들과 주교들, 수도원에 사는 사람들과 속세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근원적으로 결코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차이는 그 지위가 아니라, 그들이 수행하는 직무 및 사역과 관련된 것이다.

 

교회 안에서 전문 계급에 속한 어떤 이들이 그렇지 않은 형제들보다

하나님과 더 친밀하고 신령한 유대를 맺고 있다고 하는 그 어떤 사상도 기독교 안에서 발견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실제로 성직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허용될 수는 없었다. 이 점에 대하여 칼빈이 지적하듯이, '올바른 지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사람을 말씀을 전하는 일과 성례를 집행하는 일에 동등한 자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곧 모든 일이 그 일에 알맞은 모양으로 질서를 따라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며, 아울러 그리스도가 부어주신 특별한 은혜를 힘입어 목사들이 그 목적을 위해 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루터가 천명한 근본 원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동등한 지위(Stand)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들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그들 각자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사와 능력을 따라 각기 다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사는 그의 형제인 그리스토인들과 나란히 선 채 하나님 앞에서 그 지위를 공유하지만, 그의 형제들인 신자들은 목사가 그들 가운데 서서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직간접으로 그를 청빙한 것이다. 모든 신자가 동둥함을 인정하는 것이 곧, 모든 신자가 동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루터는 그의 논문 (성직에 대하여) (Concerning the Ministry, 1523)에서, 모든 신자들이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함께 갖고 있다고 논증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이 곧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들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직자(목사)의 선정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의 지체들이 함께 모여 각각 지체이면서도 한 몸을 이루는 그들 위에 성령의 인도를 간구해야 한다. 이후 그들은 성직자를 선택하고, 이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성직자의 직무와 사역을 감당하도록 이전에 이미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 그 신앙 공동체에 천거된다. 그러나 이것이 곧, 선택된 사람의 지위에 영구히 지속될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 공동체는 이후에도 이미 뽑힌 사람 외에 이런 일을 수행할 사람을 추가로 또는 이미 뽑힌 사람을 바꾸어 선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직자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직무 수행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동의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영적인 것을 가르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든지, 또는 교회 안에서 어떤 우월한 지위를 지녔다는 생각, 아니면 형제들로부터 그를 따로 떼어놓는 어떤 독특한 관계를 하나님과 맺고 있다는 생각이 모두 철저하게 거부되고 있다. 영에 속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사람들과 같은 대열에 나란히 서서, 그들의 환경과 지위를 공유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공동체와 그 안에 있는 개인들은 하나님께서 몇몇 사람들에게 특별한은사들, 이를테면 영분별과 지혜와 같은 은사들을 주셨다고 인정하면서, 이 은사들이 공둥체에서 행사되도록 한다. 그리함으로써 신령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은 어떤 우월한 인물이라기보다 영혼의 형제 내지 동지(同志)로 간주되는 것이다.

많은 점에서, 루터의 접근법은 수도원 영성이 잃어버렸던 이상(理想)들을 다시 찾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도원 운동은 교회 안의 영적인 권위에서 평신도를 엄격하게 배척했던 데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4-5세기의 수도원 운동은 영성과 영적 권위의 문제에서 평신도를 소외시킨 것에 반발하여 일어난 하나의 저항 운동이었다. 하나님께서 평범한 그리스도인을 불러 세우신다는 사도들의 사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점점 더 중앙으로 집중되던 제도권 교회의 성직 위계 제도를 따르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수사(修士, monk)였다. 수사는 자신의 존재를 통하여 초기 교회의 성직자들 사이에 점점 자라나고 있던 권위주의에 맞서 조용히 저항하던 이들이다. 이집트의 안토니오스(Anthony), 어쩌면 그런 수사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평신도로 남아 있었다.

나일 삼각주에 자리한 알렉산드리아의 동남쪽에 있었던 위대한 수도원 공동체인 니트리아(Nitria)의 경우는, 4세기에 그 안에 5천 명의 수사들이 있었지만 성직자는 겨우 8명뿐이었다. 8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평신도들 - 아마도 성직자 제도에 반대하던 평신도들이었을 것이다 - 이었으며, 교회가 새로운 조직체로 발전해가면서 각 평신도들의 영적인 삶과 요구들은 정작 간과되고 있다고 확신하던 이들이었다. 카르타고(Carthage)의 키푸리아누스(Cyprian), 교회를 감독(주교), 사제들 그리고 부제(副祭)(deacons)이 다스리는 곳으로 제국과 유사한 하나의 제도로 생각하였을 때에, 초기 수도원 운동에서는 하나님께서 평범한 신자들을 불러 세우신다는 통찰이 그 밑바닥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통찰이 중세 시대가 흘러가는 동안에 사라져 버린 것은, 점점 더 변질되어 가던 수사서임(修士敍任)이 적잖은 부분에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평신도를 불러 세우신다는 사상은, 신학의 차원에서는 모든 신자들이 성직자라는 교리(만인제사장론)로 표명되면서, 초기 수도원 영성이 품었던 이상을 되찾기 위해 종교개혁이 회복하려던 것이었다.

두 번째 접근은 영적 지도자(spiritual director)의 직무에 대한 이해에 집중되었다. 루터는 1520년에 펴낸 저서 <바빌론의 포로가 된 기독교회>(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ristian Church)에서, 성직자의 직무가 갖는 본질을 그릇되게 이해한 것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는 세례를 예로 든다. 세례 장소, 세례를 베풀 권능 그리고 세례의 목적은 성직자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에 그 기초가 있는 것이다. 어던 일이든지 그 일을 이루는 이는 성직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성직자의 직무는 자신 안에서 도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하는 것이지, 결코 자신의 권리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에서든, 성직자는 매개일 뿐, 그 일을 행하는 주체가 아니다. (이로서 루터는 세례뿐만 아니라 성찬에 대하여 중세에 널리 퍼졌던 견해, 곧 성찬은 그 집례자의 인간 됨됨이와 공로로 말미암아 그 효력을 획득한다는 견해에도 저항하고 있다)

중세 후기에는 영적 지도(spiritual direction)에 비슷한 오해가 추가 되었다. 종교개혁 직전만 해도, 영혼이 성장하는 것은 영적인 지도자가 스스로 이뤄낸 것 때문으로 여겨졌다. 영적인 가르침의 효력은 지도자의 됨됨이와 공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접근법이 영혼의 성장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할을 폄하(貶下)하고 나아가 영적지도자의 사람 됨됨이를 숭배하는 풍토를 가져왔기 때문에 근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신앙의 성숙을 이루시는

영적인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런 통찰로 말미암아 영적 지도는 그 본래의 위치를 되찾게 된다. 그것은 영적인 가르침에 배재하지 않는다. 종교개혁자들은 영적인 지도(가르침)라는 직무가 전문적으로 고착되어 가고, 기독교 영성이 희미해지거나 나아가 어떤 소명의식 -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지도자(director)로 부름 받았다는 자각 - 마저 실종되는 풍토 속에서, 기독교 영성이 가진 순전한 요소를 가진 사람들이다.

여하튼 종교개혁 시기 이후 그 기본 쟁점은 수긍이 가도록 잘 마무리 되었다. 영혼의 성장이라는 과정을 자신의 모습대로 문하생들을 빚어가는 장인(匠人)의 작업 과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 존재하였지만, 신뢰할 만한 기독교 영성지도란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모두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말씀에 응답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그 기초다. 성장과 성숙을 가져오는 이는 하나님이시지, 결코 지도자가 아니다. 틸튼 에드워즈(Tilden edwards)는 그의 저서 <영혼의 벗>(Spiritual Frend)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 영혼의 벗이 된다는 것은 곧 다친 사람에게 의사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상처에 피를 흘리며 찾아왔을 때 의사는 무엇을 하는가? 세 가지가 있다. 그는 우선 상처를 깨끗이 닦아내고, 어긋난 부분들을 바로 맞추며, 그리고 쉬게 한다. 그것이 전부다. 의사가 상처를 치유하지는 않는다. 의사는 자신의 치료 행위보다 우선하는 자연적 치료 과정이 적절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어떤 환경만을 제공할 뿐이다. 의사는 치료자라기보다 해산을 돕는 산파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도자는, 믿음을 창조하시고 자라게 하시며 견고한 터 위에 서 있게 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알기에, 신앙이 자라는 데 충분한 자양분이 잘 공급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종교개혁 영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이제 신뢰할 만한기독교 영성 지도가 낳은 열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은 이렇게 신뢰할 수 있는 지반(地盤)을 마련했다. 중세 후기의 몇몇 저술가들이 보여 주었던 영성에 대한 순전치 않고 신뢰할 수 없는 견해들은 한 쪽으로 밀려났다. 종교개혁의 문턱에 도달하기 직전, 짓눌린 채 숨조차 내쉬지 못하던 중세 후기의 순전한 영성을 되찾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 닦인 것이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단지 옛 사상을 되찾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와 더불어 종교개혁은, 우리가 지금 근세 초기라고 부르는 새 시대가 제시한 요구들과 기회들에 부응하여, 영성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접근법들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종교개혁 사상에서 신학자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살펴봄으로써 그려낼 수 있다.

중세 시대에 신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앙 공동체로부터 자주 고립되었다. 그들은 보통,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처럼 유럽의 장엄한 수도원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들은 수도원 생활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으며, 일단 글을 쓰게 되면 동료 수사들을 청중으로 삼았다. 이런 정황을 벗어나 활동했던 중세의 신학자를 찾기란 드물다. 하지만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경우처럼, 그 시대의 신학자가 모두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닌 점이 다행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신학자들은 그들이 섬겨야 할 공동체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신학자들은 더욱 전문직업인으로 변해가면서, 대학 신학부라는 울타리 안에 갇힌 채, 상아탑 안에 안주한다고 비난받는다. 신학자가 하나의 직업으로 바뀌어가면서 그들을 신앙공동체 내부로부터 배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세속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신앙과 학문을 추구하는 삶 사이에 괴리가 나타났고, 전문직업인으로 학문을 추구하게 된 신학자들은 더 이상 교회가 말하는 삶에 충실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신학의 역할에 대하여 결코 만족스럽지 않은 이 두 접근 사이의 틈을 종교개혁이 메워주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유럽의 도시에 삶의 기반을 두고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면서 공동체와 함께 신앙을 나누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수도원이나 대학에서 고립되어 살지 않았다. 그들의 사명은 자신이 존재하던 실제상황에 비추어 복음을 해석하고 그것을 거기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들은 평범한 이들의 삶과 연관된 것이었다.

어쩌면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얘기하자면 15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루터는 너무나 중요한, 마치 한편의 연극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는 순전히 학문만을 추구하며 그러한 주제들을 발표하고 연설하는 개혁자이기를 포기하고, 독일 민중들이 종교를 향하여 품고 있던 소망과 믿음을 상대로 열정을 다 바쳐 직접 호소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루터는 한 사람의 설교자이자 동시에 목사가 되었으며, 그가 목회에 기울인 관심과 경험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신학 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루터는 신약 성경이 기독교 공동체의 삶과 생생하면서도 끊임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하였다(종교개혁 시대의 신학자들과 현대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신약 성경을 다루는 방식 사이에는 엄정하고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여기에 하나의 순수한 목회 신학이 있으니, 그것은 평범한 신자들, 나아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관심사를 향해 말문을 여는 신학이다.

이와 비슷하게 칼빈의 저작 전체에서도, 제네바 시에서 펼쳐지는 매일의 삶이라는 실제 세계, 나아가 거기서 비롯된 모든 문제들과 가능성들에 몰두하기로 결심한 것을 발견한다. 칼빈은 라인흘드 니버(Reint old Niebuhr)1920년대 디트로이트 도심에서 얻었던 교훈들을 배운 것처럼 보인다. 니버는 그의 저작 (어느 무기력한 냉소자가 쓴 단편들) (Leaves from the Notebook of a Tamed Cynic)에서 이렇게 썼다.

 

만일 어떤 목사가 사람들 사이에 함께 선 사람이 되려 한다면, 그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는 모두가 이론으로는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실제 삶에서는 부인하고 있는 뜬구름 같은 막연한 이상들에 헌신하는 것을 그만 두는 것이며, 나아가 그가 지금 살고 있는 문명 속에서 사람들이 대면하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그 사상이 유효하며 실용성이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그의 목회에 조금이나마 현실감과 능력이 주어진다.

 

이런 전형(典型)은 칼빈이 영성과 설교를 화두로 삼아 쓴 저작들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칼빈은 인간들의 삶의 정황들 -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면에서 - 을 앞에 놓고, 여기에 동반하는 모든 위험을 감내하면서 말하고 있다. 이는 어떤 막연한 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섬기는 민중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그 삶의 정황에 비추어 복음을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칼빈은 그가 설교하였던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예배하고 설교하였다. 그는 공동체의 지체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들 위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공동체가 가진 문제들을 함께 하며, 그 공동체 내부로부터 나온 글을 썼다. 여기에는 천상(天上)에서 바로 떨어진 신학은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한 공동체 안에서, 그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들, 가능성들 그리고 열망들과 더불어 태어난 신학이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정황과 연관성이 있으면서 호소력을 갖고 있는 모델이 바로 여기 있지 않는가? 평범한 기독교 신자들은 신학자들이 자신들과 얼마나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지 촌평(寸評)하곤 한다. '그들은 너무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 같아요.' '도대체 매일매일 벌어지는 삶의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않아요.' '그 신학자들은 우리 평범한 신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우리는 그 사람들이 뭘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미국에서 연구하는 동안, 심지어 저자는 북미(北美)의 이름깨나 있는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자들에 대해 이렇게 비판하는 소리도 들었다. '이 친구들은 심지어 교회도 안 간다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 친구들 말을 귀담아 들을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어?' 목회에 적합한 모델을 이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다고? 꿈 깨게?

요컨대 학문성만을 추구하는 상아탑 신학(academic theology)은 대중들로부터 혹평을 받고 있다. 이런 촌평들은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많은데, 학문의 장(academy)과 교회 사이에 벌어져 있는 커다란 간격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독교 전통 속에서 탁월하게 적용시킨 종교개혁이라는 모델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신학자는 공동체 내에서 활동하며 그 공동체의 요구와 관심사를 표명한다. (동방 정교회는 신학자를 올바르게 기도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 신학자는 신앙공동체를 내부로부터 섬기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그 공동체의 사상과 겉모습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내용과 약속들에 기초하여 사랑과 돌봄의 표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한 공동체를 비판한다는 것은 그 공동체를 향하여 충실하게 마음과 몸을 쏟고 있다는 하나의 표지(標識)요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영성을 연구하는 것은 다른 행동 방식, 다른 문제 접근 방식 그리고 기독교가 천명한 것이 현재의 정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에 관해 눈을 뜨는 것이며, 그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자극제요 촉매제로 사용된다. 온갖 발상들이 모여드는 장()에 종교개혁 영성이라는 새로운 생각들이 가득 들어찼다고 간주해보라. 그것은 이제 우리가 처분할 재량을 가진 하나의 자원이다. 이로써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영성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특징들을 더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종교개혁 영성의 특징들 구분하기

종교개혁 영성의 기초를 이루는 네 개의 주요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그 영성의 기초는 성경 연구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풍성한 양분을 공급받았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는, 개혁자들의 신학 방식에서 너무도 주요한 명제였기, 그들의 영성에서도 역시 뚜렷하게 나타난다. 성경은 기독교 신앙을 낳고 자라게 하는 수단으로,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그 권위를 부여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종교개혁을 이뤗던 인물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데 집중한 사람들이었다. 16세기 초에 프랑스 복음주의자들을 이끌던 인물들 가운데 하나인 나바르의 마거리트(Marguenite de Navarre)는 바로 그런 과정을 거쳐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이해하고 체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여성은 파리대학교의 학생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었다. 15331011 학생들이 공연한 희극(喜劇) 속에서 이 여성은 성경을 읽고 정신이 나간 가정주부로 묘사되었다. (칼빈 자신의 손으로 이 사건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기록이 있다.)

종교개혁 영성이 성경을 그 중심으로 삼았다는 것은 개혁자들의 문헌 자료들 속에서 발견된다. 그 자료들 가운데 다음의 세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1) 성경 주석.

이를 읽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독하고 이해하도록, 어려운 문구들을 설명하고 중요한 접들을 확인하면서, 나아가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 구절이 제시하는 관심사들에 친숙해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칼빈, 루터, 멜란히톤(Melanchthon) 그리고 츠빙글리와 같은 저술가들은, 학자건 필부(匹夫)건 가릴 것 없이 다양한 독자들을 염두에 둔 주석들을 써냈다.

 

2) 강해 설교.

성경 본문의 지평(horizon)과 그 본문을 저는 사람들의 지평을 융합하여, 성경 구절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원리들을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정황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했던 설교들이 그 본보기이다. 성구집(聖句集)에서 끌어낸 구절이나 설교자가 골라낸 구절들을 놓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한 책 전체를 계속하여 설교하는 연속 설교(lectio continua)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칼빈이다. 예를 들면 칼빈은 성경에 있는 오직 하나의 책, 곧 신명기를 놓고 1555320일부터 1556715일까지, 200회의 설교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성경 신학을 다룬 작품들.

이를테면 칼빈의 (기독교강요) 같은 책들은 신학적 차원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것들을 모아 통합된 명제들로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성경을 일관성 있게 보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모순 없는 하나의 세계관을 수립하여 매일의 삶을 단단히 묶을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역사가인 피에르 앵바흐 드 라 투르(Pierre Imbart de La Tour)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칼빈이 만든 첫 작품은 하나의 책, (기독교강요)였고, 두 번째 작품은 하나의 도시, 곧 제네바였다. 책과 도시가 서로 보완하고 있다. 하나는 공식화된 교리요, 다른 하나는 적용된 교리였다.' 다른 종교개혁자들처럼 칼빈의 경우도, 성경이 교리를 빛어 내었고 그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현실을 만들어내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 영성은 먼저는 성경 중심이며, 다음은 교리 중심이다.

 

이 세 가지 중요한 문헌 자료들을 통하여 개혁자들은 이를 읽는 사람들 내면에 성경에 중심으로 둔 인생관을 깨우쳐 주려고 노력했다. 이런 보조물들은 성경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할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칼빈의 말처럼, '우리는 성경이 말한 곳에서 말하고,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한다.' 그들 모두에게 중심이 되었던 근본 가정은, 독자들이 성경 본문에 다가가면 그 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리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종교개혁 전통에 공감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를 비판하는 자들까지 '오직 성경' 이라는 성경 원리를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두 가지 특별한 오해를 살펴보자. 첫째, 종교개혁이 성경의 우선성을 강조하였지만, 교회가 함께 뜻을 모아내린 판단 위에 개인의 의견이 자리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둘째, 성경의 우선성이 곧 영성과 신학을 다룬 자료들을 변두리로 밀어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종교개혁 당시 과격파로 알려져 있는 많은 저슬가들 - 이들은 아직도 자주 '재세례()' (Anabaptism)로 불린다 - 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식을 좇아 성경을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권리는 그리스도인에게 근본적인 자유로 간주되었으며, 이는 이 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던 평등주의(egalitarianism, 경제, 정치 그리고 종교의 평등)를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의 주류 세력은 성경에 대해 개인이 내린 해석과 공동체가 내린 해석 사이의 관계를 논하면서 너무도 다른 접근법을 채택하였다. 이론적으로는 교회도 여러 부분에서 성경을 오해할 수 있다. -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사실 교회는 그런 오해를 하였다 - 는 점을 인정하면서, 개혁자들은 각 사람들이 교회가 해석한 것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비록 교회가 받아들인 교리와 영성의 전통이라 할지라도 그 전통의 정당성이 성경에 비추어 끊임없이 반추되고 검증되어야만 했다. 루터는 이신칭의((以神稱義)를 가르치면서, 중세 교회가 신약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벗어났으며 그 결과 교회의 이런 가르침은 성경의 토대에 비추어 다시 올바른 위치에 놓여져야 한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츠빙글리는 성찬과 관련하여, 칼빈은 교회론과 관련하여 비슷한 논지들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de novo) 시작할 의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미 있던 교리와 영성을 거듭 되풀이하거나 어떤 새로운 교리와 영성의 전통을 세운 사람들로 비춰지길 원치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을 이미 존재하는 전통의 가치를 비판적으로 재음미하여 그 전통들을 개혁하고 갱신하는 사람들로 간주했는데, 이런 작업들은 성경에 비추어 필요한 일이었다. 중세의 신학이 전통을 성경으로부터 독립된 또 하나의 계시의 원천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 전통이 성경을 읽는 어떤 특정한 방식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점점 증가했다. 전통은 대대로 내려온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을 말한다. 개혁자들은 성경을 읽는 이러한 방식이 사실은 성경 그 자체에 충실한 것이었음을 확실히 했다.

두 번째로,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의 우선성을 철저하게 강조했을지라도 그들은 그로 인해 기독교 전통을 다룬 신학 저작들을 읽거나 그 가치를 평가하는 일에 방해받지 않았다. 성경은 그들의 사상에서 무게 중심이었지만, 이로 인해 읽을 책의 범주가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성경과 모순됨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다른 저작들 역시 그 가치가 인정되었다. 때문에 루터와 칼빈 두 사람 모두 빈번하게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를 향한 그들의 존경심을 기록으로 남겼고, 저작 속에서 그를 자주 언급하였으며 나아가 그의 사상을 자유롭게 원용함으로써 이런 존경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루터는 15세기의 저술가인 가브리엘 비엘(Gabriel Biel)의 글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에 대해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루터는 그의 사상 대부분을 성경에서 심각하게 벗어난 것으로 간주하였다. 개혁자들은 신학 저술들을 널리 칭찬하고 선용하였고, 그것들은 성경 해석에서 신빙성과 신뢰성을 갖게 했다.

그리하였기에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교리와 영성이 성경과 어긋나지 않는 한, 그것들과 다투지 않았다. 하나는 신학, 하나는 실천에 관련하여 이를 보여주는 두 가지 예를 언급할 수 있다. 엄격히 말해, 삼위일체 교리가 성경 안에 명시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성경과 철두철미하게 일치하며, 성경으로부터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주저 없이 이 교리를 성경에 합치하는 순전한 기독교 교리로 인정하였다. 마찬가지로, 유아 세례 역시 성경이 분명하게 인정하거나 시인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루터, 칼빈 그리고 츠빙글리는 유아 세례가 성경에 완전히 합치할 뿐만아니라,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가치가 인정되어야만 한다고 논증하였다.

영성이라는 특수한 경우에도, 같은 접근 방법이 채택되었다. 개혁자들은 비록 가톨릭 영성의 전통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에 합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면 꺼려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이 주창한 사상이나 그것이 가진 가치들을 포용한다고 해서, 1500년 이전의 기독교가 갖고 있던 영성의 전통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성경에 있는 뿌리에 비추어 전통을 검증하려는 것이다. 그 전통이 성경에 분명히 합치하면 그것은 기꺼이 포용될 수 있지만, 어긋난 것이라면 철저히 거부되어야만 한다. 그러기에 개혁자들은 베네딕투스 영성이 가진 많은 가치를 인정하였지만, 이는 그것이 단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반면, 개혁자들은 프란체스코 영성의 범주에 있던 어떤 모습들, 이를테면 철저한 청빈(淸貧) 서약과 같은 것은 성경에 적절한 기초가 없는 것들로 간주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자신이 종교개혁의 전통 안에 서 있는 사람들로 여기는 이들은 비록 가톨릭과 정교회의 영성전통에 속한 자원일지라도 그것이 성경에 합치한다면, 흔쾌하게 그것들을 선용한다.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복음서의 핵심 구절들을 곱씹는 상상을 활용하는 이그나티우스 영성이 신앙 성장을 크게 자극하고 그 성장에 이바지한다는 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앞장서서 반대하던 사람들이 이 방법을 만들었다는 점은 문제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 성경에 합치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이다.

물론, 개신교 신자들은 실제로는 이그나티우스 영성의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바꾸어 버린다. 대개는 수도원에 기원을 두고서 거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들은 제거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일의 삶으로부터 동떨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 활용될 수 있는 모습들을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개혁자들은 현세로부터 도피한다는 그 어떤 관념에 대해서도 뿌리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으며, 도리어 신자들의 책임은 이 세상 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개신교가 표방하는 근본 원리들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개신교와 가톨릭의 영성 전통들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탁월한 예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 가톨릭교 내부에서도 막연하기는 하지만 '성경 영성' (biblical spirituality)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가톨릭 복음주의'(Catholic Evangelicalism)라고 점점 알려지고 있다.] 새릅게 관심을 갖는 모습을 더욱 볼 수 있을 것 같다.

종교개혁이 성경을 강조함으로써 전통이 갖고 있던 영적 권위를 더 책임 있게 비판하면서, 마찬가지로 이로 인해 개인의 체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더 과격한 모습을 보여준 많은 실천가들은 개인의 체험이 완전하게 신뢰할 만하며 권위 있게 영적인 진리로 안내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주류 개혁자들은 성령을 통하여 개인에게 계시가 주어진다는 생각에 회의(懷疑)를 품었다. 체험은 성경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했다. 성경은 객관성이 보증된 공유하는 자료지만, 개인의 체험은 주관적이고 개별적일 뿐이었다. 종교개혁에서 주류에 있던 사람들이 성경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만이 받았다는 계시에 도취되어 신앙 공동체에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부인하던 자칭(自稱) 선지자들의 독재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한 번은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예언과 환상을 더 과격하게 주장하던 몇몇 대표들이 연설하던 회의에 마르틴 루터가 참석했다. 그는 그 진영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이 본 환상들과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계시들을 꽤 길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이 긴 설교가 끝을 맺자, 루터는 큰소리로 한 마디 외쳤다. '당신은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소.' 이는 그가 방금 들었던 것을 압축하면서도 그 내용의 신빙성을 단숨에 무너뜨린 것이었다.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경이 충족성(充足性)과 권위가 있음을 종교개혁의 주류가 강조한 덕분에,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중요한 것들이 따로 있다면서 자신들만이 이 새로운 통찰들을 소유했노라고 끈질기게 고집하는 사람들로부터 해방을 만끽하게 된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개인 차원에서 주시는 말씀은 결코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성경은 한 공동체 전체에 권위를 행사한다. 어느 한 사람에게 주어진 환상은, 설령 그것이 어떠한 권위가 있다 할지라도, 그 권위는 순전히 그 개인에게 한정된 권위일 뿐이다.

특히 미국에서 현대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것들 가운데 많은 수가 이 원리를 철저하게 망각하였다. 그 복음주의는 세속의 때에 찌든 세계에서 너무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자기중심주의라는 독약에 찌들어 버렸다. 텔레비전을 통하여 복음을 전한다는 미국의 오럴 로버츠(Oral Roberts)는 언젠가 자신의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성경책 한 권을 들고 이렇게 선언한 적이 있다. '이 한 권의 책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이 얻은 통찰들과 본 환상들을 근거로 성경 이외에 하나님께서 청중들에게 더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계속 지적한다.) 미국 남가주(南加州)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에 있는 복음주의 수정교회의 목사 로버트 슬러(Rober Schuller)'16세기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은 우리의 시선을 신앙과 행위의 규범으로 유일하고 전혀 오류가 없는 거룩한 성경으로 돌려놓았지만, 새로운 종교개혁은 우리로 하여금 각 사람이 소유한 거룩한 권리, 곧 자기 자신을 존경할 권리에 눈을 돌리도록 만들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남 캘리포니아를 지배하고 있는 세속 가치들에 이처럼 쉽게 순응하는 모습은 곧, 진리를 판단하는 척도의 자리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아닌 인간의 자기 존중이 대신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현대 복음주의는 이 점에서 너무나 쉽게 - 일부러 그러든지 아니면 멋모르고 그러든지 - 자신의 장자 상속권을 포기하였다.

 

2. 종교개혁 영성은 인간의 정체성, 순전성 그리고 완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따로 떨어진 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누구이며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의 모습이 어떠신지 발견하는 것이다. 칼빈은 그가 쓴 (기독교강요) 1559년판의 첫 문장에서 두드러질 정도로 선명하게 이 원리를 밝힌다.

 

우리가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지혜 곧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다. 그 둘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이 첫 번째인지 말하기가 어렵다. ‥‥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찾도록 자극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를 당신의 손으로 인도하사 그를 발견하게 하신다. ‥‥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 자신을 아는 명료한 지식을 얻게 되며, 그런 뒤에 하나님을 천천히 바라보는 곳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꼼꼼히 살펴보는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영성이 고양된 종교 체험을 목적 그 자체로 추구한다는 개념은 종교개혁자들의 눈에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따로 떨어져 또는 그저 덤덤하게 그분을 안다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바뀌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종교개혁 영성에는 풍성한 교리의 토대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에 대한 관심이 영성에 대한 관심과 같은 말은 아니다. 예를 들면, 루터와 칼빈은 스콜라 철학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신학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는데, 이는 그 신학이 신학 차원의 성찰과 영성, 머리(이성)와 마음(감성) 사이에 쐐기를 박아 둘 사이를 엄정하게 구별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신학이 인간의 실존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모습들과 연계성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신앙을 두뇌의 작용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1539년판에서 이 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교리는 혀, 곧 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다른 학문 분야들처림, 단지 지식과 기억만으로 교리의 의미가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그 교리가 영혼 전체를 소유할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 우리가 교리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종교가 그 교리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요, 우리의 구원이 그 교리로 말미암아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교리는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어 우리의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며, 그를 통해 우리를 변모시켜야 한다. ‥‥ 복음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감정들까지 파고 들어가, 그 영혼 안에 자신의 자리를 고정시키면서, 냉랭하기 이를 데 없는 철학자들의 저술보다도 백배(百倍)나 더 풍성하게 인격 전체를 가득 채워줄 것임에 틀림없다.

 

칼빈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진 체험적인 측면들을 강조한 것은 종교개혁이 공유하고 있던 믿음,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칼빈을 신령한 체험에 둔감했던 인물 또는 목석같은 지성주의자로 고집스럽게 그려내는 사람들에게 이런 칼빈의 면모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 안에서 그것이 자라가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단지 우리 머리 속에서 덜컹거리며 맴도는 공허한 사변(思辨)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견실한 열매를 맺어감을 스스로 증명하는 지식이다.'

루터도 그가 쓴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Liberty of a Christian, 1520)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신자들이 공유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모습이 바뀌는 방식을 강조한다. 루터는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를 바꾸는 방식이 얼마나 생명력이 넘치는지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들과 연합하면 우리는 그 약속들에 흡수되고, 끝내 우리는 그 약속에 흠뻑 젖어 그 속에 빠져 버린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약속들은 거룩, 진리, , 자유 그리고 평강이 넘치는 말씀이요, ()으로 충만한 것이기에, 견고한 믿음으로 그 약속들을 붙드는 영혼은 친밀하게 그것들과 연합할 것이며 그 영혼 전체가 이 약속들에 흡수될 것이기에, 결국 그 영혼은 그것들이 가진 모든 능력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흠뻑 젖어 그 속에 빠져 들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손만 대셔도 병자가 나았다면, 이처럼 가장 부드러운 손길로 성령이 어루만지시는 경우 곧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빨아들이시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 모든 것들이 더욱 많이 영혼에 주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아는 것은 마치 하나의 생명력과 같아서 그것을 소유하고 그것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바꾸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은 우리를 예배, 순종 그리고 영생을 향한 소망으로 인도한다. 칼빈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예배함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우리 자신을 알게 되는 때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바로 그때이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칼빈이 똑같이 힘주어 말했던 것처럼 우리 자신을 완전히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완전히 알게 된다. 우리 자신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함께 주어지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둘 모두 주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강력한 주장이 전개되면서, 칼빈이 지적하는 것처럼 중요한 결과들이 초래되었다. 우선 이런 주장으로 말미암아 위에서 언급한대로 종교개혁 영성에서 중심을 차지하던 성경의 자리가 더욱 공고(鞏固)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서 신뢰할 만하며 권위 있는 지식은 오직 이 원천, 곧 성경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로, 그것은 기독론의 중요성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하나님과 사람이 단일하면서도 불가분인 통일체로 결합되어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간의 본질을 아는 것이 독특한 모습으로 수렴(收斂)되어 하나의 초점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수학의 중심'이다(루터). 종교개혁 전통 안에서 영성을 다루고 있는 많은 저술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보기를 고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은 곧 이 신학의 기본 주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리로 회복시킨 그리스도는 우리 앞에 하나의 본보기(model)로 놓여 있다(칼빈).

만일 이런 통찰들이 현대에 적용된다면 현대적인 영성의 많은 영역이 세속 학문인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 광범위한 호소를 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런 세속의 학문 체계들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완성(성취)' 이라는 관념들은 심각하게 비기독교성을 띠고 있으며, 그 체계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비판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 곧 심리학은 신학이 아니다. 인간의 상태에 관한 통찰들을 끌어다 쓰는 것은 기독교 영성의 반쪽짜리 이야기일 뿐이다. 단지 절반만 말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이야기 전체를 적절하고 진실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종교개혁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 순전하고 신뢰할 만한 영성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들이다. 오로지 세속의 심리학과 심리요법이 제시한 통찰들에 어떤 영성의 기초를 두는 것은 기독교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남기는 통찰들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다. 심리학만으로는 기독교 영성의 기본자원이 될 수도 없고, 그렇게 허용해서도 안 된다. 만일 종교개혁이 지금 세대에 뭔가 할 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결코 하나님을 잊지 말라. 대중의 인기를 끄는 심리학이 만들어 내는 신학은 깊이와 성실함을 잃어버린 채 흐늘흐늘 늘어진 기독교를 향해 달려가는 신학일 뿐이다. 진정한 신학이라는 강력한 약()이 신앙에 지성적인 토대와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갈피를 못 잡은 채 뒤죽박죽이 된 20세기 후반의 세계에서, 신앙은 그런 보강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이 책은 1992년에 초판이 출판되었다 - 역주)

 

3. 종교개혁 영성은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성직을 가졌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 받은 사 람들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정한다.

바로 이 같은 사실 때문에 근세 초기 유럽의 새로운 사회 상황이라는 현실에 확실하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도 종교개혁자들은 그것이 결코 기독교의 정수(精髓)를 손상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대신 그들은 '평신도들이 곧 하나님의 백성 (희랍어의 laos)이라는 관념을 되찾고 있었다. 영성은 교회 지체들 중 어떤 특정 부류(이를테면 교회의 성직자들)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라기보다 교회 전체의 뜻에 달린 자원이었다. 실제적으로 보더라도 종교개혁 전통 안에 있는 저술가들은 먼저 성직자들이 아닌 평범한 청중들에게 말을 건넨다. 평범한 청중들이 지체로 모인 공동체의 영적 깊이를 개발하는 데 있어 성직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종교개혁전통을 따랐던 사람들은 그들의 지위보다는 교육자로서 갖는 직무가 그 역할에 적합함을 인정하였다. 원리에서 그리고 실천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은 평신도들을 영적으로 지도하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였다.

종교개혁 영성의 중심은 평신도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점을 회복하는 것이다. 로테르담 출신의 에라스무스가 쓴 (그리스도의 군사에게 주는 안내서) (Handbook of the Christian Soldier, 1503)는 성직자들을 다른 신자들과 완전히 다른 반열 - 그것이 존재론의 차원이든 직무의 차원이든, 이론의 차원이든 혹은 실천의 차원이든 관계없이 - 에 올려놓았던 그 모든 관점에 대한 신뢰성을 허물어버린 책이다. 에라스무스가 보기에 성직자는 오직 하나의 직무 곧 자신들이 기독교 신앙을 알고 이해하는 수준만큼 평신도들도 그와 같은 수준의 지식과 이해에 이르게 하는 직무만을 가질 뿐이었다. 성직자들은 교육자들이며 자신과 평신도사이에 가로놓인 교육의 격차를 제거하는 과제를 걸머지고 있었다.

중세 초기에 배움은 말 그대로 성직자들의 독점 분야였다. 그러나 유럽의 르네상스를 통하여 읽고 쓰는 것과 교육이 널리 이루어지면서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있던 배움의 격차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에라스무스가 보기에 종교는, 그 안에서 신자 각 사람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더 깊이 하나님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신령한 내면의 일이었다. 그런 연고로 교육받은 평신도는 이제까지 맛보지 못했던 일정 수준의 신앙 이해에 도달하게 되었다. 평신도들은 점점 더 자신의 힘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나아가 한 사람의 평신도로서 경건을 함양시켜 갈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얻게 되었다. 새로 떠오르던 전문직업 계층들이 도시에서 세력을 얻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차츰 옛 문벌 귀족들로부터 지배권을 빼앗았으며, 아울러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고 그 신앙을 해석하는 일에 자신들이 세속의 직업 활동에서 활용하던 것과 같은 예리한 통찰과 전문 직업 정신을 비판의 시선을 담아 적용하였다. 이런 발전으로 성직자들의 능력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평신도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으며 종교 문제에서 자신감이 자라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 사이에서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힘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새로운 자신감이 뚜렸하게 나타났다는 점인데 이런 모습은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잉글랜드의 귀족 집안 내에서 두드러졌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평신도의 등장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루터파의 등장으로 독일에서 빛어진 위기에 대해 수습할 책임을 지게 되었던 카예탄(Cajetan) 추기경은, 여성들도 신학자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개혁 운동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그리고 충격 그 자체일) 결과라고 믿었다. 프랑스의 종교개혁자였던 에띠엔 르 꾸흐(Etienne Le Court)는 여성들이 복음을 선포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노르망디의 루앙(Rouen)에서 산 채로 화형당하였다. 쟈끄 르페브르 데타플르(Jacques Lefevre d'Etaples)는 자신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신약 성경을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남성들과 여성들에게 헌정하였는데, 그는 그 성경을 읽을 독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그때까지 변두리로 밀려나 있었던 이 구성 부분(여성)이 포함될 것 - 나아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 - 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롤랜드 베인튼(Roland Bainton), 자신이 쓴 (종교개혁 시기의 여성들) (Women of the Reformation)에서 이 중요한 발전에 담긴 여러 양상들을 뛰어난 필치로 설명하였는데, 그는 그 양상들을 16세기에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여성들의 삶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조망하였다.

사실 종교개혁은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여성의 역할에 대하여 보수적 성향의 접근을 택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종교개혁자들이 꺼려하였던 사회 현실주의(social real -ism)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이 발전 양상의 신학적 기초가 확실하고 돌이킬 수 없도록 이미 수립되었었다 할지라도, 당시의 사회는 어쩌면 과격하고 새로운 이 양상을 미처 받아들일 채비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근세 초기에 종교개혁 영성이 호소하였던 대상은, 남녀를 불문하고 교육받은 평신도 독자들이었다. 종교개혁의 청중은 평신도였지 성직자들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이 끌어다 깼던 자원들 역시 성경에 있는 것들이었지, 스콜라 신학이나 교회의 이론이 만들어 낸 교과서들이 아니었다. 이런 발전은 그 시대 평신도들의 장서 목록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Firence)에 있었던 대부분의 상류 가문들은 신약 성경의 개인 사본들을 갖고 있었다. 16세기 프랑스 중류 가문의 개인 장서들을 살펴보면, 마찬가지로 성경에 그 바탕을 둔 자원들이 종교개혁 시대에 얼마나 널리 활용되었는지 잘 나타난다. 르페브르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신약 성경(1523)과 시편(1524)은 프랑스 전역에서 널리 읽혀졌으며, 심지어 복음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던 모(Meaux) 교구에서는 공짜로 배부되었다. 이 책들의 사본들은 에라스무스, 멜란히톤 그리고 르페브르 자신의 신약 주석과 더불어, 프랑스 가정들의 서가에서 자주 눈에 띄었으며 머지않아 각 사람이 스스로 신학과 영성을 탐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성경을 지향하던 평신도들의 목마름을 채워준 생생한 자원들을 만들어내어 평신도들이 그것을 선용할 수 있도록 한 사람들은 불링거(Bullinger), 루터, 멜란히톤 그리고 츠빙글리 네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였던 가장 중요한 작품은 특정 성경구절보다는 성경에 담긴 총체적인 내용을 주석한 것이었다.

16세기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저작들 가운데 하나인 칼빈의 (기독교강요), 성경 전체가 담고 있는 신학과 영성의 풍성함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길잡이다. 칼빈은 이 책을 쓰는 목적으로, 독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그 말씀 안에서 비틀거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작품이 완전한 내용을 수록한 상태나 다양한 축약본의 형태로 판()을 거듭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각국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은, 그 책이 염두에 두고 있던 청중 - 기독교 신앙의 풍성한 자원들과 씨름하려는 순수한 갈망을 품고 있던 학식 있는 평신도들 - 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와 똑같은 독자들이 오늘날도 뚜렷하게 눈앞에 있다. 성경을 자신들의 신앙 원천이요 기초로 간주하는 평범한 신자들 사이에, 경건성과 학문성을 겸비한 매일성경(Daily Bible)의 주해 및 성경 주석들은 큰 시장(市場)을 발견한다.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들이 정기적으로 성경 공부 모임을 갖고 있다. 교회 성장에 기여하였던 문헌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그런 무리들이 확장과 발전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개신교가 자생 운동의 모습으로, 나아가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 신중하게 결성한 조직체로 말미암아, 특히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정확히 그런 성경 연구 모임들로 말미암아 확산되어 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조국 프랑스에 복음을 전파하려던 칼빈의 시도에 원동력을 부여하였던 발전소는 기도와 성경 연구를 위해 정기모임을 갖고 있던 앞서가는 작은 무리들이었다.

오늘날도 그와 비슷한 갈급함, 그와 비슷한 청중 그리고 그와 비슷한 성장과 통합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종교개혁 영성은 정확히 바로 그런 청중을 지향한다. 그 영성은 오늘날도 그때와 같은 효력을 갖고 있는가? 오늘날의 기독교 세계는 이 가능성을 검증하는 실험실이다.

 

4. 종교개혁 영성은 일상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그 뿌리를 내리면서 아울러 그 삶을 지 향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견고하면서도 충실하게 세속 세계의 질서가 규율하는 삶에 열중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의미와 깊이를 그 삶에 제공하고 있다. 근세 초기의 사회 현실에 적응하면서도 복음의 본질과 관련하여 어떤 손상도 가져오지 않았던 영성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세(現世)를 경멸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수도원 영성의 관념은, 적어도 일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그 영성이 끼쳤던 영향들과 관련하여, 단호하게 거부되었다.

현세를 향하여 적극성을 보였던 종교개혁자들이 제일 먼저 초점을 맞춘 곳은 국가와 사회라는 커다란 제도들이었다. 바로 이 국가와 사회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행동으로 옮겨져야만 했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이 적용되면서, 동시에 그 영성이 초점을 맞추어야 할 활동의 장()으로 가정이 수도원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확대된 가족은 하나의 축소된 사회였으며 그 안에서 기독교 신앙이 삶으로 표출되어야만 했다. 전체 사회와 마찬가지로 가정도 신앙이 실천되는 하나의 공간이었다. 종교개혁 영성의 핵심 요소들 -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신칭의와 윤리의 실천이라는 교리이지만 - 은 심지어 집안 살림을 챙기는 것과 같은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에도 새로운 차원의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현세의 실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려고 하였던 종교개혁의 흐름은, 근세 초기 유럽에서 떠오르고 있던 전문 직업 계층들에게는 상당한 잠재력으로 다가왔다. 현대의 서양 세계는 바로 이런 발전을 이어 받은 상속자이며, 나아가 현세를 긍정하는 모습과 노동을 긍정하는 모습을 하나로 단단히 묶었던 영성 자원들의 상속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학이 통합됨으로써 현세에 열중하고 투자하는 것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풍부한 자원들을 연구하는 것에도 새로운 중요성이 부여되었다. 어쩌면 너무나 쉽게 각기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던 이 두 가지 행동 양식들이 종교개혁 영성이 갖고 있던 활력으로 말미암아 내면에서 하나의 통일체로 결합되었는데, 이에 관해서는 이 책의 6장과 7장에서 더 다룰 것이다.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은 우리들로 하여금 매일의 현실 세계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함을 되새기게 한다. 마치 종교개혁자들이 수도원으로 도피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였던 것처럼 그들의 유업을 이은 현대의 상속자들 역시 좁은 울타리 안으로 움츠려든 기독교 하부문화 속으로 도피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가장 최악이 된 이 세상은 최상의 그리스도인들을 바라고 있다. 나아가 종교개혁 영성을 연구하는 것은 삶의 가장 고된 행로(行路)들 속에서 시도해보고 검증되었던 자원들을 신자들의 손 안에 올려놓으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 있는 신앙 속에서 양육 받으며 힘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세에서 살아가면서 일해야 한다. 교회는 신자들이 이 세상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섬기며 나아가 그분을 선포하도록 신자들을 길러낸다. 현세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당신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그분께 드리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담대하게 이 세상 안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결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없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종교개혁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세의 일들에 깊이 몰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가졌던 신실함과 신앙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정교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방식들을 발전시켰다.

 

종교개혁의 영성을 단단하게 묶어 주었던 원리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대략 살펴보았으니, 이제 우리는 더 상세하게 종교개혁 영성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새로운 종교를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미 존재하던 종교를 순결하고 새롭게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신앙의 뿌리로 되돌아가 거기로부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나아가 도전받음으로써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음 장에서 다룰 주제이다.

 

 

ref2_영성의 기본원리.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