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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Q. 삶과 죽음에서 당신의 유일한 위안은 무엇인가?

A. (영혼과 육체)(삶과 죽음에서)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성실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서 그의 피를 흘리사 내 모든 죄값을 완전히 지불하시고 나를 마귀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하신 분께 속해 있다는 것, 그분이 나를 너무나 잘 보호해 주고 계시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없이는 내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참으로 모든 것이 내 구원을 위한 그분의 목적에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성령으로 나에게 영생을 확인해 주시며, 나로 하여금 지금부터 전심으로 그리고 기꺼이 그분을 위해 살게 하신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주요 교단들에 속해 있는 개신교인들이 영성이라는 주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들이 직접적인 종교적 체험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도와 내적 생활에 관한 책들이 인기를 더해 가고 있으며, 목회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은 소그룹들이 그 구성원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임재 경험들을 나누기 위해 함께 모이고 있다. 이들이 종교적 경험을 갈망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현대인들의 삶이 무미건조해지고, 그들이 정열도, 목적의식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에 기독교가 하나님의 임재나 인도에 대한 느낌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의식(儀式)이나 의무처럼 다소 지루한 것들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종교 관습들만으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하나님과의 더 깊은 경험적 관계와 "직접적인" 인식에 기초한 신앙을 추구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단순히 형식적인 종교 활동들 그 이상의 것에 굶주려 있다. 이러한 사람들 중 가장 예민한 얼마간의 사람들은 머리에 인식될 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질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제도적인 종교 자체를 떠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들의 욕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만연되고 있는 "대중적" 운동들에 의해 채워져 왔다. 똑같은 욕구가 동양 종교와 "뉴에이지" 종교에 대한 관심 이면에 자리잡고 있다. 다소 다른 형태들로, 이것은 다양한 사이비 종교 집단의 수적 증가와 세력의 확장을 야기시켰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에는 지금도 그를 돌보고 계시며, 다른 모든 것들이 잃어지고 심각한 의문 가운데 놓이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계속해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께 대한 경험적 신앙에서 나오는 깊은 확신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세 가지 핵심적인 주제들 , 은혜 그리고 감사_ 을 다루고 있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기독교 신앙의 이러한 중심 교리를 우리의 "유일한 위안"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 우리를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지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행하신 일 때문에, 우리는 사랑이신 우리의 하나님과 함께 또 그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인도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상호 관계 속에서뿐만 아니라 더욱 공적이고 단체적인 신앙 표현들 속에서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느낌을 의도적으로 발전시켜 줌으로써 그들을 도우려는 노력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중요한 운동이 되었다. 이 운동은 우리가 우리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열어 보이는 방법들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운동은 교단적 전통, 인종적 배경, 신학적 관점들이 서로 다른 그리스도인들 속에 넓게 확산되었다. 이 운동은 목회자와 평신도, 교회, 신학교 그리고 교단 조직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것은 밑에서부터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운동이다: 예배당 밑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평신도들)이 자신들의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자 목회자들은 이에 반응을 보이며 분주해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한 교회나 교단의 정치 기구들 또는 신학교들로부터 도움을 구한다. 명상과 경건의 시간과 성경에 대한 깊은 묵상, 그리고 영적 동료나 지도자 물색 등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교단의 전통과 관계없이 교단을 뛰어넘어 모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회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이러한 형태의 영적 도움을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표현하는 필요를 자주 무시해 왔다. 개혁주의라고 불리는 교단적 전통에 속하는 교회들이, 특히 영성에 대해뿌리 깊은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개혁주의 전통은 16세기, 그러니까 약 1523년부터 1531년 쯔빙글리(Huldrych Zwingli)가 죽을 때까지 그의 주도하에 쮜리히에서, 그리고 1536년부터 1564년 칼빈이 죽을 때까지는 그의 주도하에 제네바에서 행해진 스위스 종교개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개신교 교단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럽 본토에서 시작되었다면 일반적으로 개혁주의(Reformed)라는 이름으로,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면 장로교(Presbyteri -an) 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일컫는 이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감독들(bishops)이 있어 온 헝가리 개혁교회(Hungrian Reformed Church)의 예외를 제외하고, 이들 교회들은 거의 항상, 개인보다는 통치 기구에 대표제와 권력을 부여하는 정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예배에서의 형식주의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성경과 설교 중심의 예배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지성의 엄격한 행사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상징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복음을 세상 문제들에 적용함으로써 사회의 필요성을 다루는 일에 관심을 보여 왔다. 미국에서 개혁주의 전통에 속한 것으로 대체적으로 인정되는 교단들로는 장로교 교단들, 그리스도 연합 교회(the United Church of Christ), 미국 개혁교회(the Reformed Church in America), 기독교 개혁 교회(the Christian Reformed Church), 그리고 논란이 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the Disciples of Christ) 등이 있다. 여기에 침례교, 감리교, 그리고 영국적 전통을 가진 교단들 내에도 개혁주의 전통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전통에 속한 교회의 일원이라면 이러한 교회들이 영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사실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성에 대한 이러한 저항감은 여러 요인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며, 그중에는 물론 자신들의 전통 자체에 대한 평가와 이해의 부족도 포함될 것이다. 대부분의 개혁주의 개신교인들은 성경이 그들의 신앙의 중심임을 인정하며,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반응이 중요함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영적인 삶의 영역에서 세상 교회에 대해 기여한 바가 많은, 살아 있는 전통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 영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최근에 쓰여진 대부분의 저서들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건 간에 개혁주의 자료들을 빠뜨림으로써 개혁주의 전통이 삶의 이러한 부분에서 다소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을 강화시켰다.

개혁주의 개신교인들은 자신들의 유산 속에 영적 전통이 있음을 깨닫지도, 배우지도 못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신앙이나 교회 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는 근거를 갖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비웃음을 사거나 배척을 당할까 두려워 자신들의 종교적 경험을 말하기조차 주저했다. 만일 말했다면, 그들은 조직 교회로부터 완전히 쫓겨나 소문화(subculture)"소속되지 않은 채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개혁주의 전통의 유산 속에는 하나님의 현재적 실체를 생생히 의식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는 부분이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유산은 당연히 모든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며, 이 유산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난을 면치 못하고, 세상에서 성실하려는 싸움에서 나약해지며, 흠없이 살려는 노력으로 지치게 될 것이다.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영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 전통은 밝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개혁주의 전통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전통 회복이 우리로 하여금 전체 교회에 힘을 주도록 하리라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한 지체의 믿음과 증거를 굳건히 해줌으로써 전체 교회가 유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16세기의 자료들

 

나는 이 과제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 칼빈의 저작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탁월한 목회자요 신학자의 저작으로부터 그들의 믿음에 영감을 더해 주는 글들을 계속해서 발견해 왔다. 칼빈은 개인의 경건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학적이요 지적인 사람으로 자주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칼빈의 가장 중요한 저서 기독교 강요와 그의 주석들 그리고 그의 편지들을 검토해 보면, 그가 자신의 모든 저작에서 마음속에 두었던 우선적인 목적은 그리스도를 알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성실하게 살려고 분투하는 신자들을 도우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칼빈은 믿음 생활을 그 외적 표현과 내적 표현 모두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연합이라고 보았다.

16세기에 작성된 개혁주의의 세 개의 고백 문서들은 수세기에 걸쳐 여러 교단과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스코틀랜드 신앙고백(the Scots Confession,1560)이다. 이 고백은 영어로 쓰여진 최초의 신앙고백이기도 했다.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겪은 후 스코틀랜드 의회는, 존 낙스와 다른 다섯 명의 종교개혁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교회와 국가가 사용할 이 고백서를 작성하게 했다. 이 작업은 겨우 4일 만에 끝났으며, 따라서 이 문서에는 아직까지도 서둘러 작성된 흔적들이 여기 저기 남아 있다. 이 문서에는 또한 그 무렵 폭력 시대의 상처들과 강한 감정, 특히 반카톨릭적인 감정이 강하게 나타나 있으며, 이것은 값비싼 희생을 치른 쓰라린 전쟁의 산물이었다.

두번째 고백서는 1563년에 작성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Heidelberg Catechi- sm)이었다. 이 문서는 독일의 한 팔라틴(Palatinate, 로마 제국이나 옛 독일 및 영국에서 자기 영토 안에서 왕권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백작의 영지-역자 주)의 선거후(選擧候, 신성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선거에 참여한 제후-역자 주) 프레드릭 3(Frederick III)의 요청으로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와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Zacharis Ursinus)두 사람에 의해 작성되었다. 이 문서는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과 정통적인 루터교의 가르침에 반하여 개혁주의 신앙을 명료화하려는 노력이었다. 독일의 개혁주의 개신교인들은 자신들보다 더 강한 이 두 진영 사이에 끼어 있었으며, 따라서 박해에서 자신들을 지탱시켜 줄 것이 필요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아직도 그 독자들에게 힘과 희망을 안겨다 주는 개인적인 문서이다. 2 헬베틱 신앙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은 쮜리히에서 쯔빙글리를 계승한 하인리히 블링거(Heinrich Bulinger)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작성 400주년을 기념하여 1966년에 새로운 영어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는 별로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 신앙고백은 장로교 신앙고백서(Book of Confessions)에 실려 있으며, 그 시대의 뜨거운 열기와 로마 교회에 대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의 화해와 에큐메니칼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다. 이 문서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문서는 개혁주의 신앙고백들 가운데 가장 길기 때문에, 교회론에 대한 가장 발전된 교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금식, 기도, 순결 그리고 성례와 같은 다양한 영적 훈련들에 대한 논의도 포함하고 있다.

 

 

17세기의 영국 청교도들과 장로교인들

 

나는 또한 신학과 실천 모두에서 칼빈의 계승자들인 청교도들에게 관심을 집중해 왔다. 청교도주의는 유럽 대륙의 경건주의의 영국적 표현이었으며, 따라서 종교적 형식주의, 교리주의, 열정의 결핍 등에 대한 하나의 항거였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 때문에 영국 교회를 정화하고 영국 정부를 개혁하려 했다. 영국 시민전쟁(English Civil War)으로 왕정이 무너진 후에, 청교도들이 지배한 의회가 정부를 장악했다. 의회는 새로운 신앙고백, 새로운 정부 형태, 영국 교회를 위한 새로운 예배 형태를 제정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소집했다(1643). 이 총회는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으며 1647년에야 그 임무를 끝마쳤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이처럼 여러 해 동안 계속된 이유 중 하나는 권력을 회중(개교회) 위에 있는 조직들에 부여해야 한다고 믿는 노회파 청교도들(presbyterian Puritans)과 회중을 연합과 권력의 유일한 근원으로 보고 회중의 자치권에 대한 무간섭을 바라는 개교회파 청교도들(congregational Puritians) 사이의 차이점들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아이러니는 찰스 2(CharlesII)의 왕정 복고가 영국 교회의 감독제로의 회귀도 함께 가져왔으며, 총회에서 제정된 문서들이 스코틀랜드 교회에 의해서는 공식적으로 수용되었지만 영국 교회에 의해서는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및 소요리 문답은, 영어권 장로교인들과 이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 예를 들면 스코틀랜드, 영국, 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이 신앙고백서들을 가지고 들어간 멕시코, 한국, 나이지리아, 케냐의 장로교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신앙 고백서이다.

미국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최초로 채택된 것은 회중 교회 정치를 확증하기 위한 수정을 거친 후 1648년 매사추세츠 주 배이 졸로니(Bay Colony)에서 열린 회중교회 회의(Congregational Synod)에서였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장로교의 첫번째 회의는 1729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받아들였다. 회중교회 정치와 신자들의 세례를 확증하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정한 필라델피아 신앙고백(Philadelphia Confession of Faith)1742년에 미국 침례교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 신앙고백은 미국 개신교도들의 신학과 경건에 계속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쳐 왔다.

청교도들의 공헌 가운데 나는, 영국 교회에 남아 있었던 청교도인 루이스 배일리(Lewis Bayly)의 저서 경건의 실천(The Practice of PIety)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책은 청교도들에 의해 청교도들을 위해 출판된, 영적인 삶을 위한 많은 안내서들 가운데서 가장 지적인 저서들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초판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616년에는 3. 1735년에는 59판이 발행되었다. 이 책은 웨일즈어, 폴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1655년에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의 본토박이 미국인들을 위해 이 책의 영역본을 출판했다. 나는 또한 그 저작들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 청교도 신비주의자의 글도 사용했다. 프란시스 루스(Francis Rous, 1579-1657)는 처음에는 장로교인이었으나 후에 독립(회중) 청교도(Independent<Congrega-tiona1>Puritan)로 그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영국 공화국 시대(왕정이 폐지되었던 1649-60)에 하원의 대변인이었으며, 신학적 식견이 풍부한 평신도로서 청교도의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그는 한동안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평신도 대표로 참석했었다. 그의 논문 "신비적 결혼"(The Mystical Marriage)은 중세의 자료들을 빌어와 채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청교도의 신비주의 신학을 보여주는 한 수려한 예이다. 루스는 14세기의 결혼 신비주의(bridal mysticism)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십자가 요한(John of the Cross)처럼 그는, 하나님과의 영적 결혼은 이생에 인의 비영국계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며 종교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첫 세속적인 시집들을 필로멜라(Philomela)라는 필명으로 1696년에 출판했다. 남편이 죽은 후에야 그녀는 영적 묵상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죽은 후,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이삭 와츠(Isaac Watts)는 그녀의 지시대로 그녀의 기도들을 모으고 수정하여 마음의 헌신(The Devout Exercises of the Heart)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여러 판 거듭 출판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혀졌다.

게르하르드 테스티겐(Gerhard Tersteegen, 1697-1769)은 네덜란드의 칼빈주의자로 그의 찬송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그의 저작들은 아직껏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그의 강한 신비적 경향은 그 방향에 있어 아주 성격적이었으며 네덜란드 칼빈주의적 경건주의의 탁월한 모델이었다. 경건주의는 경직된 정통주의에 대한 항거였기 때문에 영국 해협을 건너서까지 강한 영향을 미쳤다.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1703-1758)는 최초의 미국신학자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냉랭한 지적인 명제들의 종교로 격하된 정통 칼빈주의의 부활을 모색했다. 에드워드의 목표는 칼빈주의를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한때 청교도주의에게 알려졌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체험을 되찾으려 했다. 그의 영향력은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과의 제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이 운동은 머리에서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질 수 있는 신앙의 영적 갱신을 위한 것으로 1740 년대 메사추세츠 주 노댐프톤(Northampton)에 있는 에드워드 자신의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에드워드는 그의 교회 선도들 가운데서 극도로 감정적인 회심의 경험들에 대한 열망 가운데서 거짓 회심들과 진정한 회심들을 구별하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영적 분별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발전시켰다. 그는 회심경험 자체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맞서 싸웠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노력의 삼눌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는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에 두려 했으며, 그러면서도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징으로서 회심의 경험을 새롭게 강조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인물들

 

프리스톤 신학이라고도 불리는 정통 칼빈주의의 주된 대표자, 찰스 핫지(Charles Hodge, 1789-11878)는 강한 개인적 신앙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의 저서 생명의 길(The Way of Life)은 기도와 명상과, 다른 영적 훈련의 실천을 위한 탁월한 안내서이다. 이 책은 가장 정통적인 칼빈주의자들 가운데서도 깊은, 개인적이며 경험적인 신앙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에밀리 허만(Emily Herman, 1876-1923)은 개신교 목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많은 부분을 콘스탄티노플과 시드니에서 보냈다. 1908년 그녀는 저널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1913년에는 영국 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of England)의 간행물인 장로교(The Presbyterian)의 편집자로 지명되었다. 생애 말엽에 그녀는 영국 교회에 가담했다. 그녀는 기도와 영적인 삶에 관한 책들을 많이 썼으며, 그녀보다 훨씬 더 유명했던 동시대 인물 에벌린 언더힐(Evelyn Underhill)과 자주 논쟁을 벌였다.

하워드 투르먼(Howard Thurman, 1899-1981)은 실제로 개혁주의 전통의 교단적 한계들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의 저작들의 성격과 그의 영성의 특징에 의해 개혁주의로 분류될 수 있을.뿐이며, 실제 그는 에큐메니칼적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광범위한 연구와 문학적 산물들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는 내적인 삶과 사회 정의와의 관계를 탐구했으며, 비폭력 저항의 원칙을 발전시킨 최초의 미국 저자들 중 하나였다. 그는 특히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에게 강한영향을 미침으로써 시민 권리 회복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료들의 요약

 

지금까지 언급한 것들이 내가 사용한 가장 중요한 일차적인 자료들이다. 이 자료들은 영적인 삶에 대한 공통적인 가정들을 공유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모두 제네바 종교개혁의 상속자들이다. 나는 이 자료들의 공통된 주제들을 보여주고 그들 속에 "개혁주의 영적 전통"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물론 나는 다른 저자들의 책도 인용했으며, 독자들에게 내가 사용하고 인용한 저작들의 목록 전체를 제시할 것이다.

내가 인용한 것들 대부분이 개혁주의 전통에 속하는 저자들의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형성될 수 있도록 신자들을 인도해주고 도와주는 임무를 함께 맡고 있는 다른 모든 보편 교회의 사역에 대한 에큐메니칼적 이해가 없이는 올바른 개혁주의란 불가능하다. 칼빈은 로마 카톨릭의 자료 인용을 결코 주저하지 않았으며 청교도주의에서의 그의 계승자들도 중세의 신앙 고전들을 빈번하게 사용했다. 개혁주의 전통은 처음부터 에큐메니칼을 추구하는 전통이었다. 나는 독자들에게 개혁주의 전통 자체 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상의 넓이와 범위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구의 범위를 제한시켰다. 나는 시간과 자료의 부족 때문에 부득이 북미와 유럽의 저자들만을 연구의 대상을 국한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 나는 장차 이루어져야 할 한 가지 중요한 과제가 제3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저작들을 찾아내고 평가하는 것이라 믿는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변치 않고 이어져 오는 개혁주의 전통의 표어는 진정으로 개혁적인 것은 16세기나 다른 어떤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각 세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충실할 것을 명하신다. 우리는 종교 개혁자들이 교황의 힘에 대항하는 목숨을 건 투쟁에서 거부했던 모든 것들에 맞서 싸울 필요는 없다. 참으로 지금 후-2바티칸(post-Vatican II) 에큐메니칼 시대에 우리는, 피정(silent retreat, 일정 기간 동안 조용한 곳에서 하는 종교적 수련-역자 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 십자가의 상징을 만드는 것. 성상(聖像)의 사용 등과 같은 관습들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최근까지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에 의해 거부당해 왔다. 하지만 이것들이 비성경적이라거나 아()기독교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이 이것들을 로마 카톨릭적 경건의 잔재물들로 여겨 던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경험이 개혁주의 전통에서 해석될 때 어떤 역할을 가지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논의와 함께 시작될 것이다. 지금까지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 거의가 그들의 종교적 경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경험이라는 개념에 수반되는 불필요한 부정적인 함축적 의미들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다.

2장에서는 많은 개혁주의 개신교인들에게 있어 너무나 깊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영성에 대한 저항감의 주요 원인들에 대한 해석을 다룰 것이라. 여기에서는 영성 실천과 관계된 모든 의혹들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 영성 전통에 대한 잘못된 개념들을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서는 또한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개혁주의 영성을 자신들의 신앙생활의 인도자이자 기초로서 찾고 있는 사람들의 삶 속에 이를 접목시키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들을 탐구해 볼 것이다.

그 다음 네 장에서는 개혁주의 전통이 안내자 역할을 하는 기독교 영성의 네 가지 필수적인 영역들을 살펴볼 것이다: 기도, 성경에 대한 헌신적 연구, 영적 인도 그리고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사역.

마지막 장에서는 영성 실천을 탐구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무엇보다도 영적 생활에서의 훈련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며, 그런 다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리고 확신과 의심의 시간들이 교차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순례자로서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영적 깊이를 탐험하려는 자들은 누구든지 도중에 마주칠 수 있는 위험과 함정에 대한 경고를 미리 받아야 하며, 또한 도중에 마주칠 놀라운 경이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