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케디아

* 영적 태만, 영적 무기력

 

나태는 우리를 고통 속에 묶어 둔다.” (노발리스)

 

창세기에서

1. 손노동을 혐오하고, 그리 힘들지 않으면서도 이익은 더 되는 다른 일거리를 배우려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9)

 

 

출애굽기에서

2. 압바가 형제들을 위로하지 않고 그들에게 너무 엄격하며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측은히 여기지 않는다고 고발하게 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너희는 주님의 사제를 욕하거나 너희 백성의 수장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원본)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22:28)

 

 

민수기에서

3. 아케디아의 악령에 굴하여 항구함 없이 진리에 대한 인식의 열매로 배부를 수 있기를 기대하는 영혼에게: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13:20).

 

3a. 지금 있는 대로, 지금 가진 걸로 넉넉해.

다들 치열하게 산다지만,

날 그냥 이렇게 살 거야.

제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여기는 신자들을 나는 자주 봅니다. 그들은 기도를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일'과 혼동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자아도취에 빠져 제 주변만 맴돌고 있는지 저들은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영적 체험이 자신에게 몰입해 있는 동안 일어날 것이라 여깁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용기에 관한 말씀으로 이 무기력한 영성에 맞섭니다. 용감히 버티면서 삶이라는 밭을 힘들여 경작하는 사람만이 과일을 수확할 것입니다. 오직 그런 사람만이 진리에 대한 인식의 열매로 배부를 것입니다.

 

 

신명기에서

4. 이케디아의 악령으로 인해 다시 세상으로 눈 돌리고 세상 것들을 갈망하는 정신에 맞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5. 거룩한 원로는 시편 열두 편밖에 몰랐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고 말하면서 독서와 묵상을 단념하게 하고 영적 가르침에서 멀어지게 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6:6-7).

 

6. 사소한 질병에도 아케디아의 악령에 굴복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7:15).

 

7. '아케디아의 악령은 매우 강하여 그가 나를 거슬러 일으키는 생각의 공격을 견딜 수 없다'면서 부모와 친척을 찾아가는 영혼에게:

-.주님께서는 너희를 거슬러 일어나는 적들이 너희 앞에서 패배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너희를 치러 한 길로 나왔다가, 너희 앞에서 일곱 길로흩어져 도망칠 것이라신멍 28,7)

 

 

여호수아기에서

8. 성경 말씀을 스스로 읽고 묵상하는 대신 주님께서 당신 성령을 통해 성경을 가르쳐 주시도록 주님을 설득해 보라고 유혹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1:8).

 

 

사사기에서

9. 아케디아가 찾아왔을 때, '왜 주님은 내가 악령들에게 이런 유혹을 받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악령들은 왜 때로는 가까이 있는 형제들에게 분노하게 하고 또 때로는 멀리 있는 형제들에게 화내기를 강요하면서 우리를 슬픔에 빠뜨리는가?'라고 자문하는 영혼에게 이것이 아케디아의 악령들이 구사하는 전략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2:20-3,2)

 

 

시편에서

10. 아케디아의 악령 때문에 밤에 눈물 흘리기를 원하지 않는 무딘 영혼에게 사실 눈물은 아케디아에서 오는 밤의 환영을 떨쳐 낼 훌륭한 치유제다. 예언자 다윗도 자신의 악습에 이 치유제를 지혜롭게 활용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6:6)

 

11. 내 안에 머무는 아케디아의 악령 때문에 주님께: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25:18)

 

12. 내 희망을 무너뜨리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27:13)

 

13. [주님을] 찬미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34:2)

 

13a. 반밖에 안 남은 찻잔?

반이나 남은 찻잔?

매사에 의욕이 없는 사람은 시시콜콜 투정만 부립니다. 모든 게 못마땅합니다. 아케디아는 순간에 몰두할 능력이 없을 때 나타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일은 힘들어서 하기 싫고, 기도는 지루해서 하기 싫고,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기도 싫습니다. 하는 일 없이 불평만 쌓입니다. 아케디아는 주님께 향하는 우리 마음에 빗장을 겁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선물이 뭔지 알 택이 없습니다.

에바그리우스는 감사해야 할 이유들을 제시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든지 그것에 반대할 이유도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아니, 그렇게 사는 건 내게 맞지 않아. 마음에 안 들어." 늘 주님을 찬양하라는 권유만이 이런 투정에 맞설 수 있습니다. "속물들은 매사에 투정만 부린다. 찬양은 [영혼의] 건강 상태를 귀로 확인하는 행위다." 싱클레어 루이스의 말입니다

 

14. 아케디아에 빠져 수도승생활이 자기에게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토로하면서 희망을 꺽어 버리는 영혼에게: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37:3)

 

14a. 나 말고는 아무도 날 동정하지 않을 때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위로의 말을 아낍니다. 다만 주님을 신뢰하며 선을 행하라 요구합니다. 벅찬 가슴으로 토해 내는 이 말이 우리를 자기연민으로부터 지켜 줍니다. 더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며 선을 행합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부한 기교도 아니고 심리적 눈속임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언약의 정당성을 몸소 보증해 주신 성경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날 정신요법의 하나인 자발성 훈련에서도 신뢰를 역설하는 문장들이 권장되고 있습니다. 신뢰는 그 문장들이 내재화되었을 때 비로소 얻어집니다.

에바그리우스는 인간의 차원을 넘어서서 주님의 말씀하나를 거듭 되뇌기를 권합니다. 기도하는 이는 그 말씀의 신성한 힘으로 낫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 친히 우리의 주치의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15. 자기가 거주할 다른 장소를 찾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사로잡힌 슬픈 영혼에게: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37:34)

 

15a. 여행 안내 책자를 삼킬 듯 들여다보면서

사는 곳을 영 마뜩잖아 하는 마음은 아케디아의 행태 중 하나입니다. 고향 마을은 너무 좁습니다. 일 때문에 딴 도시를 찾았는데 또 싫증이 납니다. 그 도시는 지루하고 소란스러우며 문화도 삭막한 데다 사람까지 불친절합니다. 앞집 아저씨는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집 아줌마는 수다가 끝이 없으니 신경질만 돋습니다. 어디 이사 갈 데 없나 머리를 굴려 봅니다. 슬슬 다른 집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흠 잡을 데 없는 집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거기도 고약한 이웃이 있거나, 너무 외딴곳이라 밤길이 무섭습니다. 편히 맘 붙일 곳은 정녕 없나 봅니다. 나는 이 한 말씀으로 불만을 이기려 합니다. "너는 주님께 바라고 그분의 길을 따라라." 주변에 신경 쓰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사는 이곳을 견딜 일입니다. 그리하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요, 너른 마음으로 감사하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16. 마음이 아케디아의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때, 그것들이 기도 중에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거룩한 빛을 가린다는 것을 모르는 영혼에게 하나님의 종 암모니우스와 나는 그 빛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정신의 본성이 빛을 발하는지, 그 빛이 정신에서 흘러나오는지 아니면 밖에서 빛나서 정신을 비추는 다른 무엇이 있는지, 테바이데의 원로 거룩한 요한에게 물어 보았다.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사람이 답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주님의 은총이 없다면 기도 중에도 정신은 그 빛의 힘으로 자기를 파멸시키려는 잔혹한 원수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38:10)

 

17. 거룩한 천사들이 잠시 나를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정말 악령들의 유혹에 넘어갔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영혼에게: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38:11-12)

 

18.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희망을 앗아 가, 우리를 항구하지 못하게 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40:2)

 

19. 아케디아에 대적해 싸울 때 눈물을 무익한 것이라 여기며 다윗을 기억하지 않는 영혼에게 정작 다윗은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42:3)

 

20. 아케디아에 걸려 넘어져 슬픈 생각으로 가득한 영혼에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

 

21. 온종일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싸울 때 주님께: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56:1).

 

22. 내 마음이 분노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주님께: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66:12).

 

23. 형제나 친척 가운데 누군가가 출세하여 권력과 명예의 반열에 올랐을 때 우리를 엄습하는 아케디아의 악령 때문에 주님께: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73:28)

 

23a. 내가 뭐하러 그 생고생을 해?

좋은 일자리는 어차피 남들이

다 차지하는데

흔히 아케디아는 시샘과 한통속입니다. 성공하고 출세한 동기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 자신이 초라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속에서 아케디아가 슬며시 고개를 쳐듭니다. 살맛 안 나지요. 다들 잘나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왜 나만 갖고 이러시는 걸까요. 그분은 내게 좋은 일자리를 얻을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도 날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지면을 화려하게 수놓는 스타나 명사들보다 내가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세상 참 불공평합니다. 날 찾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는 게 서글픕니다. 남과 비교하는 건 이 울적한 생각에 전혀 도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 좋으니 내 모든 희망을 그분께 걸겠다는 말씀만이, 어차피 헛것인 내 비애를 폭로합니다.

희망이란, 내 친척과 똑같이 유명해지리라는 기대와는 사뭇 다른 것이지요. 희망은 나를 살아 있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매 순간 내게 새롭게 선물하시는 것을 나는 희망할 뿐입니다

 

24. 아케디아에 빠졌을 때 형제들에게 가서 위로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맞서: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77:2-3)

 

24a. 혼자서는 더 못 견디겠어.

당장 누구한데라도 힘든 사정을 좀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여기서도 아케디아의 불편한 상태에서 벗어날 묘책은 제시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달아나지 말고 견디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라고 격려합니다. 시편에서 새삼 이런 경험을 접하게 되면 더는 걱정스럽거나 서글퍼지지 않습니다.

속내가 조금 알려진들 뭐 어떻겠습니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시편기도를 바치면 아케디아 상태를 더 쉽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수도승은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시편 작가와, 그리고 끊임없이 시편기도를 바치는 모든 형제들과 함께 싸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표양과 이 표양을 따르는 수도공동체가 개개인에게 상황을 극복할 힘을 줍니다. 저마다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들의 공동체에 튼튼히 결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들 지금껏 싸우면서 잘 버텨 왔고 지금도 버터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지 않습니다.

 

25. 우리 삶이 오래도록 고달프리라 예고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103:15)

 

26. 지금 살고 있는 암자가 조악하고 습하여 갖은 질병의 원인이 되므로 다른 암자를 찾으라 유혹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132:14)

 

27. 내 정신을 괴롭히고 전율케 하는 생각 때문에 주님께: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143:3-4)

 

 

잠언에서

28. 손노동을 포기하게 하고 태만하게 몸을 벽에 기대게 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6:9-11)

 

28a. 급성 '출근' 경색에 걸리면

한 여자가 막 출근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근데 마침 시동이 안 걸리는 겁니다. , 짜증 나! 오늘 일진 사납겠구나. 집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목이 따끔거립니다. 그렇지, 인후통이네. 결근하기 딱 좋은 이유입니다. 일하기 싫어집니다. 일에 치여 사는 자신이 가엾습니다. 몸이 개운찮다싶으면 동료들은 후딱 조퇴도 잘하던데, 왜 그녀는 그것조차 잘 안 되는 걸까요? 결근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몸은 우리가 병이라 여길 만한 각종 증상들을 늘 달고 다닙니다. 만사가 귀찮을 때도 몸이 신호를 보냅니다. 이를 되면 결근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들이 무위도식을 정당화하고 있을 때 잠언은 묻습니다. "언제나 잠에서 깨어나려느냐?" 출근할까 말까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리 물어보십시오. 눈 번적 뜨이고 잠 깨어 길 나설 것입니다. 그러면 저녁에도 뿌듯한 마음으로 퇴근할 수 있습니다.

 

29. 노고와 계명 준수를 단념시키는 생각에 맞서: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13:12).

 

30. 형제들에게 사랑이 없고 병자와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하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18:1).

 

 

욥기에서

31. 아케디아 때문에 슬퍼하는 영혼에게: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5:17-18)

 

32. 긴 노년, 혹독한 가난, 위로의 부재, 육체를 망가뜨리는 질병을 예고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8:8-9).

 

33. 우리에게 다른 장소를 보여 주면서 거기에 암자를 지으면 그 순간부터 우리가 원하는 것들과 안식, 그리고 형제들의 위로를 얻게 되리라 유혹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10:20-22).

 

34. 아케디아에 빠졌을 때 자기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영혼에게: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34:9)

 

 

미가서에서

35. 세속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생각에 맞서: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4:5).

 

36. 질병 때문에 아케디아의 악령에 굴복하는 영혼에게: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7:9).

 

36a. 왜 하필 나인가?

왜 운명은 내게 이토록 불공평한가?

여기서는 질병을 주님께서 내리시는 시험으로 해석합니다. 그것은 어둠을 지나 빛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질병이나 사고 앞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은 그걸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지요. 재앙은 암담하고 납득하기 어렵고 불투명하여 우리를 어둠 속에 방치합니다. 사건의 무의미함 앞에서 삶의 의미가 모호해집니다. 우리는 내적 활력을 상실하여 아케디아로, 의욕상실로, 우울증으로 추락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질병을 해석하면 병마를 이기고 성숙할 힘을 얻습니다. 병 때문에 활력을 잃기는커녕 병 덕분에 내면의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재앙을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입니다. 잘못 해석하기도 쉽습니다. 사건의 폐해는 더 커집니다. 사고를 하나님의 징벌로 보고 저주받았다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사고를 해석은 하지만 눈이 멀어 주님 말씀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못하고, 제 불안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확인하는 데만 끌어다 붙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조차 해로운 것이 되고 말지요.

 

 

이사야서에서

37. 아케디아가 자기를 내리누를 때 참담한 아케디아의 악령 때문에 부르짖는 영혼에게: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41:11)

 

 

예레미야서에서

38. 나태와 아케디아의 악령이 끊이지 않아서 병고로 여위고 약해진 영혼에게 이런 영혼은 낙담에 힘을 잃고 이 악령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희망이 꺾여 마침내 자제력을 잃을 때, 아무도 자기를 위로하지 않는다고 가슴이 찢어지는 눈물과 탄식으로 어린아이처럼 행동힌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6-17)

 

39. 우리의 항구함을 흔들어 기분 전환을 하고 잠시 우리 집과 부모를 방문하게 하는 아케디아의 악령 때문에 주님께: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14:7-8)

 

 

예레미야 애가에서

40. 수행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수도승생활은 너무 힘들다고 푸념하는 영혼에게: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3:25-26)

 

41. '사람은 수도승생활을 하지 않고도 순수성과 일체성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맞서: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3:2731)

 

 

다니엘서에서

42. 내게 강하게 맞서는 아케디아의 악령 때문에 주님께: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3:35: 참조: 본문은 가톨릭 성경에서 그리스말로만 전해지는 다니엘 323~90이 본문을 더 잘 반영한다하여 번역되었고 91(24)( )로 연결되어 있다.)

 

 

마태복음서에서

43. 육신의 아버지를 방문하라고 우리를 유혹하는 생각에 맞서: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8:22).

 

44. 아케디아로 넘어져 육신의 부모를 찾아 돌아가는 영혼에게: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19:29).

 

 

누가복음서에서

45. 그리스도께서는 욕정을 갈망하고 세속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모를 미워하라고 요구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영혼에게: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14:26)

 

 

사도행전에서

46. 세상을 포기하고 수도승생활을 받아들인 것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나약하여 죄와 세상의 일들에 과감하게 직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부모들의 말에 귀 기울이라고 유혹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5:29)

 

 

로마서에서

47. 환난 중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고린도 전서에서

48. 아케디아로 인해 불평에 대담해지려는 생각에 맞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고린도 후서에서

49. 아케디아의 악령 때문에 슬퍼진 나머지 사도 바울이 겪은 시련을 망각하는 영혼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3-28).

 

 

에베소서에서

50. 사부와 형제들의 은혜를 저버리게 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W\ 5,20-21)

 

 

빌립보서에서

51.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 받는 것이 성령의 선물임을 모르는 영혼에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1:29)

 

 

히브리서에서

52. 영혼이 완전한 이들의 거룩한 생활과 자기 거처를 포기하게 하는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0:36-38; 참조: 26:20; 2:3-4)

 

53. 도시의 부모와 친구들을 찾아가라고 유혹하는 생각에 맞서: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13:14).

 

54. 아케디아와 슬픔으로 무너져 악령의 괴롭힘에 넘겨겼다고 생각하는 영혼에게: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11:36-38)

 

55. 거룩한 사부들이 자비롭지 않고 형제들을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불쾌한 상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에게 복종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불행한 아케디아의 악령에 맞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13:17).

 

 

야고보서에서

56. 자기 내면에서 안정을 방해하는 아케디아의 영 때문에 슬퍼하는 영혼에게: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4)

 

57. 정신이 분노로 [제자리]에서 쫓겨날 때나 탐식으로 세속 형제들과 부모 가까운 곳으로 이끌릴 때, 몇 번이나 정신을 깔보고 굴욕을 안긴 아케디아의 악령 때문에 여러모로 타격받는 영혼에게: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12)

 

 

6-6 아케디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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