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하나님과의 일치(一致)의 삶

 

 

1. 실재(實在)를 발견하게 하는 신앙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의 성 요한을 특징짓는 것은, 그의 구체적인 현실감각이다.

신비가(神秘家)를 마치 사람들의 구체적인 문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의 사상은, 분명히 잘못된 사상이다.

모든 진정한 신비가들과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성 요한은 공상 안에서가 아니라 현실 안에서 살았다.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는 실재를 인식(認識)하기 위해서, 겉모양도 철학자들이 말할 수 있는 것들도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신앙이라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빛에 의존하였다.

그렇게 해서 성인은 신앙의 빛 안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실재들을 보았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다른 모든 실재들의 근원이신 실제, 즉 하나님.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실재들, 즉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들.


 

2. 하나님과의 일치의 삶

 

1) 그리스도교적인 삶

하나님과 인간, 이 두 실재는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일치를 지향(指向)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 두 실재는 분리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주는 것은 역시 신앙이다.

이 일치가 처음으로 실현된 것은, 인성을 취하시고 예수라는 이름을 받으셨던 하나님의 아들의 인격 안에서이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 모두의 원형이시다. 성부께서는 영원으로부터 성자를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이 되게 하셨고, 우리는 당신 성자의 모습을 닮게 하셨다(8:29).

인간에 대한 모든 신학의 핵심은 바로 이 예정(豫定)’ 안에 있는데,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인간은 오로지 예수의 살아 있는 형상(形像)’으로 간주되고 있다.

 

2) 자녀적인 삶

예수 안에서 우리의 변형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파견되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예수 안에 변형시키시고 우리가 성자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면서, 예수의 생명(8:9)으로 우리 영혼을 비추러 오신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4:5-6).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8:17).

 

3) 삼위일체적(三位一體的)인 삶

성령의 위격적(位格的)인 현존(임재), 성령의 신적 본성이 지닌 본질적인 단일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다른 두 위격, 즉 성부와 성자를 모셔 들여, 예수의 다음 말씀 그대로 성삼위 전체를 우리 영혼 안에 현존하시게 한다.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14:23).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삼위일체의 양식으로 생활하시고, 우리는 예수 안에서 변형되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생명을 체험하게 된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우리의 삼위일체 안에서의 변화에 대해 대단한 열정을 가졌고, 바로 그것을 자신의 모든 영성적 교의(敎義)의 바탕으로써 표제로 내어놓았다. 영혼은 영혼 자신 밖에서가 아니라 영혼 자신 안에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독특한 일치를 실현시킬 것이고, 이 일치는 영혼 안에 단순히 하나님께서 현존하심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에 완전히 참여함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은 우리에게 말한다.

성부와 성자 안에서 영혼을 빨아들이시고, 변화시키시고 자신과 일치를 이루신다. 계시해 주셨고 드러나신 것처럼 삼위일체의 세 위격 안에서 영혼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진정으로 온전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은 이어서 또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참여하는 방식으로 영혼 안에서 들이마시듯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들이마실 수 있는 높은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에게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일치를 이루시는 은혜를 베푸신다. 이 일치 안에서 영혼은 참여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이 된다(신화, 神化).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영혼 안에서, 그리고 삼위일체 안에서 이미 영혼에게 드러내셨고 영혼을 참여시킨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서 영혼의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 뭐 그리 믿기 어려운 것일까?”

비록 이런 것이 다른 세상의 삶에서 완결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도 여기까지 온 영혼처럼 완덕의 상태에 도달할 때 참여의 엄청난 맛과 흔적을 체험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다음과 같이 탄식하면서 결론을 내린다. “이 위대함을 즐기기 위해 불렀고 예정된 영혼이여! 무엇을 하는가?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는가? 너희가 추구하는 것은 초라한 것이며,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비참한 것들이다. 너희 영혼의 눈은 불행한 장님이며, 그 엄청난 빛에게는 장님이며, 거대한 소리에 귀머거리 같고,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면서 대단함과 영광을 찾으나 매우 탁월한 선익에 대해서라면 무지하고 자격도 없으니 불쌍하고 비참하다!”

우리로서는, 이 값비싼 진주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가진 것을 진정 모두 팔도록 결심하게 하기 위해서, 신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고귀한 진리들을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이 값비싼 진주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13:46), 다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생명에 참여함을 말하는 것이다.

 

 

3.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 생명의 성장

 

하나님의 내적인 생명에 대한 인간의 참여는 천상 영광 안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지만, 그 참여는 (많게 혹은 적게 진보한 성장의 상태에 있기는 하나) 이 지상에서 이미 실재하고 있다.

 

1) 생명과 생명력(生命力)

어린아이는 태어나는 때부터 인간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들만을 한다. 배가 고프면 울고 만족하면 웃는다. 어린 아이가 지성(知性)과 의지(意志)의 훈련을 통해서 더 적절하게 인간적 활동을 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은, 성장해 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이와 마찬가지다. 세례를 받는 때부터 그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긴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적합한 활동을 완전히 하는 데에, 또 믿음소망사랑을 실천하는 은총에 도달하는 것은 오직 조금씩, 또 조금씩만 이루어진다.

실제로, 거룩해진 인간 안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이미 말한 대로, 세례 때에 활동하기 시작하신 성령께서 영혼 안에 현존(임재)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생명의 친밀함 안에 인간이 들어간다는 것과,

인간의 모든 행위들에 이 생명이 교통한다는 것인데, 이는 대신덕(對神德, 向主德)에 의해 이루어지고, 인간의 협력을 통해서 계속 증진된다.

 

2) 믿음소망사랑(대신덕, 對神德)

믿음 소망 사랑은, 인간의 행위들을 하나님의 생명에 밀접히 결합시키고, 그리스도 그분의 행위들의 완전함에로 인간의 행위들을 들어 높임으로써, 인간의 행위들을 거룩하게 한다. 이에 믿음소망사랑을 대신덕(對神德)’ 혹은 향주덕(向主德)’이라고 부른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께서 실재를 인식하고 판단하시는 것처럼 실재를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소망은 우리의 모든 욕구를, 예수께서 성부의 영광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곳에로 방향을 지워준다.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사랑하시듯이 사랑하게 한다.

달리 말하자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생각하시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고, 소망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바라시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고,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랑하시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믿음소망사랑의 대신덕의 수업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이 덕들의 성장이 우리 안에서, 삼위일체와의 친밀한 관계에 있어서나, 보다 외적이고 보다 가시적인 표시들에 있어서나, 신적 생명을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3) 성령(聖靈)의 선물들

믿음·소망·사랑의 훈련은 성령의 선물들에 의해 도움을 받는다. 성령의 선물들은, 덕들에 대한 훈련을 이처럼 쉽게 하는 하나님의 도움에 대해서, 우리가 민감하게 또 순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영혼이 특히 대신덕인 믿음소망사랑의 수업에 열중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잠심에 빠진 지성을 비춰주신다. 지성이 빠진 잠심(거둠)의 방식에 따라 비춰주시지만 지성은 신앙보다 더 중요한 잠심(거둠)을 찾아 낼 수 없다. 영혼이 신앙 안에서 더욱 순수하고 깨끗하게 닦아질수록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며, 사랑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영혼이 더욱 밝게 비춰지고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는 방법이며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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