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속의 신앙 : 비판의 시선으로 세상을 긍정하는 영성

 

Roots That Refresh, Alister McGrath, 종교개혁시대의 영성,

박규태 (서울: 좋은 씨앗, 2005), pp. 185-226

 

 

그리스도인의 상상은 늘 그 토대가 된 어떤 이미지들에 좌우되었다. 기독교 영성의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는 이런 이미지들의 상당수가 본래의 순전한 신선함과 자극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누가 맨 처음으로, 죄를 말끔하게 씻겨져야 할 오물로 여겼는지 우리는 모른다. 영감으로 가득찬 통찰이 눈부시게 빛나던 순간이리라. 또 언제 어떤 사람이 제일 먼저 생명의 샘물이 광야의 바위들을 깨치고 그 속으로부터 솟아나오는 것을 보았는지, 나아가 이런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바뀌는 찬란한 유비(類比)를 간파하였는지 우리는 확인할 길이 없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런 모습들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것은 케케묵은 것이 돼 버렸고, 그것들을 처음 발견했던 순간의 신선함은 사라져 버렸다. 기독교 영성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그러면서도 가장 절박한 과제 중 하나는 이런 이미지들이 되살아나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그런 것들을 처음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 이미지들이 가진 풍성함과 깊이를 맛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상상을 재발견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가르쳐 준 인물이 바로 C. S. 루이스(C. S. lewis). 기독교 영성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상상이 자극받는데 필요한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도시(city). 구약 성경의 많은 부분들은 예루살렘 성읍을 찬양하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손으로 만져질 것 같이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담는 것처럼 여겨지며, 나아가 메시아를 고대하는 소망들이 성취됨을 가리키는 것 같다. 신약 성경은 이 초점을 새롭게 보도록 했는데, 특히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도성(都城)' 이라는 주제를 눈에 띌 정도로 다시 다듬어 내고 있다. 사도 요한이 보기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과 기대는 새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어린 양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도성을 중심으로 성취되고 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하나님의 도성''세상에 속한 도성' 사이의 싸움은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이 정치와 사회 활동을 추구하는 데 그 기초가 되었다. 매사추세츠 만()에 정착했던 초기 청교도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언덕 위에 있는 그 성읍(곧 예루살렘)의 이미지에서 어떤 영감을 발견했다. 보스턴(Boston)은 미국의 제네바가 되었고, 자신에게 오는 자들을 강렬하고 정결케 하는 빛으로 끌어당기는 하나님의 도성이 되었다.

도시(도성, 성읍)라는 주제는 종교개혁 영성에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데, 이는 특별히 종교개혁이 도시에서 일어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발맞추어 종교개혁을 받아들였던 곳은 바로 유럽의 큰 도시들이었다. 취리히(Zurich), 스트라스부르(Sorsbourg) 그리고 제네바는 주변 지역의 회심을 촉발시킬 출발점이 될, 복음주의 진리와 열정의 보루이자 신앙의 요새로 간주했던 유럽의 큰 도시들이었다. 제네바 시를 둘러싼 풍경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16세기의 많은 저술가들에게 제네바는 진정한 기독교 영성을 지키는 성채(城砦)였으며, 지금 보기에도 유럽에서 너무나 어두운 곳이었던 그 곳에 봉화대(烽火臺)가 우뚝서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루터가 모든 개혁자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다. 루터는 제후가 다스리는 지역으로, 복잡하지 않았던 북부 독일의 시골지역을 개혁하면서 주로 농부들을 기반으로 한 반봉건 상태의 농업 경제에 초점을 맞춘 반면, 더 남쪽과 서쪽에 있던 동료들은 루터가 몸담고 있던 환경과 천양지차(天壤之差)인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취리히의 츠빙글리, 스트라스부르의 부처(Bucer), 성 갈렌(St. Gallen)의 바디아누스(Vadianus) 그리고 취리히의 칼빈(단지 몇 사람의 이름만을 열거한 것이다)은 근대 도시 사회라는 복잡한 힘의 구조들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도시들은 옛적의 대가족 제도와 같은 봉건 방식들을 제쳐 놓은 채, 새로운 행동 방식과 사고방식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곳이었다.

루터가 지역의 토호귀족(土豪貴族)들의 변덕에 맞서 씨름했다면, 칼빈은 전문 직업인으로 자수성가하고 개인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얻었던 이들과 부딪히고 있었다. 자수성가한 인물의 등장 -근대서구 사회에서 너무나 중요하고 기독교 영성에서 근본 문제들로 자리한 현상- 16세기 초기의 절대 왕정 시대의 도시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독일과 스위스의 도시들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 많은 근대정치, 사회, 경제 사상들이 탄생하게 될 도가니였다. 루터의 신학이 눈에 띄게 개인주의적인 색채를 띠는 반면, 칼빈의 신학은 제네바 시라는 특정 공동체가 필요로 하던 것들을 지향하고 있었다.

 

 

도시와 신앙 공동체

 

지금까지 언급된 것들을 살펴볼 때 도시라는 이미지는 순수한 개인주의자의 그것과는 정반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존재하는 어떤 공동체적 개념을 가리키고 있다. 죄와 마찬가지로 구원도 개인의 차원과 더불어 공동의 차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교회는 한 몸 안에서 신앙이 양육되고 지탱하는 하나의 제도로 간주되고 있다. 칼빈은 이 점을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나는 교회라는 논제부터 이야기할 것인 바,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교회의 가슴 속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즐거이 부르심으로써 그 자녀들이 유아와 어린 아이로 있는 동안 그 교회의 도움과 섬김을 통해 양육 받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숙하여 신앙의 목표에 이를 때까지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보살핌을 통해 가르침 받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0:9). 하나님이 아버지인 사람들에게 교회는 마찬가지로 그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제도인 교회는 신앙의 삶에 토대가 되는 자원으로 여겨진다. 바로 이 교회 안에서 신자들은 서로 만나고 도우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서로 용기를 북돋아 준다. '어머니인 교회' 라는 이미지(칼빈이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Cyprianus)로부터 즐겨 차용한 것이다)는 기독교 신앙이 갖고 있는 공동의 차원들을 강조하고 있다.

 

'어머니' 라는 이 단순한 말에서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쓸모 있고,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배우도록 하자. 만일 이 어머니(, 교회)가 우리를 잉태하지 않고 자신의 젖을 먹여 기르지 않는다면, 나아가 끊임없이 우리를 보살피며 훈육하지 않는다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편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강력한 신학적인 이미지가 이 표현 방식 안에, 무엇보다도 우리를 교회라는 태중(胎中)에 품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깃들어 있다. 그러나 교회에 관한 이런 사유 방식이 갖는 실제적인 측면들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교회라는 제도는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필요하고 유익하며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수단이다. 그것은 지금 존재하도록 그리고 지금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과격하고 고독한 낭만주의자로 홀로 외롭게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도록 돼있지 않으며, 또 그렇게 부르심 받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한공동체를 이루는 하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처럼 도시라는 심상은 신뢰할 만하고 참된 복음주의 영성에서 결코 뽑아버릴 수 없는 기초를 가리키는 데 유용하다.

현대 복음주의가 종교개혁 영성의 이런 모습을 자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다. 르네상스가 개인을 재발견하게 되면서, 종교개혁은 신앙을 개인과 연계시켜야할 필요성을 상당히 강조하게 됐다. 현대 복음주의도 16세기의 뿌리들로부터 이러한 부분을 쉽게 그리고 기꺼이 넘겨받았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개인적인 신앙의 측면이 새롭게 강조됐을지라도, 개혁자들은 신앙이 가지는 공동체적인 측면을 거부하거나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 신앙 공동체가 갖는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온 정황 속에서 개인적인 신앙이 뿌리내리도록 했다.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이 물려받은 유산의 이런 측면을 되찾을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칼빈이 보기에 신앙 공동체는 영적 훈련과 목회적인 돌봄을 위해 하나님이 보내시고 기름부어 세우신 도구였다. 칼빈은 프랑스 왕국 전역에 존재하던 신앙 공동체들로 말미암아 복음주의가 널리 퍼져가고 굳건히 자리 잡아감을 알고서, 신약 성경이 그리스도의 몸에 관해 보인 증거를 즐거이 붙잡았다. 칼빈이 보기에 신앙의 공동체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신약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며 신학적으로도 바르고 실제에서도 유용한 것이었다. 신앙공동체들은 활력 넘치는 조력 집단들을 배출했고, 이로 인해 심지어 가장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 신앙은 전진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세상을 긍정하는 영성의 발전

 

종교개혁은 문화가 가장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한 유럽 중심부의 몇몇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결코 고립되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변방 지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종교개혁은 그 시대에 가장 발전되고 세련된 몇몇 공동체들에서 일어났다. 때문에 칼빈 같은 사람들은 근대 초기 도시 생활이 품고 있던 문제와 기회들에 맞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자신들의 뒤를 이을 사람들이 그 많은 어려움과 가능성들을 물려받게 되리라 예견했다. 도시의 개혁자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사회 환경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스럽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도시들에서 펼쳐지는 삶을 긍정하고 그 속에 온전히 뛰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과업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갖고 있던 확신들을 퇴보하지 않게 하는 방식이어야 했음은 물론이다. 오로지 강단에서 이루어지는 설교 혹은 출판물을 내는 것만으로는 칼빈이 제네바를 개혁할 수 없었다. 그는 도시 안에 존재하던 정치권력이라는 실체에 맞서 직접 싸워야 했다.

이것은 실제와 이론 면에서 심각한 어려움을 불러왔다. 세상 방식들을 바꾸려고 할 때, 칼빈은 경계의 눈빛으로 그것들을 주시해야만 했다. 칼빈이 제네바의 권력자들과 협상할 때 직면하였던 어려움들은 역사적인 문제였다. 칼빈의 신학은 제네바에서 펼쳐지고 있던 삶의 실제들과 상응한다. 이 세상을 당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려면 이 세상을 있는 토습 그대로 다루어야만 한다.

이것이 일으켰던 몇 가지 어려움들을 미리 살펴보면 우리는 그 도시가 던져주는 이미지를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이미지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다른 한편으로 그 심상이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의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두 도성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 이라는 주제로 하나님과 이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변증법을 강조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도시는, 신앙을 불구로 만들거나 파괴하겠다고 위협하는 세력들을 상징할 수도 있다. 안토니우스와 같은 인물들이 중심이 되었던 이집트의 초기 수도원 운동은 그 시대 도시들의 도덕적, 영적 공기 너무나 오염되어 신앙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확신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하였기에 세상을 좇아 퇴락의 길로 빠져들게 할 수 있는 영향들로부터 벗어나 그것들과 인연을 끊은 채,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하나의 공동체를 사막에 세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안토니우스의 전기를 썼던 작가는 '그 사막이 이제 하나의 도성(都城)이 되었다'고 기록하면서 이런 발전이 함유하고 있던 영적 차원의 상징적인 측면들을 포착해낸다. 신앙을 지키는 한 요새가 만들어 졌으니 그것은 바로 도시였다. 그리고 그것은 수사들이 등을 돌린 채 떠났던 세속 도시들에 반대하는, 신앙의 도시였다.

바로 우리 시대에 도시는 좋지 않은 모습들과 연루된 이미지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비 콕스(Harvey Cox)(세속 도시)(The Secular City)를 썼을 때, '하나님은 없다' (no-God)운동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년대에, 도시는 인간의 자율성과 성취를 나타내는 상징처럼 보였다. 세계의 도시들은 새 생명과 창조성으로 인해 진동하는 것 같았다. 런던과 뉴욕은 시대의 첨단을 걸으며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그 도시들은 콕스가 믿었던 새로운 세속 시대의 상징에 감탄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것만 같았다. 세상의 대도시들은 성년(成年)에 이른 세계의 모습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는 초상이었으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미래를 대면했다.

오늘날 이런 상징주의에 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시는 이제 부패와 절망, 좌절되어 버린 희망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다. 대부분의 뉴욕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도시가 인류의 소망들을 대변한다고 믿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뉴욕은 인간본성의 지저분한 측면들을 대변하는 곳이며 인간이 쉽사리 빠질 수 없는 악과 결점들을 집약하여 눈에 드러나게 모아 놓은 곳이다. 현대의 도시는 인간의 이상들보다 죄의 본성과 결과들을 더 많이 목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도시 이미지에는 두 개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이는 단지 신자들이 아무 비판없이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순전하게 긍정적인 모습만은 아니다. 건설적인 인간 실존과 영적인 삶에 반대하는 세력도 아울러 대변하고 있다. 이 세상은 비록 하나님이 만드셨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하여 죄에게 종노릇하고 있다. 도시가 주는 이미지는 개인 차원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죄도 단호하게 가리키고 있다. 죄는 개인들뿐만 아니라 인간구조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루터의 말처럼 '우리는 바로 여기에 있는 여관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다. 그 집 주인은 마귀이고 집주인의 애첩은 이 세상이며, 나아가 모든 종류의 악한 열정들이 그 속에서 다스리고 있다.' 때문에 한 가지 진짜 문제가 등장한다. 인간 사회 속에 고유하게 자리하고 있는 구조적인 죄를 인정하지 않고는 인간사회를 긍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이 세상과 함께 존재하는 그릇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이 세상을 긍정하는 영성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속에 살도록 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어떤 방식으로? 요한복음의 표현을 빌자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하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17). 그렇다면 이처럼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는 행동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비판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긍정하다

 

종교개혁의 주류는 이 세상 속의 진정한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해악을 끼친다고 믿었던 두 가지 방법을 거부했다. 첫째로, 가장 강력히 이 세상을 긍정하는 영성 가운데 하나인,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이 내세웠던 영성을 축출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은 스스럼없이 이 세상, 나아가 이 세상의 가치와 방법들을 긍정하였으며 때로는 새롭게 왜곡하여 만들어내기도 했다. 보르지아(Borgia)의 교황 알렉산더 6세는 문제 있는 인물들을 제거하는데 독약을 널리 사용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알렉산더는 만찬을 러시안 룰렛의 르네상스 판으로 만들었다. 당신이 거기 있었다면, 많은 접시들 가운데 어디에 치사량의 독극물이 들었는지 모른 채 만찬에 참여했을 것이다. 1520년에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했던 레오 10세는 그 유명한 피렌체의 은행가 집안인 메디치가(the Medicis)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교황직을 사들이려고 공공연히 자기 은행을 파산으로 몰고 갔던 인물이었다. 당시 교황직에는 더 적합한 후보자들이 있었고 그 대부분은 레오보다 더 적은 수의 애첩(愛妾)과 자녀들이 있었으며, 때로는 전혀 없는 이도 있었다. 레오는 그 누구의 설명을 듣더라도, 호탕한 탐식가이며 고리대금업과 사냥 그리고 물 쓰듯 돈 쓰는 것을 좋아하던 인물일 뿐이었다.

이 영성의 실천자들은 성, , 권력에 관련된 사건들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 그 행위와 태도로 볼 때,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은 확신을 갖고 악랄한 수단을 동원해 세속 질서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민하는 모습들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심지어 세상을 향하여 단단히 헌신하던 자들도 이런 태도들에 명백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세상을 긍정하는 이들은 너무나 쉽게 세상의 지배를 받는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개혁자이건 역사가이건 간에-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을 타락과 퇴폐에 물든 기독교의 변형이요, 순전성과 도덕의 권위를 잃어버린 사례로 간주하고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성경을 부인하는 대가로 이 세상을 긍정한 셈이다.' 자신들이야말로 세상을 정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실상 이 세상에 정복당한 자들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들이 아무 비판없이 세상을 긍정하는 적절치 못한 영성의 사례를 보여주였다면, 반면 이 세상을 부인하는 영성의 단점 역시 중세 후기에 이르러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종교개혁자들은 믿었다. 한 사례를 검토해 보면 이 점이 드러난다. 근대의 헌신(Devotio Moderns)에서 가장 유명한 저술이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이며, 완전한 명칭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과 이 세상을 경멸하는 것에 대하여)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긍정하는 응답은 이 세상을 부정하는 응답을 수반한다. 그가 보기에, 이 세상은 그 본질에서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세상은 우리의 마음이 저 피안(彼岸)의 세계를 깊이 묵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 만일 수사(修士)가 이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면 그는 단지 자신의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기만 해도 족하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저 천국을 향해 여행하는 순례자로 머물고 있다. 현세에 몰두하거나 심지어 그것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도 모든 수도사의 실존이 목표로 삼는 것 -현세에서는 거룩함을, 미래에는 구원을 얻는 것- 에 위험을 초래할 잠재성이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까르투지오 수도회와 같은 다른 수도원 운동들에서 발견한다. 수사는 단지 이 세상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도피하여 고독한 은둔 생활을 추구해야만 했다. 가능하다면 언제라도 그는 자신의 방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다. 쌩 띠에리의 월리엄(William of St Thiery) 프랑스에서는 Wiliam de Rue Thiery)은 방()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라틴어 'cella' 를 사용하여 재담(才談)을 구사했던 중세의 많은 영성 저술가들 중 하나였다. 방은 수사를 세상으로부터 숨겨주고( '숨긴다'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conceal'은 같은 뜻의 라틴어 'celare' 에서 나온 것이다), 천국(coelum)을 그 수사에게 열어 보인다. 이와 비슷한 태도가 (근대의 헌신) (Devotio Modema)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헤르트 더 그루트(Geert do Groote)와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그는 철저하게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하나님을 찾을 목적으로 모든 물질의 소유와 학문 추구를 부인하였다.

이러한 선택 방안들 가운데 하나가 '재세례파' (the Anabaptists)와 같은 급진파 개혁자들을 통해 제시되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세속 질서에 절망한 나머지, 그 세속 질서를 사실상 구원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 세상은 악하다. 거룩함은 오직 이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도피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다.' 사회학자들이 '분파' 심리 또는 '기독교의 사유화' 라고 이름 붙였던 견해다. 특별히 그들은 세속사회 질서를 거부하였으며, 무엇보다 그 질서가 갖고 있는 강제성의 차원을 거부하였다. 급진파들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 무기 드는 것, 나아가 서약하는 것마저 거부함에 따라 강렬한 혐오에 부닥치게 되었으며 세속 권력을 쥔 당국에 어쩌면 두려움까지 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 세상을 향한 이런 태도는 너무나 비판성이 강해서인지, 급진파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아만파()(the Amish)와 같은 조그만 공동체들만이 발전하여 세상과 그 질서로부터 도피하였다. 여기에는 중세 수도원 운동과 뚜렷할 정도로 유사한 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급진파 공동체들은 모든 연령의 남성과 여성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세속 사회의 근본적인 신념과 관습들을 거부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세속 사회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세속사회의 질서를 광범위하게 거부하면서, 그들은 사실상 공동의 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그 사회 질서로부터 빠져 나와 자신들 고유의 사회 질서를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이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면서 오로지 철저히 기독교의 배경 속에 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현대 복음주의의 하부 문화들과 유사한 점을 엿볼 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당신은 기독교 하부 문화 속에 자신을 푹 담근 채, 이 세상과는 어떤 접촉도 피해야 한다.

많은 개혁자들은(특히 성 갈렌의 바디아누스는) 자신들이 발견해낸 수도원 운동의 근간이 된 동기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많은 이들은 유럽의 위대한 수도원들에서 간행된 영성 문헌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쩔 수 없이 비판이 뒤섞인다. 개혁자들은 많은 수도원이 그 기강은 풀어진 채 풍부한 재산을 소유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수도원 안에 만연하다고 단언했던 성적인 죄악들을 통렬하게 꼬집었다.

그러나 이처럼 실제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면서도 순수한 신학적인 염려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인은 곧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 받은 이들이므로,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도 없었고, 도피해서도 안 되었다. 개신교 진영에는 수도원 같은 것이 생길 수 없었다. 세상에 헌신한다는 것은 곧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의 방식들을 공유하고 그것이 가진 위험과 기회들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했다. 영혼을 새롭게 가다듬을 목적으로 잠시 세상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점은 개혁자들도 인정하였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도피한다는 생각은 그릇된 개인주의이며, 그리스도인이 져야할 책임을 폐기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서 세상을 긍정할 것인가? 세상을 향한 두 개의 다른 태도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관계가 역사 속에서 유효하게 작용한다. 우리가 책 전체에 걸쳐 강조해 왔듯, 기독교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그 속에 구현된 영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1510-11년에 있었던 한 일화는 세상을 향해 가지는 태도에 반신반의하게 되면서, 영성의 위기들이 현실로 나타난 경우를 잘 보여준다.

16세기의 첫 l0년 동안 이탈리아의 젊은 귀족들은 하나의 작은 무리를 이루어 종교 문제를 토론하는 정기 모임을 가졌다. 이 무리의 구성원들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곧 자신들의 영혼 구원을 확실히 보증하는 것이었다. 1510, 그 안에서 위기가 발생했다. 일부 사람들이 개인의 구원을 확실히 담보하는 유일한 길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도피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개인의 거룩함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세상의 위협은 오직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에야 비로소 반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지방의 한 수도원에 은둔하여 거기에서 타락한 세상의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의 구원을 안전하게 하고자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에 남는 길을 선택하였다. 어찌 되었든지 그들은 이 세상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틀림없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1957, 뛰어난 역사가인 후베르트 예딘(Huber jedin)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 문서 보관실을 샅샅이 뒤지다가 우연히 이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스파로 콘타리니(Gasparo Contarini)의 서신들을 발견했다. 언뜻 보기에 콘타리니는 수도원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구원을 찾으려던 그 무리의 지도자 파오로 쥬스띠니아니(Paolo Giustiniani)와 일정하게 서신 왕래를 했던 것 같다. 이 서신들 속에서 콘타리니는 자신의 상황이 안겨다준 고뇌를 돌아보면서, 친구들이 세상을 등지기로 결정함에 따라 자신을 짓눌렀던 영혼의 고통이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1510년 말과 11년 초에 걸쳐 그는 세상 속에 남기로 한 자신의 결정이 정당한지를 증명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이전의 동료들은 몸을 던져 스파르타식의 엄격한 규율과 개인의 내핍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에 복종했던 반면, 여전히 세상의 도시에 몸담고 있던 그가 어떻게 신앙의 순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다가 1511년 부활절 전야 때, 그는 복음주의 정서를 지닌 베네딕트 수도회의 한 수사(修士)와 우연히 대화에 몰두하게 된 사건을 이야기한다. (베네딕트 수도회는 당시 가톨릭 복음주의의 한 양식을 대변하던 중심지로 알려진다.) 그 수사는 콘타리니레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노라고 설명했다. 콘타리니는 뛸 듯이 기뻤다. '나는 마치 나의 전 생애를 수도원 속에서 보낸 것처럼 이제 평안히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깰 걸세!' 콘타리니는 자신의 친구 쥬스띠니아니에게 이렇게 썼다. 이 세상 속의 삶도 안전하고 확실한 토대 위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서 너무도 중요한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콘타리니가 1511년 부활절 전야에 부닥친 그 생각들은 이신칭의(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부르심을 얻는다)라는 종교개혁의 교리 속에서 발전되면서 견고한 자리를 잡게 된다. 종교개혁에서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이 교리는, 자신들이 16세기의 일상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심 받았다고 믿었던 이들의 믿음이 정당했다는 것을 이론으로 증명했다. 그 교리는 구원을 얻고자 수도원으로 들어가 은거하는 것은 필요치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으면서, 나아가 그 신앙으로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과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신앙이었다. 그 신앙이 삶으로써 표현되어야 할 장()이 어디인가는 다음 문제였다.

1520년대 초, 이 교리가 분명한 어조로 또박또박 진술되면서 세상을 향하여 새롭게 헌신하는 것이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모두 가능하게 되었다. 복음에 신실하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신칭의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향하여 열려 있는 정황이 다양할 수 있음을 확인해주었으며, 일상의 삶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좇아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론적인 토대가 되었다.

그런 이유들로 말미암아, 주류 곧 권위 있는 종교개혁자들은 수도원파와 급진파가 주장하던 것들에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접근법들이 더 기독교답고, 더 현실성이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비판적인 시선으로 세속 질서를 긍정한다' 는 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며, 세상을 향하여 서 있는 당신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세상 역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당신은 이 세상이 타락한 피조 세계이면서 동시에 구원받을 수 있는 세계임을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시면서도 구원받은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환상을 마음에 품으셨듯이, 칼빈 같은 저술가들은 타락한 세속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에 말을 건넸으면서도 하나님의 도성이라 불리기에 합당할 정도로 개혁되고 구원받은 도시의 환상을 굳게 붙들었다.

칼빈의 사상 속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와 타락한 피조물인 세계 사이에 어떤 변증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영화롭게 되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나아가 긍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또 그것이 타락한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구원이라는 목적에 비추어 비판받아야만 한다. 창조라는 강력한 교리로 말미암아 칼빈은 세상을 증오하거나 또는 세상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악하다는 식으로 미숙한 주장에 빠져 들지 않을 수 있었다. 심지어 타락한 인간에게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창조의 아름다움을 칼빈이 계속 강조함으로써 그 창조가 타락의 교리를 부드럽게 해주었다. 이세상은 타락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조물이요, 그 자체가 선한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고 회복될 수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 이와 비슷한 양식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칼빈의 교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교리 속에서 칼빈은 인간이 여전히 하나님의 피조물로 존속하고 있다는 점을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타락한 인간이 죄로 가득한 본성을 갖고 있음을 스스로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소유로 남아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소중히 여겨야할 존재다.

도시라는 이미지 속에서, 인간 사회와 문명도 구원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 -칼빈이 특별히 '질서' 라는 관념과 연결지었던 개념이다- 에 일치할 수 있다. 하나님이 부여하셨던 창조의 질서는 비록 죄로 말미암아 무너졌지만 회복될 수 있다. 나아가 회복의 도구 자체는 최초의 원질서(原秩序, original ordering)와 일치한다. 칼빈은 시편 114절을 주석할 때 이것을 언급한다.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처음 세우셨던 그 질서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점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영광이다. ' 칼빈이 보기에, 예를 들면 사회 -사회 안의 개인들이라기보다 사회 그 자체- 를 구원하실 때 하나님께서 목표로 삼으신 것은, 외부인들을 끌어당겨 자신과 한 몸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랑과 보살핌의 공동체를 창조하시는 것이며, 그 공동체의 거주자 가운데 우두머리이자 그 공동체를 지탱해 주는분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칼빈 이후에 나온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제일 목적과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를 영원히 기뻐하는 것이다.']

이 세상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행위가 현재의 과제요 미래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인류와 사회를 규율하는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칼빈의 인식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삶은, 신자 개인이 소유하고 신령한 세계를 염두에 둔, 개인 차원의 일이 아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오히려 신앙은 타락한 피조 세계를 회복하여 그 창조주와 교제하게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나아가 그것과 관련을 맺어야만 하는데 그 회복과 질서복구의 과정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퀘이커 저술가인 월리엄 펜(William Penn)은 다음과 같은 말로 종교개혁 영성이 가진 이런 측면을 잘 포착하고 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사람들을 이 세상으로부터 돌려놓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속에서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며 나아가 그들이 온힘을 쏟아 세상을 고쳐 가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타락한 피조 세계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주제는 기독교 영성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칼빈은 그 무엇보다도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던 정치 신학과 연관된 사상들을 발전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하나님은 하나의 명확한 틀을 따라 이 세상 -그 속에 있는 다양한 개인과 사회 그리고 환경 사이의 상호 관계들- 을 창조하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처럼 하나님이 부여하신 관계의 틀을 규정하는데 '올곧음' (똑바름, rectitude)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에 따르면 관계들로 이루어진 이 조직(network)은 죄가 끼친 효과들로 말미암아 손상되고 왜곡되었다. 죄는 단순히 하나하나의 인간에 관련된 개인차원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구조 차원의 문제로,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칭의(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을 '올바른 상태가 된다' 는 것으로 해석한다)의 과정에서 창조가 올곧음을 회복하는 것이 제일 먼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똑같은 관심사들이 비슷한 해석의 틀과 연관되어(비록 약간 다른 말을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사상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칼빈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세계가 새롭게 되었으며, 만물이 질서대로 회복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은 이원론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이 갖는 개인 차원과 공동 차원을 구분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실존 간의 정당한 종합 명제를 얻게 하는 영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접이 있다.

부활 그 자체는 타락한 인간의 지위를 최종적이고 극적으로 바로 잡은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낡고 더럽혀진 것이 그것을 만드셨던 창조주로 말미암아 질서를 회복하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어쩌면 칼빈의 후예 가운데 하나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했던 말보다 이 믿음을 더 세련되게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필라델피아에서 인쇄공으로 일했던 프랭클린은 자신의 묘비에 들어갈 명문(銘文)을 직접 썼다.

 

인쇄공 벤저민 프랭클린의 육신

여기에 잠들어 벌레의 먹이가 되다.

그러나 그 작품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니,

그것이 한 번 더 등장할 것이로되,

새롭고 더 우아하게 펀집되어

저자의 손으로 개정되고 교정되어

출간될 것이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창조의 질서를 다시 되찾는다는 이 주제는 칼빈의 사상 전체를 통해 울려 퍼진다. 그것의 실제적인 결과는 중요하다. 한편으로 그리스도인은 인간 사회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하는 최전선으로 뛰어나갈 추진력을 얻게 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류 사회와 그 문명은 신자들을 그 사회와 문명의 틀에 완벽하게 일치시키게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을 긍정하는 영성은 신자들이 세상 속으로 몰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나아가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독특함을 잃지 않도록 막으면서, 이런 투쟁을 꾸준히 전개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세상 속에 내던져 그 속에 자신을 담그도록 격려 받지만, 비판의 시선으로 응시할 수 있는 거리만큼 세상과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겉으로 세상에 몸을 담그고 헌신하는 동시에, 안으로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비판적인 태도를 품어야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독일의 저술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실존철학과 명백하고 유익한 평행적 관계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실존은 '두드러진 것' (standing out)이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생명이 없는 사물들 혹은 인공물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세상은 인간의 실존과 관련하여 이중의 기능을 가질 수 있다.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고, 우리의 '놀이 공간 (Spiehaum)이며, 인간의 실존이 자리하고 있는 장()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그 속으로 빠져 들게 하여 인간으로서 우리가 갖는 독특함을 잃어버리게도 하는, 인간의 실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곳이다. 긍정적인 의미를 찾는다면, 세상은 인간 실존이 거하는 곳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는 인간 실존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이와 너무나 같은 유형의 긴장 관계를 요한복음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서는 '세상' 이 두 개의 기능을 다 가지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으로써, 세상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곳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죽게 하신 곳이며, 나아가 우리도 그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타락해 버린 이 세상은, 이제 신앙을 파괴하며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위협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이 사회와 문화를 향해 긍정하며 옹호하는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곧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신자가 세상에 집어삼켜질 수 있는 위험은 진정 존재하며, 그 세력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주께 헌신하는 길을 떠나 타락한 피조 세계에 몸을 내어 맡기도록 날마다 미혹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 함정을 피하려면 나름대로 신학의 차원에서 자신의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안겨주면서 세상을 긍정하는 칼빈의 영성도, 존재론의 차원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구별하는 것을 긍정하지만, 정작 그 둘을 전혀 별개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구별되지만 구분된 것은 아니다' (각기 독특성이 인정되지만, 결코 따로 떨어진 채 나누어져 있지 않다)라는 주제는, 칼빈의 신학 가운데 많은 곳에서 그 기초를 이루고 있으며, 그의 영성에서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분이 창조하신 것들을 아는 것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피조 세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것을 창조하신 분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충성하고 순종하며 그를 사랑하기에, 그분이 만드신 세상을 존중하고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그런 충성을 직접 요구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존중할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지 자연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더 상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칼빈이 보기에 창조(피조 세계)는 모든 점에서 창조주를 반영하고 있다. 창조가 그의 창조주를 증거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전달하는 것처럼, 모든 형상들은 우리 눈앞에서 빛나고 있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벌의 옷과 같은 것으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당신을 알리시고자 걸쳐 입으신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 권의 책과 같은 것으로, 그 책 속에는 창조주의 이름이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극장 같은 곳으로, 그 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관객들에게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거울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과 그분의 지혜를 그 안에서 보게 된다. 한 마디로, 하나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 사이의 연관이 너무나 긴밀하여 심지어 칼빈마저도 자연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그 말이 경건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이런 영성은 자연 과학의 연구에 새로운 기초와 원동력을 부여하였다. 피조 세계의 복잡한 사물들을 연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더 잘 알 수 있는 수단으로 의학과 천문학이 장려되었다. 예를 들어 16-17세기에 자연 과학에 중대한 기여를 했던 인물들이 바로 칼빈의 사상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인 것을 볼 때,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중요성을 갖는다. 눈으로 볼 수 있으면서 손으로 만질 수 있게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가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질서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서,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1561)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 눈앞에 가장 아름다운 한권의 책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속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커다란 것이든 조그만 것이든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글자들처럼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에게 자연을 기뻐할 수 있는 새로운 원동력을 준다. 신자들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향락에 몰두하지 말도록 단호한 태도를 표명했던 탓에, 흥을 깨는 금욕주의자로 자주 묘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칼빈은 이 피조 세계야말로 우리가 단순히 그 안에서 생존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편 10415절을 인용하면서 칼빈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만드셨음을 주장한다. 음식은 단지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풍미(風味)를 즐길 수 있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오로지 우리가 꼭 필요로 하는 것만을 공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목적으로 삼는 것들에 필요한 만큼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다. 그의 선하심으로, 포도주와 기름으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심으로써, 그는 더욱 더 우리를 인자하게 다루신다. 자연이라면 틀림없이 마실 물로 만족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포도주를 더하여 주심은 하나님의 넘치는 자비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칼빈이 1540년에 발표한 주님의 마지막 만찬에 관한 논고(論考)에서 지적하듯이, 성찬을 통하여 포도주가 연상케 하는 풍성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포도주가 제시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포도주가 사람의 몸에 주는 이점들을 성찰해 보아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와 똑같은 이로움들이 신령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이로움들은 자양분을 공급하고, 새롭게 하며, 힘을 더해 줄뿐 아니라 나아가 기쁨을 준다.

 

칼빈은 이 점을 (기독교강요)에서 길게 서술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삶 속에 있는 선한 것들을 맛보며 즐길 수 있는지 지적하고 있다. '만물이 우리를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그 만물들을 지으신 이를 알고 인정하도록 하며 나아가 그분께 감사를 돌림으로써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선하심을 기리도륵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을 부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사실 그럴 수도 없다. 세상을 부인한다는 것은 너무나 경이로운 모습으로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세상은 비록 타락하였을지라도 악하지는 않다. 그 타락 속에서도 세상은, 하나님이 부여하셨던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길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기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만일 세상이 타락한 상태에서도 이토록 아름답다면, 그것이 회복되어 구원받을 경우에는 그 얼마나 더욱 사랑스러운 모습이 될 것인가!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피조 세계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소유일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것은 곳곳에 그분이 저자임을 나타내는 인지(印紙)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가 만드신 것들과 동일한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세상 위에 계신 그 저자에게 이르러야 하며, 그분은 결코 이 세속의 차원으로 낮아질 수 없는 분이 [비록 칼빈이 성육신을 논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차원으로 자신을 낮추시는 것을 택하셨다고 지적하긴 하지만].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구분이 이뤄져야 한다. 숨을 거두는 날까지 유능한 교육자였던 칼빈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길이란 알려진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미 알려져 있는, 눈에 보이는 세계로부터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 유일하고 자연스럽다.[칼빈은 그 본보기로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했던 설교(17:22-31)를 추천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것을 초월하시며 결코 그 피조물의 차원으로 내려앉을 수 없는 분이다. 사실 칼빈은, 잘못 이해될 경우, 하나님의 창조물(피조 세계)이 우상 숭배(, 창조주를 경배하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분이 창조하신 것에 복종하는 것)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의 기본적인 주장을 다시 한 번 외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의 사상에는 창조에 대한 이중의 태도가 존재한다. 올바르게 이해할 때 자연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그 무엇으로, 그의 창조주 되심을 반영하며 나아가 그분을 가리킬 수 있다. 그릇되게 이해될 때 자연은 창조주와 그의 목적을 망각함으로 인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도록 만드는 것이다.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오도하고 오해한다면, 고통스럽게도 그 피조물을 경배하는 길로 쉽사리 빠져든다.

마찬가지로 츠빙글리도, 창조주와 그가 지으신 것을 분간치 못함으로써 그분을 믿고 모든 것을 내맡기기보다 오히려 피조물에 기대게 되는 위험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강조하였다. 츠빙글리는 어떤 주석에서, 에라스무스가 쓴 시 한 편을 읽고 나서 자신이 이를 얼마나 강력하게 깨달았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어떻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중보자도 우리에게 필요치 않으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는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굳건한 믿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여러분이 모르게 되기를 나는 원치 않습니다. 8-9년 전에, 나는 가장 학식이 풍부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주 예수께 드리는, 위로를 주는 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시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아름다운 말로, 우리가 그분이 주시는 그 모든 선한 것을 간구하지 않는다고 탄식하십니다. 예수 그분이 모든 선의 원천으로서 구원자요, 위로자요 나아가 영혼의 보배이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때 나는 혼자서 생각하였습니다. '늘 그렇구나. 대체 우리는 왜 늘 피조물에게 도와달라고 빌까?'

 

츠빙글리가 보기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피조물들을 의뢰하려는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으로부터 늘 몸을 돌려, 하나님 안에 있는 그들의 원천과 기원에 향하는 것에 달려 있다. 이런 결과를 바라는 츠빙글리의 기도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익하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 모든 사람이 눈 먼 장님임을 깨달음으로써, 이제까지 피조물에게 매달렸던 우리가 이제부터 창조주께 매달릴 수 있도록 허락하옵시며, 오직 당신만이 우리의 유일한 보배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당신만 의지하도록 허락하옵소서.'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미 오래 전에 그와 똑같은 어려움을 예견하며, 한 설교 속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하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미혹거리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꼭 그 안에서 일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피조 세계를 향하여 바른 태도를 취하면 이런 어려움은 제거된다. 칼빈은 하나님과 그분이 만드신 세상을 엄별하면서도 실제로는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동시에 강조하는 교리의 틀을 취한다. 하나님과 그분이 만드신 이 세상이 그 뿌리에서 남남으로 갈라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결코 서로 분리되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같지 않다. 칼빈의 업적은,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점에서 긍정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세계임을 하나의 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통찰들이 이신칭의 교리와 결합된다면, 세상을 강력하게 긍정하면서 그것을 향하여 헌신하는 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교하면서도 지식이 풍성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게 된다. 루터는 이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대시대마다, 성인들은 세상 속에서 이런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가사(家事)와 일상 세계를 가까이 하면서 공무(公務)를 수행하고 가정을 꾸리며 밭을 갈고 나아가 상업이나 다른 종류의 직업에 종사한다. 그러나 그들은 조상들처럼, 자신들이 이 땅에 유배된 이방인임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을 그저 거쳐가는 장소로 사용할 뿐이다.

 

루터는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목적들 안에서 이 세상은 단지 앞으로 임하게 될 세상의 준비이며, 뼈대일 뿐이다' 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이 세상이 존재하는 목적은 곧 이곳을 '영혼을 빚는 골짜기 같은 곳' (a vale of soul-making, 키츠 Keats)으로, 우리를 장차 임하게 될 그 세상에 적합한 존재요 그 세상을 준비하는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글귀들은 다른 한편으로 종교개혁자들, 특히 루터의 글 속에 나타나는 종말을 지향하는 신앙에 대해 주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신앙은 현세의 저편을 내다보면서 영생 속에서 이루어질 그의 완성을 대망한다.)

칼빈은 자신이 만든 (제네바 요리문답서)에서 한 여행자를 모델로 삼아 그가 권면하고 싶은 자세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칼빈에 따르면, 우리는 '이 세상이, 마치 외국(外國)인 것처럼 거쳐 지나가야만 하며, 땅 위에 있는 모든 일들을 소중히 여기지 말고 그것들에 마음을 두는 것을 거절해야만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기뻐하고 존중하며 나아가 그것을 탐구하도록 권면을 받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곳이 결코 우리의 본향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도록 권계를 받는다.

 

현세의 즐거움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선물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선물들을 남용(濫用)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더럽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늘 이 세상 속에 머물기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현세를 거쳐 지나가도록 돕게 되어 있는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이 세상에 단단히 붙들어 맴으로써 우리에게 훼방꾼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이 이런 미몽(迷夢)으로부터 우리를 깨우고, 이 세상은 단지 덧없이 지나가는 짧은 시간임을 성찰하도록 촉구하며,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마치 우리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다루라고 한 권면에는 타당한 근거가 없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한낱 이방인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세상에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소유물처럼 -, 단 하루 빌려다가 쓰는 물건처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결코 우리의 영적 지평을 지배할 수 없다.' 칼빈은 이 주제를 전개하면서 구약 속의 '본향으로부터 쫓겨나 유배당한 처지와 같은 광범위한 이미지들을 끌어다 쓰고 있다. 가다머(Gadamer)가 쓴 글귀 가운데 하나를 인용하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소망하는 부활과 영생이 인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잘 인도할 수 있도륵, 시간과 영원이라는 지평의 융합, 그리고 지금 여기의 세계와 장차 도래할 세계가 갖고 있는 지평을 융합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현세를 향해 어떤 증오도 없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도 없는 현재의 이 세상에 대해 더욱 경멸해야 한다.' 금욕주의적으로 현세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칼빈이 보기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마음이 아니었다. 현세의 덧없음이 오히려 현세를 가장 잘 선용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이세상이 장차 임할 세상과는 결코 비견되지 못함을 알 때에야 이 말이 늘 성립한다. 현세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거기에 몸을 내던지다가는 자칫 영생,곧 실재(實在)를 부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현세는 단지 그 실제를 가리키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태도를 가장 세련되게 묘사한 글 가운데 하나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설교 순교자 그리스도인(The Christian Pi1grim)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에드워즈가 칼빈주의의 전통을 자신의 상황에 충실하게 적용한 이 설교는 '하나님은 결코 이 세상이 우리의 본향이 되토록 설계하시지 않았다' 는 한 마디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설교에서 가장 단호한 직설화법 중 하나다. 에드워즈는 18세기 뉴 잉글랜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비록 외면의 즐거움에 휩싸여 있고 그지없이 좋은 친구들, 친지들과 더불어 가족을 구성한다 할지라도, 비록 교제하는 것이 기쁘기 이를 데 없는 벗들이 있고 자녀들에게 장래가 촉망되는 자질들을 많이 발견한다할지라도, 비록 우리가 선한 이웃들과 함께 하며 거기서 저명인사로 널리 사랑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우리의 분깃으로 여겨 그 안에서 쉼을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라도 기꺼이 그것들을 내려놓고 자원(自願)하여 그 모든 것들을 하늘의 것과 바꾸겠다는 마음을 품고서, 그것들을 소유하고 즐기며 사용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내다보는 부활과 영생의 빛에 비추어 볼 때, 현세는 하나의 목적이라기보다 도리어 하나의 수단이요,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 하나의 머리말일 뿐이며, 오페라의 한 작품이기보다 그 서곡(序曲)에 불과할 뿐임이 드러난다. 칼빈이 아무 비판 없이 자신의 몸을 세상에 푹 담그는 이들을 비판하는 근본 요지는, 그들이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마치 절대 불변의 영원한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장차 임하게 될 세상의 모습이 어떠한지 미리 맛보며 미리 보게 되기 시작하면, 그는 더 이 세상을 좋은 것으로 여기면서도, 장차 임할 세상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세(現世)'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베풀어 주신 선물' 로써 환영받고 받아들여져야 하며,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할 존재이다. 그것 자체로도 그러하지만 나아가 현세가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그 세상의 모사(模寫)이며, 그 세상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신학 그리고 영성

 

종교개혁 시대에 가장 절박했던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세속사상이 과연 어느 범위까지 종교 사상에 주제넘게 끼어들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많은 저술가들이 보기에 16세기는 세속 인문주의가 탄생한해였다. 그 시대에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데올로기가 기독교의 진지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들리지만, 근대 서구 사상이 갖고 있는 이런 중요한 특징들은 이탈리아 후기 르네상스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우스(Zeus), 주피터(Jupiter)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터툴리아누스 Tertullianus)의 글에서 빌려온 표현이다)이 서로 결합되고, 나아가 점점 더 흔하게 고전 문명 -그리스, 로마 그리고 히브리 문명- 의 도덕적, 영적 자질을 대표하는 것이 돼 버렸다. 이런 흐름의 근원은 콜루치오 살루타티(Collucio Salutati)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는 고대의 신들은 (20세기의 용어로 표현한다aus) '신화의 탈을 벗어 버리고' 순수하게 덕()의 구현체로 여겨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16세기가 시작되면서 이미 그와 동일한 과정이 기독교에까지 확장된 것을 보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 종교 분야 연구의 주요 권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찰스 트린코스(Charles Trinkaus)는 이렇게 쓴 바 있다. "문화가 세속의 길로 치닫고 인간이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 은 중세-르네상스-종교개혁 시대의 기독교 안에 존재했던 여러 운동과 태도들로부터 직접 비롯된 것이다. ·거룩한 것을 세속에 속한 것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세속을 거룩한 것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전개되고 있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종교개혁 시대의 직업 윤리가 어떻게 해서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종교적 지위와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세속의 것들을 신성한 것으로 만드는지' 살펴볼 것이다. 지금은 이와는 다른 측면 즉, 종교적인 것들을 세속에 속한 것으로 저하시켜 버리는 경향을 살펴보겠다.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문화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신성한 것들이 세속적인 것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수단을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기독교 신앙과 세속 세계의 상호 작용을 다루는 적절한 방책으로 선택 가능한 두 가지 방안이 나타났다. 한편으로 우리는 '방벽(防壁)의 신학 (the theology of barricade), 곧 순수한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세속 세계에 오염된 신학 사이에 어떠한 상호 작용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나는 방벽이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이나사상이 결코 통행하지 못하도록 설정된 공유 영역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하였다. 신앙과 이 세상은 서로 적대 세력이며,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따로 떨어져야만 한다. 신학의 순수성은 그 신학이 스스로 설정한 울타리 바깥에 있는 세상을 향하여 거의 말을 건넬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서야 유지된다. 그 영성은 방어 양상을 띠며, 마치 보어인들(the Boer)의 크랄(raal)과 비슷하다. 그 영성의 순수성은 세속 사상과 가치들이 신앙의 모든 영역에서 얼마나 배제되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

레베카 피펏(Rebecca Manley Pippert)빛으로 소금으로(Out of the Salt shaker & into the world, IVP 역간)에서 이런 태도를 완벽하게 포착하고 있다.

 

무엇을 가리켜 영적이라고 하는지를 놓고 또 혼란이 있다. 우리는 믿지 않는 같은 방 친구를 연극에 데려 가거나 같이 피자 먹는 것보다 성경공부나 교회에 데려가는 것을 더 영적이다고 느낀다. 우리가 이 세상과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지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역시 우리는 하나님 그분과 자연스럽게 접촉하는 지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분은 우리 인간을 만드셨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의 인간됨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우리는 감히 그분의 영역을 성경 공부나 그리스도인들과 토론하는 세계로만 제한할 수 없다. 그분은 생명을 창조하셨으며 나아가 그 생명에 더하신 총체 속에서 영광을 받길 원하신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정세(情勢)'를 따르는 신학' (the theology of posture)이라고 이름붙인 것, 곧 그리스도인의 신실함과 적합성은 기독교를 세상과 구분할 수 없게끔 만듦으로써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다고 하는 신학이 있다. 이것은 기독교 전통의 역사적인 자원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시대의 문화사상 또는 가치 위에 전체적인 신학(하나님이 존재하실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신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다소 적절치 못하지만)의 기초를 건설하는 모습을 띌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과 그 영성은 잠시 동안 뭉쳐 있던 여러 태도와 생각들의 군상과 다를 바 없으며, 그것이 직면하던 세속의 환경으로부터 직접 유래한 것이다. 기독교 전통이 함유하는 자원들보다 도리어 이 세속의 환경이 가장 큰 자극제가 되면서 자유주의 영성의 힘을 북돋아주고 그 원리를 이끈 셈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학과 영성은 카멜레온과 같이 되었으며, 그 자신의 독특함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문화배경 안으로 뒤섞여 버렸다. 또 카멜레온처럼 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은 배경과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을 지나쳐 버리게 된다. 이런 접근법은 자신들의 순수성을, 사회에서 수용할 만한 무리들이 내세우는 최신의 사회 경향들과 지식의 흐름에 신학이 얼마나 일치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로 측정한다.

어쩌면 이런 특징 묘사들이 만화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만화의 정수(精髓)는 그것이 묘사하는 실재(實在)를 다른 사람이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닮았는가하는 점이다. 나는 한 때나마 그 두 번째 부류의 사상 속에 견고히 서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찌 되었든지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하다. 이 두 접근법 모두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접근법은 세상을 향하여 전혀 말을 건네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번째 접근법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지 못하는 내적인 무능함으로 인해 그러하였다.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둘 다 그 의도는 선했다. 둘 다 칭송할 만한 목표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둘 다 실패하였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칼빈이 추천하고 실제 그가 채택했던 접근법은 우리가 그 윤곽을 뚜렷하게 그을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때의 상황으로부터 오늘날로 옮겨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유연성을 갖고 있다. 그 기본 가정은 이렇다. 기독교 신앙 그 자체는, 특별히 그 교리적인 면에서, 우리에게 삶과 믿음을 위한 틀을 제공해 준다. 활력과 정열이 넘치는 이 틀이야말로, 자칫 기독교 신앙의 생명에 위협을 줄 수도 있는 사회적이고 지성적인 세력들을 분별하고, 신자들로 하여금 그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든 사회적, 지성적 세력이 기독교 신앙에 위협을 주는 것은 아니다. 풍성한 지식을 가진 신앙 - , 무턱대고 믿고 보자는 신앙이 아니라,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화실하고 명쾌한 것만을 믿는 신앙- 이라면 이와 관련하여 분별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주위의 발전 양상들에 비판을 가하고 그것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세속 문화 속에 나타난 모든 발전 양상을 사탄의 소행이며 파괴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하거나, 또는 정반대로 그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권위 있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단순하고 위험스러운 주장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발전 양상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또박또박 설명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은 이러한 평가의 삼단논법에서 늘 대전제(大前提)의 위치를 차지한다.

 

기독교 신학과 영성이 세속 세계에서 전개되는 발전 양상들 -그것이 실존 철학 같은 철학 분야든 아니면 융(KarI Jung)과 같은 심리학분야의 것이든- 에 예리하고 해박한 관심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 신학과 영성은 그런 발전상들이 추천하는 것을 마지못해 수용하기보다는, 오히려 능동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만일 기독교 신학과 영성이 그런 발전상들과 뒤섞여 같은 색깔을 띠게 되면서, 그것들이 이루어 놓았던 일을 미래 세대가 원점으로 되돌려놓아야 만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신학과 영성은 최악의 파산상태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이 점을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낸 강연 하나가 옥스퍼드에서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미국에서 온 연사를 소개했었고, 그의 주제는 '해방과 문구 (liberation and Culture) 비슷한 무엇이었다. 그것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는데, 강연의 요지는 기독교 신학이 좇아가야하는 모범을 현대 문화가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화가 간 곳이라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거기 가야만 한다는 내용이었다. 강연 뒤에 우리는 잠시 토론 시간을 가졌다. 아무도 질문하려고 하지 않았다. 때문에 청중들에게 시간을 주면서 내가 먼저 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사께서는 사물이 지금 존재하는 방식은 그렇게 존재하도록 예정되어 있던 방식이거나 미래에 존재하게 될 방식이며,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로부터 문화를 판단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까 문화도 때로는 그룻된 방향으로 빠져 들 수 있으며, 그런 문화는 비판을 받고 교정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할 여지마저 박탈하는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질문의 취지가 명백했기에 나는 그가 면밀하고 철저한 생각을 갖고 있기를 크게 기대하였다.

잠시 이야기가 멈추고 이내 당황스러운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때 그가 사용했던 말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나와 다른 청중들에게 충격을 줄 정도로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만은 기억할 수 있다. 그 대답이란게 이랬기 때문이었다. '그 점은 교수님의 말씀이 옳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어떤 판단 기준에 대한 논의, 곧 기독교로 하여금 문화를 판단하게 할 방법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반면 이 사람의 말을 따르자면, 오직 문화만이 자신이 가진 판단 척도에 비추어 기독교를 판단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향유하는 셈이었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세상에 접근해 가는 방법이 필요하다해서, 그것이 곧 인간의 문화를 모조리 부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세상의 문화를 철저하게 긍정하는 접근법만큼이나 그릇되고 적절치 못한 것으로, 자칫 복음에 어긋날 수도 있는 문화요소들을 알아내려는 의지나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칼 포퍼(Karl Popper)는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그의 저서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57)에서 다음과 같이 막스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막스주의는 장차 도래할 질서야말로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덕인 것처럼 가정하는 것 같다.' 미래의 가치들은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옳다. 미래의 질서는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 질서가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근래에는 사회주의의 불가피성을 옹호하려는 사람들을 발견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포퍼의 주장은 유효하게 남아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곧 일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옳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신학이 문화 속에서 전개되는 발전상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만 한다. 신학은 자신에게 제공되는 최신 문화 상품을 수용하기에 앞서, 엄격한 질문들을 먼저 제기해야한다.

종교개혁은 이 세상을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향하여 긍정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제안한다. 종교개혁은 여전히 추천할 거리가 많다. 우리가 이를 수용한다면 틀림없이 진지하면서도 끈기 있는 신학적 성찰에 푹 잠길 좋은 기회들을 얻게 될 것이다. 기독교회의 영성과 신학이 갖는 풍성한 보배들은 누구나 선용할 수 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그 보배들이 사용되지 않은 채, 방어에만 급급하여 정통이라는 이름의 지하 금고에 처박혀 먼지나 뒤집어쓰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저 우리의 동의를 거친 후,현대 문화의 어떤 양상도 비판 없이 받아들여 뒤섞음으로써 그 보배가 천박한 물건으로 전락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보관된 금고에서 그 보배들은 꺼내어 녹인 다음 현대의 주화(鑄貨), 곧 순수하고 어느 것도 견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주화로 새롭게 탄생시켜야한다. 종교개혁은 그런 신학과 영성 교육 프로그램을 실천하려고 시도하였으며, 나아가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을 명쾌하고 해박하게 이해하고 적용하게 했다. 역사는 우리들에게 상당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어쩌면 바로 그 기초 위에서 행동을 개시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다음 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개혁자들이 펼쳤던 노동의 영성이야말로 그에 대한 적절한 사례다.

 

  ref6_도시속의 신앙.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