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분노

 

우리가 화를 내는 순간 상대방은 목적을 달성했다. 우리는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 (에른스트 프라이헤어 폰 포이히트스레벤)

 

창세기에서

1. 선물이 형제의 격렬한 분노를 쉽게 가라앉힌다는 것을 모르는 영혼에게: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33:10-11).

 

2. 완전한 이들의 성공을 목격할 때 일어나는 분노의 생각에 맞서: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45:24)

 

 

출애굽기에서

3. 분노 때문에 거짓 증언을 하고 싶은 생각에 맞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20:16)

 

3a. 녀석이 내 애인에게 치근대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누군가에게 분노가 치솟으면 그자를 그냥 확 어떻게 해버리고 싶습니다. 분에 못 이겨 상대방을 해코지할 모든 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입니다. 악 쓰고 개망신시켜 아주 끝장을 내버리는 장면도 그려 봅니다. 그런 식으로 남을 해치는 건 틀린 증언 방법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뭔가 잘못이 있을 거라 여기며 험담을 해 댑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요즘도 많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거짓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 우리는 그걸 보고 시샘하거나 분통을 터뜨리지요.

에바그리우스는 십계명에서 하나를 뽑아 그런 유혹에 맞섭니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때 우리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료한 하나님의 명령을 항상 유념해야합니다. 그래야 거짓 증언으로 남을 해치려는 우리의 성향이 기를 펴지 못할 것입니다.

 

4. 비방 때문에 형제들에 대한 분노가 솟구칠 때: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23:1)

 

4a. 자기 친구가 팀장과 친하다는구만.

취직도 그래서 됐다는 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이웃이나 직장 동료에 대해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소리, 자주 듣습니다. 듣고 나면 속이 부글부글 끓지요. 인간이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런 짓을 해, 그럼 안 되는 거잖아, 그런 나쁜 놈은 욕먹어도 싸.

우리는 너무 쉽게 남 얘기를 들은 대로 믿고 입맛대로 평가하고 제 분에 못 이겨 욕지거리를 뱉어 법니다.

이런 유혹에는 계명으로 맞서야 합니다. "너희는 헛소문을 퍼뜨려서는 안 된다." 이 계명을 유념하면 우리 눈이 서서히 뜨입니다. 남 얘기 하는 이의 말이 사실과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깨어 있으면서, 뒤에서 복덕거리는 이의 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눈으로 남을 직시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5. 분노 때문에 형제들을 모욕하고 싶은 생각에 맞서: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23:7)

 

 

레위기에서

6. 증오로 남을 헐뜯거나 미움으로 험담에 귀 기울이는 형제가 생각날 때 테바이데의 선견자, 예언자 요한이 말했듯이 재물이나 음식 때문에 증오가 일어나는 경우와 달리 증오가 사람들의 영광에 기인한 것이라면 뿌리 뽑기가 몹시 힘들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19:17).

 

 

민수기에서

7. 완전한 온유가 본성과 무관하다고 믿는 영혼에게: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12:3).

 

 

사무엘 하권에서

8. 사람들에게 모욕당할 때가 곧 주님께서 영혼을 시험하시고자할 때임을 모르는 영혼에게: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삼하 16:11-12)

 

 

시편에서

9. 온유에서는 멀어지면서도, 감히 주님의 길을 배우기를 바라는 영혼에게: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25:9).

 

10. 분노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형제를 거스른 사악한 고발과 거짓의혹을 모으는 영혼에게: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37:8-9).

 

11. 형제들의 중상으로 동요하고 분노로 자기 영혼을 어둡게 하는 생각에 맞서: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50:20).

 

12. 무시무시한 밤의 환시들이 무절제한 분노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고, 자비와 인내를 통하면 그 환시들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배운 정신이 주님께: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119:98-99).

 

13. 형제들에 맞서 분노하게 한 후, 우리가 지키지 못한 인내의 계명이 적힌 영가를 노래하라고 설득하는 악령에 맞서 하지만 악령이 우리를 설득하는 것은 우리를 희롱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키지도 못한 그 계명을 노래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137:4)

 

 

잠언에서

14. 우리로 하여금 형제가 어리석고 제 구실을 못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게 하면서 그 형제에 대한 나쁜 평판들을 모으려는 생각에 맞서: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3:29)

 

15. 지상 재물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고 다투려는 생각에 맞서: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10:12)

 

16. 형제를 비방하게 하는 생각에 맞서:

"미움을 감추는 자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요 중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니라"(10:18)

 

17. 형제와 비교하는 데서 오는 분노 때문에 기도 중에 타락하게 되는 영혼에게: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11:25)

 

18. 가축이 길을 따라 곧바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분노를 일으키는 생각에 맞서: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12:10)

 

19. 대수롭지 않은 이유에도 갑자기 분노가 치솟아 요동치는 영혼에게: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12:16)

 

20. 형제에게 피해를 주려고 간계를 꾸미려는 생각에 맞서: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12:27)

 

21. 정신이 분노하도록 생각들로 정신을 자극하면서 분노의 길을 걷는 영혼에게 언젠가는 분노가 모호해지고, 말과 행동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때가 온다. 그래도 이미 흐려진 정신의 흔적은 남는다.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12:28)

 

21a.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한테 제대로 사랑받고 컷더라면

지금 나는 행복할 텐데!

원망은 분별력을 마비시킵니다. 원망이 사무치면 분별력이 사라져 명석한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만사가 원망에 함몰되고 말지요. 원망은 수도승들의 깊은 외로움에까지 파고듭니다. 그들에게는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화낼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럴 때, 해묵은 원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몸이 가는 곳마다 마음 깊이 자리한 원망도 함께 따라다니는 것을 저들도 알고 있습니다. 감정을 파내 버려도 말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상처 입은 말들이 떠오르기 무섭게 다시 원망이 깨어나고 분별력도 흐려집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잠언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분노를 간직하는 이들의 행로는 죽음에 이른다지요. 이 말씀은 원망의 종점이 어딘지 보여 주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의로움의 길을 가도록 우리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22. 인내심을 훼손하고 파괴하며, 재물 욕심 때문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려는 생각에 맞서 그 자리에 온유를 회복시켜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14:29)

 

23. 좋은 뜻으로 우리를 견책하는 사람에게 부드러운 대답을 하지 못하게 하는 생각에 맞서: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23a. 맞은 개가 요란스레 짖을 때

잘못을 지적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도우려는 마음이겠지

. 그래도 화가 납니다. 분노가 치미는 걸 보니, '맞은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틀리진 않았네요.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약점을 친구가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들켜 버린 약점 때문에 화가 나서, 우리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래서 '짖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의 약점은 외면하고 싶은 법이지요.

잠언에서 뽑은 지혜의 말씀은 분노의 결과가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분노는 정확한 사리판단으로 내 약점을 지적해 준 그 친구마저 집어삼키고 맙니다. 우정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가 온유하게 대응했더라면 분노를 비껴갈 수 있었을 것이고, 우정은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24. 형제들과 다투라고 부추기며 핑계를 대게 하는 생각에 맞서: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15:18)

 

25. 주님 앞에서 비난받을 것은 분노가 아니라 오히려 분노에서 유래하는 죄라고 믿는 영혼에게:

"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15:26)

 

26. 화를 잘 내고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과 사귀라고 유혹하는 생각에 맞서: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22:24-25).

 

27. 불의를 당한 뒤 복수하려는 영혼에게 이는 헛것을 사랑하는 영혼의 악한 욕정이다: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24:29).

 

28. 제 원수가 고통 받는 것을 보고도 측은히 여겨 돌보지 않고, 그를 식탁에 초대하여 적개심을 풀고 싶어 하지 않는 영혼에게: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25:21-22)

 

 

전도서에서

29. 성급히 분노로 달구어져 형제들을 마구 거칠게 대하고 싶은 생각에 맞서: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7:9).

 

30. 분노의 원인은 없애려 하지 않고 오히려 먹고 마실 것과 재산만을 탐닉하는 영혼에게 - 이런 것들 때문에 화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정신이 멸망의 심연으로 떨어지고 만다: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11:10)

 

 

아가에서

31. 형제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끄려고 끊임없이 유혹하는 악령에 맞서: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8:7).

 

 

이사야서에서

32. 우리를 슬프게 한 사람의 마음에 적대적인 말을 퍼부어 상처를 입히라고 부추기는 생각에 맞서: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10:1)

 

 

애가에서

33. 우리를 엄습하는 분노 때문에 주님께: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나이다"(3:58).

 

 

마태복음서에서

34. 우리 아버지들과 형제들이 주님의 이름 때문에 우리를 박해할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분노의 생각에 맞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5:10).

 

35. 아케디아 때문에 형제를 보고 욱하는 영혼에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5:22)

 

36. 때린 자에게 분노하고, 처음에 맞았을 때 들었던 생각을 한 번 더 맞으면서 멈추고 싶어 하지 않는 생각에 맞서: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5:39).

 

37. 우리 원수를 미워하고 비방하게 하는 생각에 맞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5:44-45)

 

37a. 그 민간,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누구한데 화가 나면 속으로 악담을 내뱉곤 하지요. 그자

가 폭삭 망하거나 죽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처절한 '왕따'의 서러움을 겪어도 좋겠네요. 남의 죽음을 바라는 우리 모습에 스스로도 경악할 지경입니다. 생각을 억눌러보지만 마음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산상 설교 말씀으로 이런 악담과 죽음의 저주에 맞서 봅시다. 그 말씀은 우리의 원수와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 하십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그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면 그들을 사랑할 능력도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를 떠오르게 하신다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줄곧 미워하기만 하면, 해는 지고 비는 땅을 적시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서에서

38. 형제의 회개가 흡족하지 않아 새삼 격화되는 분노에 맞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17:3-4)

 

38a. 넌 모든 걸 잊어 버러지.

난 모든 걸 기억하고 있어.

형제의 뉘우침이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상처가 너무 아프고 화가 치밀어, 천만 번 미안하단 소리를 들어도 분이 안 풀립니다.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내버려두고 눈길 한 번 안 주는 걸로 우리의 분노를 드러내지요. 그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습니다. 수도승들은 자신에게 매우 솔직합니다. 자신에게 상처 입힌 형제의 뉘우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가 기어이 치욕스러운 참 회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꼴을 보는 것으로 은근히 복수하고 싶습니다. 이런 속내가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압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수하는 방식 입 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예수님의 계명을 명심하라 이릅니다.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게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한다." 여기서 '회개하다'는 그리스 말로 '달리 생각하다, 돌아오다, 들여다보다'란 뜻입니다. 남을 용서하는 데는 잘못된 행동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요한복음서에서

39. 형제들을 향한 분노를 용인하고 새 계명이라 불리는 사랑의 계명을 무력화시키는 정신에 맞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로마서에서

40. 사랑과는 상극인 분노의 생각에 맞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8:35)

 

41. 원수들의 몰락을 기뻐하는 질투의 생각에 맞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12:15-16)

 

42. 화를 간직하면서, 자기를 공격한 자의 악을 또 다른 악으로 되갚으려는 생각에 맞서: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2:17)

 

 

고린도 전서에서

43.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분노의 생각에 맞서: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고전 6:7-8)

 

44. 노예 신분이라는 이유로 나를 모욕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분노의 생각에 맞서: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고전 7:21-22).

 

45. 사랑만이 간직한 언어의 진실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분노의 생각 때문에 길을 잃은 영혼에게: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1-8)

 

 

갈라디아서에서

46. 진리에 대한 최고의 인식에 도달하려 애쓰면서도 한편으로는 몹시 격노하는 영혼에게: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47. 형제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분노하는 생각에 맞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48. 내게서 많은 재물을 받고도 사이가 밀어지면 불평을 늘어놓는 이들을 보면서 분노하는 영혼에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에베소서에서

49. 형제들이 회개 · 두려움 · 찬미, 그리고 과거의 어리석음을 더는 범하지 않겠다는 약속 등, 최상의 조건으로 모든 할 바를 다하고 있는 것을 빤히 보고도 그들과 화해하지 않으려는 분노의 생각에 맞서 이는 정신을 분노에 계속 붙들어 매어 두려는 악마의 술책이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4:26-27)

 

49a.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게 사과하지 마.

여기서 에바그리우스는 악마가 쓰는 한 가지 기교에 대해 말합니다. 요즘 말로는 합리화라고 하지요. 머리는 아무행동도 하지 않을 별별 이유를 다 짜냅니다. 바르게 행동하라는 내면의 소리에 자신이 어떻게 저항하는지 머리는 결코 알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 이런 사람들은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데, 이게 결국 불행의 씨앗이 되더군요. 해야할 일이 뭔지 본능적으로 알면서도, 그들은 오만 가지 이유를 끌어다 대며 주저하고 있습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수도승들이 차마 회피할 수 없는 하나의 규범을 제시함으로써 이 갈등을 풀어 버립니다. "해가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그에게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감히 이성을 들먹이며 페기할 수 없는 권위였습니다. 이 권위는 합리화의 교묘한 장난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50. 다양한 형태의 문제에 대한 분노가 야기하는 온갖 종류의 생각에 맞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4:31)

 

 

빌립보서에서

51. 형제들에게 봉사하는 일로 불평하려는 생각에 맞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2:14-15).

 

 

골로세서에서

52. 분노가 일으킨 불로 중상과 거짓을 치유하려는 생각에 맞서: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3:8-9)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53.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생각에 맞서: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5).

 

 

디모데 전서에서

54. 주님 계명의 목적을 모르고 그것을 분노의 생각으로 헛되게 만드는 영혼에게: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 1:5)

 

 

디모데 후서에서

55. 생각으로 [이단과] 교리 논쟁을 일삼는 정신에 맞서: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딤후 2:24).

 

56. 주님의 이름 때문에 내 조상과 친척들에게 당한 박해로 말미암아 내게 엄습하는 분노의 생각에 맞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빌레몬서에서

57. 아쉬울 때 금전이나 다른 물건을 받아 놓고 그것을 되갚아 줄 걱정은 하지 않는 형제에게 분노하려는 생각에 맞서: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1: 18)

 

 

야고보서에서

58. 다급히 분노하며 하나님의 의로움을 간구하는 영혼에게: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1:19-20).

 

59. 정신을 분노로 가득 채워 놓고도 하나님의 지혜로 자기 영혼은 돌보고 싶어 하는 생각에 맞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3:17-18)

 

60. 율법이 '네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고 명할 때, 실은 입법자가 율법을 올바른 방법으로 제정하지 않으셨을 수 있다고 여기면서 형제들을 비방함으로써 입법자를 경시해 버리는 생각에 맞서: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4:11-12)

 

 

베드로 전서에서

61. 악을 악으로 갚고 모욕을 모욕으로 갚으려만 할 뿐, 중상모략을 축복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정신에 맞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요한 1서에서

62.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는 정신에 맞서: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요일 2:9)

 

63. 미움 때문에 정신적으로 형제를 죽이고 싶은 생각에 맞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64.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공언하면서도 형제를 미워함으로써 사랑이라는 첫째 계명을 부정하는 정신에 맞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64a. 광신자를 식별하는 방법

피정지도를 해 보면 참가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데, 대개는 사람들이 나빠서 그들 때문에 삶이 피곤해진다더군요. 그래서 그들과는 도저히 잘 지낼 수 없다는 겁니다.

나는 가끔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나쁜 걸까, 아니면 그리 말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변 인물들을 안 좋게 보는 걸까? 남의 나쁜 점만 알아보는 부정적 시각이야말로 증오의 한 방식입니다.

에바그리우스가 여기 맞세우는 요한 1서의 말씀은 그런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폭로합니다. 좀 독한 표현이지요. 그러나 하고많은 이유 뒤에 숨어 있는 내면의 거짓말을 밝혀내려면 그런 지독한 말도 가끔은 필요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분노의 악령과 싸워 승리하게 하신

우리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찬미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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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