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정신에 관한 40편의 글 


St. Philotheos of Sinai (시나이의 필로테오스)의 글.(* 5권에도 같은 글이 있다)
St. Nikodimos of the Holy Mountain & St Makarios of Corinth, The Philokalia.
엄성옥, 필로칼리아 3 (서울: 은성, 2007), pp. 11-34.

                                      시나이의 필레테오스
                                                                                                      St. Philotheos of Sinai

개론                                                     

성 니코디모스는 "우리의 거룩한 아버지 필로테오스가 언제 활동하다가 세상을 떠났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맑은 정신에 관한 40편의 글」(
Forty Texts of Watchfulness)이라는 책의 저자로만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근거로 판단해보면 그는 분명히 시나이 산의 수도사였다. 한편「맑은 정신에 관한 40편의 글」의 내용은, 그가 시나이의 수도원장이었던 클리마쿠스의 요한(St. John Klimakos, 6-7세기)의 전통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영적 가르침은 또 다른 시나이 출신의 작가인 사제 헤시키오스(St. Hesychios the Priest, ?8-9세기)의 가르침과도 흡사하다. 이들 세 사람이 시나이의 수덕신학 학파를 형성한다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필로테오스는 연대적으로 클리마쿠스나 헤시키오스 보다 후대의 인물로서 아마 9세기나 10세기에 살았던 듯하다.

간결하고 명료한 「맑은 정신에 관한 40편의 글」의 가치는 특히 중요한 개념들을 단순하게 정의한 데 있다. 책의 제목이 나타내듯이, 필로테오스는 영적으로 맑은 정신이라는 특성을 중시한다. 그는 헤시키오스처럼 이것이 내적인 경청 및 지성을 지키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여긴다. 이 세 가지 개념은 실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필로테오스는 육체적인 금욕과 계명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헤시키오스 보다 더 강조한다. 즉 그는 내적 전쟁과 외적 전쟁이 병행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시나이 학파의 다른 두 사람들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 "쉬지 않고 드리는 예수기도"를 권한다. 이 기도는 '흐트러진 정신을 집중' 시킴으로써 끊임없이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필로테오스는 죽음을 기억하는 것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는데, 이것은 병적이고 세상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특별한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1
우리의 내면, 순전히 지성적인 차원에서는 감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다루기 힘든 전쟁이 진행됩니다. 영적 일꾼은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마음속에 진주나 귀한 보석처럼 간직하기 위해서(cf. 마 13:44-46) 지성을 사용하여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cf. 빌 3:14). 만일 그가 마음속에 하나님만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육신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현세를 무가치하게 여겨야 합니다. 크리소스톰의 말처럼, 순전히 정신적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만으로 악한 영들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우리는 순전히 지성적인 전쟁을 할 때에 성경에서 선택한 영적 수련을 마치 연고를 바르듯이 우리의 지성에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새벽부터 영혼 안에서 하나님을 참되게 기억하고 끊임없이 예수기도를 드리면서 겁내지 말고 용감하게 마음의 문 앞에 지켜 서야 합니다. 그리고 지성을 사용하여 망을 보면서 땅의 모든 악인을 죽여야 합니다(cf. 시 101:8). 우리는 강력한 몰아 상태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압제자들의 머리를 베어야 합니다(cf. 합 3:14). 다시 말해서, 적대적인 생각들을 처음 나타나는 즉시 죽여야 합니다. 순전히 정신적인 전쟁에도 거룩한 관례와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행해야 합니다. 그 후에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적인 양식과 육적인 양식을 준비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고 나서, 죽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묵상해야 합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용감하게 동일한 순서대로 임무들을 행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런 식으로 행한다 해도,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 간신히 영적 원수가 쳐놓은 올가미를 피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확실히 자리 잡은 이러한 영적 수련 방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낳습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소망은 비굴한 두려움을 초월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과 결속시킵니다. 왜냐하면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하며(롬 5:5), "율법과 선지자들"이 의존하는 두 가지 사랑의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마 22:40). 내면에 현세에서나 내세에서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려는 동기를 지닌 사람의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합니다"(고전 13:8).

3
고요한 상태에 놓인 지성을 소유한 사람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상태는 삶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자신에게 끌어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발견됩니다. 만일 우리가 지성을 지키고 내면적으로 깨어 맑은 정신을 유지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원리인 정신적인 일에 종사하려면, 먼저 음식을 자제하여 되도록 적게 먹고 마셔야 합니다. 맑은 정신이란 우리의 내면에 있는 나라, 그리고 장차 임할 나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지성을 훈련하고 정화하며 정념에 물든 상태를 무정념의 상태로 변화시키시는 순수한 지성의 작용은 마치 빛이 가득한 창문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지성을 보시고 자신을 계시해 주십니다.

4
맑은 정신과 집중력을 가지고 원수에게 완고하게 저항하면서 반복하여 행하는 기도를 통해서 확립된 하나님에 대한 기억과 겸손이 결합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장소, 하나님이 현존하시기 때문에 마귀의 군대가 감히 저항하지 못하는 마음의 천국이 있습니다.

5
수다스러움보다 더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 없고, 말을 자제하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올바른 상태를 파괴합니다. 영혼의 수다는 우리가 날마다 세우는 것을 파괴하며, 우리가 수고하여 모아들인 것을 흩습니다. 무엇이 이 "길들일 수 없는 악"(약 3:8)보다 더 큰 손해를 초래합니까? 혀는 강제로 제어하고 억제해야 하며, 필요할 때에만 사용해야 합니다. 혀는 영혼에게 말할 수 없이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6
정신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즉 지성의 경청-은 비록 지성 자체는 잠잠하지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혀를 침묵시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셋째 문은 쉬지 않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과 육체를 정화해줍니다. 나는 이처럼 죽음을 생각하는 것의 장점을 경험하고서 영적으로 크게 상처를 받은 동시에 크게 기뻤기 때문에, 그것을 내 삶의 동반자로 삼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의 권위와 사랑스러움, 겸손함과 회오의 기쁨. 그것에 충만한 깊은 생각, 장차 임할 심판에 대한 염려, 삶의 염려에 대한 의식 등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신의 눈에서 생명을 주는 치유의 눈물이 흐르게 만들며, 정신의 눈에서 정신을 기쁘게 하는 지혜의 샘이 솟게 만듭니다. 나는 항상 이 아담의 딸-죽음을 기억함-을 동반자로 삼아 함께 자고 함께 이야기하며 그에게서 육신의 옷을 벗어버린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음울한 딸인 더러운 망각은 종종 이것을 방해해왔습니다.

7
악한 영들은 생각들을 사용하여 영혼을 대적하여 은밀하게 전쟁을 벌입니다.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악한 영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영혼을 공격합니다. 양측 모두 무기를 준비하며, 군대를 소집하고, 전략을 세우고, 무섭게 싸워 승리하거나 패배합니다. 그러나 이 정신의 전쟁에는 가시적인 전쟁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교전의 선포-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원수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내면의 마음을 공격하고 매복하며 죄를 통해서 영혼을 죽입니다. 그러면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면서 구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계명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깨어 맑은 정신을 통해서 주님의 도움을 받아 지성을 오류로부터 지키고 마귀들의 공격 및 환상으로 이루어진 올가미를 관찰한다면, 이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주님은 거룩한 능력에 의해서 마귀들의 의도를 미리 아시기 때문에 계명들을 정하시고 그것을 범한 사람들을 위협하심으로써 마귀들의 목적을 좌절시키십니다.

8
어느 정도 절제의 습관을 획득하고 오감을 통해서 초래되는 눈에 보이는 죄들을 피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마음을 지키고 내면에 주님의 조명을 받고 지성에 의해서 주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끊임없이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마음에서 악의 구름을 몰아내고 맑은 하늘에서 보듯이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보며, 지성 안에서 주님의 권위에 속한 원리들이 어느 정도까지 빛날 수 있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들은 마음을 정화한 사람들에게만 계시됩니다.

9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출두하듯이 행해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라고 말합니다(호 12:6). 또 말라기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합니다(말 1:6). 또 사도 바울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 말합니다(고후 7:1), 또 지혜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합니다(잠 4:23).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3:26).

10
시기에 적절하지 못한 말은 듣는 사람의 내면에 미움을 일으킵니다. 때로 그들이 우리가 하는 말의 어리석음에 주목할 때에는 욕설과 조롱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우리의 양심을 더럽히거나 하나님의 정죄를 가져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거스르게 만듭니다.

11
만일 당신이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죄를 근절하며, 보다 거룩한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당신의 지성 안에서 본다 해도, 그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오만한 태도를 나타내서는 안 됩니다. 천사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피조물보다 더 깨끗하고 영적 지식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교만해져서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진 것도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교만을 불순함으로 간주하셨습니다. 그러나 금을 캐내는 사람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12
사도 바울은 영적 전쟁에 참여하여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합니다(고전 9:25). 우리는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갈 5:17) 소욕을 가진 불쌍한 육체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배불리 먹었을 때에는 마귀의 지배,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세력들을 대적하여 견고히 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롬 14:1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8:7). 그것은 세상적인 것, 체액과 피와 점액의 복합체이며 항상 아래쪽을 향해 끌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항상 세상의 것에 애착하며, 현세의 썩어질 쾌락을 즐깁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롬 8:6),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 8:8).

13
주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지성을 지키려면 우선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다음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쳐서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을 성취하려면 이전에 세상에서 영위하던 삶을 면밀하게 기억하며 어렸을 때부터 범한 모든 죄를 상세히 회상하고 검토해야 합니다(그러나 육욕적인 죄를 기억하는 것은 해롭기 때문에 제외됩니다). 이것은 겸손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며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만듭니다. 항상 생생하게 죽음을 기억하는 것도 동일한 효과를 지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람스러움과 즐거움을 동반하는 슬픔을 초래하며, 지성으로 하여금 깨어 경계하게 합니다. 게다가 주님의 수난,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상세히 기억하는 것은 우리를 크게 겸손하게 하고 교만함을 부끄럽게 만들며, 또 눈물을 흘리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축복을 열거하고 검토하는 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우리는 교만한 마귀들을 상대로 싸웁니다.

14
이기심 때문에 영혼에게 유익한 이 약들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거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며. 사도 바울을 본받는 자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 15:9)고 말했고, 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딤전 1:13)고 말했습니다. 교만한 자여, 이 성인이 자신의 과거의 삶을 잊지 않았음을 보십시오. 실제로, 태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인들이 이 가장 비천한 하나님의 옷을 입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불가해하고 알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영생과 거룩의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사는 동안 겸손으로 옷 입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겸손은 하나님의 덕, 왕의 옷과 명령이라고 불려야 합니다. 더욱이, 천사들 및 빛나고 거룩한 모든 권세들은 교만해진 사탄이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주는 두려운 경고로서 무저갱에 떨어진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덕을 실천합니다. 그는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어떤 피조물 보다 더 타락했음을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타락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에게 그러한 복을 수여해 주는 이 덕의 본보기들이 많으므로, 그것들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따르며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 안에서나 영혼 안에서, 생각과 뜻 안에서, 말과 생각 안에서, 외적인 태도와 내면 상태 안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변호인,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모른 체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약 4:6),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고"(잠 16:5),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입니다"(마 23:12).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15
주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진다"(눅 21:34)고 말씀하십니다. 또 사도 바울은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전 9:25)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알고서 특히 음식과 관련하여 절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고결하고 규율이 있는 습관들에 익숙해져야 하며 중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영혼은 그 주권적인 측면인 지성에 의해서 욕구하는 힘이 증가하는 것을 보다 쉽게 정복하고 평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다른 결점들이나 영혼의 자극적인 힘과 관련된 부분에도 적용됩니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덕이 포괄적인 절제, 다시 말해서 온갖 종류의 악을 피하는 것 안에 존재한다고 간주합니다. 왜냐하면 순수함의 탁월한 근원은 모든 복을 주시는 근원이 되시는 분이신 하나님이며, 그 다음은 날마다 규칙적으로 음식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16
사탄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과 싸우며,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실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안에 구현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폐기하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움을 통해서 자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며 마귀의 치명적인 목적을 좌절시키려 합니다. 마귀는 헛되이 사람들로 하여금 계명에 불순종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계획을 전복하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사용하십니다. 복음의 모든 계명들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영혼을 위해 제정된 것이며, 그것들이 명하는 것을 통해서 영혼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건강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마귀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영혼과 밤낮으로 싸웁니다. 그러나 만일 마귀가 영혼을 대적하여 싸운다면,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계명들을 통해서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영혼을 위해 제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세 부분은 격앙하는 힘, 욕구하는 힘, 그리고 지성으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 후에 노염을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원수는 우리의 내면에 질투와 원한에 속한 생각과 갈등을 일으킴으로써 이 계명을 뒤엎으려 합니다. 마귀는 지성이 격앙하는 힘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며, 그렇기 때문에 악한 생각들-질투, 다툼, 교활, 자부심, 싸움 등과 관련된 생각들-을 퍼부음으로써 지성을 설득하여 통제력을 포기하며 격앙하는 힘에게 고삐를 내어주어 그 힘이 제멋대로 날뛰게 만듭니다. 통제되지 않은 격앙하는 힘은 마귀의 간계와 지성의 태만함에 따른 결과로서 마음에 저장되어 있던 모든 것을 말로 토해냅니다. 그 때에 마음에는 성령과 경건한 생각이 아닌 악한 생각들이 가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34). 만일 마귀가 자신의 포로가 된 사람으로 하여금 내면에 품고 있는 것을 말하게 만든다면, 그 사람은 형제를 "바보"나 "멍청이"라고 부르며 모욕적인 말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귀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형제에게 노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대적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경청함으로써 마음에서 성냄을 몰아낸다면, 모욕하는 말과 그에 따른 결과들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마귀는 우리 마음에 은근히 심어주는 생각들에 의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게 만들 때에 자기의 목적을 성취합니다.

17
주님은 식욕이나 정욕과 관련하여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이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효과를 손상시키기 위해서 일종의 정신적인 그물을 만듭니다. 마귀는 실제로 여인을 통해서 욕망을 자극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활동하면서 우리의 지성 안에 음탕한 형상과 모습을 투사하고 넌지시 욕망을 자극하는 말 및 지성에 속한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러 종류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18
지성에게는 어떤 명령이 주어집니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마 5:34, 37):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cf. 마 10:37- 3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 7:13). 이것들은 지성에게 주어지는 명령들입니다. 또 숙련된 지휘관인 지성을 제압하고자 하는 원수는 먼저 탐욕스럽고 문란한 생각으로 지성의 이해력을 혼란스럽게 하며 마치 지성을 술 취한 장군처럼 다루며 그 명령을 무시합니다. 그 다음에는 노염과 욕망을 종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성의 통제에서 벗어난 이 능력들-욕망과 관련된 능력과 격앙하는 도발적인 능력-은 오감의 도움을 받아 공개적으로 죄를 범합니다. 그 때에 우리가 범하는 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성이 내면에서 통제하기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두 눈은 캐묻기를 좋아하게 되고, 우리의 귀는 경솔한 것을 즐겨 들으려 하며, 우리의 후각은 나약해지며, 말이 많아지고, 손으로는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을 만집니다. 여기에 정의가 아닌 불의, 도덕적인 판단이 아닌 어리석음, 자제가 아닌 방탕함, 용기가 아닌 비굴함 등이 동반됩니다. 이 네 가지 주요한 덕-정의, 도덕적 판단, 자제, 용기-이 영혼의 세 가지 측면을 다스립니다. 이 측면들을 바르게 제어하면, 이것들은 감각을 비열한 것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자체의 능력을 다스리기 쉽게 통제하는 평온한 지성은 용감하고 쉽게 정신적인 싸움에 임합니다. 그러나 만일 지성이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여 마귀의 도발에 패배하고 그 능력이 혼란에 빠진다면, 지성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범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후에 적절한 회개를 하지 않으면, 장차 분명히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결국 지성은 항상 깨어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지성은 그 본성적 상태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계명들의 참된 보호자가 될 것입니다.

19
영혼은 악한 영들에 의해 둘러싸여 갇히고 차단되고 어두움의 사슬에 결박되어 있습니다. 영혼은 어두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내적으로 속박을 받고 있고, 내면의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여 기도하면서 깨어 경계하여 맑은 정신을 획득한다면, 기도를 통해서 이 어두움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영혼은 계속 죄수로 남을 것입니다. 영혼은 마음 안에는 또 다른 전쟁과 은밀하게 감추어진 형태의 반대, 그리고 악한 영들이 도발하는바 생각들을 향한 또 다른 전쟁이 있다는 것을 기도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증거하여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전 10:4)고 말합니다. 지성의 자리는 덕 안에 견고히 서며 깨어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덕과 악덕과 관련하여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시 1:1)고 말하며,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엡 6:14)고 말합니다.

20
우리 영혼에게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박탈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항상 있으므로, 우리는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또 우리 영혼 안에 빽빽하게 들어찬 악한 생각들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에게서 떠나가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cf. 엡 5:13). 그러나 영혼이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을 붙들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지상생활을 연구하여 열심히 모방함으로써 자신의 고난을 인내하며 참고 견뎌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육신을 입으신 것과 우리를 위한 구원 사역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달콤한 맛 때문에 우리 연혼은 주님이 은혜로우신 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cf. 시 34:8). 무엇보다도 우리는 날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섭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열심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지혜의 거룩한 원리에 따라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영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말했듯이, 경건이란 "결코 완벽하지 못한 완전함"입니다.

21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보다는 항상 죽음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지성이 정념들에 사로잡히지 못하게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이 마귀의 도발의 끊임없는 현존을 보다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슬픔에 속한 생각은 품지 않은 채 영적 지식을 통해서 마음을 정화하기 때문에 때로는 자신의 솜씨에 의해서 모든 파괴적인 정념들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지중에 그것들 중 가장 악한 것-종종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빠지게 되는 교만-의 속박을 받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만하여 미치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cf. 고전 4:6,18,19; 8:1), 여기저기에서 지식을 끌어 모으는 영혼은 오만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덕을 세워주는 사랑의 불꽃에 부족합니다. 그러나 종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마귀들의 공격을 보다 예리하게 분별하고, 반격하여 물리칩니다.

22
마귀들에 대한 증오와 진노가 가득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면 파괴자가 우리 영혼을 삼키기 위해서 무장하고 배치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생각, 음란, 논쟁, 망상, 모호한 추측 등의 속임수들을 모두 쫓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부탁하면, 예수님은 즉시 모든 것을 태워버리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주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23
우리는 매 시간, 매 순간 영혼의 거울을 흐리게 하는 생각들로부터 부지런히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그 거울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cf. 고전 1:24). 또 우리는 마음 안에서 하늘나라(cf. 눅 17:21), 씨앗(cf. 눅 13:19), 진주(cf. 마 13:45), 누룩(cf. 마 13:33)을 끊임없이 찾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지성의 눈을 깨끗이 한다면, 우리는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모든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신성이 우리 마음 안에 거하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24
깨어 경계하면 양심이 깨끗하고 맑아집니다. 이렇게 깨끗해진 양심은 즉시 뚜껑을 벗긴 등불처럼 빛을 발하여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꾸준히 깨어 경계하여 이 어두움이 모두 사라지면, 양심은 우리에게 감추어져있던 것을 드러내줍니다. 양심은 지성을 통해서 깨어 경계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영적 싸움을 하는 법. 생각의 창을 제대로 겨냥하여 던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성이 우리가 열망하는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 숨어 공격과 어두움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 빛을 경험한 사람은 나의 말을 이해할 것입니다. 영혼은 결코 그것에 싫증을 내지 않으며, 그것을 누릴수록 더욱 그것을 갈망합니다. 태양이 시선을 끌듯이, 그것은 지성을 끌어당깁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지만, 경험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이 경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경험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나의 지성은 그것에 대해 말하는 데서 즐거움을 누리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잠잠하라고 명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사랑과 깨끗함을 얻으려면 이렇게 행하십시오. 왜냐하면 이것들이 화평함과 거룩함이기 때문입니다.

25
마귀들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를 공격하며 우리에 대한 노여움이 가득하므로, 우리는 오직 마귀들에게만 분노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매 시간 벌어지는 전쟁의 방법을 경청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기도와 내적으로 깨어 경계함을 결합하십시오. 왜냐하면 깨어 경계함은 기도를 정화해주고, 기도는 깨어 경계함을 정화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깨어 경계함으로써 우리에게 들어오려는 것을 감지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마음의 문을 닫아 그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악한 원수들을 물리쳐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주의집중은 마귀들을 반박하여 저지합니다. 우리가기도하면 예수님은 그것들 및 그것들이 주는 망상들을 쫓아내십니다.

26
엄격하게 지성을 지키십시오. 악한 생각은 감지하는 즉시 물리치고 그리스도께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십시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은 당신이 부탁하는 동안에 "나는 너를 돕기 위해 네 옆에 있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원수의 방해가 작용하지 못하게 한 후에 다시 지성에 주목하십시오. 당신은 그곳에서 전보다 더 심한 파도들이 연속적으로 밀려오고 그 속에서 영혼이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잠을 깨울 때에 악한 바람을 책망하실 것입니다(cf. 마 8:23-27). 한 시간, 또는 잠시 동안 쉬면서 당신을 구해주신 분을 찬미하고 죽음에 관해 묵상하십시오.

27
우리는 마음으로 완전히 경청하며 영혼이 완전히 의식을 지닌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날마다 경청과 기도가 결합된다면, 그것들은 엘리야의 불마차처럼 되어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갈 것입니다(cf. 왕하 2:11). 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깨어 경계하는 상태에 도달했거나 그 상태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해와 달과 별이 있는 영적 하늘이 형성됩니다. 신비적 관상과 등정의 결과로서, 그러한 마음은 그 자체 안에 품을 수 없는 하나님을 품을 수 있게됩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거룩함을 열망한다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주님께 기도하며, 말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힘껏 노력하십시오. 영혼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오감을 어느 정도 강력하게 억제한다면, 분명히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성의 싸움을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열망들에 의해서 외적인 원수들을 모두 멀리하며, 하나님이 주신 영적 무기를 가지고서 그들이 당신의 내면에서 만들어내는 생각들과 싸우십시오. 꾸준히 깨어 경계함으로써 감각적인 쾌락을 피하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삼가십시오. 마음의 전쟁이라는 짐을 줄이고 당신 자신에게 완전한 유익을 가져오려면 몸을 적절히 훌쭉하게 유지하십시오.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당신의 영혼을 질책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써 흩어진 지성을 집중시키십시오. 지성은 특히 밤에 하나님과 거룩한 실체들을 볼 때에 밝아집니다.

28
우리는 육체적인 금욕고행의 실천을 배격해서는 안 됩니다. 땅에서 밀이 나오듯이, 그러한 수행으로부터 영적 기쁨과 축복이 자라나옵니다. 또 우리가 구원을 위해 행해야 하는 것, 옳은 것, 그리고 우리의 의미인 것에 대해 말해주는 양심을 피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지성의 적극적이고 세심한 경계를 통해 정화될 때에 양심은 이러한 일을 합니다. 그때에 양심은 그 깨끗한 상태 때문에 포괄적이고 요령 있고 명백하게 판단합니다. 따라서 양심을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양심은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여 사는 방법을 말해주며, 또 정신이 죄에 물들었을 때에는 영혼을 호되게 비난하고 잘못한 마음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함으로써 우리의 흠이 있는 상태를 치료하는 방법에 관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권고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29
장작에 불을 지필 때에 나는 연기는 눈을 아프게 만듭니다. 그러나 장작에 붙은 불은 빛을 밝혀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마찬가지로, 쉬지 않고 경청하는 것은 지루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구하여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시면, 예수님은 마음을 조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적 조명과 가장 고귀한 축복을 수여해줍니다.

30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원수는 우리의 지성 안에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흙을 먹고 배로 기어 다니게 만듭니다(cf. 창 3:14). 이런 까닭에 하나님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cf. 창3:15).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귀의 불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항상 하나님을 호흡해야 합니다(cf. 엡 6:16). 하나님은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시 91:14),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시85:9)라고 말씀하십니다.

31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고후 2:17) "택한 그릇"(행 9:15)인 사도 바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에베소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2).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합니다(벧전 5:8).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태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눅 8:12). 또 바울은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말합니다(롬 7:22-23). 이것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기 위한 말씀입니다.

32
자책과 겸손이 없으면, 영적 지식이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듭니다(cf. 고전 8:1). 그러나 만일 우리가 자신의 약함을 의식한다면, 다음과 같은 마을의 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6-27). 겸손은 거룩함에 이르는 길이며, 바울이 무척 겸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말했습니다(딤전 1:15). 그러므로 우리의 본성이 비천하므로, 우리는 마땅히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흙보다 더 비천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피조 되었으므로, 반드시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성생활에서 주님의 도움을 받아 방해를 받지 않고 전진하려면 절제를 실천해야 합니다.

33
악한 생각에 몰두하는 사람은 겉 사람을 죄로부터 자유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을 근절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악한 행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눈이 어두워지고 음란해졌기 때문에 음란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또 우리 영혼의 귀는 우리의 내면에 있는 더러운 마귀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을 경청했기 때문에. 우리는 더러운 것들에 대해 듣기를 원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안과 밖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들을 지키며 정념에 물든 악한 영향력들로부터 그것들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또 우리는 무지하고 경망한 언동이 가득하여 세상에서 지성과 감각이 죄의 속임에 종속된 상태로 살았지만, 이제 변화되어 하나님에 따라 살게 되었으므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과 그 뜻과 공의를 섬기는 일에 지성과 감각을 바쳐야 합니다.

34
처음에는 도발이 있고, 다음에는 도발과 결합하고, 그 다음에 도발에 동의하고, 다음에는 도발의 노예가 되며, 다음에는 정념이 자라서 상습적이고 지속적 인 것이 됩니다. 이것은 거룩한 교부들이 묘사한 것으로서 마귀가 우리를 정복할 때에 거치는 단계들입니다.

35
도발은 아직은 정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생각, 또는 마음에서 새로 일어나서 지성 이 희미하게 식별한 심상입니다. 도발과의 결합이란 열정적으로든지 냉정하게든지 이 생각이나 심상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동의는 영혼이 본 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노예가 된다는 것은 강요된 강력한 마음의 유괴, 또는 우리의 최선의 상태를 파괴하면서 그 대상과 끈질기게 교제하는 것입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정념이란 오랫동안 영혼 안에 자극할 수 있는 상태로 잠복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단계들 중에서 첫 단계는 악한 것이 아니며, 두 번째 단계는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하지는 않습니다. 세번째 단계의 죄악됨은 우리의 내면 상태에 의존합니다. 또 싸움은 우리에게 형벌이나 승리의 면류관을 가져옵니다.

36
기도할 때에 노예가 되는 것과 기도하지 않을 때에 노예가 되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정념은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회개로 이어지거나, 장래의 징계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최초의 도발을 물리치는 사람, 또는 그것을 냉정하게 주시하는 사람은 다음에 이어지는 모든 악한 단계들을 단번에 근절합니다. 악한 마귀들은 수도사들이나 수도사가 아닌 사람들과 싸울 때에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며, 그 결과는 승리나 패배입니다. 승리한 사람들은 면류관을 받지만, 넘어지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들의 악한 목적들을 악한 행동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려면, 그것들을 대적하여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죄를 잘라내면 내면에서 하늘나라를 발견할 것입니다(cf. 눅 17:21). 우리는 깨끗한 마음을 보존하며, 이 최선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양심의 가책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37
마귀들이 지성을 어떻게 속이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순진하고 미숙하기 때문에 덕을 실천하고 지성을 괴롭히지 않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그들은 깨끗한 마음을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가며, 내면에 있는 어두운 정념들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바울이 말한 전쟁을 알지 못하며(cf. 엡 6:12) 개인적으로 참된 선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된 죄들만 타락으로 간주합니다. 그들은 생각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승리와 패배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성적인 시력으로 볼 수 없고, 우리의 재판관이신 하나님과 영적 경쟁자의 양심에게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겔13:10)는 말씀이 그러한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형제들은 단순하게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실질적인 범죄를 피할 수 있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영혼의 시력을 깨끗하게 하려는 거룩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른 형태의 활동과 다른 신비가 있습니다.

38
생생하게 죽음을 생각하는 것에는 많은 덕이 포함됩니다. 그것은 슬픔을 낳고, 매사에 절제를 실천하게 하며, 지옥을 상기시켜줍니다. 또 그것은 기도와 눈물의 근원이며, 마음을 지켜주며 물질로부터 이탈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경청과 분별의 근원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 가지 두려움을 만들어냅니다. 게다가 마음에서 정념에 물든 생각들을 제거하게 되면 주님의 많은 명령들을 받아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의 경주자들이 매시간 행하는 어려운 싸움의 목적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39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나 불행은 정신의 경청을 크게 파괴하며, 지성으로 하여금 보다 고귀한 것들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거나 고귀한 덕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악한 말다툼과 논쟁을 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원수의 공격에 대한 집중력의 부족 때문입니다.

40
우리가 날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의 목적을 깨닫고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묵상한다면, 그것들은 결코 우리에게 해를 끼치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고후 12:10):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라고 말합니다. 세세토록 하나님께 영광이 있을 지어다. 아멘.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