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은혜 : 하나님의 자비를 다시 발견하다

 

Roots That Refresh, Alister McGrath, 종교개혁시대의 영성,

박규태 (서울: 좋은 씨앗, 2005), pp. 243-278.

 

 

'하나님의 은혜' 라는 테마를 다룬 학부생들의 소논문들을 수 없이 읽으며, 나는 이 주제가 가장 다루기 힘든 기독교의 개념들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 라는 개념이 갖는 중요성은 그 복잡성에 정비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가운데 하나는, 자기 스스로 이 개념을 정의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 화가 난 나머지, 언젠가는 '제가 은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은혜를 철저하게 믿습니다!' 라는 말로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람이 믿기 어려울 만큼 단순한 이 '은혜' 라는 말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그것을 설명할 도리가 있을까? '은혜' 라는 말은 무언가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특정한 사람과 상관없이 그저 일반적이고, 나아가 인간의 삶의 현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는 난해한 개념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은혜라는 개념이 갖는 추상성 때문에 토론이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세 시대 동안, 은혜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촉진할 목적으로 인간의 영혼 속에 주입한 어떤 실체로서 초자연성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곤 하였다. 이런 접근법의 기초가 되는 논증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 하나님과 인간의 본성 사이에는 철저하게 건너갈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고 있다. 이 간격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과 어떤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기 전에, 이 간격을 이어주는 뭔가가 필요하다.

따라서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창조하신 그 무엇으로, 순수한 인간 본성과 신의 본성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것 -일종의 중간종(中間種)- 으로 이해되었다. 은혜라는 개념 - 더 엄밀히 말하면 은혜가 갖고 있는 피조성(被造性),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는 성질) - 은 그런 점에서 일종의 교두보 또는 앞과 뒤를 연결하는 중간 지대(middle ground)로 여겨졌으며, 그것을 통해 다른 어떤 것도 결코 이어주지 못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깊은 틈이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그런 은혜 개념들이 혹독한 비판을 받는 주제였다. 16세기의 막이 열릴 무렵에는, 그러한 개념들은 대부분 나쁜 평판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여전히 적절치 못하게 추상성을 띤 일반 용어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잠재적인 오해는, 은혜를 단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으로만이 아니라, 이를 인간의 실존에 활력 있고 창조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게 하신 성령님의 행동과 은혜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서 비로소 제거되었다.

 

 

은혜 : 회복된 개념

 

신약 성경의 그리스어 본문이 말하는 의미에 민감했던 종교개혁자들은 '은혜' 의 근본 의미는 다름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롭고 특별한 사랑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어떤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격이 보여주신 태도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어떤 것(신적인 실체 같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인격이 갖는 역동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은혜가 함축하고 있는 강력한 인격성이 개혁자들을 통해 재발견되었다. 은혜에 대하여 말할 때는, 그분이 우리를 대하시는 모습 속에 표현된 것처럼,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내 친구를 '친절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런 친절함을 잘 드러내는 그의 행동을 제시함으로써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친절이라는 말은 그저 뜬구름 잡는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 속에서 표현되는 개인의 태도 또는 성품을 가리킨다. 친절도 은혜처럼 삶 속에서 드러나는 그 무엇이다.

은혜는 우리가 자비로우심이라는 말로 인식하는 신성한 임재와 행동의 틀을 나타낸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를 만나려 하신다. 우리가 듣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꺼이 그의 목소리를 듣게 하신다. 우리가 그로부터 멀리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흔쾌히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당신이 계신 본향으로 인도하신다. 그리스도는 부요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때문에 가난한분이 되셨다. 종교개혁 시대의 사상가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가진 깊이를 측량하여 전달하려고 노력하면서, 그 시대에 나온 저작들 전체에 걸쳐 그런 주제들이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을 잘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돌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 루터 칼빈 그리고 츠빙글리(종교개혁을 대표하는 저명한 인물들 가운데 세 사람만을 든 것이다)의 삶 속에 나타난 사건들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이렇다. 은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변화를 주는 인간의 삶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은혜는 그것이 가져온 결과들로 인해 알려진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태도는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행동 속에서 표현된다.

젊은 시절의 루터는 자신이 죄인임을 강렬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는 1483년에 태어나 1505년에 대학 도시인 에르푸르트(Erfurt)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꼼꼼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음에도 불구하고(훗날 그는 고백한 죄가 많았음을 술회하였다),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양심은 이런 죄들로 인해 격렬한 고통을 체험하였으며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절감하였다. 그가 보기에, 그는 죄로 가득한 상황이라는 올무에 걸려든 것 같았으며, 거기로부터 도무지 빠져나올 길이 없어 보였다. 마치 환각 약물에 중독된 자처럼, 그는 갈고리에 꿰인 사람이었다. 그가 죄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의의 하나님이 그런 죄를 못 본 체 넘어 가실 수 있겠는가? 루터는, 특히 바울이 즐겨 사용하였던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라는 문구로 인해 특별한 어려움들을 겪게 되었다. 사실 어떤 곳을 보면(1:16-17),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의의 계시와사실상 같은 것으로 본다. 루터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의의 계시가 죄인들에게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루터가 보기에 복음은 의인들에게나 좋은 소식이었지 자신과 같은 죄인들에겐 상관없는 일에 불과할 뿐이었다. 공의의 하나님이라면, 그분은(마르틴 루터를 포함한) 죄인들에게 벌을 내리시고 그들이 죄인임을 선고하실 것이다. 그가 죽기 1년 전인 1545년에 쓴 어떤 글에서 루터는 청년 시절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영혼의 고통을 이렇게 되새기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의' 라는 문구를 증오했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나아가 그 의를 통해 죄인들에게 벌을 내리신다. 한 사람의 수도사로서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았음에도, 나는 내가 죄인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껄끄러워 하실 양심을 소유한자임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자신에게 '비참한 죄인들은 원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정죄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게다가 구약의 율법으로 우리의 어깨 위에 모든 종류의 짐들을 더 많이 올려놓으시고,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이 복음을 통하여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드시다니, 이럴 수는 없는거야!'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분노하고 있었다.

 

그런 뒤, 상황이 바뀌었다. 아마도 1515년쯤에 이르러 하나님이 루터 자신의 죄를 포함하여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임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성경을 워기 시작하였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 와 같은 말이 그에게 극렬한 공포심을 안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들은 이제 하나님의 은혜라는 테마와 잘 어울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의는 죄인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공의가 아니라, 도리어 죄인들이 하나님 안에서 위안을 얻으며 평강을 찾을 수 있도록, 인간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었다. 루터는 그때, 자신이 마치 낙원에 들어간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고 회상하였다.

 

나는 그 '하나님의 의' 라는 말을 그 의로 인해 의롭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 믿음)로 말미암아 살아간다는 뜻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다(계시되었다)' 는 말을, 단지 수동성(受動性)을 지닌(즉 우리는 단지 주시는 것을 받을 뿐인) 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또한 긍휼의 하나님이 그 의로써 우리를 믿음으로 인해 의롭게 여기신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나는 곧바로 내가 완전히 거듭났으며 나아가 열려 있는 문을 통하여 낙원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때 이후로 성경의 모든 면이 나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전에 내가 '하나님의 의' 라는 말을 증오하였던 바로 그곳에서, 이제는 그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말씀을 가장 달콤한 말씀으로 찬양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바울 속에 있던 이 말씀이 내게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 입구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루터가 보기에 은혜는 생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일단의 개념들을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은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있는 우리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 우리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죄인들은 사랑받고 있기에 매력이 있는 것이지, 그들이 매력이 있기에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우리가 사랑받을 만하기 전부터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의 권세를 부수시고 정죄를 말끔히 없애버리실 수 있으며, 나아가 평온한 양심과 마음의 평강을 허락하셨다는 놀라운 통찰을 선포하는 것이다. 비록 죄가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은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그 은혜가 미친 영향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은 우리에게 보이신 자비로운 행위들 속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은혜는 그것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 끼친 영향으로부터 단절될 수 없다. 우리는 비슷한 성찰을 신약 성경에 있는 바울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거기서 '은혜' 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그로 인해 바울의 삶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일 - 이를테면 그의 회심 - 을 빈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와 흡사한 주장을 존 번연(John Bunyan)은 그의 남다른 (더불어 그 제목 역시 의미심장하다) 자서전인 넘치는 은혜(Grace Abounding)에서 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스위스 취리히의 개혁자 훌드리히 츠빙글리(Huldry chawingli)도 인상적이다. 츠빙글리는 1484년에 태어낫고, 취리히 대예배당에서 백성들의 제사장(Leutpriest)이라는 새로운 직무를 시작함으로, 자신의 서른다섯 번째 생일(11일이 그의 생일)을 자축했다. 몇 주가 지나지 않아, 그는 앞으로 그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개혁 프로그램을 설교하고 있었다. 설교 이외에도, 츠빙글리는 취리히시 안에서 정규 목회자의 임무를 떠맡았다. 그 해 늦여름께 츠빙글리는 임박해 오는 죽음에 다가가게 된다.

그 해 여름 전염병이 취리히를 강타하자 츠빙글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방문하며 위로하는 일에 온전히 매달렸다. 아마도 이 시기에 취리히 전체 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8월께는 츠빙글리 자신도 큰 병을 얻었고, 소생의 가망이 없어 보였다. 이 시기에 그는 시를 한 편 썼는데, 그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심정을 드러내었다. 죽느냐 사느냐는 오로지 하나님께 달린 문제였고 철저히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다가 츠빙글리는 회복되었다. 그에게 '은혜' 라는 말은 이제 하나님의 섭리와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곡조와 함께 울려 퍼졌다. 은혜는 인간 실존의 행로(行路)를 하나님께서 기꺼이 인도하시며 인도하실 수 있다는 것,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기꺼이 개입하시며 또 그러실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은혜가 그 무엇보다 우선 하나님의 호의를 발견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로 그 은혜는 인간의 삶 속에서 그 호의가 실제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가리켰다(츠빙글리는 취리히의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이 보존되었음을 염두에 두었다). 여기서 한 번 더, 우리는 이같은 틀을 발견하게 된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역동성과 창조성이 넘치는 모습으로 자비를 베푸시는 인생들 속에 개입하심을 말한다.

1509년에 태어났던 쟝 칼빈(Jean Calvin)은 일찍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가 되려는 야망을 품었던 듯하다. 그의 이력으로 보아, 사제가 될 가망성은 상당히 높았다. 그의 아버지는 놔용(Noyon)에 있는 성당에서 유력한 교회 행정 책임자로 일했으며, 칼빈은 그 지역에서 교회의 유력한 후원자로 유명했던 세도가문 드 앙쥐(de Hangest)()와 친밀한 관계였다. 그러나 1529년이 되자, 이런 가망성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칼빈의 아버지는 몇 가지 회계 장부의 불일치 사례가 드러나면서, 성당으로부터 신임을 잃게 되었다. 그 무렵 파리 대학교를 졸업하였던 칼빈은 신학 대신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아마도 그쪽의 전망이 더 밝아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가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당시 프랑스 전역을 휩쓸던 새로운 복음주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거기에 공감하게 되었다. 아마 1533년 말 아니면 1534년 초 쯤에 칼빈은 훗날 스스로 '급작스러운 회심' 이라고 표현했던 하나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마치 자기만의 방식에 얽매인 채, 친숙하고 위안이 되는 옛 종교에 견고하게 참호를 파고 그의 몸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런 다음 뭔가가 일어났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 입증할만한 참고 자료도 그는 남겨놓지 알았다. 그러나 그 기본 틀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개입하시고, 그로 하여금 옛 종교의 습속과 관계를 끊을 수 있도록 만드셨으며, 나아가 복음을 섬기는 길로 나아가도록 그를 해방시키셨다. 그는 자신과 같이 고집세고 무뚝뚝한 인물을, 하나님께서 옛 방식에 의존하는 길에서 해방하셨다고 보았다. 마치 길들여진 한 마리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굴복시키셨다.' 칼빈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바로 그분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이 소명의 본질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부르심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은혜는 그런 방식으로 죄와 무지(無知)에 찌든 상황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은혜는 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죄의 수렁에서 사람들을 구출해내며, 하나님에 맞섰던 사람들을 길들여 그분께 순종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울러 칼빈은 자신과 바울을 이런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 속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비록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우리가 보았듯이 1533년 또는 1534년의 어느 시점에)을 칼빈이 분명하게 느꼈다할지라도, 어떤 능력으로 또는 어떤 위치에서 그가 하나님을 섬기도록 예정된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지만 어떤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는가? 그는 16세기의 가장 중요한 출판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책 - 15363월에 출판된 (기독교강요) - 을 쓰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문제로 분주하였다. 하지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그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자신에게도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었다.

마침내 15367월에 이르러, 그는 스트라스부르(Starsbourg)로 가서, 몇 가지 중요한 연구 작업을 진척시켜 완성해 가기로 결심한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늘 이용했던 파리와 스트라스부르 사이의 교통로가 막혀 버렸다. 그는 다른 길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전쟁을 피하여 스트라스부르보다 더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어떤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어야만 했다. 그 도시가 제네바(Geneve)였으며, 당시 그곳은 한참 종교개혁의 원리들을 받아들이던 중이었다. 그는 거기서 인정을 받고, 그곳에 머물도록 요청을 받는다. 기욤 파렐(Guillaume Farel)과 피에르 비레(Pierre Viret)(개혁이 진행되고 있던 제네바를 그때까지 지도하던 개혁자들이었다)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 가지를 칼빈에게 이야기했다. '이 도시는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훗날 자신이 쓴 사돌레또에게 답변함(Reply to Sadoleto)에서 말한 것처럼, 칼빈은 자신이 제네바에 머물면서 그 곳을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추호도 의심치 않게 되었다. 훗날 그가 보낸 서신들 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칼빈이 자신의 소명을 자각하게 된 것은 제네바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가 1538년 제네바 시로부터 잠시 추방당하게 되었을 때, 칼빈은 영혼의 위기라는 터널을 통과하면서,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자신의 소명은 이제 취소되었다고 믿을 정도였다.

한편, 이런 소명 의식의 동요(動搖)는 처음에는 복음주의에 관심을 보였다가 이후 로마 가톨릭으로 되돌아갔던 루이 뒤 틸레(Louis du Tillet)가 보낸 몇 통의 편지로 인해, 더 촉진된 부분도 있다. 뒤 틸레는 칼빈이 어리석게도 인간의 요청 - , 파렐과 비레의 요청 - 을 하나님의 부르심과 혼동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칼빈을 목회자로 결코 부르신 일이 없거니와, 제네바에서 일하도록 부르신 일도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칼빈이 제네바로부터 추방당했다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없이 그런 주장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런 동요의 심정과 추방은 잠시뿐이었다. 칼빈은 자신이 그곳에서 일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음을 발견한 듯 보였으며,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강력한 자각을 되찾았다. 칼빈은 이렇게 쓰고 있다. '주님은 내가 나의 소명을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강력한 이유들을 제시해 주셨다.' 이제 은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는 것과 연결되면서, 소명 그리고 선택과 예정처럼 그 소명과 연관된 교리들 속에서 더욱 엄밀하게 표현되었다. 은혜는 실제 인간의 삶 - 단지 일반적인 인간의 삶이 아니라, 특정한 한사람 한사람의 삶 - 속에서 나타나는 그 어떤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이제 은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이 그 백성들의 삶 속에서 창조성 넘치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새 힘을 부여하며 삶을 바꾸시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죄와 절망의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빠진 이에게 던져진 생명줄이다. 그것은 죄들의 용서, 인간의 연약함의 변화 그리고 하나님이 각 사람들을 세상에서의 소명으로 인도해 가시는 모습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라고 썼을 때,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그 은혜가 자신의 삶 속에서 현실로 나타났음을 동시에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은혜는 결코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은혜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역사 속에 자리한 각개인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위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전기 - 아니 오히려 자서전 - 를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베푸신 모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도 선용할 수 있는 통찰이다.

 

 

죄의 실체 : 개인의 죄 그리고 구조적인 죄

 

은혜는 죄의 실체와 힘이 언급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하고 적절하게 이해된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죄에 대해 말하는 것에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는,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을 지지했던 저술가들은 자신들이 죄를 다룰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이신칭의의 교리는 죄를 정면으로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분노 대신에 하나님과 더불어 평강을 누리게 됨을, 죄의 삯인 사망 대신에 영원한 생명을, 정죄 대신에 용서를 제시했다. 이렇게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실재(reatity)임을 확신하면서, 죄의 실체에 정면으로 맞서는데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존재하는 죄들 때문에 죽으셨다. 어쩌면 이런 믿음이 가장 강력한 - 아울러 논쟁하는 - 어조로 표현된 글을 루터가 멜란히톤에게 보낸 한 편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듯한데, 그 편지에서 루터는 (멜란히톤 개인의 삶과 관련하여 그의 괴팍스러움에 화가 난 나머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죄인이 되라, 그러면 담대하게 죄를 지으리라!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더욱 더 담대한 기쁨을 누리게 되리라!' 루터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비록 절망의 심정 때문에 과장되었을 수도 있지만), 사소한 죄들에 사로잡히게된다할지라도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인생의 커다란 죄들을 위해 죽으셨으며,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두 번째 이유야말로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주요 개혁자들은 삶의 경험이 대학이라는 상아탑에 한정되어 있던 학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죄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경험했던 목회자들이었다. 그들은 유럽의 도시들과 성채(城砦)들에서 벌어진 권력 투쟁에 연루되었으며, 이는 그들로 하여금 구조에 얽힌 죄의 실체를 확실하게 깨닫도록 만들어 주었다. 요컨대 그들은 죄가 개인, 사회구조 그리고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깨닫게 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결코 터무니없는 공상에 빠진 채 세상을 살던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인간 실존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한편으로 보면, 개혁자들 스스로 죄의 개인적인 측면과 공동의 측면들을 고통스럽게 증언하고 있었다. 루터는 1525, 농민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동안 너무나 어려운 지경에 몰려 있었다. 자신들을 억압하던 지배자들에 맞서 봉기한 농민들을 지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루터의 개혁에 후원자였던 제후들을 지지해야 하는지, 그는 기로에 서 있었다. 얼기설기 꼬여 있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여러 가능성들에 얽혀든 채, 그 가능성들 가운데 어느것을 꼬집어 '옳다 또는 '그르다'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루터는 제후들을 지지하기로 결심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은 자신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이었다. 그가 말한 칭의 교리뿐만 아니라 루터 자신의 행동들이 그의 죄성(罪性)을 증언해 주었다. 그는, 죄가 그 자신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개인이든 공동체와 관련되어서든, 모든 차원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이 많은 현대 신학과 이루고 있는 대조는 의미심장하다. 이는 곧, 신학자를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으로 보았던 종교개혁의 패러다임에서, 어느정도 그런 신앙공동체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게 되는 틀로 옮겨가고 있음을 반영한다. 상아탑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학문성만을 추구하는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은 목회로부터 따로 분리된 존재가 되었으며, 이 세상의 일과 아주 조금만 관련을 맺을 뿐이다. 학문성을 중시하는 이론가들과 그들이 해석하며 말을 건네려는 세상 사이에는 하나의 틈이 벌어져 있다. 어쩌면 바로 이런 이유들로 인해,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죄가 가진 실체를 자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제3세계의 목회자들과 저술가들이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구의 대학들은 그들이 기반으로 삼는 사회만큼이나, 또는 그들이 가르치는 개인만큼이나 죄로 얼룩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에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 '분노하심이 없는 어떤 하나님이, 죄가 없는 사람들을, 십자가를 진 일이 없는 그리스도라는 이의 사역을 통하여 심판이 없는 어떤 나라로 인도하였다'는 사이비 복음에 대하여 강력하게 설파한 적이 있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이 보기에, 죄라는 개념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고, 특히 그 죄라는 것이 자유주의의 낙관론이 그 낙관의 근거로 제시하는 성선설(性善說) - 곧 인간이 그 근본에서는 선한 존재라는 개념 - 에 자주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는 점에서 축출되어야만 하는 개념이다. 종교개혁 영성을 회복하는 것은 죄의 실체가 거리낌 없이 인정되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자세는 영성에 존재하는 하나의 어려운 영역 - , 신자들 사이에 여전히 죄가 끈질기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 - 과 관련하여 어느 정도 열린 마음을 북돋아준다.

 

 

죄 범하는 그리스도인들 : 말 자체에 모순이 있지 않는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죄의식을 자각하고 있다. 사실, 가장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죄를 가장 많이 깨닫는다. 그러나 이런 실제적인 관찰 결과의 밑바탕에는 이론적으로 하나의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어떻게 죄와 믿음이 공존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의롭다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시에 죄인일 수 있을까? 심리학과 신학은 이 쟁점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점에 대한 루터의 논지(論旨)는 그의 영성 중에서 가장 도움을 주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그는 1515-l6년에 쓴 로마서 강의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가 이에 대하여 말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과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사이에 근본적인 구분이 있음을 말한다.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의 지위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본 우리의 지위 사이에는 근본부터 차이가 존재한다. 루터는 이와 관련하여 '내재하는' (intrinsic)'외재하는' (extrinsic)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인간이 안에서 바라본 시각과 하나님이 바깥에서 바라본 시각 사이에 이런 구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다음, 루터는 신자(信者)들과 불신자(不信者)(루터가 사용한 말로 표현하자면, 거룩한 자들과 위선자들) 사이의 차이를 고찰한다. '거룩한 자들은 자신의 시각으로 보면 늘 죄인이며, 따라서 늘 밖에서 보면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다. 반면 위선자들은 자신의 시각으로 보면 늘 의인이며, 따라서 늘 밖에서 보면 죄인들이다.' 신자들은 이렇게 자신을 죄인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고로 의인들이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의인으로 여기신다. 믿음을 통하여,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라는 옷을 입게 되는데, 이는 에스겔 168절에서 우리의 벌거벗음을 당신의 옷으로 덮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라고 루터는 주장한다. 루터가 보기에 신앙은 하나님과 맺고 있는 올바른(또는 의로운) 관계이다. 그런 점에서 죄와 의로움은 공존한다. 내면으로부터 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겉으로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다. 신앙으로 우리의 죄들을 고백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르고 의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 자신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는 의로운 존재들이다.

 

거룩한 자들은 늘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있기에 하나님의 긍흘을 좇아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의로움을 갈구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 그런 점에서 그들 자신의 시각으로 보면(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죄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의로운 사람들인 즉,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롭다 여기시기 때문이다. 실상 그들은 죄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책임을 전가하심으로써 의롭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의식적으로는 의인이나, 의식적으로는 죄인들이다. 그들은 사실 죄인들이나, 소망 안에서는 의인이다.

 

죄와 의로움의 이런 공존이 영원히 이어질 상태임을 루터가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려 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덮으신다는 점이다. 그분의 의로우심은 마치 하나의 보호하는 덮개 같은 것이며, 그 보호 아래 우리는 자신의 죄에 맞서 싸울 수 있다. 그러나 - 이것이 루터가 통찰한 핵심이기도 한 것인데 - 죄가 존재한다 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지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칭의(稱義)를 통하여 우리에게는 의로움이라는 지위가 주어졌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는 의로움이라는 본성(nature)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일한다. 언젠가 우리를 의로운 자로 만드시고, 결국 우리 죄를 깨끗하게 제거하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점에서, 이미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분의 눈앞에서 의로운 사람이다. 루터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아픈 사람과 흡사하고, 나아가 그에게 완전한 회복을 약속한 의사를 신뢰하는 사람과 똑같다.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약속된 회복을 소망하면서 의사의 지시에 순종하고, 권유 받은 것들을 그만두게 되며, 그리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하는데 어떤 방해거리도 없게 된다‥‥ 이제 이 병자는 회복될까? 사실 그는 병자이면서 동시에 건강한 사람이다. 그는 병을 앓고 있으나, 그가 신뢰하고 그를 이미 완치된 사람으로 여기는 의사의 확실한 약속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다.

 

그 의미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 의술(醫術) 비유를 즐겨 사용하면서, 루터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죄를 병에, 의로움을 건강에 비유하면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죄인임과 동시에 의로운 사람이다. 실상 그는 죄인이나, 하나님이 그(병자)를 완전히 치료하실 때까지 그를 계속하여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임을 약속하시며 확실히 책임을 맡으셨으므로,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 따라서 지금은 실상 죄인인 그가, 소망 안에서는 완전한 건강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신자 속에서 죄가 끈질기게 자리잡고 있는 현상을 설명해주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점차 바뀌어 가는 신자의 모습과 더불어 미래에 그의 죄가 말끔히 씻겨지게 될 것임을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완전한 의로움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죄가 곧 믿음이 없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일이 실패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죄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격을 끊임없이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보살핌에 내어 맡겨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이 목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상당하다. 한번은 내 동료 한사람이 '자아존중' (self- esteem)이라는 주제를 놓고 자신이 살던 지역의 교회에서 최근에 열린 한 모임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모임의 모든 참석자들은 자신에게 0(소름이 끼친다)부터 10(완벽하다)까지 하나의 등급을 매기도록 요구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 - 점잖은 미국인들이다 - 은 자신을 4점과 6점 사이의 등급(특별히 좋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나쁘지도 않은 수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당시에 초청했던 강사(한참 인기를 끌고 있던 몇 권의 심리 치료 서적들을 이미 읽었던 사람이었다)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10점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인즉,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완벽한 존재들이며, 다만 자아 존중이 철저히 결핍되어 있는 탓에 고통을 겪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은 참석자들 사이에 흥미로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대개 자신들이 스스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나아가 그 강사의 말을 철저한 속임수로 여겼다는 사실이었다.

이처럼 죄를 부인하는 모습은 완벽함을 말하는 신화 - 지금의 우리모습은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던 그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현실성 없는 신화 -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칭의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불완전함과 죄를 시인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빈곤한 우리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우리는 바꾸시려는 하나님의 목적과 그 일을 해내시는 그분의 능력을 기뻐하게 만든다. 언젠가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를 하나의 병원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 곳은 기꺼이 자신들의 죄를 시인하고 의사들의 숙련된 의술에 소망을 품고 그것을 신뢰하여 그 치료의 손길에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써, 한 몸이 된 병자(病者)들의 공동체이다. 위에서 보았듯 루터는 이런 사고의 틀을 견지한다. 곧 우리는 실제로 죄인일 수 있지만, 소망 안에서 이미 의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 이야기 역시 이 자아존중의 문제에 대한 루터의 접근법이 얼마나 중요하고, 유익하며, 기독교다운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모습 이대로 우리를 받아들이신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당신 자신을 10점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함은 당신을 받아주시는 필요조건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현재 모습 그대로 당신을 받으신다. 그분은 당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시고 빚으시겠다는 약속으로 인해, 당신에게 기꺼이 10점의 지위를 부여하시는 것이다. 당신이 4, 5, 아니면 6점이라 할지라도, 그분은 당신을 흔쾌히 받으신다. 그분의 자비로우심으로 인해, 하나님은 당신을 받아들이신다. 당신은 완전한 것처럼 가장함으로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또는 하나님이 속으실 거라고 생각지도 말라). 죄인을 의롭다 인정하심은 결코 그 어떤 속임수나 법정에서 진술된 거짓말, 나아가 거짓으로 꾸며낸 거룩함을 근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모습 그대로 받으시면서도, 또 한편으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의 모습을 빚어 가신다. 우리를 새롭게 빛으시고, 나아가 우리에게 10점의 본질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비추어 우리에게 10점의 지위가 부여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의 둥급을 끌어 올리려는 용기와 동기를 부여하며, 우리의 연약한 모습과 결점들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4, 5점 그리고 6점인 우리가 8, 9점 그리고 10점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로 재창조될 우리의 장래 모습에 관하여 품고 계신 환상과 의도 그리고 약속을 반영하는 지위를 우리에게 부여하신다.

그러면 이제, 전문가인 체 행세하는 우리의 풋내기 심리치료가 -내 동료교회에 초청 연사로 온 인물 - 의 접근법을 살펴보자. 그는 청중들에게 그들이 완전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청중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말이 우스꽝스럽다고 간주했다. 첫째, 그 말은 청중들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았다. 청중들은 자신들이 만점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사람 앞에서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완전한 인간인 것처럼 꾸며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홀로 있을 때에는 자신들의 죄를 철저히 자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그런 접근법은 자아발전을 위한 어떤 동기도 제거해 버렸다. 만일 당신이 10점 만점에 10점이라면, 더 이상 성취할 것이 없다. 이는 무사태평을 낳게 되고, 자아 발전과 거룩함의 성장을 철저하게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루터의 접근법은 이 두 함정을 모두 피하고 있다. 그의 접근법은 우리가 현재 죄인이며(이 점은 자신의 경험과 우리가 아는 자신의 모습과 일치한다), 나아가 상당한 발전의 여지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의 선언은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도 긍정하고 있다. 20세기 독일계 미국인 저술가요 신학자였던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이런 통찰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받아들여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따라서 죄를 자각하고 있다하여, 그것이 꼭 신앙으로부터 벗어나게될 것을 보여주는 어떤 징후라거나 하나님을 향하여 완전하지 못하게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죄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모습, 바로 그것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으며,그런 투쟁은 칭의와 거듭남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루터의 말을 빌어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려 본다. '우리의 본질을 놓고 보면 우리는 죄인이지만, 그러면서도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죄책을 전가하심으로써, 우리는 의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겠노라고 약속하신 그분을 신뢰하고 있으며, 나아가 한편으로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말끔히 죄를 제거하실 때까지 그 죄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성례들 : 은혜를 되새기게 하는 것들

 

'내 백성을 늘어나게 할지어다!' 20세기 후반을 풍미하던 교회 성장 운동의 구호였다. 종교개혁 역시, 그것이 살아남고 싶다면, 무엇보다 역시 성장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단지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유럽전역의 복음주의 공동체들이 요구하는 바에 부응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혁 교회에 속한 구성원 수가 늘어나더라도, 그러한 증가는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 분별력 그리고 헌신에 있어서의 성숙과 일치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숫자의 증가는 자신의 신앙을 견고히 지켜갈 수없는 껍데기 그리스도인들만을 무더기로 앙산 할 따름이었다.

그런 점에서 영혼의 성장은 중요한 관심 분야였다. 여러 자원들이 동원되어야만 했으며 다양한 신앙의 성숙을 위한 기술들이 발달했다. 그것들이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사람들의 신앙적 자질을 더욱 깊이 하는 데 사용했던 수단들 중 하나를 살펴볼 것이다. 성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표지들이며,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를 되새기게 하는 것들로 간주되었다. 묵상에 큰 도움이 되며,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분별에 새로운 자질들을 더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

종교개혁은 논쟁 속에서 태어났다. 논쟁은 탐구와 명쾌한 설명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유익할 수 있다. 4세기에 벌어졌던 논쟁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聖)과 삼위일체의 본질에 대한 기독교 사상의 발전에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는 점은 이를 증명하는 사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논쟁은 대단히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그 결과에 집착하다보면, 논쟁 당사자들은 과장하거나 으스대는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다른 때 같으면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생각이나 관습들도 즉시 거부된다. 개신교가 성례를 두드러지게 폄하했던 것이 그 적절한 예이다. 개신교 신자들은 아마도 성례를 긍정하는 자세를 취할 경우 대적자인 로마 가톨릭 진영에 동의를 표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두려워했던 탓인지, 성례에 마땅히 돌아가야 할 분량에 훨씬 못 미치는 평가만을 내리면서 성례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면, 빅토리아 시대의 잉글랜드의 복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저교회주의자들이었으며(그들의 신학이나 영성에는 교회 제도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들은 성례에 중요한 지위를 부여하는 그 어떤 형태의 예배에도 적대감을 드러내었다. 그와 같이 당시에 종교가 극단에 치우친 부분이 나타나면서, 말씀과 성례는 사실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 결과, 개신교 영성의 전통은 메마른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종교개혁 초기의 영성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치유되었는지 알 수 있다. 종교개혁의 유산 가운데 현대 복음주의의 손으로 회복되고 갱신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례 분야이다.

복음주의 영성에 성례가 중요하다는 점을 종교개혁이 강조할 때 중심이 되었던 주제는 하나님이 인간의 연약함에 눈높이를 맞추셨다는 점이다. 이런 생각은 특히 칼빈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는 이런 생각을 가장 명쾌하게 해명한 인물로 여겨진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훌륭한 연설자들은 청중들이 가진 한계를 알며 이해한다. 나아가 그들은 청중들의 한계에 자신들의 연설 방식을 맞춘다.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바꾸어 청중들의 요구와 능력에 맞추면서 어려운 말과 개념들을 피하고, 나아가 그런 것들 대신에 더 적절한 연설 방식을 사용한다. 이런 '적응의 원리' 는 다른 한편으로 유비(類比)나 시청각 교육 도구의 사용에까지 미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다루기 힘든 개념들이나 관념들을 발견하면, 공중 앞에서 연설하는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주장하는 요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와 사례들을 사용하도록 강력히 요구한다.

그 점은 하나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칼빈은 주장한다. 그분이 스스로를 우리의 연약함에 맞추신다. 스스로 우리 수준으로 내려 오셔서, 강력한 이미지와 다양한 화법들을 사용하심으로, 각 사람의 다양한 능력에 따라 자신을 계시하실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배움의 정도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부터 배척당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그와 같이 낮은 차원의 방식을 사용하신다 하여, 그것이 곧 그분에게 어떤 연약함이 있다거나 결점이 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어떤 연약함을 반영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은혜로써 그 연약함을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신다. 하나님은 믿음을 창조하고 그것을 유지하실 때, 광범위한 자원들 - 이를테면 말씀, 개념, 유비(類比), 본보기들, 표적들 그리고 상징들 - 을 동원하실 수 있는 분이다. 성례는 이런 자원들이 보관되어 있는 병기고(兵器庫) 속에서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종교개혁 첫 번째 세대들이 보기에, 성례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우리가 그분의 약속들을 받아들이고 그 약속들을 향하여 응답하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아시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자비로운 은혜의 표적들로 보충하셨다. 그것은 우리 능력의 눈높이에 맞추신 것이다. 성례는 일상 세계의 사물들을 통하여 매개된 하나님의 약속들을 대변한다. 멜란히톤은 자신이 쓴 미사에 대한 제안들(Propositions on the Mass, 1521)에서, 성례는 무엇보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간의 연약함에 맞추신 것임을 강조하였다. 65개조로 구성된 이 제안 속에서 멜란히톤은 자신이 기독교 영성에서 성례의 대안으로 신뢰할만하다고 간주했던 한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표적들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믿는 말씀을 되새기며 그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하는 수단들이다.' 모든 표적이 성례는 아니다. 성례는 하나의 제도로 권위를 부여받은 은혜의 표지(표적)이며, 그 성례의 자격을 증명하는 신임장(信任狀)은 견고한 복음주의의 토대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그 표지는 우리가 임의로 고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며, 도리어 우리를 위하여 선택된 표지들이다.

이상적인 세계에서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분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도록 되어 있다고 멜란히톤은 주장한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 본성이 갖고 있는 연약한 부분 가운데 하나는 바로 표적을 구하는 것이다(멜란히톤은 이런 주장을 펼치면서 기드온의 이야기<6:36-40>를 언급한다). 멜란히톤이 보기에 성례는 표적들이다. '몇몇 사람들이 성례라 부르는 것을 우리는 표적이라 부른다. 또는 당신이 원한다면 성례의 표적들이라 부르겠다.' 이런 성례의 표적들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는 이런 불신을 완화하시려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표적들을 더하셨다.' 그런 점에서 성례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표적들이며, 타락한 인간의 믿음에 다시금 확신을 심고 그 신앙을 든든히 세우기 위해 은혜의 약속들에 더해진 것이다.

루터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면서, 성례를 표적을 동반한 약속들' 또는 '하나님이 제도로 세우신 표적들과 죄 용서의 약속' 이라고 정의한다. 흥미롭게도 루터는 '담보'(보증, Pfand)라는 말을 성찬(the eucharist)이 갖고 있는 보증의 특성을 강조하는데 사용한다. 떡과 포도주는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임을 우리에게 거듭 확신시켜 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 약속을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약속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그것을 견고하게 붙들도록 한다.

 

우리가 이런 그리스도의 약속을 확신할 수 있도록, 나아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 약속을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그분은 우리에게 가장 고귀하고 값비싼 보증인(保證人, seal)과 담보 - 곧 그 떡과 포도주 속에 주어진 그분의 진정한살과 피 - 를 제공해 주셨다. 이 떡과 포도주는 곧 그분의 살과 피와 똑같은 것인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이 귀중하고 은혜로운 보배의 선물과 약속을 획득하셨으며, 약속된 은혜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이면서 대가를 치룬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신앙으로 이 은혜에 응답해야한다는 점을 되새기도록 해준다.

이처럼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며 엄청난 값을 치룬 것들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신뢰할 만하며 거대한 가치를 지닌 것임을 보여주는 표시이다. 루터는 '임종 직전의 의사(意思) 또는 약속이라는 의미로 이해되는 유언(遺言)'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이런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이것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임을 선언하셨다(22:20)‥‥ 모든 사람들은 유언을 임종 직전에 사람이 하는 약속으로 알고 있으며, 그 유언을 통해 자신의 유산을 열거하며 그것을 물려받을 사람을 지명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유언은 무엇보다도 우선, 유언자의 사망을 포함하고 있으며, 둘째로는 유산을 지정하고 그 유산의 상속인을 지명하는 것을 포함한다.

 

여기서 루터가 통찰하고 있는 점은 이것이다. 유언이란 가장 먼저, 유언자가 죽어야만 효력이 발생하게 되는 약속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성찬은 너무나 중요한 세 가지 사항을 제시한다.

 

1. 성찬은 은혜와 죄 용서의 약속들을 확증한다.

2. 성찬은 그런 약속들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 준다.

3. 성찬은 그런 약속들을 했던 사람이 죽었음을 선언한다.

 

그런 점에서 성찬은, 마치 드라마처럼 은혜와 죄 용서의 약속들이 이제는 그 효력을 발생하고 있음을 선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죄 용서의 약속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독생자가 죽으심으로써 확증되었던 약속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선포함으로써, 신앙공동체는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이라는 귀중한 약속이 신앙을 소유한 이들에게 이제는 '유효해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물, 떡 또는 포도주와 같이 보잘 것 없고 평범한 것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그토록 큰 중요성을 가질 수 있을까? 확실히 기독교가 내놓는 모든 주장은 물질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려 하나님 바로 그분이라는 더 위대한 실체를 바라보도록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물질에 거리낄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루터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다루고 있다.

 

성례에서 우리는 결코 진기한 그 무엇도 뭇 본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평범한 물, 떡 그리고 포도주 그리고 설교자의 말씀뿐이다. 거기에 무슨 장엄한 구경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하찮은 것들 속에 영광스러운 어떤 엄위(majesty)가 감추어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 떡, 물 또는 포도주는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깨어지기 쉽고, 약하며 죽음에 이르는 한 인간을 본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엄위 그 자체이다.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바로 그분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이 성찬의 소재들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다루신다.

 

루터의 기독론은 그가 성례에 접근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통해 자신을 알리실 수 있다. 그러나 루터와 그의 동료들이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는 다만 눈에 보이는 어떤 표지들을 성례로 간주하도록 허락받았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겪은 일 하나를 설명함으로써 루터가 염두에 두었던 논지(論旨)를 더 잘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캠브리지에서 연구생으로 머무는 동안, 정해 놓은 때를 따라 학교 근처의 한 마을에 사시던 연로한 어르신 한 분을 찾아뵙곤 하였다. 어느 봄인가 나는 그분 집근처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나팔수선화(dafiodil)를 소재로 삼아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난 나팔수선화를 좋아한다오' 라고 그분이 이야기했다. '겨울이 가고 나니,새로운 생명이 돋아났구려. 저 꽃를 볼 때마다 나는 부활을 생각한다오? 그분은 그 해 여름, 세상을 떠나셨다. 그 이후로 나는 봄에 피는 나팔수선화를 볼 때마다 부활과 그 어르신을 되새기곤 한다.

하지만 그런 기억과 연상은 어디까지나 개인 차원의 것이다. 신앙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개인 차원에서 연상하는 것들에 종속될 수 없다. 성례는 그 신앙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연상하는 어떤 명확한 것들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예배에서 사용됨으로써 더 강력해지고 그 의미가 깊어지는 연상과 기억들을 가르킨다. 그러나 떡과 포도주와 같은 세속의 소재들이 어떻게 그토록 강한 연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츠빙글리는 이런 질문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답을 하나 제시하고 있다. [근래에 우리는 그의 접근법을 '상징설'(a theory of uanssignification) 이라는 말로 부르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정작 츠빙글리 자신은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의 저술들은 목회에서 사용되는 일상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오늘날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전문용어들에 진저리가 난사람들에겐 이것이 하나의 구원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토론을 시작해야할 것 같다. 츠빙글리가 보기에 성찬의 주요 목적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그는 이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나의 유비(類比)를 사용한다. 오랜 시간이 걸릴 사업상의 출장을 막 떠나려하는 한 상인을 생각해 보라(그는 어쩌면 이탈리아 및 독일과 중요한 무역 거래를 펼쳤던 자신의 고향 취리히의 상인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는 떠나기 전에 자신의 조그만 초상(肖像)이 들어 있는 반지 하나를 자신의 아내에게 준다. 그 반지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을 되새기게 하며 나아가 그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유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츠빙글리는 말한다. 그가 집을 떠나 있을 때 아내는 그를 기억 속에 떠올린다. 그 반지는 곧 그를 기억하도록 하며, 따라서 강력하게 그를 연상시키는 힘이 있다. 아내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반지를 남편이 떠나던 날과 연결하면서, 나아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그의 약속과 반지를 결합시킨다. 남편이 떠나 있는 동안 반지는 남편과 그의 아내를 이어준다.

츠빙글리는 떡과 포도주가 신자들에게 이 반지와 비슷한 연상 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떡과 포도주는 세상과 세상 삶으로부터 떠나실 준비를 하시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과 연결된다. 떡과 포도주는 다시 오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을 되새기게 해준다. 나아가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을 때 그의 백성들은 그 떡과 포도주를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자 주님을 되새기게 하는 것으로 늘 소중히 여길 수 있다. 떡과 포도주는 특별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특별하게 되었는가? 성찬에 쓰이는 떡과 포도주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인가? 그 떡과 포도주는 평범한 떡과 포도주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츠빙글리는 이 물음에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답하고 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정황 속에 놓인 하나의 반지를 생각해 보라고 그는 제안한다. 첫 번째 정황에서 그 반지는 단지 존재할 뿐이다. 어쩌면 당신은 한 탁자 위에 있는 반지를 상상할 수도 있고, 보석상(寶石商)의 진열창에 들어 있는 반지를 그릴 수도 있다. 그것은 한 조각의 귀중한 금속이다. 그렇지만 그 반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연상되는 것도 없다. 이제 그 반지를 새로운 정황에 옮겨졌다고 가정해 보자. 반지는 이제 어떤 왕의 손가락에 끼워졌다. 이제 그 반지는 권위, 권력 그리고 위엄 등을 갖추고 있는 왕과 연관되어 연상된다. 이런 연상들은 처음의 정황에서 새로운 정황으로 옮겨 가면서 생겨난 것이다. 물론 반지 그 자체는 전혀 변함없이 그대로다.

츠빙글리는 이미지를 바꾸어, 들에서 자라는 몇 송이의 백합들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이제 그것들이 완전히 다른 정황 - 즉 신부(新婦)의 면사포 같은 - 으로 옮겨졌다고 상상해 보라. 이제 하나의 왕관 모양으로 수놓아진 그 꽃들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이제 그 끝들은 신부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의 일부이다. 혼인하는 날의 신부와 연결되면서 그 꽃들은 기쁨과 찬미를 연상토록 하는 것이 된다. 이는 그 꽃이 자연의 들판 속에 있던 때에는 전혀 갖지 못했던 연상이다. 정황이 바뀌면서 연상되는 것들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이다.

각각의 경우에 똑같은 방식이 등장한다. 사물 그 자체는 변함이 없으나, 도리어 그 사물의 의미가 드라마처럼 변하고 있다. 그 의미 -바꾸어 말하면 그 사물들이 연상케 하는 것들 - , 사물 그 자체의 본질에 어떤 변경도 가져오지 않은 채 바뀔 수 있다. 그와 똑같은 과정을 성찬의 떡과 포도주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고 츠빙글리는 주장한다. 평범한 일상의 정황 속에서, 그 떡과 포도주는 말 그대로 평범한 떡과 포도주이며 특별히 연상하게 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일단 그것이 어떤 새로운 정황 속으로 옮겨지면 그것들은 새롭고 중요한 의미를 연상하게 한다. 그 떡과 포도주가 어떤 예배 공동체의 중심부에 놓이게 되면, 나아가 거기에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보내신 마지막 날 밤의 이야기가 다시 덧붙여지게 되면, 그 떡과 포도주는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사건들을 강력히 되새기도록 만든다. 떡과 포도주에 이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그것들이 놓여 있는 정황이다. 그 떡과 포도주는 본질이 전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접근법이 유익함을 발견한다. 특히 그 접근법이 복잡한 형이상학의 문제들(이를테면 중세에 등장한 개념인 화체설Uansubstantiation) 같은 문제들인데, 화체설에 따르면 성찬의 떡이 떡을 받는자에게 건네질 때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고 한다)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이 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삼았다할지라도, 그것이 곧 기독교 영성에서 성례에 중요한 위치를 부여하는 것과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사실 성례는 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 것과 완전히 그 궤()를 같이 한다.

첫째, 성례는 신앙을 뒷받침할 의도로 제정된 것이다. 신앙이 없다면, 성례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루터는 이 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였다. 성례는 신앙이라는 정황속에서 그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는 자신들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자신들에게 보여줄 표적이 하늘에서 내려오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아가 그들이 택함 받은자 가운데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표적이 하늘로부터 주어지기를 갈구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라! 하지만 만일 그들에게 여전히 신앙이 없다면, 그런 표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앙이 없다면 표적들이 대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 성례란 것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그 성례라는 장엄한 표적들이(또는 그 문제에 관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자체도)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둘째,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확증하는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다. 루터가 쓴 것처럼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버린다면, 세례는 단지 물에 불과하며 나아가 주님의 마지막 만찬은 단지 떡일 따름이다.' 성례는 말씀과 표적을, 그리고 은혜의 약속과 이 은혜를 눈으로 보도록 가리키는 것을 하나로 묶는다. '성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이다. 이 말씀과 언약이 없다면 성례는 죽은 것이요 쓸데없는 짓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들을 우리에게 더 실감 있게 보여주시려고 하심에 따라 성례는 우리의 연약함에 눈높이를 맞춘 것이 되었다.

성례가 이렇게 이해되면서, 그것 - 특별히 성찬은 - 은 종교개혁영성 안에서 생생하고 중요한 기능을 갖게 된다. 성례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더욱 깊게 하려고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그 권위를 부여하신 은혜의 표지이다. 성례는 우리 기독교의 뿌리를 되새기게 하면서, 우리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일깨운다. 올바로 이해한다면, 성례는 영적 자원으로써 거대한 잠재력을 지닌다. 역사를 살펴볼 때, 개신교 교회가 성례의 중요성을 폄하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는 여러 종교 전쟁과 30년 전쟁(1618-1648)을 비롯한 종교개혁 이후의 대규모 종교 분쟁들과 관련이 있다. 그러한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어쩌면 개신교 영성 안에서 성례를 회복해야 할 때가 도래하였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제 살펴보게 될 영적 혼련이라는 개념과 관련하여 더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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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