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필로칼리아 5권에서 믿음에 관한 글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동방교회에서 예수기도를 위한 그들을 위한 글이지만, 그 이전의 교부들에 의해서 그리고 성인들에 의해서 경험되고 논증된 글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너무 소중한 글입니다. 예수기도 만이 아니라 관상기도를 하려는 모두에게 나아가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유익한 기도방법이라 생각되어 이 부분을 따로 발췌하여 올립니다.
이제 아래의 방법을 참고하여 관상기도에 그리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고려 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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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집중과 기도 방법
                                                                                    필로칼리아 5권, pp. 206-218. 


정신 집중과 기도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들에 의해서 영혼이 들려 올려지고 앞으로 움직이거나, 버림을 받고 죽습니다. 이 세가지 방법을 제 때에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옳지 못한 때에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버림을 받습니다. 몸이 영혼에 연결되듯이, 정신집중도 기도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정신집중이 마치 정탐꾼처럼 앞에서 나아가면서 원수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영혼 안에 들어오는 악한 생각들을 대적하는 데 우선적으로 채택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는 기도로서, 전부터 정신집중이 대적해온 악한 생각들을 근절하고 죽입니다. 정신집중만으로는 그것들을 죽일 수 없습니다. 정신집중과 기도에 의해서 생각들을 대적하는 이 싸움에 영혼의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집중에 의해서 기도를 순수하게 보존하면 우리는 진보할 것이며, 기도를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는 상태로 버려둔다면 기도는 악한 생각으로 더럽혀지고 우리는 실패한 상태에 머물 것입니다. 기도와 정신집중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으므로, 구원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각 방법의 특징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1. 첫째 방법
첫째 방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서서 기도하면서, 두 손과 눈과 정신을 하늘로 들어올리고, 거룩한 것들을 생각하며, 하늘의 축복과 천사들의 계급들과 성도들의 거처를 상상하며, 성경에서 배운 모든 것을 정신 안에 모아들이며, 기도하는 동안에 이 모든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경하게 만들며, 이따금 눈물을 흘리며 운다면, 이것이 정신집중과 기도의 첫째 방법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방법만 선택한다면, 그는 점차 무의식중에 마음속으로 자신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에게 주는 위로로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듯합니다. 그는 자신이 항상 이러한 행동 안에 머물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것(즉, 이러한 기도 방법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방심과 기만의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선한 것이라도 바르게 행해지지 않으면 더 이상 선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완전한 침묵에 자신을 바친다면(즉, 헤시카스트가 된다면), 미치는 것을 간신히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정신이 나간다면, 그는 덕이나 무정념을 획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방법에는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또 다른 위험이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눈으로 빛을 보거나 달콤한 냄새를 맡거나 어떤 소리를 듣거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현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그것에 도취되어서 미친 상태에서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게 가장하고서 나타난 마귀를 빛의 사자로 알고서 길을 벗어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끝까지 그런 상태에 머뭅니다. 그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마귀의 부추김을 받아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목을 매 자살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심과 기만의 형태는 다양하고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집중과 기도의 첫 번째 방법으로부터 어떤 해로움이 오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살기 때문에 첫째 방법을 실천하는 동안에 이러한 악을 유발하는 일을 피한다 해도, 그는 영성생활에 있어서 평생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2. 두 번째 방법
두 번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모든 지각된 대상들로부터 정신을 떼어 내어 자신의 내면으로 인도하며, 자신의 감각을 지키고 생각을 집중시켜 이 세상의 헛된 것들 사이를 배회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생각들을 성찰하고, 자신이 입으로 하는 기도의 표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마귀에게 강탈되어 악하고 헛된 것을 향해 날아가는 생각들을 거두어들이며, 어떤 정념에게 사로잡히고 정복된 후에 크게 수고하고 노력하여 정신을 차립니다. 이 방법의 특징은 머리속에서 발생하며, 생각이 생각을 대적하여 싸운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대적하여 싸우는 사람은 자기 안에서 평화를 발견하지 못하며, 진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덕을 실천할 시간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두움 밤에 원수들과 싸우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원수들의 음성을 듣고 그들의 공격을 받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오는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공격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악한 생각들은 마음에서 발생하는데, 그는 머리 속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보지도 못합니다. 그 원인은 그의 정신을 덮고 있는 어두움과 그의 생각에서 사납게 날뛰는 폭풍우입니다(그것들은 그가 이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자기의 원수인 귀신들에게서 빠져 나오거나 그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설상가상으로 이 사람이 허영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자신이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불쌍한 사람은 헛수고를 하는 것이며, 영원히 상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교만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 비판하며, 자신이 사람들을 먹이고 인도하는 목자의 자격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그는 소경들을 인도하는 일을 맡은 소경과 같습니다. 이것이 정신집중과 기도의 두 번째 방법입니다. 구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은 이것이 영혼에게 주는 해로움을 알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달이 없는 어두운 밤보다는 달빛이 비추는 밤이 낫듯이, 이 방법은 첫째 방법보다 좋은 방법입니다.

3. 셋째 방법
세 번째 방법은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방법입니다.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천해보지 않은 사람은 믿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실제로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으려합니다. 실제로 우리 시대에는 이 방법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 축복은 순종과 함께 우리를 버리고 떠난 것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영적 아버지에게 완전히 순종한다면, 그는 그분의 어깨에 자신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았기 때문에 모든 염려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심과 기만에 예속되지 않은 참된 영적아버지를 발견한 사람은 세상적인 애착을 멀리하고, 부지런히 세 번째 방법을 실천하려 할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복종하여 모든 염려를 하나님과 영적 아버지에게 맡긴 사람,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거나 자기의 의지를 따르지 않으며 세상적인 애착과 자기의 몸에 대해서 죽은 사람을 이 세상의 비본질적인 것이 정복하여 노예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또 그런 사람에게 무슨 걱정이나 염려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을 유혹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귀신들이 사용하는 궤계와 전력들은 이 세 번째 방법에 의해서 파괴되고 와해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의 정신은 방해를 받지 않고서 귀신들이 도입한 생각들을 조사할 시간이 있으며, 그것들을 쉽게 배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참된 영성생활의 시작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헛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방법의 출발점은 두 손을 들거나 정신을 하늘의 것들에게 집중하고서 하늘을 응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첫째 방법의 속성들이며, 방심이나 기만과 상관이 없지 않습니다. 또 그것은 정신으로 감각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여 내면에서 영혼을 공격하는 귀신들의 공격을 지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그런 사람들은 머릿속에서만 노력하기 때문에 방심하게 됩니다). 이것은 둘째 방법의 속성이며, 그것들 실천하는 사람들은 귀신들의 노예가 되며, 복수를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원수들이 공개적으로든 비밀리에든 항상 그들을 공격하여 교만하고 허영심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을 시작하십시오: 마음으로 영적 아버지에게 완전히 순종하고,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처럼 깨끗한 양심으로 행동하십시오. 순종하지 않고서는 깨끗한 양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물론이요, 하나님과의 관계, 영적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이웃에 대한 관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양심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양심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영적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는 그분이 말하는 것만 행하며, 그보다 더 많이 하거나 덜 하지도 않고, 오직 그분의 뜻과 의도에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당신이 싫은 것을 그들에게 행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양심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물들과의 관계에서는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바르게 사용함으로써 양심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하며, 당신이 제대로 행하지 못하여 양심이 상처를 입거나 당신을 비난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 당신 스스로 세 번째 방법으로 가는 참된 지름길을 평탄하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방법의 특징은 정신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동안에 정신은 마음을 지켜야 하며, 항상 내면에 머물면서 마음속을 맴돌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 보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이 안에 있습니다: 주님을 맛보는 것이 허락될 때까지 이런 식으로 일하십시오.) 정신이 마음 안에서 마침내 주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보고 기뻐할 때(수고는 우리가 하지만, 이것을 맛보는 것은 겸손한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의 작용입니다), 정신은 마음 안에 있는 이 장소를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며(정신은 베드로처럼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마 17:4)라고 말할 것입니다), 항상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 머물면서 마귀가 심어놓은 로든 악한 생각을 쫓아낼 것입니다(이것이 세 번째 방법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볼 때에, 이것은 어렵고 답답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의 사랑스러움을 맛본 사람은 바울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라고 외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거룩한 교부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 15: 19,20)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또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6)는 가르침을 들으면서 모든 다른 영적인 일들을 포기하고 온전히 마음을 지키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모든 덕을 쉽게 획득할 수 있지만 이것이 없으면 단 한가지의 덕도 굳게 세우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것을 마음의 침묵이라고 부른 교부도 있고, 정신집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또 냉정과 생각들을 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생각을 살피고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들은 모두 그것을 탁월하게 실천했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전도자는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깨끗한) 마음에 원하는 길로 좇아 행하며"(전 11:9), 모든 악한 생각을 마음에서 몰아내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전 10:4). 여기에서 자리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도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눅 12:29)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당신의 정신을 가지고 이리저리 돌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 5:3)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세상에 애착하지 않고 세상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복되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교부들은 이것에 대해서 많은 글을 썼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그들의 글을 읽고 성 마가(St. Markthe Wrestler)나 사다리의 요한, 예루살렘의 헤시키우스(Hesychius), 시나이의 필로테우스(Philotheus of Sinai), 사부 이사야(Abba Isaiah), 대 바르사누피우스(Barsanuphius the Great) 등의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해 말해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지 않고 마음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의 내면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할 수 없으며, 눈물을 흘리고 통회할 수 없고, 온유하고 관대할 수 없고, 의에 주리고 목마를 수 없고, 긍휼할 수 없고, 화평하게 할 수도 없고,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런 종류의 집중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덕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것을 경험하여 알려면, 무엇보다도 이것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을 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앞으로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세 가지를 준수해야 합니다:

첫째, 좋지 않고 헛된 것에 대한 염려뿐만 아니라 선한 것에 대한 염려 등 모든 염려로부터의 자유, 다시 말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둘째, 모든 일에 있어서 양심이 깨끗하여 어떤 일에 있어서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정욕적인 애착이 전혀 없어야 하며, 그리하여 생각이 세상적인 것으로 기울이 않아야 합니다. 내면에 정신을 집중하십시오(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집중하십시오). 정신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정신이 항상 마음에 거하기 위해서 마음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노력하십시오. 이렇게 씨름하는 동안, 정신은 마음이 있는 장소를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 안에서 은혜가 사랑스러움과 따뜻함을 만들어낼 때에 발생합니다. 그 순간부터는 어떤 측면에서 생각이 등장하든지 간에, 정신은 그것이 들어와서 하나의 생각이나 영상이 되기 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여 몰아냅니다. 또 그 순간부터 귀신들을 미워하고 항상 그것들과 싸워 이깁니다. 이 활동에서 비롯되는 다른 결과들에 대해서는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당신이 직접 경험하여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어느 거룩한 교부는 "당신의 수실에 앉아 있으면 이 기도가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질문
: 기도와 정신 집중의 첫째 방법과 둘째 방법이 이러한 결과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 우리가 그 두 가지 방법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다리의 요한은 이 방법들은 네 개의 가로장을 가진 사다리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념들을 억눌러 겸손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입술로 기도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신적인 기도를 실천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관상기도를 행합니다. 이 가로장들에 의해서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서는 안됩니다. 첫째 가로장에 첫 걸음을 딛고, 다음에 둘째 가로장, 그 다음에 세 번째 가로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가로장을 딛어야 합니다. 사다리에 의해서 세상에서부터 천국으로 올라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신의 정신과 씨름하고 정념들을 정복해야 합니다. 둘째, 시편 기도를 실천해야합니다. 즉 입으로 소리를 내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념들이 정복되면, 자연히 기도는 혀에까지도 달콤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며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기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정신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관상기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첫 단계는 초심자들에게 적절하며, 둘째 단계는 어느 정도 기도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적절하고, 셋째 단계는 마지막 가로장에 가까이 간 사람들에게 적절하고, 넷째 단계는 완전한 사람들에게 적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은 정념들을 줄이고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지키고 정신을 집중함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더럽히는 악한 생각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지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정념들을 대적하여 완전히 정복하면, 정신은 하나님을 갈망하기 시작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하는데 보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동경하고 기도함으로써, 정신은 힘을 얻어 마음의 주위를 돌면서 들어오려고 하는 모든 생각들을 몰아내며, 기도로 그것들을 공격합니다. 그리하여 전쟁이 시작됩니다. 악한 귀신들은 사납게 소리치며 일어나고, 정념들을 통해서 마음에 폭풍과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해서 마치 불길 속의 밀납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추방되어 쫓겨난 귀신들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감각을 통해서 외부에서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려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정신은 곧 회복되며, 원래의 고요함을 다시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것들은 정신의 깊은 곳을 어지럽게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에 표면만 뒤흔듭니다. 그러나 정신은 자신을 전쟁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하거나 악한 귀신들의 공격에 의해 동요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사람들, 모든 것을 완전히 부인하고 마음에서 쉬지 않고 집중하는 사람들만의 특성 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각기 정해진 시기에 순서대로 실천하여 마음이 정념들로부터 정화된다면, 그는 완전히 시편 찬송에 전념하고 생각들과 싸우고 육신의 눈으로 천국을 올려다보거나 영혼의 눈으로 천국을 보고 순수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중에서 발견되는 악한 마귀들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천국을 응시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다양한 형태의 방심과 기만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공중의 영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오직 한 가지, 즉 정신집중에 의해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만 요구하십니다.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롬 11:16). 그러나 눈과 정신을 들어올려 천국을 응시하며 위에서 말한 순서대로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상상하는 사람의 마음은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참된 것이 아니라 거짓된 것을 볼 것입니다. 정신집중과 기도의 첫째 방법과 둘째 방법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집을 지을 때에는 먼저 기초를 쌓고 나서 지붕을 덮어야 합니다. 먼저 기초를 쌓고 건물을 지은 후에 지붕을 덮습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행해야 합니다. 먼저 기초를 쌓아야 합니다. 즉 마음을 지키고 모든 정념들을 깨끗이 제거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영적 인집을 짓습니다. 다시 말해서 악한 영들이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일으키는 반란을 진압하며, 가능한 한 신속하게 그러한 공격을 근절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후에 지붕을 덮어야 합니다. 즉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집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원히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