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헛된 영광

* 명예욕

 

분별력과 판단력이 떨어질수록 허영심은 더 커진다.” (조너선 스위프트)

 

 

창세기에서

1. 때 이르게 세상으로 나가 형제자매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수도승생활로 이끌도록 권유하는 헛된 영광의 악령에 맞서: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9:17)

 

 

민수기에서

2. 주님께 인식의 선물을 받은 형제에게 시기심을 품게 하는 헛된 영광의 악령에 맞서: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29).

 

3. 헛된 영광에 사로잡혀 사제직에 따르는 위험을 숙고하지도 않고 불순한 생각만으로 사제직을 받기를 갈망하는 영혼에게:

"제사장 엘르아살이 불탄 자들이 드렸던 놋 향로를 가져다가 쳐서 제단을 싸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물이 되게 하였으니 이는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 또 고라와 그의 무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여호와께서 모세를 시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16:39-40)

 

 

신명기에서

4. 사람들 때문에 의롭게 행동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16:20).

 

5. 헛된 영광의 심연으로 이끌면서 영웅적 성공담의 멍에에 얽매이게 하는 생각에 맞서: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22:10).

 

사무엘 상권에서

6. '너는 모든 형제들 사이에 평판이 좋다'는 식의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한지라"(삼상 18:23)

 

6a. 이 사업에 나만큼 좋은 계획을 가진 사람은 없어.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이겠지.

성공한 사람은 성공에 도취됩니다. 타인에 대해 우월감을 갖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즐깁니다.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남들이 내 업무 능력을 얼마나 칭찬할까, 내 아이디어에 얼마나 열광할까에 대해 늘 신경 씁니다. 무대 한복판에서 모든 이에게 갈채 받는 자신을 그려 봅니다. 하지만 이때도 자신의 인성은 보지 못합니다.

자만의 환상에 펄을 때, 에바그리우스는 다윗이 사울의 신하들에게 한 말을 명심하라 이릅니다. "나는 가난하고 천한 몸입니다." 자신이 평범하고 약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 사람이 진짜 큰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높아지기 위해 손수 자신이 올라설 단상을 만드는 사람은 금방 추락합니다. 그때 자기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면, 헛된 영광을 누리던 시절에 행여 잃을까 두려워했던 견고한 기반을 다시 얻게 될 것입니다.

 

 

열왕기 하권에서

7. 세속적 영광에 사로잡혀 [수행에] 부적합해진 거주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영혼에게: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왕하 6:1-2).

 

 

시편에서

8. 헛된 영광에 사로잡혀 자기에게 사제직을 예언하는 악령들의 말을 참되다고 믿는 영혼에게:

"그들의 입에 신실함이 없고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하나이다"(5:9)

 

9. 우리 영혼의 구원을 소홀히 하면서 형제들이나 세속인들을 가르치라고 부추기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84:3)

 

10. 정신을 때로는 하나님 재물의 관리자로, 때로는 형제들의 감독자로 세우면서 갖은 잡념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119:115).

 

11. 나를 속일 작정으로 형제들에게서 멀어져 고립되라고 오만하게 권고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올무와 줄을 놓으며 길 곁에 그물을 치며 함정을 두었나이다"(140:6)

 

11a. 그 사람들하고는 상종 안 해, 격 떨어져서.

뭔가 이룬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남들보다 잘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들은 다 수준 미달이라는 거지요. 그렇게 자기 틀에 갇혀 삽니다. 남들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에게 들을 말도 없고, 함께 의논할 중대사도 없습니다. 자기 안에 갇혀서 자신이 얼마나 고립되어있는지도 모르고, 그토록 타인의 찬탄을 원했으나 오히려 정반대로만 가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저런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시편 구절을 되뇌어 봅니다. "거만한 자들이 몇을 숨겨 두고 ‥‥." 교만에 사로잡힌 사람은 고독에 몸부림칩니다. 아무도 그에게 필적하지 못하니까요. 주변에 자기와 마음을 나눌 이가 아무도 없는 사람들을 보고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좀 더 겸손했더라면 외롭지는 않았을 텐데 ‥‥."

 

 

잠언에서

12.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 말을 많이 하게 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이런 일은 은둔생활을 하는 수도승들에게 일어나기 쉽다. 그들은 헛된 영광 때문에 세상일에 연루되어 자기들 앞에서 논쟁하는 저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10:19)

 

13. 경지에 [이르기도] 전에 형제들의 으뜸이 되어 영혼들을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으로 인도하라고 유혹하는 생각에 맞서: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4:12)

 

14. 성경에 대한 능력을 얻기 전에 성경을 버리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18:13)

 

15. 너무 어린 사람들에게 은수생활을 하도록 부추기는 헛된 영광에 맞서: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20:11)

 

16. 우리를 사랑하는 세속인들이 채권자에게 성가시게 괴롭힘을 당하면 그들에게 기꺼이 빛 보증을 서 주라고 유혹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네게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22:26-27)

 

17. 헛된 영광 때문에 수도승생활의 비밀들을 세상 사람에게 떠벌이는 영혼에게: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23:9)

 

18.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라고 부추기는 생각에 맞서: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26:22)

 

19. 다양한 유혹으로 공공연히 우리를 공격한 후 다시 돌아와 자기에게 우리 몸을 맡기라고 유혹하는 악령에 맞서 거룩한 예언자 요한도 악령이 헛된 영광을 통해 그것을 달성한다고 가르치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응수했다고 한다: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26:24-25)

 

20. 덧없는 영광을 얻으려고 우리의 탁월한 행위들을 드러내도록 강요하는 생각에 맞서: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27:2)

 

 

전도서에서

21. 침묵해야 할 때 말을 강요하고, 말해야 할 때 침묵을 권고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3:7)

 

21a.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저들이 무슨 까닭으로 치고받고 싸우는지

내 알 바도 아니고 ‥‥

두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유형입니다. 토크쇼에 출연해서도 최대한 많은 분량을 뽑아내는 데만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틈틈이 남의 말을 잘라먹는 것은 제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겠다는 심사입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말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합니다. 반면, 침묵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유형도 있습니다. 이들은 말해야 할 때도 말문을 닫습니다. 뭘 물어봐도 뜻 모를 침묵으로 자신을 포장하면서 주위의 신경을 긁어 놓습니다. 자기는 격조 높은 인물이라, 그런 천박한 질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하는 게지요.

두 유형 다 지혜의 스승인 전도서의 말씀을 되새겨야할 것입니다.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언제가 말할 때이고 언제가 침묵해야 할 때인지 구별할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말할 것이냐 입 다물 것이냐, 그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욥기에서

22. 사탄도 주님을 섬기는 이들을 알아본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영혼에게: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1:9-10).

 

 

이사야서에서

23. "어디서든 모든 사람 앞에서 너희를 유명하게 하리라'고 말하며 마치 우리를 도우리 오시는 분처럼 자기를 내세우는 악령에 맞서: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 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10:16).

 

24. 사람들에게서 오는 영광을 그리스도께 대한 인식보다 더 사랑하는 영혼에게: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40:6.8)

 

 

예레미야서에서

25. 우리 안에 머물며 가련한 정신을 분노 · 슬픔 · 교만의 악령들 앞에 굴복시키는 헛된 생각들 때문에 주님께: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7:14).

 

 

예레미야 애가에서

26. 밤이면 양 떼를 치는 꿈을 꾸게 하고, 낮이 되면 '너는 사제가 될 것인데,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찾아와 따를 것이다'라고 그 꿈을 해몽하는 악령에 맞서:

"그들이 내 생명을 끊으려고 나를 구덩이에 넣고 그 위에 돌을 던짐이여"(3:53)

27,28 삭제(성경에 없음)

 

마태복음서에서

29. 주님의 계명을 준수하기보다 그것을 형제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5:19).

 

29a. 성무 담당자들을 위한 단상

위대한 도덕군자치고 남에게 요구한 것을 스스로 충족시킨 이가 드뭅니다. 그들은 타인의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제 약점에 대한 두려움을 숨겼습니다. 그들이 악을 저주한 것은 제 속의 악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남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다그친 것은 제 속이 혼란하여 거기서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가르치되 스스로 지키는 사람만이 큰사람이라 불릴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스스로 계명을 지키려 노력하는 이는 남에게도 그리할 것을 겸손되이 청합니다. 결코 제 인간적 약점을 뛰어넘는 완벽주의에 도취되어 무섭게 욱박지르지 않습니다.

 

30. 우리에게 온갖 의로운 일을 하게 하면서도 정신을 모호하게 만드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6:1).

 

30a. 내가 처음부터 말했지,

기부금은 우물 파는 데만 써야 한다고!

고대 로마인들은 "Fiat justitia pereat mundus"라 했습니다. 세상이 멸망해도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 대강 이런 뜻이긴 한데, 그런 정의는 불의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마하엘 콜하스는 완벽한 정의를 실현하려 했지만 결국 엄청난 불의를 저지르고 말지요.

가치는 우리 삶을 값지게 만듭니다. 정의도 그렇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이상적 가치를 삶 속에서 실현하려 하다 보면,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을 건너뛰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의롭다 여기지만, 실제로는 남에게 의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독선에 의로울 따름입니다. 완벽한 정의를 위한 투쟁은 우리 눈을 멀게 하여 마음속의 불의한 부분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눈먼 우리는 마음속의 참되고 고요한 내적 정의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눈뜨고 싶습니다.

 

31. 순수한 기도 상태에서, 표상이나 환영이 없는 순간 우리에게 나타나 정신에 자기가 원하는 형상을 남기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정신에 심어 주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이런 일은 헛된 영광의 욕정에 사로잡힌 정신에게 일어나며, 저 악령은 기도 중에 젊은이들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정신을 이끌고 간다. 들을 수 있는 자는 들어라: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6:5)

 

32. 탐식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정신이 헛된 영광에 사로잡혀 다시 슬픈 모습으로 우리의 단식을 과시하려는 생각에 맞서 불순한 악령들은 불시에 덮쳐 정신이 고양되지 못하게 하고 눈을 들어 주님을 향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런 짓을 한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6:16).

 

32a. 단식에 목맨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수도승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요? 한 수도승이 원로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위대한 단식가였습니다. 원로는 자기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독방 바깥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라 일렀지요. 그때 단식가에게 악령이 붙었습니다.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서 원로의 독방으로 뛰어들며 말했습니다. "제 고향에서라면 일주일도 너끈히 굶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배가 고파 미치겠습니다." 원로가 맞받아쳤습니다. "고향에서 너는 사람들의 존경을 먹고 살지않았느냐. 돌아가라, 가서 평범하게 살아라."

고행은 남보다 뛰어나려는 업적 경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때 고행의 목적은 헛된 영광으로 둔갑합니다. 우리는 에교(ego)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에고는 더욱 강화됩니다. 고행이 업적 경쟁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참된 단식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단식은 하나님께 자신을 활짝 열어 보이는 수단일 뿐이니까요.

 

33. 영혼이 헛된 말을 생각해 내도록 강요하고 정신을 일시적인 재물에 집착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이 생각은 우리 안에 욕망이나 분노를 자극하고, 온전히 이루어져야 할 기도의 순수한 상태를 파괴하는, 혐오스러운 환영들을 정신에 불러일으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37)

 

 

누가복음서에서

34. 불결한 영들이 우리 영혼에서 떨어져 나감을 기뻐하는 영혼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10:20)

 

 

요한복음서에서

35. ", 네가 받은 치유의 은사 덕분에 너는 전문가가 되었다"라고 속삭이는 악령에 맞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사도행전에서

36. 돈으로 사제직을 얻으라고 유혹하는 악령에 맞서: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8:20)

 

 

고린도 전서에서

37. 헛된 영광으로 괴롭힘 당하고 그리스인들의 지혜를 간절히 배우고 싶어 하는 영혼에게: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고전 3:19)

 

 

고린도 후서에서

38. 선행을 과시하고 싶은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 10:17-18)

 

38a. 나는 적어도 하루 열한 시간은 일하지

제대로 일하려면 그래야 하거든.

의무를 다하고 주어진 과업을 훌륭히 수행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노동이란 타인에 대한 봉사입니다. 우리가 주인공이 되려고 일하거나, 얼마나 많은 일을 해서 얼마나 대단한 것을 성취하는지 과시하려고 일한다면, 그것은 노동의 의미를 왜곡하는 처사입니다. 그때 노동은 타인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우리의 에고에 대한 봉사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수도승들이 영적 수행이라 생각한 노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건 하나님을 위한 것도 인간을 위한 것도 아닌, 다만 자기의 영광만을 위한 노동일뿐이지요.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 노동에서 성취만 집요하게 추구하는 마음은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39. 우리가 수도승 규율을 제대로 지키므로 영혼의 구원과 진리의 인식에 합당한 자로 여겨지리라는 것을 우리 부모에게 납득시키도록 권유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

 

 

히브리서에서

40. 사제직처럼 존경받는 그 무엇을 이루어 내라고 권유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5:4)

 

 

야고보서에서

41. 영혼의 구원이나 진리의 인식에 이르기도 전에 가르치기부터 하라고 권유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3:1-2)

 

41a. 그러니까, 저번 주말피정에서 나는

영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단 말이지!

요즘, 신심서적이 풍년입니다. 저자마다 '현자(賢者)의 돌'이라도 찾은 듯합니다. 자칭 성공한 인생의 본보기들이지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만나 보면 뭔가 찜찜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지혜로운 가르침에 침잠하기 보다는 그저 남을 훈계하려 드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열성 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교하는 일에 지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이 만사를 다 해결해 주신다고도하더군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다만 자기 문제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제 인생의 문제도 제대로 다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칭 "영적 멘토"들과 열성 종교인들에 대해 에바그리우스는 사도 야고보의 냉철한 말씀으로 맞섭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혀와 지루한 훈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42. 치유의 은사나 주님께 대한 인식의 은사를 추구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4:3)

 

 

요한 1서에서

43. 세상을 좇아 사람들 눈앞에 자기의 명예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헛된 영광의 생각에 맞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6-7 헛된 영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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