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감미로운 고요의 기도


    감미로운 고요의 기도는 영혼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영적 맛을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고요의 기도를 말하는 ‘영혼의 성’, 제4궁방에서, 신적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천주 자비의 글’ 제14장에서, 성녀는 이 고요의 기도 둘째 단계를 설명하면서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영혼의 밭에 물을 주는 방법으로 관상기도를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영성가들은 이것을 침묵의 관상기도라 하는데, 그 이유는 사실 영혼이 수다스럽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관상기도의 단계를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한다.

 

(1) 수동적 거둠의  기도,

(2) 엄밀한 의미에서 고요의 기도,

(3) 고요의 기도 능력.

 

 

 

(1) 수동적 거둠의 기도


(가) 거둠의 기도 본질


    성녀 예수의 데레사는 자신이 체험한 조차연적인 첫 묵상기도를 이같이 말한다. “내가 말하는 묵상기도는 영혼 안에 느끼는 내적 거둠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외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다른 내적 감각 또한 지니고 있어서, 그것을 통해 영혼은 외부의 소음에서부터 멀리 떠나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거둠은 눈을 감고서, 그가 그때 몰입되어 있는 일, 즉 고독 속에서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는 일이 아닌 것은, 어떤 것도 듣거나 보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감각이나 기능을 하나도 잃지 않습니다. 모두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니까요. 모든 감각과 기능이 그런 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영혼이 하느님 안에 몰입할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수동적 거둠의 기도는 하느님 안에 성령의 특별한 은총으로 생기는, 영혼의 온유하고 정감적인 의지와 지성에 전념하는 기도이다.

 

(나) 수동적 거둠의 기도에 대해 지녀야할 태도

   수동적 거둠의 은혜는 일반적으로 고요의 기도를 위한 전주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동적 거둠은 예를 들어, 착복, 서원, 신품 때처럼 영혼 안에 매우 열정적으로 일어나지만 때로는 일시적일 수 있다.  만일 하느님께서 영혼은 거둠의 기도 안에 담그신다면, 그는 이해력을 고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조금씩 산만한 오성을 붙잡아야 한다.


 “억지를 쓰거나 수선을 피움이 없이 이성의 추리를 멈출 것, 그러나 이성 자체를 묶어 놓거나 생각을 끊으라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생각은 인간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다는 것과 그분이 누구이시라는 것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스스로 느껴서 황홀경에 도달한다면 매우 좋은 일이지만, 그게 무엇인지 캐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마음에 내려진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마음은 사랑에 겨운 몇 마디 말 외에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은 채 마냥 즐겁게 버려두어야 할 것입니다.”

 


(2) 엄밀한 의미에서의 고요의 기도


(가) 고요의 기도 본질

   고요의 기도에서 영혼의 지성과 의지는, 하느님 현존에 대한 매우 강렬한 기쁨과 감미로운 휴식을 맛보게 하여 그분께 사로잡히게 한다. 이 기도에서 오성과 추리 또는 기억과 상상은 영혼 안에 자유롭게 남아 있지만, 가끔 이들이 분심의 원천이 된다.

 

ㄱ) “고요의 기도는 초자연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힘써도 우리 힘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영혼이 스스로 고요 속으로 스며드는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주께서 마치 의인 시메온에게 하시었듯이 그 영혼을 당신 앞에 두시어 그의 모든 기관을 고요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혼이 얻는 깨달음은 외적 기관으로 얻은 그것과는 아주 달라서 이미 하느님 곁에 있고, 조금 더 가면 하느님과 결합되어 하나 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육체나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요의 기도에서 의지만이 사로잡혀 있을 때 다음 두 가지 능력이(오성과 기억) 영혼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성녀는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의지는 그런 것에 상관하지 말고 자신의 평화와 고요 중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의지가 이 능력을 모으려고 애를 쓰면 자신마저 다른 두 가지 능력과 함께 헤매게 됩니다.”

 

ㄴ) 고요의 기도에서 생겨나는 영적 기쁨은 능동적 묵상기도에서 영혼이 맛보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고요의 기도에서 오는 신적 맛은 하느님의 작용에서 직접 오지만 그 만족감은 은총의 도움을 받은 우리의 노력에서 온다. 그리고 관상의 기쁨은 능동적 묵상기도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다. 이 기쁨의 주된 원인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것이다.

 

 

ㄷ) 고요의 기도는 영혼에게 해방감을 가져다주며 뛰어난 덕의 체질을 갖게 한다. 예를 들어 하느님을 거스르는 두려움, 지옥에 대한 두려움, 고행과 십자가, 그리고 세속의 기쁨에 대한 멸시에서 이탈하게 한다.

 

 

(나) 고요의 기도의 근원과 진보


ㄱ) 일반적으로 고요의 기도는, 이미 오랫동안 이 묵상을 실천해 왔고 또 감각의 밤을 지난 영혼들에게 주어진다.


ㄴ) 처음 접하는 영혼에게 고요의 기도는 매우 약하고 무의식적으로 가끔씩 주어진다. 그리고 이 기도는 영혼 안에 아주 약하게 지속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십자가의 성 요한도 이 기도에서 영혼이 느끼는 시간의 망각을 말한다. “영혼은 때로 까만 잊음 속에 있는  듯, 도대체 어디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아리송  할 지경이 됩니다”


     경험이 있는 영혼에게 이 고요의 기도 시간은 더 자주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고요의 기도가 영혼에게 항상 갑작스레 오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가 하면 고요의 기도는 새벽이나 황혼에 가끔 한 시간 또는 그 이상 지속될 수 있다. 게다가 이 고요의 기도가 활동적이고, 또 영적인 열광이 동반될 때, 영혼은 일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고 하루나 이틀씩 지속할 수 있다.

 


ㄷ) 감미로운 고요의 기도는 영혼의 정화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메마른 고요의 기도와 교차될 수 있다.

ㄹ) 고요의 기도가 영혼에게 일상적이 되는 때가 온다. 이때는 이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일반적으로 거기에 몰입하게 된다. 만일 영혼이 하느님의 은총에 일치하려면, 고요의 기도는 충만한 일치와 황홀경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만일 이 고요의 기도에 충실하지 않으면 추리 묵상 속으로 떨어지게 되고 은총을 잃을 수 있다.


 

(다) 고요의 기도의 다양성과 그 형태

    우리는 고요의 기도를 다음 세 가지 주된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즉 고요하고, 기도하며, 활동적인 다양함이다.

ㄱ) 고요의 기도에서, 영혼은 침묵 가운데 사랑의 충만함을 지닌 채 고요하게 하느님을 관상한다. 이 기도에서 영혼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불타오르는 의지를 통해 감미롭고  평온한 일치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ㄴ) 이따금 영혼은 자신의 사랑을 억누를 수 없어서 열렬하게 기도를 한다.
ㄷ) 고요의 기도가 활동적이 될 때가 있다. “고요의 기도가 깊고 오래 지속될 때, 의지는  관상에 잠겨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는 채 제 나름대로 작용을 한다. 그리고 다른 두 기관은 온전한 자유를 지니고 여러 가지 일과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다. 외적인 일을 하면서도 영혼은 내적으로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이것이 마르타와 마리아가 보여 준 활동과 관상생활의 일치이다.


(3) 고요의 기도 능력
   고요의 기도에서 이 세 번째 단계는 한층 더 높은 형태이며, 경혼에게 내적 능력의 충만한 일치를 준비시킨다.

 

 


                                                                          고요의  기도에서  지녀야  할  태도


영혼은 이 고요의 기도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느님의 손에 모든 것을 겸손하게 내어 맡겨야 한다.


ㄱ) 고요의 기도에서 영혼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통해, 스스로 자신이 관상을 이끌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만이 이 관상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므로, 영혼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ㄴ) 고요의 기도에서 영혼은 하느님의 작용을 느끼는 즉시, 수다스러움을 그만두고 은총의 움직임에 온순하게 따르면서, 가능한 한 완전하게 이 작용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1. 만일 영혼이 정감적인 고요의 기도에 불림을 받았다면, 말없이 바라보고 사랑하거나  또는 사랑의 열의를 더하기 위해 사랑스런 몇 마디를 가끔씩 던진다. 그 대신 이 사랑의 불을 끌 수 있는 결렬한 노력은 피해야 한다.

   2. 만일 고요의 기도에서 영혼이 행동을 원하거나, 감정이 샘물처럼 용솟음친다면, 내적으로 구원을 열망하면서 조용히 기도해야 한다.

   3. 만일 고요의 기도에서 오성과 상상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더라도, 영혼은 걱정할 필요없이 다만 그들을 뒤쫓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