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말

   "필로칼리아"(Philokalia)는 4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정교회 전통에 속한 영적 대가들이 저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것은 18세기에 그리스의 수도사인 아토스 성산의 성 니코디무스(St. Nikodimos, 1749-1809)와 고린도의 성 마카리오스(St. Makarios of Corinth, 1731-1805)의해 편집되어, 1782년에 베니스에서 초판이 출판되었다. 제2판은 1893년에 아테네에서 출판되었는데, 여기에는 총대주교 칼리스토스(Patriach Kallistos)의 기도에 관한 글이 추가 되었다. 5권으로 된 제3판은 1957-1963년에 아테네에서 아스티르 출판사(Astir Publishing Company)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번역본은 아스티르 판을 기초로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번역본 역시 다섯 권으로 출판하기를 원했고, 장차 세 개의 헬라어 판에 포함된 본문들 모두를 재판하게 될 것이다.
   이 번역본은 네 가지 면에서 위의 세 가지 판과 현저하게 다르다. 첫째, 이 책에는 성 니코디모스가 쓴 서론이 포함되지 않았다. 둘째, 이 책에서는 이용할 수 있는 보다 신빙성 있는 본문을 사용했다. 셋째, 헬라어 판에서는 성 닐로스(St. Neilos)의 것으로 간주되었던 바 ??기도에 관하여??(On Prayer)라는 글을 에바그리오스(Evagrios)의 것으로 간주했다. 그 이유는 에바그리오스의 본문 앞에서 제시한다. 넷째, 대 안토니(St. Antony the Great)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글을 부록에 실었다.
   성 니코디모스가 특정 저자의 것이라고 밝힌 구절이나 항목이 오늘날 다른 사람의 글이라고 알려졌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될 때에는, 문제의 본문에 관한 주에서 그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니코디모스가 밝힌 저자의 글이 아니라고 해서 어느 본문이나 항목을 삭제하지는 않았다. 확실한 것과 의심스러운 것의 구분은 그 글의 저자가 바르게 밝혀졌는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이 선집 전체가 대변하는 영적 전통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달려있다. 『필로칼리아』 원본에 수록된 모든 본문은 헬라어로 기록된 것이며, 두 개의 본문을 제외한 모든 본문은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원래 라틴어로 기록된) 이 두 개의 본문도 비잔틴 시대에 헬라어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아토스 성산(Mount Athos)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후일 몰디비아에 정착한 러시아의 수도사 파이시 벨리치코프스키(Paisii Velichkovskii, 1722-1794)는 본문들 중 일부를 슬라브어로 번역하여 1758년에 모스크바에서 Dobrotilubiye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는데, 그것은 1822년에 모스크바에서 재판되었다. 그것이 바로 『순례자의 길』(The Way of a Pilgrim)이라는 책에서 순례자가 가지고 다니던 것이다. 『필로칼리아』는 19세기 러시아의 영성과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도스토에프스키의 저서를 읽어 보아도 충분히 증명된다. 그것은 이그나티 브리안카니노프(Ignatii Brianchaninov, 1807-1867)에 의해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1857년에 출판되었다. 은둔자 테오판(Theophan the Recluse, 1815-1894)도 Dobrotilubiye라는 제목으로 러시아어 번역본을 출판했는데, 그는 헬라어 원본에는 없는 본문들을 삽입하고 원문들 중 일부를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의역했다.  테오판의 번역본은 아토스 산에 있는 성 판테레아몬 수도원에서 비용을 대어 5권으로 모스크바에서 출판되었다. 시리즈 중 제1권은 1977년에 출판되어, 1883년, 1885년, 1905년, 그리고 1913년에 재판되었다. 1963년에 뉴욕 주 조던빌에 있는 Holy Trinity 수도원에서 1883년 판을 재판하기 시작했다. 추가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는 러시아어 번역본이 1946년에 두미트루 스타닐로아에(Dumitru Staniloae)의 주도 하에 출판되기 시작했는데, 1976년에 제5권이 출판되었다. 그 시리즈는 8권으로 완성될 계획이다. 프랑스어 완역본이 진행 중이다. 루마니아 번역본과 프랑스 번역본은 헬라어 원본을 기초로 하고 있다.
   카드리오보프스키(E. Kadloubovsky)와 팔머(G. E. H. Palmer)는 1951년과
1954년에 Writings from the Philokαlia on Prayer of the Heart와 Early Fa- thers from the Philokalia는 제목으로 『필로칼리아』의 영역본을 출판했다. 이 번역본은 헬라어 원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테오판의 러시아어 판을 번역한 것이며, 헬라어 판에 수록된 자료의 삼분의 일 정도만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자들은 두 권으로 된 이 영역본 중 제2권의 머리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필로칼리아』에 담긴 보물들을 원본에서 만큼 풍성하고 균형이 있는 형태로 서방에 소개하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필요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 헬라어 원본 전체를 번역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이 작업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바랄 뿐이다. 그것은 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고귀한 것을 서방에서 영원히 존속하게 하는 데 가장 위대한 공헌이 될 것이다." 이 번역본은 20년 전에 그 머리말에서 표현된 희망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무엇이 처음에 성 니코디모스와 성 마카리오스의 본문 선택을 결정했으며, 또 그 본문들에게 일관성을 부여하는가? "필로칼리아"(Philokalia)란 삶과 진리 계시의 초월적 근원으로 이해되는 아름다운 것, 고귀한 것, 탁월한 것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한 사랑을 통해서, 지성은 정화되고 조명되고 완전해진다. 본문들은 이 정화와 조명과 완전함을 염두에 두고서 수집되었다. 그것들은 주의를 환기하고 발전시키는 방법, 성성(聖性)의 특징인 깨어 경성함(watchfulness)의 상태를 획득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것들은 그 저자들이 예술 중의 예술이요 학문 중의 학문이라고 부르는 것, 정보의 자료나 정신의 민첩함이 아니라 의지와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열려져 있는 최고의 가능성을 향하게 하며, 그의 존재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형성하고 양분을 공급해주며, 영적 성취와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도록 도와준다. 『필로칼리아』는 시간의 미로를 통과해 가는 여정, 삶의 광야와 공허를 통과해가는 사랑과 지식의 고요한 길이다. 그것은 영적인 길을 계시해 주고 그 길을 따르도록 유도하는 적극적인 요인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신의 무지를 극복하고 내면에 있는 지식을 드러내고 망상을 제거하며,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기억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받으라고 요청한다.
   그러므로, 『필로칼리아』에 수록된 본문들은 관상생활 실천의 길잡이이다. 성 니코디모스가 표현한 것처럼, 그것들은 '내적 기도를 배우는 신비한 학교", 학생들이 세례 받을 때에 마음에 심겨진 거룩한 씨앗을 배양하여 영적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그렇게 신화(神化)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엡 4:13)하게 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일,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안을 깨끗이 하는 것(마 23:16)이 강조된다. 이 말은 표면적인 일-계명을 지키고 도덕적인 덕목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표면적인 일은 정화의 선행 조건으로서, 그것이 없으면 내적인 일에서의 참된 진보를 이룰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표면적인 일과 내면적인 일은 서로를 보완해 준다. 표면적인 일의 실천을 본질적인 목적으로 삼을 때에는 패배나 쇠퇴가 따르며, 필요한 일-지성을 지키고 순수한 기도를 실천하는 내적인 수행-이 등한시된다. 성 니코디모스는 내적인 일을 등한하게 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표면적인 일을 하면서 지내는데, 그 결과 그들의 내면에서 은혜가 감소하며, 『필로칼리아』에서 묘사하는 영적인 길의 목표인 깨끗한 마음의 의식의 조명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길을 따라감으로써 획득하게 될 진보된 상태는 헤시키아(hesychia)라고 묘사된다. 이 단어는 침묵과 평온이라는 의미를 지닐뿐만 아니라, 헬라어 어원을통해서 "자리에 앉다, 고정되다, 집중하다" 등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이 단어에서 hesychasm이라는 단어가 파생되는데, 그것은 흔히 이 길을 구성하는 이론과 실천의 복합체 전체에 적용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현대 역사가들 중에 지나치게 단순화와 체계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마치 헤시카즘이  후기 비잔틴 세계의 한 가지 현상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헤시카스트 운동은 13,14세기에 아토스 산에 중심을 두고 인근의 불가리아, 세르비아, 러시아 등지로 퍼져 나간 영적부흥을 의미한다. 그러나 헤시카즘 자체는 후기 비잔틴 시대에 성행하던 지역적인 역사적 운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필로칼리아』에 묘사된 초대 시대의 영적 전통 전체를 나타낸다. 이를 입증할 증거는, 헤시카즘을 구성하는 기술과 학문의 중심이 되는 형태들 중 하나인 예수의 이름에 호소하는 기도(예수기도)가 대체로 9세기 이전에 기록된 본문들이 수록된 제1권에 묘사된 영적 방법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실, 『필로칼리아』는 여러 가지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지만, 그 책 이 예수기도에 대한 반복된 언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수기도는 그 책에 내적 통일성을 부여해 준다.
   헤시카즘이라고 알려진 이 영적인 길은 공허한 상태에서 따라 갈수는 없다. 『필로칼리아』에 수록된 대부분의 본문이 특별히 교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교리를 언급하지 않을 때에도 교리를 전제로 한다. 게다가 이 교리에는 교회론이 수반된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특별한 이해, 교회의 성례전적이고 전례적 인 생활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구원관을 수반한다. 이것은 곧 헤시카즘은  교회의 성례전적이고 전례적인 생활과 상관없이 발달하거나, 또는 병행하여 발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교회의 한 부분이며, 또한 교회의 전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성례전적이고 전례적인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이 없이 헤시카즘을 실천하려는 것은 생명을 주는 뿌리로부터 잘리는 것이다. 그것은 헤시카즘을 가르치고 설명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남용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좋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주제넘은 행동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필로칼리아』에 수록된 본문들은 정교회의 성례전적이고 전례적인 틀 안에서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정교회의 수도원적 전통의 틀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영역본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처한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그 본문들 안에 담겨 있는 권고들은 수도원적인 환경 안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성 니코디모스는 『필로칼리아』 원본의 머리말에서 모든 사람들이 "쉬지 않고 드리는 기도"를 실천할 수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수도생활은 고요, 독거, 규칙성 등 영적인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집중에 반드시 필요한 상황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교회의 성례전적이고 전례적인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기본 조건이 충족된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환경에서 살든지 간에 각기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 길을 따라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수도생활과 세상에서의 생활의 차이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완전함에 이르며 마음과 혼과 정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은 동일한 소명을 가지고 있으며, 영적으로 동일한 길을 가야 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그 길을 더 멀리 걸어갈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층 강력한 갈망을 가지고 그 길을 추구하여 그러한 삶이 요구하는 것과 조화를 이루는 생활방식을 받아들일 것인데, 그러한 생활방식은 수도생활에 의해 제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도원 안에서 따라가든지 수도원 밖에서 따라가든지,  그 길과 목표는 동일하다. 우리는 자의적으로 무식하게 그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자격을 갖춘 교사의 개인적인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지도를 받을 수 없을 경우에는, 교회의 성례전적이고 전례적인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영적인 추구에 내재하는 장애물과 위험을 극복하는 데 유익할 것이다.
   이 헤시카스트 전통의 저술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단어가 거듭 등장한다.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들이 발견되는 구절의 의미를 보다 통찰함에 의해서만 파악될 것이다.
   이러한 본문들이 전제로 삼고 분명히 밝혀 주는 심리학적 이해에도 비슷한 것이 적용된다. 요컨대, 우리는 심리학, 또는 특히 마귀들의 역할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특징들의 대부분이 현대 심리학자들의 이론에 의해서는 이해되지 않는 영혼의 학문에 직면한다. 직접적으로든지 간접적으로든지 이러한 현대 이론들의 영향을 받는 현대 독자들은 헤시카스트의 심리학을 완전히 거부하고 싶을런지도 모른다. 반대로 먼저 자신의 견해와 가정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나서 자신이 대면한 것에 대한 이해에 비추어서 그것을 수정하거나 포기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반응하는 방법은 대체로 이론적으로만 아니라 경험적으로 이 이해의 타당성과 내적인 일관성을 인식하는 분량에 의존한다. 이런 점에서, 세상의 표면적인 모습과 상태가 아무리 크게 변화되어도, 그러한 변화는 인간 상태 및 하나님과의 관계의 근본적인 잠재성을 근절시키지 못한다. 『필로칼리아』의 가르침과 방법은 그러한 일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간직되어 있는 권고들은 처음 기록되었던 시대에서 유효하고 효과적이었듯이, 오늘날도 유효하고 효과적이다.
   이 영역본은 Eling Trust의 재정적인 지원과 감독 하에 제작되었다. 최초의 번역 작업은 여러 학자들과 공역자들, 즉 메서추세츠주 브루클린에 있는 Holy Transfiguration 수도원, 보스턴의 콘스탄틴 캐버노스(Constantine Cavarnos) 박사, 옥스포드의 배절 오스본(Basi1 0sborne), 런던의 노만 러셀(Norman Russell)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본문의 최종 역본은 Eling Trust의 이사들이 선임한 편집 위원회의 책임 하에 마련되었다. 편집 위원회는 팔머(G. E. H. Palmer), 필립 슈러드(Philip Sherrard) 박사, 대수도원장 칼리스토스 웨어(Kallistos Ware)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문체의 통일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이 번역본은 원래의 본문들만큼의 다양성을 나타내지 못할 수밖에 없다. 이 본문들은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시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러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이 책은 약 10년 동안 번역되었고,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동일한 문화권의 사람들이었다. 원래의 본문들이 지녔던 독특한 풍미를 완전히 없애지 않았기를 바란다.
   아토스 산의 Simonopetra수도원의 팔라마스 코우만토스 신부의 도움, 두 번이나 우리를 환대해준 칠란다리 수도원의 수도사들, 이안버스비 여사, 마구릿 랭포드 등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1977년 3월
                                        C.S. H. Palmer, Philip Sherrard
                                          Archimandrite Kallistos Ware


추신 :
   이 책 "필로칼리아"는 은성출판사에서 출판하고, 엄성옥에 의하여 한국어로 번역하였다. 제1권은 2001년, 제2권은 2002년, 제3권은 2007년, 제4권은 2008년, 제5권은 2006년에 각각 출판되었다. 필로칼리아는 4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정교회 전통에 속한 영적 대가들이 저술한 글들을 모은 책으로 동방교회의 "예수기도"란 관상기도를 하는 수도사들과 수도원 생활이 소개되어 있으나, 오늘날, 수도원도 관상기도도 없는 개신교에서 받아 수련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 신학적인 부분 일부는 수용이 불가하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문제가 그렇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전례 등, 그리고 외경을 사용한 점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상기도를 위한 정화 조명 일치를 위해서는 잘 설명되어 있으며, 수도하는 데 많이 유익할 것으로 판단되어 추천합니다. 많이 활용하여 관상에 이르는데 큰 유익을 얻기 바랍니다.
                                                          - 고려 수도원 -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