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기도 중에 일어나는 문제

 

 

1. 느낌과 상상 및 체험

 

유익 기도의 심적 면을 볼 때, 기도 중에 일어나는 느낌과 체험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그 정도와 내용도 여려 가지가 있으며 은혜로운 것, 유익한 것,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 타당하지 않은 것, 해로운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 평화와 기쁨과 위안

먼저, 기도 중에 느끼는 평화와 기쁨과 위안은 일반적으로 좋고 은혜로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평화와 기쁨과 위안 자체이시며 그 원천이시므로, 그분과 친교를 나눌 때 평화와 기쁨과 위안을 맛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평화와 기쁨과 위안을 맛들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좋은 것이긴 하지만,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이상적인 것은 하나님의 위로가 아닌 위로의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기도의 참뜻과 참된 자세는 자기 이익이나 자기만족을 찾고 자기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게끔 자신이 협력하는 것이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14:36)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기도야말로 참기도이며 이런 자세야말로 참된 기도의 자세이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과 위안을 얻으려고 기도하는 사람은 아직 자기중심적이며 하나님 중심이 아니다. 가령 평화와 기쁨과 위안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사실 기도 생활이 진전되고 기도가 심화되면서 사람은 기도 중에 느끼는 평화와 기쁨과 위안에 신경쓰지 않고 비중도 두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평화와 기쁨과 위안을 감각적, 감정적 차원보다 내면적 차원에서 맛들이게 된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과 위안을 얻으려고 기도하면 오히려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실행하려고 기도하면 그 결과로서 평화와 기쁨과 위안을 얻게 되는 법이다.

여러 종류와 단계의 시련과 무미건조를 거처 그리스도인은 점차 보다 깊은 차원에서 내면적 평화와 기쁨과 위안을 체험하게 된다. 감정적 기쁨과 위안은 어느 정도 기도에 도움이 되지만, 반드시 지성과 의지의 통제를 받아 지나치지 않도록 해야한다.

제대로 통제된 감각과 감정은 기도를 감미롭게 하고 기도의 흥미와 맛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매일 같은 기도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성직자, 수도자와 대체로 형식적으로 기도하기가 쉬운 남자들은 어느 정도 마음을 움직여 감동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감정적으로 흐르기가 쉬운 여자들은 감정을 억제하여 기도를 보다 내면화하고 심화하도록 해야 한다. 감각과 감정에 의지하는 기도는 뿌리가 약하여 기분과 분위기의 영향을 받기 쉽다. 이러한 기도는 실생활에서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기도 중에 느끼는 평화와 기쁨과 위안으로 기도를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감정적으로 열성을 느끼고 외면적으로 기쁨과 위안을 느꼈다고 해서 그 기도를 반드시 좋은 기도라고 할 수 없으며, 그 반대로 아무런 열성이나 기쁨, 위안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헛된 기도라고 할 수는 없다.

기도의 좋고 나쁨은 기도 중에 일어나는 느낌으로써가 아니라, 기도 후에 실생활에서 맺는 결실로써 평가해야한다. 기도가 끝난 후에 죄악의 극복, 그릇된 습관의 교정, 소임의 수행, 애덕의 실천, 주님과의 일치 등에 있어서 무엇인가 개선하거나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기도는 좋은 기도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기도 중에 아무런 평화도, 기쁨도, 위안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어려움과 분심을 겪었다 하더라도 그 후에 어떤 결실을 맺었으면 그 기도는 좋은 기도다. 다시 말해서 어려움 속에서도 성의를 다하여 진지하게 기도했으면 그 후 실생활에서 무언가 잘 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어떤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반면에 기도를 열성적으로 하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하고 행동에도 아무 변화가 없다면 그 기도는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없는 형식적 기도나 너무 감정적인 기도는 그것만으로 그쳐, 생활과 행동을 개선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끝으로 기도 중에 느끼는 슬픔, 두려움, 불안 등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겠다. 기도의 내용으로서 통회는 틀림없이 죄를 슬퍼하고, 하나님의 벌을 두려워하고 양심의 가책으로 불안해지는 요소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것이 통회의 전부도 아니고 중심적 요소도 아니다. 오히려 온전한 통회는 감정보다 의지의 행위로서 하나님 앞에서 지기 죄를 시인하고 미워하며, 죄송스럽고 부끄럽게 여기는 행위이며 앞으로 범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결심과 직결된다.

게다가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확신함으로써 그분께 대한 의지와 신뢰에 넘친 마음으로 오히려 기쁨과 평화와 찬양과 감사의 심정의 지니게 된다. 사랑스러운 하나님 앞에서 죄를 통회하는 것은 불쾌하기는커녕 상쾌하고 마음이 시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죄와 불행에 대한 슬픔, 두려움, 불안, 원한 등에 심정에서 해방되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도할 때 항상 또는 자주 슬픔, 두려움, 불안 등의 심정에 잠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하나의 심리적 장애가 될 수도 있다.

 

2) 상상

기도할 때 상상력을 구사하는 것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필요하기도 하다. 각자가 제 나름대로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분들과 친교를 나눈다면 기도는 보다 잘 될 것이다. 묵상 주제와 관련된 장면을 상상하여 자신도 그 장면 안에 들어가 행동하고 대화하는 것도 좋은 묵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을 이용하지 않고 기도문을 그냥 외우기만 하는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로 그치기 쉽고, 지성적으로 생각하기만 하는 기도는 무미건조한 기도가 되기 쉽다.

상상의 내용과 성질과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현실을 체험하듯이 생생하게 상상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영화를 구경하듯이 장면을 선명하게 상상한다. 또 어떤 이는 중심적 내용 또는 상징적 모양만을 간단하게 상상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아무 모양도 상상하지 못하면서 예민하게 느끼고 실감할 수 있다.

이처럼 상상과 느낌은 각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 있어서도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 상태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잠심하여 자기의식이 깊은 수준에 내려갈수록 상상과 느낌은 선명해지고 예민해진다.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정신적, 심리적 장애가 있는 자, 신경이 너무 예민한 자, 몸이 쇠약한 자, 또는 상상이 너무 지나쳐서 조절하기 어렵고 상상과 느낌에 끌려가는 자 등은 오히려 상상을 피하고, 가볍고 단순한 내용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본래 육을 지닌 인간이 무한하고 순수한 영이신 하나님과 친교하려면 상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친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분과 아무 중개 없이 직접 친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 때의 상상을 비현실적 망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불완전한 방법이긴 하나 진실로 하나님과 친교하는 것이다.

신앙의 신비는 인간의 모든 이해와 표현을 초월하므로 상상은 이 신비를 인간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특별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나님께서 바로 영이시다는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은 그분과 쉽게 친교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어느 곳에나 편재(遍在)하시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의식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그분과 친교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가지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분을 사랑할 수 있고,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고 예수님의 은총을 받는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상상하는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실제의 모양과 달리 상상한다 하더라도 그 원래의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모든 상상은 인간이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고 그분의 은총을 받는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다. 하나님을 아버지의 모습으로 상상하고, 성령을 비둘기, , 바람의 모습으로, 또한 예수님을 목자, 포도나무, 빛의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은 다 신 · 구약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상상은 무엇이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성경과 교리에 근거를 둔 것이어야 한다.

 

3) 특수 체험

기도 중에 특수한 체험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환각, 황홀, 투시, 방언, 치유, 예언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체험에 대해서는 신중히 판단하여 받아들이고 말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 문제를 다룬 여러 서적을 읽고 여러 가지 정신 수련법을 시도하고 연구해 온 결과적 견해로서 다음과 같이 요약, 서술하고자한다.

 

자연 현상으로서의 특수 체험

환각, 황홀, 투시, 방언, 치유, 예언 등의 특수 체험은 가톨릭, 개신교 이외에도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도사, 무당뿐 아니라 종교와 아무 관계가 없는 여러 초능력자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심층 심리학(depth psychology)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기 의식(self-consciousness)이 깊이 내려가 뇌파 주파수(brainwave frequency)l4-7(안정 상태, α level)이 될 때 인간은 내부 의식 수준(the level of inner conscious -ness)에 도달하며, 물질과 감각 세계를 떠나 정신과 내면세계에 들어가는데 주파수 7-4(최면 상태 θ level)가 되었을 때 특히 그러하다. 바로그때 시간, 공간, 감각의 한계를 초월하여 여러 종류의 정신력 또는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뇌파 주파수 4 이하는 무의식 상태(the level of unconsciou -sness, δ level)이며 잠든 상태이다.

사람이 잠이 드는 과정은 바로 자기 의식이 깊은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점차 안정 상태 최면 상태 무의식 상태로 되어가는 일과 다름이 아니다. 잠든 동안에도 뇌파 주파수는 4-0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변동한다. 뇌파주파수가 올라가 4에 가까운 상태가 되면 꿈을 꾸긴 하나, 다시 3-2-1의 심층 무의식 상태로 내려가면 잊어버리게 된다.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은 심층 무의식 상태 무의식 상태 뇌파 주파수 4 최면 상태 안정 상태의 순서가 된다. 자기 의식이 점차 올라가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저절로 잠드는 과정을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유도하여 최면 상태를 거쳐 무의식 상태(뇌파 주파수 4 이하) 직전까지 접근하려는 노력이 바로 정신 수련이다. 이것을 흔히 정신통일 또는 정신 집중이라고 한다. 정신 수련으로 의식을 유지하면서 뇌파 주파수 4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정신은 맑고 선명해지고 일점에 집중하게 되며, 지성은 자신과 사물의 진상을 파악하고, 의지는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감각,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보다 큰 정신력과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정신력 또는 초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는 잠재한다. 선천적으로 대단한 힘을 소유하고 발휘하는 자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수련으로 계발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정신력과 초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은 근본적으로 자기 의식을 깊은 수준으로 내리면서 무의식 상태 직전까지 접근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은 다양하며, 심리적, 정신적, 신체적 수련, 또는 종교적 수련으로서 무수히 존재한다. 여러 정신 수련 단체 또는 종교 단체가 어떤 방법 하나를 들고 절대적인 것으로 강조하곤 하지만 사실은 다 상대적이며 효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방법은 사람에 따라 해로울 수도 있다. 각자가 자기 체질과 성질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자신에게 맞게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조절은 어느 정도의 기초 지식과 현명을 필요로한다.

인간이 물리적, 감각적 에너지 이외에 신경, 자기 의식,잠재의식 등과 관련된 정신적 에너지를 소유하며, 정신력과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19세기 말에 알려졌으며, 금세기 중엽부터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정신력학(psychotronicy), 초심리학(para psychology), 또는 심령학(psychicism)이라고 불리는 이 미래의 과학은 주로 영국, 러시아, 미국 등에서 조직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 학문에 의하면 정신력 또는 초능력은 7가지로 분류되는데, 즉 염력(念力), 염사(念寫), 분신유체(分身遊體), 투시(透視), 예언(豫言), 자동서기(自動書記), 심령치료(心靈治療)이다. 현재까지 나온 성과로서는 이 7가지 현상의 관찰과 능력 계발의 방법에 관한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뿐, 체계적 분석이나 원인 규명 또는 어떤 법칙이나 공식 확립까지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과학은 생겨난 지가 얼마 안 되며, 그 연구 대상이 기존 과학의 대상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속하는 데다가 또한 너무나 미묘하고 섬세해서 이를 연구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을 종교적인 것(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으로 인한 기적, 또는 악마의 직접적 영향으로 인한 현상)으로 생각함으로써 종교와 미신과 정신 질환, 그리고 자연 과학 등이 무질서하게 섞여 큰 혼란과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형편이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특수한 체험이나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기 마련이다. 정신 질환에서 오는 현상을 악마에 접한 것으로 보거나 꿈과 환상에 나타난 것을 초자연적인 일로 보는 것 따위이다. 물론 모든 죄악과 질병은 악마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고,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해야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악마가 들린 일이라든가 하나님이 직접 간섭하시는 기적은 지극히 드문 일임이 거듭 강조되어야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일은 교회의 공식적 인준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거의 모든 특수 체험과 특수 현상은 자연 세계에 속하는 것이므로 초자연 세계나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앞으로 정신력학, 초심리학, 심령학 등이 점차 발전되어 간다면 이러한 체험과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할 날이 올 것이다.

 

기도 중의 특수 체험

자기 의식을 깊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는 종교적인 방법도 있다. 기도와 묵상의 여러 방법은 자기 의식을 낮추는 것이 그 목적은 아니지만, 아주 효과적으로 자기 의식을 내려가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신자들이 기도와 묵상을 할 때 심리적으로 안정 상태와 최면 상태에 들어간다. 이것은 기도의 자연적, 심리적 측면이다. 이 상태에서 투시, 방언, 치유, 예언 등의 정신력을 발휘하는 현상이 흔히 일어난다.

이 현상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순수한 자연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자가 아닌 사람도 기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투시, 방언, 치유, 예언 등의 정신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신자의 경우 이 정신력을 발휘하기 위해 자기 의식을 내리는 효과를 바로 기도가 일으켰을 뿐이다. 그 신자가 기도가 아닌 다른 자연적 방법으로도 자기 의식을 내려 투시, 방언, 치유, 예언 등의 똑같은 정신력을 발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아도 이것이 초자연적 현상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 혹은 어떤 성인의 모습을 보거나 그 현상도 거의 다 자연적 현상이다. 신자라면 누구나 무의식 중에 잠재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예수님, 성인의 특정한 모습이 특별한 상태에서(, 환상, 특히 자기 의식이 내려갔을 때) 의식 수준에 선명하게 올라올 수 있다.

 

특수 현상의 정가 기준

기도 중에 일어나는 특수 현상이 자연적 현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대별해서 초자연적 은혜와 자연적 은혜로 나뉜다.

초자연적 은혜는 모든 성사, 기도, 죄의 용서, 주님께 대한 사랑 등이다. 기적도 초자연적 은혜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적은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으로 일어나는 가시적(可視的) 사건으로서 자연의 법칙과 힘을 초월한 비범한 것이며 반드시 어떤 종교적 표적을 지닌다. 이는 교회가 공적으로 기적임을 인준한 것이어야 한다. 성사의 외적인 표시는 가시적이긴 하나 주어지는 은혜는 불가시적(不可視的) 은혜이므로 초자연적 은혜이지만, 기적이 아니다.

자연적 은혜는 우리의 삶, 활동, 건강, 재능, 가정, 재산 등 신앙과 직접 관계가 없는 모든 좋은 것들이다. 자기 의식이 깊은 수준에 내려가 정신 통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자연적 은혜이며, 그 상태에서 가지는 거의 모든 특수 체험도 자연적 은혜이다. 특수 체험의 결과와 열매로서 죄의 통회, 겸손,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등의 초자연적 은혜를 받는 경우도 있으나, 체험 자체는 자연적 은혜인 것이다. 가령 어떤 체험 자체가 아무리 신앙과 직접 관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결코 기적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교회의 공적 인준 없이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하며, 교회는 결코 이러한 현상을 기적으로 인준하지 않는다.

특수한 현상과 체험은 유익한 것, 해로운 것, 그리고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은 것이 있다. 이 구분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익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해롭거나 혹은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을 수 있고, 또한 원래 유익한 것인데도 사람에 따라 잘못 받아들여 해로워질 수도 있다.

특수 현상과 체험의 평가는 그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맺는 열매를 보고 해야 한다. 좋은 열매를 맺는 현상과 체험은 좋은 것이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거나 어떤 체험을 가진 후 그것을 계기로 해서 겸손, 순명, 숨은 내적 생활, 회개, 온전한 자기봉헌, 사랑, 인내, 기도 생활과 가정 생활에 대한 충실 등을 조금이라도 더 잘 실천하거나 실천하려고 한다면 그 현상과 체험은 좋은 것이다. 가령 객관적으로 특수한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좋은 열매를 맺었으면 좋은 것이다.

한편 나쁜 열매를 맺는 현상과 체험은 나뿐 것이다. 어떤 현상이나 체험이 있은 후 그것을 계기로 해서 교만, 독선, 불순명, 시기, 질투, 경솔, 다툼, 미움, 또는 정신적, 심리적, 육신적 장애 등이 생긴다면 그 현상과 체험은 나쁜 것이다. 가령 그것이 아무리 거창하고 신기하고 감미롭고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나쁜 열매를 맺으면 나쁜 것이고, 좋은 열매도 나쁜 열매도 맺지 않으면 무익하고 덧없는 것이다.

특수 현상과 체험은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켜 사로잡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해로워질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현상이나 체험이 있다 하더라도 마음을 굳게 가져 그 일에 집착하거나 붙잡히지 말아야 하며 너무 크게 받아들이거나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아야한다. 그 일을 영적 지도자에게만 단순하고 겸손하게 보고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은혜를 받을수록 겸손하게 숨은 생활을 충실히 해 가야 한다.

 

4) 악마 들림

예수님의 강생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이후 사람에게 악마가 들리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악마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으나, 그것은 간접적 활동이다. 세상의 사물과 인간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사람을 죄로 유혹함으로써 세상에 악과 불행을 일으키거나 병을 일으키는 것 따위이다.

그에 비해서 사람에게 악마가 들릴 경우 악마는 직접 활동한다. 악마는 사람의 육신에 들어가 직접 육신을 장악하고 다스리며, 사람의 감각과 감정과 상상력을 직접 공격하여 악의 방향으로 이끈다. 그래서 악마가 들린 것을 '악마가 소유한다(adiabolic possession, Possessio diabolica)'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악마는 사람의 육신을 직접 공격하거나 장악함으로써, 즉 육신을 통해서만 영혼에게 영향을 주지 직접 영혼을 가해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지성과 의지도 직접 공격하거나 장악할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는 감각, 감정, 상상력 등을 장악하여, 그 결과 지성과 의지를 혼란시키고 마비시킬 수는 있다.

악마가 들렸을 때 나타나는 표시는 거룩한 것에 대한 과격한 모독과 어떤 비범한 현상이다. 하나님, 예수님, 성인, 또는 성사와 성물에 대한 심한 모독과 더불어 이상한 언어를 말하거나 알아듣는 일, 숨겨진 것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알아내거나 굉장한 힘을 발휘하는 현상 등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거의 모두는 악마가 들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 강조해야 한다. 먼저 정신병이나 신경 질환에 걸린 신자는 발작이나 심한 상태가 일어났을 때 흔히 평소에 지냈던 신앙의 열성 또는 갈등을 어떤 모독적 행위와 말로써 외부에 드러낸다. 예로 어떤 신자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면서 십자고상이나 십자가를 던지고 부수었다해서 즉시 악마가 들렸다고 판단하지는 말아야 한다.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신앙에 대한 갈등, 반감, 혐오 등의 감정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상황에서 정신병의 발작이나 신경 질환의 심한상태가 겹쳐져서 드러날 때 마치 악마가 들린 것 같이 보이고 그렇게 느끼게 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악(, 불행, 고통, , 죽음)은 악마의 간접적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보통의 질환보다 정신병과 신경 질환이 악마의 보다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간접적 영향으로 인한 것이지, 직접 악마가 들린 것이 아니다. 또한 가벼운 죄를 우발적으로 범하는 상태보다 심각한 죄를 상습적으로 범하는 상태가 악마의 보다 큰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도 악마가 들린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악마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여러 단계가 있으며, 모든 사람은 악마의 영향이나 유혹을 어느 정도 받고 있다.

지극히 드문 경우지만 악마가 사람의 육신과 감각, 감정, 상상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직접 영향을 주는 일, 즉 악마가 들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 외적 현상은 정신병이나 신경 질환의 증상과 비슷하므로 이것들을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가지가 겹쳐서 함께 일어날 수도 있다. 두 가지 다 위기의 때가 있고 평온한 때가 있다. 위기의 때는 육신이 심한 발작 또는 경련을 일으켜 큰 소리로 난폭하고 모독적인 말을 하거나 그러한 행동을 한다. 평온한 때는 위기의 때에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그 말과 행동은 정상적인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역사적으로 확실한 것은 과학과 의학, 특히 정신 병리학과 심리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악마 들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줄어들었으며 자연적인 병으로 받아들이고 의학적으로 치료하려는 자세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 교회가 악마 들림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일은 거의 없다.

 

참고로 가톨릭에서 시행하는 구마식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구마식(exorcism)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세례식과 성수 축복식에 나오는 일반적 구마식으로 인간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악마와 그 영향을 쫓아내는 예식이다. 또 하나는 특수한 구마식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악마가 들린 사람에게서 악마를 쫓아내는 예식이다. 교회의 세밀한 조사 결과 악마가 들렸다고 공적으로 선언이 되면 주교는 한 사제를 구마식 집전자로 임명한다. 사제는 우선 악마가 들린 사람에게 보속을 행하게 하고 고해성사를 받도록 한다. 영성체를 자주 하고 기도와 보속을 계속 바치게 하고, 특히 성수로 성호를 긋도록 한다. 이 모든 일의 최종 과정으로서 구마식을 집전한다.

 

 

2. 잡념

 

기도 생활에서 누구나 느끼는 어려움의 하나는 잡념이다. 잡념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찾아내고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제 주요한 원인과 그 대책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잡념의 원인과 그 대책

 

기도의 준비 부족

기도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제대로하지 않으면 잡념이 일어나기 쉬우므로 앞에서 설명한 기도의 준비를 간단하게라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묵상하기 전에는 꼭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마음의 불안과 죄책감

평소에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기도에 전념하기가 어렵다. 지나친 흥분, 불안, 두려움, 고민, 슬픔, 실망 등을 피하고 분노, 미움, 원한, 복수심 등을 없애야 한다. 시기, 질투, 열등감, 지나친 경쟁 의식, 욕구 불만도 기도에 지장이 되고, 산만한 사고와 세상 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염려도 방해가 된다. 자기 기분과 감정에 따라 사는 사람은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없고 사고가 무질서하므로 역시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다.

기도의 가장 큰 원수는 죄이며, 죄책감은 주님과의 친교인 기도를 거의 불가능하게 한다. 죄의 상태에서 바칠 수 있는 기도는 죄를 시인하고,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이다. 용서를 받아 주님과 화해했을 때에야 비로소 그분과 친밀한 친교를 나눌 수 있다.

 

참고로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그렇다고 해서 고해성사를 볼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소위 소죄는 불완전한 통회로 언제든지 용서를 받을 수 있고, 대죄는 완전한 통회로서 그 자리에서 용서를 받되, 단지 나중에 고해성사를 본다는 조건이 붙어 있는 것뿐이다.

 

 

인격적 친교의 의식 부족

기도할 때 주님의 현존과 그분과의 친교의 의식이 선명하지 못하면 분심이 들기 쉽다. 그러므로 주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그분과 친밀하고 다정한 대화를 나누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님은 항상 나를 지켜보시고 나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신다. 나도 이에 응답하여 그분과 마음을 나누려고 한다. 대화의 내용은 반드시 기도문의 내용과 묵상 주제가 아니라도, 그때 자기가 느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말씀드리면 된다. 주님께 대한 사랑, 찬양, 감사, 예배, 신뢰, 의탁, 믿음, 순명, 자기 봉헌, 통회, 간청 등의 심정을 다양하고 절실히 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을 제대로 활용하여 마음을 움직이고, 진정 살아 계시는 분과의 살아 있는 친교를 나누어야 한다.

한편 기도문의 내용이나 예식의 외면적 형식에 신경 쓰고 어떤 문장, 글씨, 개념에 주의를 집중하려고 할 때 기도는 심심하고, 지루하고, 답답해지며 잡념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도는 생명이 없는 개념을 지성으로 생각하는 행위라기보다 살아 계시는 분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행위이다. 감각이나 지성에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잡념이 생기고, 내면과 사랑에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잡념이 덜 생길 뿐만 아니라 기도의 참맛을 볼 수 있다.

 

 

신체적 지장

신체의 질병, 고통, 피로 등은 기도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한다. 특히 깊이 잠심하는 묵상, 관상을 어렵게 한다.

신체의 질병과 고통으로 인하여 기도를 제대로 바치지 못한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병과 고통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된다. 주님의 수난을 생각하며 자기의 고통을 주님의 고통과 합쳐 할 수 있는 대로 사랑과 찬양과 감사의 마음으로 봉헌하여 자기 죄의 보속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제물로 바치도록 한다.

몸이 아프거나 피로할 경우 깊이 잠심하기 어려우므로, 보다 가볍고 간단한 방법으로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 독서를 주로 하는 묵상을 한다든가, 어떤 기도문이나 성경 구절을 외우거나, 감실이나 십자고상, 상본 등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기도는 신체와 정신이 가장 좋은 상태에서 바치는 것이 이상적이므로 하루의 일과를 수행하면서 피로하지 않은 시간에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잠심하는 묵상과 관상은 육신이 약간 피로하고 배고픈 상태에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시간은 새벽, 점심이나 저녁식사 전이 좋으며 식사 후와 수면 직전은 좋지 않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일을 하고 나서 계속적으로 묵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시작하기 전에 몸을 가볍게 움직여 푸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에 대한 소심함

기도를 잘 하려고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걱정하는 것이 오히려 잡념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어려움은 소심한 사람 또는 양심과 신경이 너무 예민한 사람에게 흔히 일어난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에 대한 지나친 의무감과 자책감을 떨어내야 하며 형식적으로 정확하고 완벽하게 바쳐야 한다는 완벽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어떤 부분을 소홀히 바쳤거나 분심이 들었다고 해서 그 부분을 다시 반복해서 외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나간 기도를 어떻게 바쳤느냐에 신경쓰지 말고, 항상 이제 시작하려는 기도를 잘 바치려고 노력하면 된다.

자신이 불완전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을 평온하게 가져야 한다. 자신을 인내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용서해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기도를 불안, 두려움, 자책감 등의 심정으로 바치기보다 차분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기꺼이 즐기면서 바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

위에 나열한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없는데도 잡념이 생길경우, 다음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이다. 불완전한 정신과 육신을 가진 인간이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심이 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과 지성과 의지, 육신과 감정과 감각에는 한계와 결함이 있으며, 이들은 기도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지장이 되기도 한다. 이 사실을 시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기도 중에 악의로, 또는 고의적으로 다른 생각을 한다면 잘못이 될는지 모르나, 저절로 다른 생각이 떠오르거나 자연히 분심이 드는 것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시련

특정한 원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도에 무미건조함을 느끼고 잡념이 생기는 또 하나의 원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련이다. 그냥 기도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기도를 하고 싶고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가 어렵고 기도에서 내적 위안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시련은 여려 종류와 단계가 있으며, 기도의 여로에서 여러 차례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단순하고 가벼운 시련, 자연적 요인으로 인한 시련이 있는가 하면 까다롭고 무거운 시련, 초자연적 요인으로 인한 시련도 있다. 자신의 노력과 인내로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이 있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시련도 있다.

시련은 긍정적 의미와 목적을 지닌다. 인내와 사랑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죄를 보속하고, 마음을 정화하고, 겸손하게 하며, 세상 일에서 이탈케 하고 더욱더 주님께 의지하게 하고 주님과 일치하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시련은 사람을 올바르고 내면적이고 영적인 기도로 인도한다. 일반적으로 기도의 초기 단계에서는 감각적이고 형식적인 방법으로 기도하며 감정적이고 표면적인 만족을 누리게 된다. 이 단계에서 겪어야할 시련은 바로 감정적이고 표면적인 만족을 빼앗겨 아무 만족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 시련을 인내와 사랑으로 받아들이면서 보다 정신적이고 내적인 방법으로 기도하면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또 다른 시련을 겪어야 한다. 즉 이번에는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만족마저 빼앗겨 아무 만족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기도가 아무리 내면화되었다 하더라도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기만족을 위해 기도하거나 자기중심적 자세로 기도하기 마련이다. 이 내면적 자기만족을 빼앗긴 시련을 역시 인내와 사랑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제 주님을 만족하게 해드리는 일을 자기의 만족으로 하는 '하나님 중심적 자세'를 갖게 되고 주님의 기쁨을 자기 기쁨으로 하는 순수한 영적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모든 기도의 목표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련 없이 있을 수 없으며, 이 시련을 인내와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달성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자기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바치는 것이다. 즉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움직이려고 기도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움직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일반적 대책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다

기도 중에 잡념이 생졌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동요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많은 잡념이 생긴다 하더라도 마음을 침착하게 유지하고 아무리 심한 분심이 든다 하더라도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잡념이 생겨도 그대로 놓아둔다든가 분심이 들어도 아무 노력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잡념을 몰아내는 노력을 하되 침착한 마음으로 하고, 분심을 없애는 노력을 하되 평온한 마음으로 한다는 뜻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려는 노력은 좋으나, 그 열심과 노력이 기도가 잘 되지 않을 경우, 마음을 불안하고 성내게 하거나 가책을 느끼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잡념을 몰아내기는커녕 오히려 잡념이 심해지고 다른 잡념마저 더 불러 일으키게된다. 잡념이 생기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며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잡념에 반응하는 우리의 심리 상태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흥분, 초조, 분노, 불쾌감 등의 심정으로 잡념을 몰아내려고 하지 말고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과 하나님께 의지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잡념을 없애도록 해야 한다.

 

기도에 집중하는 노력을 꾸준히 반복한다.

잡념이 생겼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잡념을 몰아내고 기도에집중하는 노력을 꾸준히 반복해 가야 한다. 아무리 자주 잡념이 생긴다 하더라도 몇 십 번, 몇 백 번이라도 기도에 돌아가는 노력을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기도가 진정 가치 있는 기도다. 어떤 의미에서 아무 잡념도 어려움도 없이 순조롭게 바친 기도보다 수없이 생기는 잡념을 그 때마다 몰아내며 인내로이 계속했던 기도가 더 귀중하고 가치 있을 것이다.

 

잡념을 무시하고 기도의 내용을 보다 흥미 있게 한다

잡념과 맞서서 직접 다투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잡념에 신경을 쓰고 그 내용을 이러 저리 따지고 직접 몰아내려고 애쓰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잡념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대하고 이를 무시하는 것이 좋다. 그 잡념보다 더 흥미 있게 주님을 생각하고 그 생각에 관심을 돌림으로써 잡념이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정신이 있는 한 항상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다. 그 내용은 보통 자기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는 것이라든가 신경을 쓰는 것들이다. 기도 중에 잡념이 생기는 까닭은 바로 주님보다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고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에 집중하려면 다른 어떤 일보다 주님을 생각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고 신경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기 마음에 드는 주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한다든가, 자기가 좋아하는 기도문이나 성경 구절을 정성스럽게 외운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가장 절실히 느끼는 심정을 주님께 털어놓음으로써 기도를 보다 흥미 있게 할 수 있다. 기도의 내용과 주님을 생각하는 데 있어 아무 흥미도 느끼지 않고 억지로 형식적으로 기도를 계속해 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것이 잡념이 생기는 원인인 것이다.

 

 

보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에 생각을 집중한다

눈감고 묵상하는 것이 어렵고 계속적으로 잡념이 생길 경우, 아예 눈을 뜨고 어떤 성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십자고상, 감실, 성모상, 또는 어떤 상본을 응시하면서 그분께 생각과 마음을 집중한다.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단순하고 평화롭게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잡념이 생긴다 하더라도 무조건 그 성물에 마음을 돌리고 시선을 집중시킨다. 점차 마음이 가라않고 집중되는 대로 주님과 간단한 대화와 단순한 친교를 나눈다.

눈을 감아 묵상할 때도 잡념이 자꾸 생길 경우, 어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생각보다 주님의 구체적인 모습을 생각하고 그분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면 묵상을 집중하기가 쉬울 것이다. 누구나 자기에게 제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예수님의 특정한 모습이란 것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죄인을 용서하시고 병자를 고처 주시는 예수님, 소년 예수님, 아기 예수님 등. 자기가 제일 친밀감을 느끼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고 그분과 어울리는 것이 잡념을 없애는 좋은 방법이다.

 

 

묵상 방법을 조절한다

묵상 때 비교적 심하게 계속적으로 잡념이 생길 경우 그 방법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상 또는 관상에 가까운 방법으로 묵상하는 사람은 보통 묵상을 하는 것이 좋다. 즉 눈을 감아 순수히 정신적 명상을 하기보다 책을 읽는 시간을 늘리고 성찰과 감동적 대화의 시간을 줄인다. 혹은 책을 조금씩 읽으면서 그 사이사이에 간단히 묵상하는 방법을 택한다. 다시 말해서 영적 독서를 아주 천천히 하는 식으로, 또는 각 구절 사이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그 내용을 잠시 생각하는 식으로 할 수 있다. 혹은 십자가의 길 또는 다른 기도문을 천천히 외워도 된다. 단순한 염도로써 어떤 일점에 깊이 잠심하는 것보다 감동적 염도로 여러 가지 심정과 대화 내용을 다양하고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도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11장 기도중 일어나는 문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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