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생할의 고요와 금욕

                                                                                        독수도자 에바그리오스
                                                                                                         Evagrios the Solitary

독수도자 에바그리오스(Evagrios the Solitary)는 에바그리오스 폰티코스(Evagrios Pontikos)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345년이나 346년에 폰투스의 이보라(Ibora)에서 태어났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그루지아 사람이라고 한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제자인 그는 대 바실(St. Basil the Great)에 의해 봉독자(reader)로 임명되었고, 신학자 그레고리 (St. Gregorythe Theologian,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에 의해 부제에 임명되었다. 381년에는 신학자그레고리를 수행하여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했다. 그는 사제로 서임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예루살렘에 머문 후, 353년에 이집트로 가서 16년 동안 지냈다. 2년 동안 니트리아(Nitria)에서 지낸 후에, 켈리아(Kellia) 사막으로 들어가서 399년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집트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켈리아의 사제인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우스를 영적 아버지로 모셨다. 그는 스케티스의 사제요 영적 아버지인 이집트의 마카리우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 두 성인을 통해서 사막 교부들의 제1 세대 및 그들의 순수한 형태의 영성에 접했다.

에바그리오스의 많은 저술에서 두 가지 경향-사변적인 경향과 실질적인 경향-을 식별할 수 있다. 사변적인 측면에서, 그는 오리겐(185-254)을 크게 의지하여, 그에게서 영혼의 선재,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궁극적인 회복 등에 대한 특별한 이론을 받아들였다. 이 이론들은 제5차 에큐메니칼 공의회(553)에서 정죄되었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는 이집트, 주로 콥트의 사막 교부들의 생생한 경험을 활용했고, 실제로 말년에는 사막교부들 사이에서 생활했다.

그는 심리학적 통찰과 생생한 묘사의 은사, 그리고 영적 과정의 다양한 단계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정의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의 가르침은 후대의 작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제자 존 카시안(St. John Cassino)은 스승이 오리겐에게서 취한 의심스러운 이론들은 버리고 그의 가르침의 실질적인 측면을 서방 라틴 세계에 전했다. 동방의 헬라 세계에서는 그 후 에바그리오스가 고안해낸 기술적인 어휘들이 표준적인 것으로 사용되어 왔다. 포티케의 디아도쿠스, 존 클리마쿠스, 고백자 막시무스 등의 저술, 그리고 고대 시리아의 전통, 니느웨의 이삭의 Mystic Treatises 등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성 니코디모스가 『필로칼리아』에 포함시킨 글들은 모두 에바그리우스의 실질적인 측면에 속하는 것이며, 의심스러운 사변은 거의 포함하지 않고 있다.

에바그리오스의 몇 가지 저서는 다른 저자의 이름으로 전해 내려왔다. 『기도에 관하여』(On Prayer)가 그런 경우로서 헬라어 판 『필로칼리아』에서는 닐로스(Neilos)의 것으로 간주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그것은 확실히 에바그리오스의 것이다.

  


                                             독거생활의 고요와 금욕에 대한 가르침

Evagrios the Solitary (독수도자 에바그리오스)의 글.
St. Nikodimos of the Holy Mountain & St Makarios of Corinth,
he Philokalia. 엄성옥, 필로칼리아 1(서울: 은성, 2001), pp. 36-45.

예레미야서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렘 16:1-4).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바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고전 7:32-34)고 한 내용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서에서 "독한 병으로 죽고"란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서 태어난 것들, 즉 세상적인 생각과 욕망도 언급합니다. 이것들 역시 이 세상의 약하고 병든정신 때문에 죽을 것이며, 하늘나라에서 거처를 소유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편 바울이 말한 것처럼, 장가 가지 않은 사람은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고전 7:8) 하며, 항상 신선함을 유지할 영생의 열매를 맺습니다.

혼자 생활하는 독수도사가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인을 삼가야 하며, 예레미야가 말한 것처럼 자녀를 낳지 말아야합니다. 그는 물질에서 이탈하고, 염려에서 자유로우며, 교역이나 장사에 개입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딤후 2:4)고 말했습니다. 특히 고요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 이 세상의 중요한 것들을 포기한 수도사들은 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고요의 실천에는 기쁨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며 그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습니다.

독거의 생활을 받아들이며 고요의 축복을 찾아내기를 간절히 원합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의 염려들, 그리고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을 버리십시오. 물질에 대한 애착, 정념과 욕망의 지배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리하면 참 고요를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초월해야만 고요의 삶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끄는 여러 가지 음식을 찾지 말고 검소하고 적게 먹으십시오. 손님에게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대접하려는 생각이 떠오르면, 미혹되지 말고 그 생각을 떨쳐 버리십시오. 원수는 그러한 생각 속에 잠복해 있으면서 당신을 고요함으로부터 떼어낼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주님이 마르다(그런 일들로 바쁜 영혼들)를 어떻게 책망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그러나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 한 가지, 즉 거룩한 말씀을 듣는 일에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수중에 들어오는 것이면 무엇에든지 만족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 사르밧의 과부가 선지자 엘리야를 환대한 것도 본보기가 됩니다(왕상 17:9-16). 만일 가진 것이 떡이나 소금이나 물 밖에 없어도, 당신은 충분히 손님을 환대할 수 있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라곤 그것 밖에 없지만, 나그네를 환영하여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준다면, 부족함이 없는 환대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환대와 관련하여, 당신은 "친절한 말 한 마디가 값진 선물보다 더 낫지 않느냐"(집회서 18:17)라는 견해를 취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부를 원해서는 안됩니다. 그것 역시 악한 자의 속임수입니다. 악한 자는 종종 자부심을 일으키며 당신의 지성에 걱정과 냉담을 채워 넣습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이 언급하신 과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과부는 동전 두 잎을 가지고서 부자의 후한 선물을 능가했습니다. 주님은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으니라"(막 12:44)고 말씀하셨습니다.

옷도 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정도로 만족해야 합니다. "네 짐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시 55:22). "너희 염려를 다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만일 당신에게 음식이나 의복이 필요하다면, 사람들이 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받으십시오. 주는 것을 받기를 부끄러워하는 것도 일종의 교만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고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물건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하면서 궁핍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으니라"(고후 8:14-15, 출 16:18)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당신이 필요한 것을 부족함이 없이 가지고 있다면 내 일 일이나, 한 주일 뒤의 일이나, 몇 달 후의 일이나 장래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내일 필요한 것은 내일 공급될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인을 두지 마십시오. 하인을 두면, 자신 외에 또 한 사람을 부양해야 합니다. 그런 경우에, 원수는 그 하인을 통해서 당신을 넘어지게하며, 당신은 하인이 음식을 많이 먹는 것 때문에 염려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육신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하인을 두고 싶은 생각이든다면, 보다 중요한 것. 즉 영적인 평화를 상기하십시오. 육체의 편안함보다 영적인 평화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혹시 하인을 두려는 생각이 하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 생각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처럼 홀로 생활하는 독수도사들이 할 일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는 거룩한 교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것만 생각하면서, 고요의 길을 보호하십시오.

육적인 생각을 가지고 세상 일에 개입하는 사람들과 교제하지 마십시오. 혼자서 살거나, 물질에 대해 초연하고 당신과 같은 정신을 가진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십시오. 세상 일에 개입되어 있는 육적인 사람과 교제하는 사람은 분명히 그들의 생활 방식의 영향을 받을 것이며 사회적인 압박과 헛된 대화와 노염, 슬픔, 물질에 대한 욕망 등 온갖 종류의 악에 예속될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염려나 친척들에 대한 애정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들과 자주 만나는 것을 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들 때문에 수실에서의 고요를 빼앗기고 그들의 일에 개입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 8:22).

혹시 당신이 수실에 점점 애착을 갖게 된다면, 미련을 갖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수실을 떠나십시오. 분심(分心)으로부터의 자유와 고요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능한모든 일을 행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원수들과 싸우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십시오. 만일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고요함을 얻을 수 없으면, 유랑생활을 고려해보고,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하십시오. 빈틈없는 사업가처럼 행동하십시오. 고요를 모든 것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으며, 항상 고요에 기여하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유랑생활을 환영하십시오. 유랑생활은 당신을 장소에 얽매이던 데서 해방시켜 주며, 마음이 산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요의 축복을 누리게 해줍니다. 도시에 머물지 말고, 광야에서 지내십시오. 시편 기자는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시 55:7)라고 말합니다. 가능하다면, 절대 도시를 찾아가지 마십시오. 그곳에서는 결코 당신의 생활 방법에 유익한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성 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시 55:9), 그러므로 분심이 없는 고독한 장소를 찾으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악한 환상을 보아도 두려워하거나, 당신의 영적 진보에 유익한 훈련장에서 도망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않고 인내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 하나님의 도우심, 보호하심,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시 55:8)고 말합니다.

정욕 때문에 결심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방종한 정욕은 깨끗한 마음을 빗나가게 한다"(지혜서 4:12). 거기서부터 많은 시험이 임합니다. 그릇 행하지 않으려면, 수실에 뿌리를 내리고 머무십시오.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만남을 피하십시오. 친구들을 되도록 만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일 친구들과의 만남이 당신에게 해가 된다면, 그들을 만나지 마십시오. 친구들은 당신에게 유익을 주어야 하며 당신의 생활 방법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교활하거나 공격적인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하고,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말고, 그들의 악한 목적을 멀리 하십시오.그들은 하나님 가까이에 거하거나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당신의 친구들은 평화의 사람, 영적인 형제, 거룩한 아버지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적인 일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식사를 하지 마십시오. 자칫하면, 당신이 그들의 망상에 물들어 고요함을 벗어버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그들은 정말로 해로운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세상의 신실한 자들을 위해 수고하고 갈망하며, 슬퍼할 때에도 그들처럼 행하십시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시 101:6).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하여 사는 사람이 당신에게 와서 식사를 청할 때에, 마음에 내키면 그의 초대에 응하십시오. 그러나 속히 수실로 돌아오십시오. 가능한 한 수실을 떠나 다른 곳에서 잠을 자지 마십시오. 그렇게 해야 고요의 은사가 항상 당신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당신은 방해를 받지 않고 선택한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음식과 쾌락을 갈망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음식으로 당신의 배를 채우지 마십시오. 자칫하면 그것에 대한 욕망이 발달하여 그들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으려 할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 계속 수실 밖으로 나가고픈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을 떨쳐버리십시오. 자주 수실을 떠나는 것은 해로운 일입니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고요의 은사를 박탈하고, 정신을 어둡게 하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시들게 합니다. 포도주 병을 한 곳에 오랫동안 놓아 두면, 그안에 든 포도주는 깨끗하고 향기로워집니다. 그러나 병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포도주는 혼탁해지고 찌끼가 올라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같은 장소에 머물러 지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유익을 주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지 마십시오. 자칫하면 당신의 지성이 산만해져서 고요의 길이 방해받을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밤이나 낮에 손으로 하는 일을 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사도 바울이 충고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살전 2:9, 엡 4:28) 또 그렇게 함으로써, 게으름의 마귀를 정복하고, 그가 제안한 모든 욕망을 몰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게으름의 마귀는 나태함을 이용합니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잠 13:4).

물건을 사거나 팔 때에는, 범죄 하는 일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거래를 할 때에는 약간 손해 보는 편을 택하십시오. 이 익을 얻으려고 값을 깎고, 그럼으로써 영혼에 해로운 행동-말다툼, 거짓말, 변절 등-을 하며, 당신의 생활 방식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십시오. 물건을 매매할 때에는 모든 것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자신을 지키십시오. 가능하다면, 그런 일은 당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걱정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기쁘게 당신의 소명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 외에, 고요의 길이 가르쳐 주는 교훈들을 고찰하고,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십시오. 수실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죽음의 날을 생각하고, 당신의 몸이 죽는 것을 상상하고, 이 재앙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고통을 경험하고, 이 세상의 허영과 타협과 광기를 거부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약해지지 않고 계속 고요의 길에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지옥을 상상해 보십시오. 고난, 끔찍한 침묵, 무시무시한 신음소리, 큰 두려움과 번민, 장차 임할 것에 대한 두려움, 끝없이 계속되는 고통, 끝없는 눈물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부활의 날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두렵고 떨리는 심판대를 상상하십시오. 범죄 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그려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천사들, 대천사들, 정사들, 그리고 온 인류 앞에서 당할 수치를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죽지 않는 구더기, 어두움의 심연,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 두려움과 괴로움 등 온갖 형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다음에는 의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축복, 즉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기름 부은 자, 천사들, 대천사들, 성자들 및 모든 성인들과의 친밀한 교제, 천국과 그 선물들, 기쁨과 즐거움을 상상해 보십시오. 또 죄인들에게 내려진 선고로 인한 탄식과 눈물 흘리는 것을 그려 보십시오. 당신도 그들 가운데 속할지도 모른다는 사실로 인해 두려워하며 탄식하십시오. 그러나 의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축복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것들을 누리고 지옥의 고통에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라십시오. 수실 안에 있을 때나 수실 밖에 있을 때나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해롭고 더러운 생각들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금식할 때에는 당신의 건강에 따라 행하십시오. 금식은 당신을 불의와 죄에서 깨끗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들어 올려 주고, 정신을 성화시켜 주며, 마귀들을 몰아내고,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임재를 받을 준비를 갖추게 해 줍니다. 하루에 한 끼로 만족하십시오. 만일 한 끼 이상을 먹으면, 당신의 정신이 혼란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행함으로써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당신의 몸의 정욕들을 죽일 수단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과의 모임 때문에 하루에 두 끼나 세 끼를 먹어야 하는 경우에, 불평하거나 시무룩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즐겁게 행하며, 두 끼나 세 끼를 먹었을 때에는 자신이 사랑의 법을 성취한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섭리해 주고 계시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또 육체의 병 때문에 두 끼나 세 끼, 또는 그보다 더 자주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슬퍼하지 마십시오. 병들었을 때에는 당분간 금욕적 노력을 중지해야, 다시 노력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음식에 관한 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먹는 것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묻지 말고 먹으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창 9:3, 고전 10:26, 마 15:11). 그러므로 음식을 삼가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선택해서 행하는 일이요 수덕적인 노력이 되어야 합니다.

철야, 바닥에서 잠을 자는 것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기쁜 마음으로 견뎌내고, 당신 및 모든 성도들에게 계시될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가 말한 것처럼. 낙심 중에 있는 사람은 기도해야 합니다(약 5:13). 두려워하고 떨면서, 내면으로 깨어 지키면서 애써 기도하십시오. 원수가 매우 악하기 때문에, 특히 이런 방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원수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보면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우리 곁에 와서, 기도하는 동안에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우리의 지성에게 제안합니다. 원수는 우리의 지성을 사로잡고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헛되고 무익하게 만들려 합니다. 두려워하고 떨면서, 내적으로 깨어 지키면서 행하지 않는 기도는 헛되고 무익한 기도입니다. 세상의 왕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두려워 떨면서 주의를 집중하여 왕에게 간청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만유의 주,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 앞에 이런 태도로 서서 기도해야 합니다. 거룩한 천군들과 천사들의 합창대는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떨면서 찬양합니다. 그들은 시작이 없으신 아버지와 지극히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성령과 아들을 영원히 쉬지 않고 찬양합니다. 아멘.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