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마음을 지키는 것에 관하여


On Watchfulness and the Greating cf the Heart


 


 


Nikophoros (수도사 니카포로스)의 글.


St. Nikodimos cf the Holy Mountain &


St Makarios cf Corinth, The Philokalia.


엄성옥, 필로칼리아 4 (서울: 은성, 2008), pp. 282-297.


 


 


 


 


만일 당신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신적 조명을 받기를 원한다면; 마음속에 지극히 거룩한 불을 경험하며 의식적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마음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을 찾아 소유하기 위해서 (cf. 마 13:44) 자신에게서 세속적인 것들을 몰아내기를 원한다면; 현세에서 영혼의 불을 붙이며 현세에만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인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영적으로 당신 안에 있는 하늘나라를 알고경험하기를 원한다면(cf. 눅 17:21), 나는 당신을 영생으로 인도해줄 학문, 당신이 적용하기만 한다면 마귀들에게 미혹되거나 두려움을 느낄 위험이 없이 고통을 느끼거나 수고하지 않고서 무정념의 항구로 인도해줄 방법을 알려주겠습니다. 그런 종류의 두려움은 우리가 불순종하여 이제부터 묘사하려 하는 삶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될 때에만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담의 운명이었습니다. 아담은 뱀과 교제하고 신뢰하면서 그가 주는 미혹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그 자신 및 그의 후손들을 사람과 어둠과 썩어짐의 구덩이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아와야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뱀의 권고와 우리 자신의 저급하고 편향된 것을 미워하고 영원히 거부하면서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자신에게로 돌아오거나 자신 안에 들어오지 않는 한 그것은 우리 안에 남아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며 동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이란 우리 자신을 세상의 헛된 염려와 분심으로부터 끊어내고 내면에 있는 하늘나라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생활은 학문 중의 학문이요 예술 중의 예술이라고 불려왔습니다. 이 거룩한 훈련은 우리에게 썩어질 것을 조달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지성을 고귀한 것에게서 저급한 것을 향하게 만들어 완전히 질식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이 훈련은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복,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복(고전 2:9)을 제공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입니다"(엡 6:12). 그러므로 만일 현 세대가 어둠의 세대라면, 우리는 이 세대로부터 도망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와 공통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없으려면, 생각들 안에서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야 합니다. 현 세대의 친구가 되는 편을 선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cf. 약 4:4). 누가 하나님의 원수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교부들을 본받고, 그들처럼 마음속에 있는 보물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찾으면 힘을 다해서 굳게 붙들고 경작하고 지켜야 합니다(cf. 창 2:15). 왜냐하면 이것이 태초부터 우리에게 명령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니고데모가 주님을 의심하여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4)라고 말했듯이, 또 다른 니고데모가 나타나서 "사람이 어찌 자기 마음에 들어가서 거하거나 일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성령의 바람은 임의로 분다"(요 3:8)라고 대답하십시오. 금욕적 수덕생활의 실천에 대한 불신앙과 의심이 가득한 사람이 어찌 관상의 열매를 즐기겠습니까? 우리는 실천을 통해서 관상을 배웁니다.


기록된 증거가 없으면 이런 식으로 의심하는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이 담화에 성인들의 전기나 저술에서 인용한 구절을 포함시키려 합니다. 그것들을 읽으면 의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나는 먼저 성 안토니의 글을 인용하고, 계속해서 그의 후계자들을 다루면서 가능한 한도까지 내 말과 일치하는 그들의 말과 행동을 선택하여 제공하겠습니다.


 


 


거룩한 교부 안토니의 전기에서


 


"두 명의 형제가 성 안토니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 도중에 물이 떨어져 두 사람 중 하나는 죽고 나머지 하나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여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땅에 누워서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산 위에 있던 안토니는 함께 있는 두 명의 수도사들에게 급하게 말했습니다: '물 한동이를 가지고 가능한 한 빨리 이집트를 향해 가십시오. 두 사람이 이곳을 향해 오다가 한 사람은 방금 죽었습니다. 여러분이 서두르지 않는다면, 나머지 한사람도 죽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기도하는 동안에 계시로 받은 것입니다.' 수도사들은 곧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발견하여 묻어주었고, 나머지 한사람은 물을 먹여 살린 후에 안토니에게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안토니가 있는 곳까지는 대략 하룻길이었습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죽기 전에 안토니가 말해주지 않은 이유를 묻는 것은 부적절한 질문입니다. 죽음에 대한 결정권은 안토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사람이 죽는 것을 허락하셨고, 둘째 사람에 대한 계시를 안토니에게 주셨습니다. 안토니는 산에 있는 동안 마음을 깨어 있도록 지켰기 때문에 주님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에게 보여주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성 안토니가 깨어 경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식하고 투시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합니까? 하나님은 마음 안에서 먼저 지성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요한 클리마쿠스의 말에 의하면, 먼저 연인을 깨끗하게 하시는 불로 나타나신 후에 지성을 조명해주시고 경건하게 하는 빛으로 나타나십니다.


 


 


공주수도사인 성 데오도시우스의 전기에서


 


"성 테오도시우스(St. Theodosios)는 사랑의 화살에 깊이 찔리고 사랑의 족쇄에 굳게 묶였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는 귀한 명령을 실제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태는 영혼의 본성적인 능력을 집중하여 창조주만 갈망하게 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영혼 안에 있는 이러한 영적인 힘이 매우 컸기 때문에, 그의 권면은 종종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책망할 때에는 항상 온유하고 부드러웠습니다. 테오도시우스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여 유익을 주고, 그들의 감각을 내면에 집중시켜 사막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평온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홀로 지낼 때나 사람들 가운데서 지낼 때나 항상 동일했습니다. 그는 감각을 내면에 집중시켰기 때문에 창조주를 향한 사랑에 사로잡혔습니다."


 


 


성 아르세니우스의 전기에서


 


"성 아르세니우스(51.Arsenics)는 어떤 일에 대해서든지 글로 논의하거나 편지를 보내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약하거나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만큼 쉽고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러한 규칙을 만든 것은 오랫동안 침묵을 실천해왔고 자기 과시를 싫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이유 때문에, 그는 교회 안에 있을 때나 다른 모임에 참석했을 때에 자신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거나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 일이 없도록 조심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기둥이나 다른 장애물 뒤에 섰고, 사람들과 섞이지 않았습니다. 이 거룩하고 천사 같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행동한 것은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께 들어올리기 위해서, 자신을 엄격하게 지키고 지성을 내면에 집중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트로스 산의 폴의 전기에서


 


"거룩한 폴(Paul)은 항상 산이나 한적한 곳에서 고독하게 살면서 짐승들과 먹을 것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제들을 방문하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서 나약해지지 말며 덕의 실천을 게을리 하지 말고 집중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악한 영들을 대적하여 담대하게 싸우며 복음서와 일치하여 살기 위해 노력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또 정념이 배인 성향들을 제거하고 정념들의 새로운 씨앗들을 없애는 데 사용할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거룩한 교부는 풋내기 제자들에게 정념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방법은 곧 지성을 돌보는 기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성을 지킴으로써 정념들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 사바스의 전기 중에서


 


"성 사바스(St. Sawas)는 어느 수도사가 수도원 행동의 규칙들을 완전히 통달하고 자신의 지성을 지키며 악한 생각들을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세상적인 일들에 대한 기억을 자기의 정신에서 완전히 몰아냈다는 것을 알면, 그 수도사가 몸이 약해지거나 병이 들면 수도원 내에 수실을 소유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수도사가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면, 자신의 수실을 직접 지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거룩한 사바스는 제자들에게 지성을 지킬 것을 요구했고, 그렇게 행했을 때에만 그들이 홀로 자기의 수실에 거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성을 지키는 기술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한가하게 수실에 앉아서 무엇을 행하고 있습니까?


 


 


사부 아가톤의 전기에서


 


"사부 아가톤(Abba Agathon)은 육체적인 금욕과 내면 상태를 지키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으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사람은 한 그루 나무와 같습니다. 육체적인 금욕은 잎사귀들이요 내면상태를 지키는 것은 열매입니다. 성경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 3:10)고 말하므로 우리는 열매를 맺는 것, 즉 지성을 지키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잎사귀라는 덮개, 즉 육체적인 금욕도 필요합니다." 이 성인은 지성을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육체적인 금욕만 자랑하는 사람을 공공연히 비난했습니다. 그는 열매-지성을 지키는 것-를 맺지 않은 채 잎새-육체적인 금욕-만 무성한 나무는 베어내어 불에 던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니콜라스에게 보낸 사부 마가(Abba Mark)의 편지에서


 


"만일 당신이 내면에 정신적인 빛과 영적 지식의 등불을 획득하여 이 세대의 어두운 밤을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원한다면, 또 당신이 복음의 길에서 즐거워하며 주님이 당신의 발걸음을 정해주시기를 원한다면,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열심히 기도하면서 복음의 계명들을 실천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될 놀라운 영적 방법을 가르쳐주겠습니다. 여기에는 육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노력과 지성의 통제와 깊은 사고력,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원수와 결합된 것들을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념들을 정복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망각과 나태와 무지라는 세 가지 힘센 용사들-이것들은 악한 정념들이 방종한 영혼에게 침투하여 영혼 안에서 살면서 힘차게 일하고 번성할 수 있게 해줍니다-을 찾아내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주의를 집중하고 지성을 통제하며 위로부터의 도움을 받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 악한 용사들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주의집중과 기도에 의해서 그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혜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일치와 참된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려는 열심이 마음에 심겨지고 배양될 때, 망각과 무지와 나태가 마음에서 완전히 제거됩니다." 다양한 영적 교훈들은 놀랍게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기도의 의미를 분명히 설명해줍니다.


 


 


성 요한 클리마쿠스의 글에서


 


"역설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헤시카스트(hesychast)란 무형의 것을 몸의 성전 안에 소중히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헤시카스트는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아 5:2)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수실의 문 가까이에 몸이 있고, 당신의 혀의 문 가까이에 말이 있고, 내면의 문 가까이에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만일 방법을 안다면 망루 위로 올라가서 어떤 형태의 얼마나 많은 도둑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포도원에 들어와 포도를 훔쳐 가려 하는지 지켜보십시오. 파수꾼은 지루해지면 일어서서 기도한 후에 다시 앉아서 맡은 일을 행합니다. 악한 생각들을 대적하여 지키는 것과 지성을 지키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지성을 지키는 것은 동과서가 다르듯이 다르고 획득하기 어렵습니다. 도둑들은 왕의 군대가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공격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도둑들도 마음속에 기도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을 약탈하지 않습니다."


위의 글은 이 위대한 교부의 놀라운 내면의 작업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둠 속을 걸어가며 한밤중에 소동을 부리듯이 영혼을 구원하시는 성령의 말을 짓밟고 멸시합니다. 다음의 글들은 교부들이 깨어 경청함을 획득하기 위한 지침으로 우리를 위해 기록해 놓은 것들입니다.


 


 


독수도사 이사야의 글에서


 


"우리는 악과의 관계를 끊을 때에 하나님께 대해 범한 모든 죄를 정확하게 이해합니다.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죄들과의 관계를 끊어야만 자신의 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정념들을 향한 자신의 악한 사랑을 기억할 때에 수치심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을 다해서 영적인 길을 추구하면,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교부들처럼 우리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면, 최소한 하나님에 순종하면서 우리의 몸을 죄가 없이 보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행하며, 영적으로 죽을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우리에게 자비를 주실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이 위대한 교부는 매우 약한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만일 우리가 교부들이 행한 것처럼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했어도 최소한 우리 몸을 죄 없이 보존하면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교부는 동정심이 많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 마카리우스의 글에서


 


"금욕고행자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 사탄을 대적하여 싸우고 미워하는 것, 그리고 사탄이 불러일으킨 생각들을 대적하여 씨름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표면적으로 몸을 깨끗하고 순결하게 보존하면서도 내면적으로 하나님과 관련된 것에서 간음하며 방탕한 생각을 한다면, 몸을 순결하게 보존한다고 해도 전혀 유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33)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몸을 통해서 간음할 수 있듯이 영혼이 사탄과 교제할 때에도 간음합니다."


이 위대한 교부의 말은 위에서 인용한 성 이사야의 말과 상반되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카리우스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방법으로 우리 몸을 지키라고 권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영도 깨끗하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따라서 그는 복음의 계명들이 규정하고 있는 것을 요구합니다.


 


 


디아도쿠스(Diadochos)의 글에서


 


"항상 마음 안에 거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 안에서 살며, 육체의 촉망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덕의 요새를 순찰하면서 마치 모든 성문에 파수꾼을 배치하듯이 덕들을 배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향한 마귀들의 공격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마귀들의 공격이 무력해진다는 이 성인의 말은 옳습니다. 그는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 거할 때에는 마귀들의 공격이 무력해지며, 그곳에 오래 거할수록 마귀들의 공격은 더욱 무력해진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모든 교부들의 글을 요약하여 인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한두 명의 글을 추가하고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시리아의 성 이삭 (St. issac)의 글에서


 


'내면의 성소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십시오.그리하면 하늘의 성소를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는 동일한 것이며, 그것들을 보게 해주는 입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로 이어지는 사다리는 당신의 내면, 즉 당신의 영혼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당신 자신에게서 죄를 깨끗이 제거하십시오. 그러면 그곳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할 것입니다."


 


 


카르팍토스의 요한 (John of Kupathos)의 글에서


 


"기도할 때에 정신이 동요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여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마음의 천국을 획득하려면 크게 수고하고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cf. 고후 13:5)고 말합니다."


 


 


신 신학자 시메온 (St. Symeonthe New Theologian)의 글에서


 


"인간을 범죄하게 만들어 낙원과 하나님에게서 쫓겨나게 한 사탄과 마귀들은 자기들이 원할 때마다 사람의 이성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물은 쉬지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새겨진 이러한 기억은 우리의 생각을 흔들림이 없이 견고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의 경기장에 들어가는 영적 경주자가 헛되이 노력하지 않으려면 이러한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주자는 이러한 상태를 획득하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금욕적 수행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그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 주시고 그의 마음에 도장처럼 새겨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과 일치합니다: '나의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이제 무정념에 이르고 하나님을 보는 데로 신속하게 인도해 주는 영적인 방법이나 기술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셨습니까? 온갖 형태의 외적인 금욕 고행은 얼매 없는 나무의 무성한 잎과 같아서 지성을 지킬 능력이 없는 영혼에게는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확신하십니까? 그러므로 열매 없이 죽은 후에 무익하게 회개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질문: 우리는 위의 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의 수행에 대해서 배웠을 뿐 아니라, 영혼을 정념들로부터 신속하게 해방시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결합시켜 주는 행동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영적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반드시 이 행동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에 대해 의심 없이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깊음이 정확하게 무엇이며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 알기를 열망합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답: 나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고 말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도우심을 구했으며, 이제 주의 깊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지를 최선을 다해 보여드리겠습니다.


 


 


니키포로스 자신의 글에서


 


어떤 성인들은 주의 깊음이란 지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 또는 깨어 지킴, 또는 정신적 침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표현들은 모두 동일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제 당신은 주의 깊음이 무엇이며 그 특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주의 깊음은 참 회개의 표식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회복, 세상에 대한 증오 그리고 하나님께로의 복귀 입니다. 그것은 죄를 거부하고 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입니다. 그것은 관상의 출발점, 또는 관상의 전제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그것이 있는 것을 발견하실 때에 그것을 통해서 지성에게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지성의 평온, 또는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영혼에게 주어진 평정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들의 복종, 하나님 기억의 궁전,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것을 인내하며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요새입니다.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기초입니다. 만일 믿음이 없으면, 당신은 자신을 공격하는 표면적인 고통들을 참고 견딜 수 없을 것이며, 그것들을 기꺼이 참고 견디지 못한다면 주님께 "당신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시 91:2)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만일 지존 자가 당신의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면, 당신의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쌓아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로 가르침을 받아서 이 큰 선물을 획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은 뜨거운 믿음과 노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직접 이 선물을 받습니다. 그러나 진기한 것은 표준적인 것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잘못이 없는 지도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한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으면, 주의 깊음의 축에서 좌로나 우로 기울 때마다 마귀들이 암시하는 결점들과 과장된 것들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지도자는 자신이 받은 고난을 통해서 검증되었으므로,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분명히 해줄 수 있을 것이며 영적인 길을 확실하게 보여주어 쉽게 그 길을 따를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그러한 지도자가 없다면, 부지런히 그러한 지도자를 찾아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지도자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세속적인 애착을 버리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부르며 내가 말하는 대로 행하십시오.


당신은 우리가 공기를 호흡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숨을 내쉬는 것은 심장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에게 있어서 심장은 생명과 체온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심장은 호흡하면서 들이쉰 공기를 끌어당기며, 숨을 내쉴 때에 그 열의 일부를 방출함으로써 체온을 고르게 유지합니다. 이 과정의 원인, 또는 이 과정을 행하는 것은 폐 입니다. 창조주께서는 폐가 확장하고 수축할 수 있게 만드셨기 때문에 폐는 내용물을 쉽게 흡입하고 배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심장은 호흡을 통해서 냉기를 흡수하고 열을 배출함으로써 피조 될 때에 주어진 기능, 즉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방해를 받지 않고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자리에 앉아서 지성을 집중하여 호흡을 심장으로 들어가는 기도(氣道)( 속으로 이끌어 가십시오. 지성을 압박하여 들숨과 함께 심장 속으로 내려가게 하십시오. 지성이 심장 속에 들어간 후에는 음울하거나 우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을 멀리 떠나 있던 사람이 돌아와 가족들을 다시 만날 때에 크게 기뻐하듯이, 영혼과 연합된 지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므로 지성이 당신의 심장을 신속하게 떠나지 않도록 훈련하십시오. 지성은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구속을 받고 제한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장에 머무는 데 익숙해진 지성은 심장 밖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하늘나라는 우리 안에 있으며(cf. 눅 17:21), 지성은 마음에 집중하고 순수한 기도를 통해서 그곳에서 하늘나라를 찾을 때에 모든 외적인 것들을 혐오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지성을 통해서 이런 식으로 마음의 거처에 들어간다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항상 꾸준히 이것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지성은 그곳에서 침묵하거나 한가하게 지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항상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꾸준히 되풀이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이 기도는 지성을 분심되지 않도록 보호해주며, 마귀의 공격에 넘어가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망이 증가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말한 식으로 마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이 구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은 사람의 추론적인 능력의 중심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입이 잠잠할 때에 마음속에서 기도와 시편 등을 명확하게 말하고 숙고합니다. 그러므로 이 능력에게서 생각들을 모두 추방하고, 그자리에 "주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나를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두고, 쉬지 않고 그 기도를 되풀이 하게 하십시오. 얼마동안 이것을 계속하면, 위에서 설명한 방식으로 마음에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당신이 원하던 주의 깊음과 함께 덕들의 성가대-사랑, 기쁨, 평화 등(cf. 갈 5:22)-가 당신에게 올 것입니다. 그리고 덕들로 말미암아 당신의 청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응답될 것입니다. 아버지와 성령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권세와 존귀가 이제부터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