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기도의 활동과 일치

 

 

1. 기도와 활동의 일치의 근거

 

지금까지 설명한 기도의 결론적 주제로 기도와 활동의 일치에 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기도와 활동 사이에 대립과 갈등과 분열이 있음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체험하는 사실이다. 이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분열을 없애고 기도와 활동 간에 화목과 일치를 실현하는 것은 각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하겠다. 이는 누구나 전 생애를 걸고 수행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실로 기도와 활동을 조화, 통합하려는 것이 그대로 우리의 신앙 생활이 되고, 영적 노력이 된다. 올바른 신앙 생활과 현대적 영성에 있어서는 기도에 열중한 나머지 활동을 소홀히 하여서도 안 되며, 또한 활동에 몰두한 나머지 기도를 경시하여서도 안 된다. 기도와 활동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생활 속에서 각자의 인격 안에 이 두 가지를 통합, 통일시키는 것이다. 결국 기도와 활동은 단 하나의 현실, 단 하나의 체험이 되어야하며, 이것이 바로 현대 신앙생활의 목표이고 오늘날 영성의 이상이라고 하겠다. 각 그리스도인은 꾸준한 노력으로 한평생을 통해 자기 안에 기도와 활동을 조화, 통합하여야한다.

기도와 활동의 일치는 폭넓게 생각할 때 신앙 생활과 사회 생활의 일치, 즉 하나님 체험과 세상 체험의 일치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영성과 인격의 일치, 하나님 사랑(첫째가는 계명)과 이웃 사랑(둘째가는 계명)의 일치와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치는 결국 하늘과 땅의 일치, 하나님과 세상의 일치에 귀착된다.

세상은 원래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의 섭리로 존재하며 하나님께 돌아갈 것으로서 하나님과 일치하고 있다. 하나님이 당신의 존재와 생명과 사랑과 힘의 표시로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범신론적 개념을 배척하면서, 세상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생명과 사랑과 힘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어 세상의 일부분이 되신 강생의 신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 당신과 세상 간에 보다 긴밀한 일치를 원하셨고 실현하셨고 또 체험하셨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 사실은 또한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도 자기 안에 하나님과 세상을 일치시키고 신앙과 삶을 통합하며 기도와 활동을 조화시킬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 체험과 세상 체험, 신앙 생활과 사회 생활, 그리고 기도와 활동의 일치의 근거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오며, 특히 하나님의 창조와 강생의 신비에 있는 것이다.

 

 

2. 최고의 이상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참인간으로서 당신 안에 하나님과 인간이 완전히 일치되어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의 인격과 생활 안에 하나님 체험과 세상 체험, 신앙과 인간성, 그리고 기도와 활동이 절대적으로 조화, 통합되어 있다. 예수님만큼 철저하게 신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산 사람은 없으며, 그분만큼 기도와 활동을 단 하나의 체험으로 종합시킨 사람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의 최고의 걸작이요, 강생 신비의 절대적 실현이다.

모든 인간은 이 예수님의 모습을 향하여 창조되었으므로, 그분의 모습을 짧으면 짧을수록 인간으로서 완성되어 하나님의 모습을 짧게 된다. 예수님의 모습을 여러 면에서 본받을 수 있으나, 결국 모든 것은 그분 안에 실현된 하나님 체험과 세상 체험의 일치, 신앙과 삶의 통합, 그리고 기도와 활동의 조화를 본받는 일에 포함될 것이다.

 

 

3. 기도와활동의 대립에서 조화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 기도와 활동 사이에 대립 또는 갈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대립을 해소하고 갈등을 극복하여 기도와 활동 간의 조화를 이루면 이룰수록 사람은 내면적으로 통일되고 심리적으로 안정된다. 한편 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못할수록 내면이 갈라져 이중적 행동을 취하게 되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해진다. 그래서 갈등이 심할수록 신앙 생활은 어려워지고, 갈등이 해소되어 조화를 이를수록 신앙 생활은 원만하고 복된 생활이 된다.

기도와 활동 사이에 대립 또는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활동에 있을 수도 있고 기도에 있을 수도 있다. 먼저 활동에 너무 바쁜 나머지 기도할 만한 심리적 여유와 관심이 없을 경우가 있다. 어떤 활동에 지나치게 신경쓰고 걱정하거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흥미를 느낄 때 바로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이다. 예로서 학생이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해서 기도를 전혀 하지 않거나 젊은이가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해서 주일 예배를 빠뜨리는 것 등이다. 외면적으로는 기도를 제대로 하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기도에 대한 싫증과 혐오를 지닐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육을 따라 사는'(8:5-8; 5:16-21) 상태인데, 이 상태에서는 영적 일과 기도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잃고 싫증과 혐오를 느끼게 된다. 육을 따라 사는 사람은 감각적이고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재물, 명예, 권력 등에 흥미를 느껴 그것들에 마음이 사로잡힌다. 그런 사람이 '영을 따라 살기'(8:9-17, 26-27; 5:22-25)위해서는 쾌락과 이기심과 교만을 극복하고, 사물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올바르게 이용하면서 점차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에 흥미를 느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5:22) 이 열매는 우리의 협력과 노력 없이는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활동을 기도에 조화시키려면 활동에 마음이 빠지지 않도록 하고, 활동과 자기 지성 사이에 일종의 심리적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활동을 지성으로는 법정하게 평가하고, 의지로는 침착하게 행하고, 마음으로는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도와 활동 간에 생기는 갈등의 둘째 원인은 기도에 있을 경우도 있다. 시간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기도에 몰두한 나머지 가정 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사회 생활을 경시하는 일 따위이다. 기도를 현실 도피와 문제 기피를 위한 수단으로 삼거나, 기도로써 어떤 위안과 만족만을 얻으려고 한다든가 신기한 체험을 가지려고 하는 자세도 잘못된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도와 신앙이 조금이라도 우리를 염세주의나 비관주의, 또는 인간혐오 등의 상태로 이끈다면 그 기도와 신앙은 어딘가 잘못 되고 있다.

 

 

4. 기도와 활동의 분리에서 일치로

 

기도와 활동이 서로 부딪치고 대립하지 않더라도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분리된 상태에서 신앙 생활을 할 경우도있다. 기도할 때는 기도하지만 기도가 끝나 실생활에서 활동할 때는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이다. 기도와 활동 간에 아무 관련도 없다. 이것을 범위를 넓혀 말한다면 자기 인격과 생활 안에 신앙의 세계와 인간적 세계를 따로 분리시켜 놓고 사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인으로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와 장소와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와 달리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와 장소와 경우가 있는 생활 자세이다. 이는 좋지 않게 말하면 이중적 행동, 이중적 인격 또는 위선적 생활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라도 신앙인임과 동시에 인간으로서 일관성 있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격과 생활 안에 신앙의 차원과 인간적 차원을 점차 접근시켜 일치시키고 단 하나의 차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생활은 기도이다, 기도는 생활이다, 활동은 기도이다, 기도는 활동이다. 라는 말들이 있다. 이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르다. 기도의 개념과 분류를 똑바로 잡아야 이 말들의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냥 막연하게 덮어놓고 생활은 기도이다, 활동은 기도이다 하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냥 사는 것은 기도가 아니요, 착하게 사는 것도 그것만으로는 기도가 되지 못한다. 그냥 활동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요, 선하고 거룩한 활동을 하는 것도 그것만으로는 기도가 되지 못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도는 하나님을 자녀다운 마음으로 '아빠' 라고 부르는 의식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생활과 활동이 별은 의미에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 생활과 활동 자체가 하나님을 아빠로 모시는 의식적 표현, 적어도 잠재적 표현이 되어야한다. 다시 말해서 생활과 활동이 하나님을 아빠로 모시는 사랑, 찬양, 감사, 예배, 통회, 의탁, 신뢰, 자기 봉헌, 순명, 간구 등의 의식적 표현 또는 잠재적 표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활과 활동을 기도화 하는 노력을 오랫동안 꾸준히 반복, 수련함으로써 점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영성의 이상, 즉 활동 속의 관상 또는 관상 속의 활동이 실현되는 것이다.

 

 

5. 기도와 활동의 일치의 원리

 

1) 기도는 활동으로 열매를 맺는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일치이며, 특히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데에 있다. 보통 기도는 자기 소망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사 하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기도의 최종목적은 자기 소망이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청하고 노력하는 데에 있다. 자기 뜻을 실현케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인 것이다.

올바른 기도는 반드시 활동에 열매를 가져온다. 정성껏 바친 기도는 틀림없이 생활의 개선에 직결된다. 사실 기도를 올바른 자세로 진지하게 바쳤으면 그 뒤에 자기 행동을 고치고 일을 사랑으로 행하게 된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리하여 진지하고 바른 기도는 사람의 행실을 변하게 하여 점차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만을 원하고 실행하게 될 것이다.

그 반대로 실생활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기도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더 실행하는 데에 연결되지 않는 기도는 올바른 기도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기도는 아무리 기도 증에 큰 위안과 기쁨을 느꼈다하더라도, 마치 열매를 맺지 않는 과일 나무와 같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좋고 나쁨은 기도 중에 가졌던 체험으로써가 아니라 기도가 끝난 후 맺었던 열매를 보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실생활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기도는 주로 너무 추상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형식적인 기도이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모든 기도는 자기 반성과 생활 적용을 포함하고 어떤 결심을 세우고 실천케 하는 그러한 기도이어야 할 것이다. 주님과의 대화 내용도 자신의 구체적 상황을 의식하여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기도와 대화야말로 자신의 생활을 고치고 개선하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2) 기도는 활동을 내면에서 활성화한다

기도와 활동의 일치는 마치 영혼과 육신의 일치와도 같다. 영혼이 육신의 생명 원리로서 육신을 내면에서 살리고 활성화하듯이 기도는 활동의 생명 원리로서 활동을 내면에서 활성화하고 성화한다. 영혼이 육신의 어떤 한 부분이 아닌 모든 부분에 침투하여 전체적으로 자리 잡아 내면에서 육신을 움직이듯이, 기도는 활동의 전체에 스며들어가 내면에서 활동을 움직인다. 이리하여 영혼과 육신이 하나가 되어 온전한 인간이 되듯이 기도와 활동도 하나가 되어 온전한 그리스도교적 신앙 생활을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도는활동의 영혼으로서 활동 전체의 원동력과 활력소가 되어야 하며, 생활 전체의 모터나 누룩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도가 마음의 깊숙한 데에서 우러나오게 해야 하고, 내심의 간절하고 절실한 드러남이 되도록 해야 한다. 활동 중에 바치는 기도는 특별히 활동을 내면에서 활성화하고 성화하는 모양으로 바치고, 또한 활동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 찬양, 감사, 예배, 통회, 의탁, 신뢰, 봉헌, 순명, 간구 등의 표현이 되도록, 그 모양으로 바치는 것이다. 활동 하나하나를 시작할 때 봉헌하고, 끝마칠 때 감사하며, 활동 중에도 자주 여러 가지 심정을 하나님께 표명하도록 해야한다.

기도를 단지 생활의 어떤 부속적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루의 일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고 얼마나 많은 기도를 바치느냐 하는 것보다는(그것도 사실 증요하지만) 하루 생활 전체를 기도로써 얼마나 활성화하고 성화하고 봉헌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은 자기 생활과 활동을 점차 내면에서' 기도화 해나간다.

 

3) 기도를 내면화하고 활동을 순수화한다

우리 생활에는 기도할 때와 장소가 있고 활동할 때와 장소가 있다. 기도할 때는 활동하지 않고, 활동할 때는 기도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형식적이고 외적인 기도, 또는 외우는 기도나 묵상에 관한 것이지, 기도 전반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활동을 중단하고 조용한 곳에서 암거나 무릎을 끓고 바쳐야할 기도가 있고, 활동하면서 계속적으로 바칠 수 있는 기도가 있다. 사실 활동하면서 여러 기도문, 화살기도 등을 바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자유기도를 바치거나 주님과의 대화를 자유로운 모양으로 나눌 수 있다. 활동 중에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것, 그분의 사랑을 느끼는 것, 수난 장면을 상상하는 것 역시 기도이다. 주님께 대한 사랑, 찬양, 감사, 예배, 통회, 의탁, 신뢰, 봉헌, 순명, 간구 등의 심정을 말 없이 순간적으로 들어내는 것도 기도이다. 사물 안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고 찬미하고, 사건 안에서 그분의 섭리를보고 순명하고 또한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보고 대하는 것도 기도인 것이다.

기도가 소위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를 넘어서 언제 어디서나 바쳐지게 되는 과정은 바로 기도가 내면화되는 과정이다. 낭독하는 기도에서 외우는 기도로, 외우는 기도에서 자유로운 대화의 기도로, 그리고 대화의 기도에서 말없이 친교하는 기도로 옮아간다. 다시 말해서 입과 눈과 귀를 사용하는 감각적이고 외적인 행위에서 점차 정신적이고 내적인 행위로 변해 가는 것이다. 또한 기도문을 따라 낭독하는 형식적 기도에서 머리로 생각하는 기도로 생각하는 기도에서 의식하고 느끼는 기도로, 그리고 의식하는 기도에서 사랑하는 기도로 옮아간다. 이것도 역시 기도가 지성적 행위에서 점차 의지적 행위, 영적 행위로 변화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내면화, 단순화, 순수화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기도는 사람의 활동에 더욱더 깊이 스며들어가, 점차 기도와 활동의 항구적 일치가 이루어지고, 그 일치의 농도가 점점 더 짙어진다. 또한 기도는 내면화되면서 사람의 인격과 생활에 더욱더 깊이 침투하여 그의 인격과 생활까지 기도화한다.

한편 활동도 순수화되면 될수록 기도를 흡수하고 기도와 일치하게 된다. 활동의 순수화란, 외적으로는 육신적이고 현세적 활동을 하면서도 활동의 마음가짐과 동기와 목적을 순결하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한다는 뜻이다. 죄와 악행을 범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행동하는 마음이 악의와 욕심과 교만심으로 가득 찿을 때 기도하는 것은 어렵다. 너무나 물질적인 동기와 현세적인 목적과 인간적인 자세로 활동할 때는 기도하려는 생각조차 나오지 않는다. 하는 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걱정하거나, 불안과 흥분 상태에서 무질서하게 활동하는 것도 기도를 방해한다.

그 반대로 활동하는 마음에서 악의와 욕심을 없애면 없앨수록, 그리고 물질적이고 현세적이고 인간적인 마음을 정화하면 할수록 활동 속에서 기도하기가 쉬워진다. 차분하고 침착하고 질서 있게 일하면 그만큼 기도를 쉽게 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활동하는 마음에 사랑, 성의, 충실, 자기 봉헌의 뜻을 채우면 채울수록 그 활동은 기도를 흡수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악의와 욕심과 교만의 활동에서 선의와 헌신과 겸손의 활동으로, 마음이 없는 활동에서 정성을 다하는 활동으로, 형식적 활동에서 사랑의 활동으로, 외면적 활동에서 자기봉헌의 활동으로, 올아갈 때 활동은 그만큼 기도를 흡수하여 기도와 일치하게 된다. 이것이 활동의 순수화이며, 순수화된 활동과 내면화된 기도가 단 하나의 현실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은 '기도의 사람' 이 되고 '기도의 삶' 을 살게 되는 것이다.

 

 

6. 기도와 활동의 일치를 위한 구체적 방법

 

1) 유의 사항

구체적 방법을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정확히 실행하는 것보다 정성을 다하여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방법과 기술보다 마음과 사랑이 중요한 것이다.

단기간 내에 결과를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오랜 세월 매일 같은 방법을 충실히 실행하고 인내로이 반복해야 비로소 습관이 되고 덕이 되는 것이다.

너무 긴장하거나 무리한 수련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체질과 성격과 심리 상태와 영적 단계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적절한 모양으로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방법은 사람에 따라 해로울 수도 있고 무익할 수도 있다.

 

2) 구체적 방법

끝으로 기도와 활동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들어보겠다. 그중에서 각자에게 알맞은 방법을 몇 가지 골라 실행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맨 처음 생각과 밤에 잠들기 직전의 마지막 생각을 거룩한 생각으로 한다.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에 하는 생각은 순서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심층심리학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아침에 했을 때의 최초의 생각은 하루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잠들기 직전의 마지막 생각은 하루의 모든 생각과 활동을 총괄하며, 수면 중에 잠재의식 속으로 깊이 내려가 인격과 생활에 큰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생각했던 내용을 실현케 한다.

기도를 가장 귀한 시간에 가장 귀한 것으로 바친다.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을 봉헌하며 그 동기와 지향을 성화하고, 끝마칠 때 감사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자주 순간적으로 멈추거나 마음을 올리거나 하면서 봉헌과 성화의 행위를 반복한다.

가톨릭 신자라면 묵주를 항상 손에 들거나 묵주 반지를 늘 돌리면서 기도하는 습관을 기른다. 하루에 5단뿐 아니라 15, 30단도 외울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기도문, 화살기도, 성경 구절, 시편 등을 몇가지 마음의 창고에 저장했다가 여러 경우, 여러 심정에 따라 적당한 기도와 구절을 되풀이하여 외우도록 한다.

매 순간 느끼는 바와 생각하는 바를 주님과의 대화의 모양으로 느끼고 생각하도록 한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 앞에 또는 뒤에 '예수님!' 혹은 '주님!' 이라는 말을 붙이는 습관을 기른다.

예를 들어 날씨가 좋고 기분이 상쾌하다고 느낄 때, "늘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아요, 예수님!" 혹은 방 청소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주님, 제 방을 청소해야겠어요!" . 기도가 주님과의 마음의 대화라면 이러한 대화야말로 주님과 자연스럽고도 진정한 친교를 나누는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한 경배를 자주하고, 십자고상, 성상, 상본을 볼 때마다 마음을 주님께 돌린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도 계시므로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을 모시는 일종의 방이다. 자주 순간적으로라도 자기 마음속으로 들어가 '마음의 경배'를 실천하도록 한다.

일에 마음이 사로잡힐 만큼 열중하지 말아야 한다. 일과 자기정신 사이에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침착하고 신중하게 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정성과 사랑을 다하여 행하며, 흥미 있게 의욕적으로 하고 보람을 느끼도록 한다. 일에 열중하는 것은 감정으로 인한 것이므로 자기가 일을 조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에 끌려가고 만다. 그 반면에 정성과 사랑을 다하여 일하는 것은 의지와 마음으로 인한 것이므로 일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냉정하고 침착한 자세와 정성과 사랑을 다하는 자세는 양립될 수 있으며 또한 양립시키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맛보고 체험하도록 한다.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자신을 봉헌하도록 한다.

* 자기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맛보고 체험한다.

* 타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맛보고 체험한다. 타인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자신을 봉헌한다.

* 사물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맛보고 체험한다(6:26-30). 사물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자신을 봉헌한다(13:57-90).

* 사건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맛보고 체험한다. 사건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자신을 봉헌한다.

* 자기 행동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맛보고 체험한다. 자기 행동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자신을 봉헌한다.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수련을 계속한다. 자주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자비, 위대함 등을 의식하고, 자신의 사랑, 찬양, 감사, 예배, 통회, 의탁, 신뢰, 봉헌, 순명, 간구 등의 심정을 표현한다.

자기는 '하나님 안에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 (17:28 참조)는 의식을 늘 생생하게 유지하도록 한다. 자기는 하나님의 편재와 섭리의 큰 바다 속에 완전히 잠겨 있으며, 그분의 생명과 사랑과 힘으로 가득 찬 공기를 숨 쉬며 산다는 의식을 항상 가지도록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숨 쉬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사랑한다. 예수님의 지혜(고전 1:30)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예수님의 사랑(고후 5:14)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의 감정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입으로 말하고, 예수님의 손으로 만지고 일하도록 한다. 또 하나의 예수님으로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산다는 의식을 자주 새로이 한다.

'만약 내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 하고 자문하는 것도 좋으나, 오히려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또 하나의 그리스도이므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참조: 고전 6:15; 12:27)하고 의식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1:21)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8)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3:30)

 

 

 

16장 기도와 활동의 일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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