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경신덕과 기도

 

 

I. 기도의 필요성

 

 

"얘야, 네가 병들었을 때 지체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여라. 그분께서 너를 고쳐 주시리라."(집회 38,9)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26:41)

 

 

199. 하나님께 바치는 가장 큰 공경은 복음적인 완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것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200. 인간의 한 가지 생각이 온 세상보다 더 존귀하다. 우리의 생각은 마땅히 하나님께 향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각에 가치로운 대상이시다. 하나님과 연관 없는 생각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과 같다.

 

201. 자연은 모든 것에 질서와 조화를 요구한다. 무감각한 것은 감각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감각적인 대상을 원하는 것은 바로 감각이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생각을 원하신다.

 

202. 사도신경 한 번 외우는 만큼의 시간이라도 마음이 흩어질까 조심하라.

 

203. 기도하지 않으면 악마를 물리치지 못하고, 겸손과 고행 없이는 악마의 올무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무기는 기도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204. 갖은 고생과 궁핍, 고통과 어려움을 당할 때 가장 좋고 확실한 도움은, 하나님은 좋으신 방법으로 모든 것을 마련하신다는 희망에 찬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II. 기도의 효능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8:3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14:13)

 

 

205. 하나님만을 끊임없는 그대의 정배, 가장 친밀한 벗으로 선택하라. 그러면 죄를 짖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고, 다가오는 모든 일들은 좋은 결과를 낳게 되리라.

 

206. 영혼 깊숙이 들어가 늘 천상 정배이신 하나님 대전에서 살라.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영혼에게 선을 베풀고 계신다.

 

207. 끊임없이 하나님 대전에 머무르며 떠나지 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가르치시는 마음의 조촐함을 간직하라.

 

208. 기도는 영적 메마름을 가시게 하며, 열렬한 신심을 복돋아 주고, 깊은 내적 수련으로 덕행을 쌓게 한다.

 

209. 남의 결점에 유의치 마라. 고요 가운데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 중에 머물러라. 그러면 영혼은 커다란 불완전을 피하고 깊은 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10.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순수하고 단순하게 이루어질 때, 아무리 오랜 시간이라도 매우 짧게 느껴진다. '하늘을 뚫은 기도'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한다.

 

 

III. 기도의 특성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145:18)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

 

 

211. 우리의 오관과 기능을 피조물에게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온갖 것에서 이탈하여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 간직하라.

 

212. 하나님에 대해 어떤 특별한 것을 알려 하거나 느끼고 싶어 하지 마라. 오직 사랑 가득한 마음을 지닌 채 주님을 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이다.

 

213. 모든 피조물이 내게 아무것도 아니고, 나도 피조물에게 아무런 존재가 아닌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라. 온갖 것을 다 잊고, 오로지 영혼 깊은 곳에서 천상 정배와 함께 머물러라.

 

214. 자신의 욕정에 끌리지 않는 사람은 오롯한 자유를 가진 사람이다. 그 마음은 깃털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가볍게 날수 있는 새와도 같다.

 

215. 영혼의 양식을 하나님 외에 다른 곳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관상가는 온갖 것에서 마음을 떼고, 끊임없이 마음의 평화를 간직하며, 잠심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

 

216. 거룩한 잠심을 얻고 싶은 영혼은 피조물에 의존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

 

217. 읽으면서 찾아라. 그러면 묵상 중에 발견할 것이다. 기도하며 두드려라. 그러면 관상 중에 열릴 것이다.

 

218. 진정한 내적 생활은 자신을 믿지 않고, 하나님게 기쁨을 드리려 겸손되이 참고, 항상 기도에 전심하는 삶이다.

 

219. 위대하신 하나님께 맞갖은 은총, 즉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영혼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220. 힘을 다해 하나님께서 흐뭇해하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는 확실한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 비록 직접청하거나 또는 거기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까지도 모두 베푸신다.

 

221. 설령 기도하자마자 곧 들어주시지 않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기도한다면, 확실히 적당한 때에 은혜를 꼭 주신다.

 

 

IV. 기도에 전념하는 이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19:1)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1:20)

 

 

222. 우리의 의지가 감각적 기쁨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데 기쁨을 느끼고 또 그러한 행위가 기도에 큰 도움이 된다면, 그 방법을 버리지 마라. 오히려 이 거룩한 수업의 진보를 위해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때야 비로소 감각적인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 즉 하나님을 보다 더 잘 알고 깊이 사랑할 수 있는 데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223. 이미 감각이 정화되고 영성적이 된 영혼은, 갖가지 감각적인 것에서, 그것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는 데서 오는 감미와 상쾌한 관상의 즐거움을 맛본다.

 

224. 건전한 철학이 가르치듯이, 모든 것은 그 지닌 바 본질에 따라, 그 사는 바 생명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동물적 생명을 끊고 영적 생명에 사는 사람은, 그 행위와 활동이 모두 영적 생명에서 오기 때문에 매사에 아무런 지장 없이 하나님을 지향할 것이 명백하다.

 

225. 참으로 경건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분을 믿으므로, 성상을 아쉬워하지도 않고 별로 쓰지도 않는다. 쓴다 하더라도 인간적이기 보다 신비로운 것을 잘 표현한 성상을 골라, 그것에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의상으로 입히도록 한다.

 

226. 믿음과 정성만 있으면 아무 성화라도 그만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더 아쉬워할 것이 없다. 세상에 계실 때 우리 구세주의 모습이 얼마나 생명에 찬 모습이었던가?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비록 그분과 함께 지내고 그분의 기적을 제 눈으로 보았어도, 그것이 다 소용없었다.

 

 

V. 기도에 알맞은 곳

 

 

"그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2:12)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

 

 

227.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기도에 전념하고, 하님의 가르침을 들으려고 고요를 찾으며, 그곳에 머무는 일이다. 그러면 매사가 다 잘될 것이다. 의무로 다른 일을 하는 경우 외에는, 이승의 온갖 부를 거둘 수 있는 대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안으로 모으고 오롯한 영혼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 하나님의 마음에는 더 흡족하다. 설령 온 세상을 다 차지한다 해도 우리의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28. 진정 순결한 영혼은 외적인 것에 정신을 쓰지 않고, 사람들의 비평에 좌우되어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갖 형상을 떠나 깊은 내적 고요 속에 잠겨 자유와 평화 중에 하나님과 교류한다. 즉 신적 인식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229. 기도할 때에는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데 방해되지 않는 곳, 즉 오관과 정신이 흩어지지 않는 곳이 좋다.

 

230.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 눈에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곳을 찾는데, 그것은 잠심을 돕기보다는 오관의 위로를 찾는 것이다.

 

231. 성지 순례를 하려면, 순례 계절이 한창인 때보다는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을 때 혼자 가는 것이 더 좋다. 많은 사람이갈 때는 가지 말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여러 사람과 함께 가면 돌아올 때는 마음이 더 흩어지는 것이 보통이고, 대개 그런 순례는 신심이라기보다는 위로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VI. 거룩한 기도 수업의 방해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 그분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줄여라."(집회 17,25)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232.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손에 있는 새를 날려 버리는 것과 같다. 한번 날려 버리면 다시는 그것을 잡지 못한다.

 

233. 하나님은 접근할 수 없는 분이시다. 이 점을 잊지 마라. 자신의 능력으로 깨치고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너무나도 하찮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데 영혼이 필요한 날개를 잃게한다.

 

234. 온전히 영성적인 것이 아닌 것은 받아들이지 마라. 그런것은 신심과 잠심의 맛을 앗아 가 버린다.

 

235. 무엇이든 감각적인 것에 의지가 사로잡혀 있으면 참된 영성인이 될 수 없다. 감각의 도움이나 그 힘으로 영의 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236. 불완전한 영혼은 기도 중에 감각적인 감미를 찾기에, 참된 신심을 잃는다.

 

237. 날개에 꿀이 묻은 파리는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 이와 같이 영적인 감미에 집착한 영혼은 자유와 관상에 이르는 데 방해를 받는다.

 

238. 제 기분에 맞는 데에서만 기도할 수 있는 영혼은 자주 기도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제 고장 책밖에 읽지 못하는 사람처럼 되고 만다.

 

239. 외적인 사물과 감각적인 감미에 의지가 애착하여 정신의 자유를 잃고, 기도하는 데 그 어떤 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는 영혼은 힘껏 그런 것을 피해야 한다. 영성의 길 도중에 멈춰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240. 내적인 위로나 단맛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떠나셨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반대로 다시 단맛을 누리게 되면 하나님을 되찾았다고 기뻐하는 영혼은 참으로 어리석다.

 

241. 영신 생활을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잘 기도하고 좀 더 하나님께 마음을 모은다는 그럴 듯한 구실 아래 감각적인 향락을 시인한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기도한다기보다 기분 풀이를 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때문이다.

 

242. 묵상은 관상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마침내 목적을 이룬 후에는 다른 방법을 쓸 필요가 없듯이, 또 나그네가 목적지에 이르면 쉬듯이, 관상 상태에 이른 영혼은 묵상을 그쳐야한다.

 

243. 하나님께 이르려면 적당한 시기에 추리적인 묵상을 그쳐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시기가 되면, 그 이상은 관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너무 빠른 시기에 그치면 후회할 위험이 있다.

 

244. 관상과 잠심의 고요 상태에 달한 영혼에게는 다음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 지나가는 사물에 아무런 흥미가 없고, 둘째, 고요와 침묵을 좋아하고, 매사에 보다 더 오롯한 것을 가리며, 셋째, 전에는 영혼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준 추리나 묵상의 여러 가지가 이제는 방해가 된다. 영혼은 기도할 때 신 · · 애덕만을 유지하게 된다.

 

245. 관상 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한 영혼은 하나님에 대한 단맛을 전혀 맛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인식이 매우 미묘하고 섬세해서 거의 느낄 수 없고, 또 그때까지 쉽게 해 온 묵상방법이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246. 거룩한 평화 속에 안주하게 되면서, 영혼은 관상에서 나오는 사랑에 충만한 지식을 점점 더 얻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정을 아는 영혼은 그 안에서 기쁨을 뛰어넘는 기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고요와 쉼, 위안과 기쁨 등을 아무런 노력 없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47. 관상 상태에 이르렀다 해서 전처럼 묵상을 이리저리 시도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관상의 초기 때는 자신의 뜻대로 즉시 관상으로 접어들어 갈 만큼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때로 전과 같이 묵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48. 정해진 관상 시간 외에도 일하면서도 되도록 거룩한 생각을 간직하며 신심의 진보에 노력해야 한다. 특히 구세주의 생애와 수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신의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주님을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249. 무리를 떠나 높이 나는 한 마리의 새에서 우리는 다섯 가지를 주목할 수 있다.

첫째, 그 새가 가장 높은 곳으로 물러나 있다는 것, 둘째, 비록 동류라도 절대로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부리를 바람 부는 방향으로 돌리는 것, 넷째, 일정한 깃털 색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다섯째, 지저귀는 소리가 부드럽고 고요하다는 것이다.

관상적인 영혼도 이와 같아야 한다. 지나가는 모든 것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초연하며, 오롯한 고요와 침묵을 좋아하고, 성령의 권유와 뜻에 따라 정배답게 그 입김 쪽을 향해 의지의 입을 열고 일정한 색을 지니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 이외에는 마음을 열지 않고 천상 정배에 대한 관상과 사랑 안에서 아름답고 감미로운 노래를 부를 것이다.

 

250. 영혼이 관상의 최고 상태인 신성의 단순한 관상까지 이르렀을 때, 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망각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완전한 초자연적인 인식 상태까지 높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영혼 스스로 그 망각을 원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영혼이 합일의 최고 단계에 쉽게 이르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주님의 거룩하신 인성을 묵상하거나 관상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문이며 지복에 이르는 안내자시다.

 

 

  5-13 경신덕과 기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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