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관한 글,


그리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완덕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글


 


 


 


St. Simeon (성 시므온)의 글


St. Nikodimos of the Holy Mountain &


St Makarios of Corinth, The Philokalia.


엄성옥, 필로칼리아 5 (서울: 은성, 2006), pp. 195-218.


 


 


 


성 시므온(St. Simeon)은 파플라고니아(Paphlagonia)에서 태어났고, 콘스탄티노플에서 조신(朝臣)인 삼촌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는 교육과정을 마친 후에도 얼마 동안 왕실 소속으로 남아 있다가, 얼마 후에 그곳을 떠나서 학생 때부터 그들 지도해온 스승인 경건한 시므온(Sjrneon the Devout)과 합류하기 위해서 스투디트(Studit)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의 지나치게 엄격한 생활이 형제들을 불쾌하게 했기 때문에, 그는 스승의 충고를 받아 성 마마스(St. Mamas) 수도원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수도원장이 사망하면서, 그는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총대주교 니콜라스 크리소베르고스(Nicholas Chrysovergos)에 의해서 사제로 임명되었다. 성 시므온은 수도원을 조직한 후에 많은 시련을 겪고 자격이 있는 아르세니우스(Arsenius)에게 수도원장 직을 넘겨주고 침묵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침묵의 평화를 그리 오래 누리지 못했다. 그의 스승인 경건한 시므온이 사망하면서, 그를 기리기 위해서 그의 기념일을 제정하는 일로 인해 그에게 시련이 닥쳤고,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멀리 않은 곳에 방치되어 있는 성 마리나 교회를 선택했다. 그곳의 주인 크리스토퍼 파구라(Christopher Fagura)는 귀족으로서 그를 존경했으며, 그가 그곳에 수도원을 세우는 일을 도와주었다. 새 수도원이 자리를 잡은 후, 시므온은 다시 은퇴하여 30년 동안 침묵 속에 평화로이 살다가 11세기 초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기념일은 그가 임종한 날인 3월 12일이다.


시므온은 많은 글을 남겼다. 그는 수도원들의 수장(首長)으로 있을 때에 자주 교회에서 설교했고, 두 차례 은둔 생활을 하는 동안 모든 기독교인들, 그리고 특별히 영적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신과 교훈을 저술했다. 후자는 주로 짤막한 본문이나 기사의 형태로 기록되었다. 그의 제자로서 그의 전기를 저술한 니케타스 스테타토스(Nicetas Stethatos)는 그의 저술들을 수집했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것들을 사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믿음에 관한 글,


그리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완덕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글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전파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크신 긍휼과 은혜를 형제들에게 드러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금식하지도 않고 철야도 하지 않고 맨땅에서 잠을 자지도 않고 특별히 힘든 일도하지 않지만, 자기의 죄를 기억하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이해하며 스스로를 판단하여 겸손하게 지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 때문에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다윗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시 34:18). 간단히 말해서, 그 사람은 주님의 말을 신뢰했고, 주님은 그의 믿음 때문에 그를 받아주셨습니다. 겸손에 이르는 길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길에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원하는 순간에 곧바로 믿습니다. 믿음은 지극히 자비하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주셔서 본성적으로 소유하게 하시고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그것을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키타이(옛날 흑해와 카스피 해 북방에 있던 나라) 사람들과 야만인들도 선천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의 말을 믿습니다. 그러나 전심으로 믿는 믿음의 예를 들겠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 20세쯤 된 조지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발생하여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는 미남이었고, 그의 걸음걸이와 태도와 행동거지는 어딘가 자기를 과시하는 듯했습니다. 그 때문에, 상대방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알지 못한 채 표면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은 이 청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추측을 했습니다. 그 청년은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수도원에서 거룩하게 살고 있는 수도사와 아는 사이였습니다. 청년은 이 수도사에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을 털어놓았고, 또 자기 영혼을 구하려는 뜨거운 갈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이 선한 수도사는 청년에게 지켜야 할 규칙, 그리고 성 마가(St. Mark the Westler)가 영적인 법에 관해서 저술한 책 한 권을 주었습니다. 청년은 그 책을 마치 하나님이 친히 주신 것인 듯이 공손하고 받았고, 그 책으로부터 커다란 유익과 많은 결실을 거두기를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집중하여 그 책을 통독하면서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특히 세 단락이 그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네가 병 낫기를 구한다면, 네 양심에 주의를 기울이고, 양심이 말하는 대로 행하라. 그것이 너에게 유익할 것이다"였습니다. 둘째는 "계명을 실천하기도 전에 적극적인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 하는 사람은 마치 돈에 팔린 노예가 주인에게 해방문서에 서명할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였습니다. 셋째는 "영적인 이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표면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막 10:48)라고 외친 소명과 같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소경은 눈을 뜨고 주님을 보았을 때에, 그분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배했습니다"(요 9:35,38). 이 세 단락은 청년을 매우 기쁘게 했습니다. 그는 첫째 단락에서 주장하듯이 자신이 양심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영혼의 병이 나을 것이며, 둘째 단락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성령에 의해 활력을 얻을 것이며, 셋째 단락에서 약속하는 것처럼 성령의 은혜에 의해서 내면의 눈을 떠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아름다움을 향한 사랑에 의해 상처를 입었고,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향한 강력한 동경을 품었고, 결국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그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녁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빠짐없이 자기의 스승이 준 규칙을 실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의 양심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이 부복하고 몇 편의 시편을 더 낭송하고, 할 수 있는 한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여라." 그는 기꺼이 양심에 복종했고 양심의 소리가 하나님의 명령인 듯이 아무런 생각 없이 양심이 제안하는 것을 모조리 시행했습니다. 그는 "왜 이것을 하지 않고 저것을 하지 않았느냐?" 라고 말하는 양심의 책망을 받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그의 양심은 일상적인 규칙에 점점 더 많은 것을 추가했고, 며칠 후에 그의 저녁 기도의 분량은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그는 낮에는 파트리키(Patriky)라는 사람의 집에서 지내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조달해 주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는 집에서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땅에 엎드려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는 두발을 붙이고 움직이지 않았고, 마음으로 슬퍼하고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했습니다. 또 우리 주 예수님께 기도할 때에는 마치 그분이 육신으로 그곳에 계시는 것처럼 그분의 깨끗한 발 앞에 엎드려 옛날 소경에게 하셨던 것처럼 자신을 불쌍히 여겨 영혼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나날이 길어져서 한밤중이 되어서야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할 때에 태만하거나 편한 자세를 취하지 않았고,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 마치 하나의 기둥처럼, 또는 몸이 없는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그가 이렇게 서서 입술보다는 정신으로 "하나님,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때에, 위로부터 밝고 거룩한 광채가 그에게 내려와서 온 방에 가득했습니다. 그 때 사방에 빛 외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청년은 자신이 방 안에 있다는 것을 망각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땅에 서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염려는 그에게서 떠났고, 그의 정신에는 육신을 입은 사람들이 갖는 생각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완전히 초 본질적인 빛 안에 용해되어 그 자신이 빛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망각했고, 눈물과 말할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그의 정신은 하늘로 올라가서 또 다른 빛, 그를 둘러쌌던 것보다 더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이 빛의 가장자리에는 그에게 기도에 관한 가르침과 성 마가의 책을 주신 거룩한 수도사가 서 있었습니다.


나는 청년에게서 이 말을 들으면서, 그가 자기의 스승의 기도에 의해 크게 도움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 스승이 이룬 높은 덕을 보여 주시려고 그에게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청년은 계속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환상이 사라지고 정신이 들었을 때, 청년은 기쁨과 놀라움이 가득하여 눈물을 흘렸고, 그의 마음은 무척 상쾌했습니다. 그는 자정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시 후에 새벽기도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청년은 항상 하던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침 전례를 행했습니다. 결국 그날 밤에 그는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이 일이 어찌해서 일어났는지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그것은 주님의 불가사의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항상 스승이 주신 규칙을 굳게 지키며 확실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서 그 작은 책에 기록된 가르침을 따른 것 외에 특별한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 모든 일을 시험 삼아 행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그러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시험하는 사람은 확고한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모든 음란하거나 방종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양심이 제안하는 것을 정확하게 수행하려 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속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도 갖지 못했고, 심지어 배부르게 먹고 마시는 데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형제들이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올바른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만일 어떤 사람에게 이성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하다면, 젊음도 방해하지 못하고 늙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정신을 집중하여 열심히 하나님의 행할 때에는 세상과 세상적인 염려가 하나님의 계명 성취를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만일 게으르고 나태하게 행한다면, 침묵과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는 다윗의 말을 들으면서 "다윗은 과거의 인물이다. 지금은 그와 같은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서 다윗보다 더 위대한 일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증거를 받았고, 왕과 선지자로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의 보증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죄하여 성령의 은혜와 예언적 은사를 상실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단절되었을 때,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버렸던 은혜를 기억하고 자신이 잃었던 축복을 되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러한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일에 얽매어 있었고, 현세의 일만 보살폈고, 세상보다 더 고귀한 것을 생각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스승으로부터 몇 마디 말을 듣고 성 마가의 책을 읽고서 그는 자신이 듣고 읽은 것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그가 행한 것은 적지만, 성모 마리아의 중보에 의해서 그는 정신은 하늘로 들려 올라갈 자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모 마리아의 기도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자비와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강력하게 세력을 미쳤기 때문에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지만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오래 금식하지도 않고 맨땅에서 잠을 자지도 않고 고행복을 입지도 않고, 영적으로는 이 세상을 버렸지만 육신으로는 이 세상을 버리지도 않았고, 철야기도도 오래하지 않았지만, 소돔의 롯보다 더 고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인간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천사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적인 진리의 태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은 그가 다음 세상의 빛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또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의 사랑과 매달림이 그의 영을 이 세상에서 분리해 내어 엑스타시의 상태로 들어가게 했고, 그를 완전히 성령의 빛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의 도시에 살면서 큰집의 청지기로 일하면서 자유인들과 노예들에게 필요한 것을 조달하면서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행했습니다.


당신을 자극하여 그 청년과 같은 사랑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보다 더 위대한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십니까?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 더 크고 완전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그런 것은 없습니다. 신학자 그레고리(St, Gregory the Theologian)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의 시작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계명을 지킵니다. 계명을 지키면 육이 깨끗해집니다. 육이 정화되면, 영혼을 덮어서 신의 빛을 분명히 보지 못하게 하는 구름 속에서 빛이 솟아나며, 빛은 모든 갈망들을 초월하는 갈망을 충족시켜 줍니다." 여기에서 그레고리는 성령의 조명은 모든 덕의 무한한 목적이라는 것, 그리고 성령의 조명을 획득하는 사람은 모든 감각적인 것과의 관계를 끊고 오직 영적인 것들과 더불어 살기 시작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이적들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은밀한 종들을 야외로 이끌어내셔서, 선과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본받게 하시며, 악한생각을 가진 사람이 핑계할 수 없게 만드십니다. 무상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마땅한 삶을 산다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들이 나타내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축복들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게으르고 태만하여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심판 날에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구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참됩니다. 사랑하는 형재들이여, 여러분 자신과 나에게 관심을 가지십시오.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며, 여러분을 위해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자비하시고 긍휼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자비하고 긍휼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 염려하듯이 서로를 위해 염려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믿고, 이 세상을 미워하며, 무상하고 안전하지 못한 축복에 대해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노력하고,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잠시 후면 이 세상이 끝나고 다음 세상이 올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우리에게는 성실하게 믿기만 하면 상상할 수도 없고 듣거니 기대하지도 못했던 크고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 주님이 계시지만, 우리는 벙어리 짐승처럼 생각이 없고,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이 정화되고 중생한 분량에 따라서 성령의 은혜로부터 방사되는 정신적인 음식을 먹고서 근원을 향해 방해를 받지 않고 올라가기 위해서 우리의 몸은 그것들을 적절히 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세에 필요한 것을 위해서 주신 적은 축복들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사랑하여 내세에서 크고 영원한 축복들을 받을 자격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지적인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장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조차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아서 귀신들보다 못한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많은 영적 은사들을 소유하고 있으며, 우리를 위해서 인간이 되시고, 우리를 죄와 방심과 기만에서 자유하게 하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을 저버립니다. 사방에서, 도시와 마을에서, 수도원에서나 산 위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릅니다. 사방에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명령들을 이행하는지 살펴보십시오. 무수히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말과 행위에 있어서 기독교인인 사람 하나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라고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요 14:12)? 그러나 우리 중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일을 행하며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므로 심판 날에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다는 판결을 받고 불신자들, 즉 그리스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두 가지 중에 하나는 확실합니다. 즉 우리가 불신자들보다 더 심한 벌을 받아야 하거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말에 충실하시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말에 충실하시지 못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사람이 세상을 부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요 또 침묵보다 세상에서의 생활을 더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라, 바르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있든지 침묵 속에 은거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행동할 능력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반대로, 위에서 말한 이야기는 세상을 버리는 것에 대한 한층 더 큰 갈망을 고취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살면서 세상이나 재산을 버리는 일이나 순종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단지 믿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받았다면, 온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포기하는 사람들 앞에는 어떤 축복들이 예비 되어 있겠습니까? 또 만일 어떤 사람이 확고한 믿음과 큰 열심을 가지고 바르게 행동하기 시작하여 거기에서 오는 유익을 경험하기 시작한다면, 그는 세상의 염려와 세상에서 살고 움직이는 것들이 하나님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청년에게는 우리가 들어본 적이 없는 특별하고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발생했거나 발생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세상을 버리지 않으면 곧 이미 받을 것을 상실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청년이 수도서원을 하고 수도사가 된 지 3-4년이 지난 후에 나는 그를 만났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였습니다. 나는 그를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친구였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 놀라운 환상을 보고 내 안에 변화가 생기고 나서 며칠 후에, 나는 많은 세상적인 유혹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은밀하게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에 그것들로 인해서 이 축복은 조금씩 상실해가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버리고 홀로 고독하게 살면서 나에게 나타나셨던 그리스도를 찾으려는 강한 갈망을 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자격이 없지만 나를 세상으로부터 떼어내어 그리스도께로 데려가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번에 이 일을 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말했던 모든 것을 조금씩 망각하고 완전한 어두움과 무감각 속에 빠졌고 당신에게 말했던 것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지극히 작은 생각이나 감정의 움직임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전보다 큰 악에 빠졌고, 그리스도의 말을 전혀 들어보거나 이해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나에게 작은 규칙과 마가의 책을 주셨던 성인조차도 우연히 만났던 사람들 중의 하나처럼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분과 관련하여 보았던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경건하지 못한 나는 태만으로 인해 깊은 지옥에 빠졌고, 후에 하나님이 내게 말할 수 없이 크신 자비를 보여 주셨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알지 못했지만 나의 가련한 마음속에는 그 거룩한 스승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사랑과 믿음 때문에, 인자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분을 통해서 나를 방심과 기만에서 끌어내시고 깊은 악에서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비록 나는 무가치하지만 스승과 완전히 결별하지 않았고, 또 그의 가르침을 전혀 따르지 않으면서도 도시에 살 때에는 자주 그의 수실을 방문하여 나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비하신 하나님은 무수히 많은 나의 죄를 간과하셨고, 또 이 스승을 통해서 내가 수도사가 되도록 준비해두셨으며 부족한 내가 항상 그분과 함께 지내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을 완전히 버림, 나의 의지를 버리고 완전히 순종함, 그 밖에 여러 가지 엄격한 고행, 선한 것을 향한 저항할 수 없는 갈망 등을 가지고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많은 눈물을 흘린 후에, 비록 희미하게나마 이 거룩한 빛에서 나오는 작은 광선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전에 보았던 환상을 다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 이야기와 그밖에 다른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그가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하며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실천과 경험을 통해서 영적인 것들에 대한 가장 해박한 지혜를 획득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에게 어떤 믿음이 그와 같이 놀라운 현상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말해주고, 그것을 글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즉시 이것에 대해서 말해주기 시작했고, 자기가 말한 것을 기꺼이 기록해주었습니다. 그가 말해준 것은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그리스도의 계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하며 우리가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약속대로 주님 나라의 문을 열어주실 때까지 인내하면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 성령을 구하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온 영혼으로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분을 발견하며 그분의 은사들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된 거룩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분적으로 받고, 다음 세상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세대의 성도들과 함께 완전히 받을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히 있을지어다. 아멘.


 


 


세 가지 정신집중과 기도 방법


 


1


정신 집중과 기도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들에 의해서 영혼이 들려 올려지고 앞으로 움직이거나, 버림을 받고 죽습니다. 이 세가지 방법을 제 때에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옳지 못한 때에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몸이 영혼에 연결되듯이, 정신집중도 기도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정신집중이 마치 정탐꾼처럼 앞에서 나아가면서 원수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영혼 안에 들어오는 악한 생각들을 대적하는 데 우선적으로 채택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는 기도로서, 전부터 정신집중이 대적해온 악한 생각들을 근절하고 죽입니다. 정신집중만으로는 그것들을 죽일 수 없습니다. 정신집중과 기도에 의해서 생각들을 대적하는 이 싸움에 영혼의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집중에 의해서 기도를 순수하게 보존하면 우리는 진보할 것이며, 기도를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는 상태로 버려둔다면 기도는 악한 생각으로 더럽혀지고 우리는 실패한 상태에 머물 것입니다. 기도와 정신집중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으므로, 구원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각 방법의 특징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2. 첫째 방법


 


첫째 방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서서 기도하면서, 두 손과 눈과 정신을 하늘로 들어올리고, 거룩한 것들을 생각하며, 하늘의 축복과 천사들의 계급들과 성도들의 거처를 상상하며, 성경에서 배운 모든 것을 정신 안에 모아들이며, 기도하는 동안에 이 모든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경하게 만들며, 이따금 눈물을 흘리며 운다면, 이것이 정신집중과 기도의 첫째 방법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방법만 선택한다면, 그는 점차 무의식중에 마음속으로 자신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에게 주는 위로로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듯합니다. 그는 자신이 항상 이러한 행동 안에 머물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즉, 이러한 기도 방법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방심과 기만의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선한 것이라도 바르게 행해지지 않으면 더 이상 선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완전한 침묵에 자신을 바친다면(즉, 헤시카스트가 된다면), 미치는 것을 간신히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정신이 나간다면, 그는 덕이나 무정념을 획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방법에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또 다른 위험이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눈으로 빛을 보거나 달콤한 냄새를 맡거나 어떤 소리를 듣거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현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그것에 도취되어서 미친 상태에서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게 가장하고서 나타난 마귀를 빛의 사자로 알고서 길을 벗어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끝까지 그런 상태에 머뭅니다. 그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마귀의 부추김을 받아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목을 매 자살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심과 기만의 형태는 다양하고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집중과 기도의 첫 번째 방법으로부터 어떤 해로움이 오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살기 때문에 첫째 방법을 실천하는 동안에 이러한 악을 유발하는 일을 피한다 해도, 그는 영성생활에 있어서 평생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3. 두 번째 방법


 


두 번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모든 지각된 대상들로부터 정신을 떼어 내어 자신의 내면으로 인도하며, 자신의 감각을 지키고 생각을 집중시켜 이 세상의 헛된 것들 사이를 배회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생각들을 성찰하고, 자신이 입으로 하는 기도의 표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마귀에게 강탈되어 악하고 헛된 것을 향해 날아가는 생각들을 거두어들이며, 어떤 정념에게 사로잡히고 정복된 후에 크게 수고하고 노력하여 정신을 차립니다. 이 방법의 특징은 머리속에서 발생하며, 생각이 생각을 대적하여 싸운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대적하여 싸우는 사람은 자기 안에서 평화를 발견하지 못하며, 진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덕을 실천할 시간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두움 밤에 원수들과 싸우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원수들의 음성을 듣고 그들의 공격을 받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오는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공격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악한 생각들은 마음에서 발생하는데, 그는 머리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보지도 못합니다. 그 원인은 그의 정신을 덮고 있는 어두움과 그의 생각에서 사납게 날뛰는 폭풍우입니다(그것들은 그가 이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자기의 원수인 귀신들에게서 빠져 나오거나 그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설상가상으로 이 사람이 허영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자신이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불쌍한 사람은 헛수고를 하는 것이며, 영원히 상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교만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 비판하며, 자신이 사람들을 먹이고 인도하는 목자의 자격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그는 소경들을 인도하는 일을 맡은 소경과 같습니다. 이것이 정신집중과 기도의 두 번째 방법입니다.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은 이것이 영혼에게 주는 해로움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달이 없는 어두운 밤보다는 달빛이 비추는 밤이 낫듯이, 이 방법은 첫째 방법보다 좋은 방법입니다.


 


 


4. 셋째 방법


 


세 번째 방법은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방법입니다.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천해보지 않은 사람은 믿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실제로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으려합니다. 실제로 우리 시대에는 이 방법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 축복은 순종과 함께 우리를 버리고 떠난 것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영적 아버지에게 완전히 순종한다면, 그는 그분의 어깨에 자신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모든 염려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심과 기만에 예속되지 않은 참된 영적아버지를 발견한 사람은 세상적인 애착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세 번째 방법을 실천하려 할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복종하여 모든 염려를 하나님과 영적 아버지에게 맡긴 사람,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거나 자기의 의지를 따르지 않으며 세상적인 애착과 자기의 몸에 대해서 죽은 사람을 이 세상의 비본질적인 것이 정복하여 노예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에게 무슨 걱정이나 염려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을 유혹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귀신들이 사용하는 궤계와 전력들은 이 세 번째 방법에 의해서 파괴되고 와해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의 정신은 방해를 받지 않고서 귀신들이 도입한 생각들을 조사할 시간이 있으며, 그것들을 쉽게 배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참된 영성생활의 시작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방법의 출발점은 두 손을 들거나 정신을 하늘의 것들에게 집중하고서 하늘을 응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첫째 방법의 속성들이며, 방심이나 기만과 상관이 없지 않습니다. 또 그것은 정신으로 감각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여 내면에서 영혼을 공격하는 귀신들의 공격을 지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그런 사람들은 머릿속에서만 노력하기 때문에 방심하게 됩니다). 이것은 둘째 방법의 속성이며, 그것들 실천하는 사람들은 귀신들의 노예가 되며, 복수를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원수들이 공개적으로든 비밀리에든 항상 그들을 공격하여 교만하고 허영심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을 시작하십시오: 마음으로 영적 아버지에게 완전히 순종하고,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처럼 깨끗한 양심으로 행동하십시오. 순종하지 않고서는 깨끗한 양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물론이요, 하나님과의 관계, 영적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이웃에 대한 관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양심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양심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영적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그분이 말하는 것만 행하며, 그보다 더 많이 하거나 덜 하지도 않고, 오직 그분의 뜻과 의도에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당신이 싫은 것을 그들에게 행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양심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물들과의 관계에서는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바르게 사용함으로써 양심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하며, 당신이 제대로 행하지 못하여 양심이 상처를 입거나 당신을 비난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 당신 스스로 세 번째 방법으로 가는 참된 지름길을 평탄하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방법의 특징은 정신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에 정신은 마음을 지켜야 하며, 항상 내면에 머물면서 마음속을 맴돌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 보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이 안에 있습니다: 주님을 맛보는 것이 허락될 때까지 이런 식으로 일하십시오.) 정신이 마음 안에서 마침내 주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보고 기뻐할 때(수고는 우리가 하지만, 이것을 맛보는 것은 겸손한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의 작용입니다), 정신은 마음 안에 있는 이 장소를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며(정신은 베드로처럼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마 17:4)라고 말할 것입니다), 항상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머물면서 마귀가 심어놓은 로든 악한 생각을 쫓아낼 것입니다(이것이 세 번째 방법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볼 때에, 이것은 어렵고 답답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의 사랑스러움을 맛본 사람은 바울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라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거룩한 교부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 15: 19,20)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또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6)는 가르침을 들으면서 모든 다른 영적인 일들을 포기하고 온전히 마음을 지키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모든 덕을 쉽게 획득할 수 있지만 이것이 없으면 단 한가지의 덕도 굳게 세우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것을 마음의 침묵이라고 부른 교부도 있고, 정신집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또 냉정과 생각들을 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생각을 살피고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들은 모두 그것을 탁월하게 실천했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전도자는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깨끗한) 마음에 원하는 길로 좇아 행하며"(전 11:9), 모든 악한 생각을 마음에서 몰아내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전 10:4). 여기에서 자리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도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눅 12:29)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당신의 정신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 5:3)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세상에 애착하지 않고 세상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복되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교부들은 이것에 대해서 많은 글을 썼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그들의 글을 읽고 성 마가(St. Markthe Wrestler)나 사다리의 요한, 예루살렘의 헤시키우스(Hesychius), 시나이의 필로테우스(Philotheus of Sinai), 사부 이사야(Abba Isaiah), 대 바르사누피우스(Barsanuphius the Great) 등의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해 말해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지 않고 마음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의 내면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할 수 없으며, 눈물을 흘리고 통회할 수 없고, 온유하고 관대할 수 없고, 의에 주리고 목마를 수 없고, 긍휼할 수 없고, 화평하게 할 수도 없고,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런 종류의 집중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덕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을 경험하여 알려면, 무엇보다도 이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을 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앞으로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 가지를 준수해야 합니다:


첫째, 좋지 않고 헛된 것에 대한 염려뿐만 아니라 선한 것에 대한 염려 등 모든 염려로부터의 자유, 다시 말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둘째, 모든 일에 있어서 양심이 깨끗하여 어떤 일에 있어서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정욕적인 애착이 전혀 없어야 하며, 그리하여 생각이 세상적인 것으로 기울이 않아야 합니다. 내면에 정신을 집중하십시오(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집중하십시오). 정신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정신이 항상 마음에 거하기 위해서 마음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노력하십시오. 이렇게 씨름하는 동안, 정신은 마음이 있는 장소를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 안에서 은혜가 사랑스러움과 따뜻함을 만들어낼 때에 발생합니다. 그 순간부터는 어떤 측면에서 생각이 등장하든지 간에, 정신은 그것이 들어와서 하나의 생각이나 영상이 되기 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여 몰아냅니다. 또 그 순간부터 귀신들을 미워하고 항상 그것들과 싸워 이깁니다. 이 활동에서 비롯되는 다른 결과들에 대해서는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당신이 직접 경험하여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느 거룩한 교부는 "당신의 수실에 앉아 있으면 이 기도가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질문: 기도와 정신 집중의 첫째 방법과 둘째 방법이 이러한 결과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우리가 그 두 가지 방법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다리의 요한은 이 방법들은 네 개의 가로장을 가진 사다리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념들을 억눌러 겸손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입술로 기도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인 기도를 실천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관상기도를 행합니다. 이 가로장들에 의해서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서는 안됩니다. 첫째 가로장에 첫 걸음을 딛고, 다음에 둘째 가로장, 그 다음에 세 번째 가로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가로장을 딛어야 합니다. 사다리에 의해서 세상에서부터 천국으로 올라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신의 정신과 씨름하고 정념들을 정복해야 합니다. 둘째, 시편 기도를 실천해야합니다. 즉 입으로 소리를 내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념들이 정복되면, 자연히 기도는 혀에까지도 달콤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며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기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정신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관상기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첫 단계는 초심자들에게 적절하며, 둘째 단계는 어느 정도 기도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적절하고, 셋째 단계는 마지막 가로장에 가까이 간 사람들에게 적절하고, 넷째 단계는 완전한 사람들에게 적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은 정념들을 줄이고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지키고 정신을 집중함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더럽히는 악한 생각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지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정념들을 대적하여 완전히 정복하면, 정신은 하나님을 갈망하기 시작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하는데 보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동경하고 기도함으로써, 정신은 힘을 얻어 마음의 주위를 돌면서 들어오려고 하는 모든 생각들을 몰아내며, 기도로 그것들을 공격합니다. 그리하여 전쟁이 시작됩니다. 악한 귀신들은 사납게 소리치며 일어나고, 정념들을 통해서 마음에 폭풍과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해서 마치 불길 속의 밀납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추방되어 쫓겨난 귀신들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감각을 통해서 외부에서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정신은 곧 회복되며, 원래의 고요함을 다시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것들은 정신의 깊은 곳을 어지럽게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에 표면만 뒤흔듭니다. 그러나 정신은 자신을 전쟁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하거나 악한 귀신들의 공격에 의해 동요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사람들, 모든 것을 완전히 부인하고 마음에서 쉬지 않고 집중하는 사람들만의 특성 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각기 정해진 시기에 순서대로 실천하여 마음이 정념들로부터 정화된다면, 그는 완전히 시편 찬송에 전념하고 생각들과 싸우고 육신의 눈으로 천국을 올려다보거나 영혼의 눈으로 천국을 보고 순수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중에서 발견되는 악한 마귀들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천국을 응시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다양한 형태의 방심과 기만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공중의 영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오직 한 가지, 즉 정신집중에 의해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만 요구하십니다.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롬 11:16). 그러나 눈과 정신을 들어올려 천국을 응시하며 위에서 말한 순서대로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사람의 마음은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참된 것이 아니라 거짓된 것을 볼 것입니다. 정신집중과 기도의 첫째 방법과 둘째 방법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집을 지을 때에는 먼저 기초를 쌓고 나서 지붕을 덮어야 합니다. 먼저 기초를 쌓고 건물을 지은 후에 지붕을 덮습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행해야 합니다. 먼저 기초를 쌓아야 합니다. 즉 마음을 지키고 모든 정념들을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영적 인집을 짓습니다. 다시 말해서 악한 영들이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일으키는 반란을 진압하며,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러한 공격을 근절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후에 지붕을 덮어야 합니다. 즉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집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