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관상기도와 직접적으로 관계함이 아니다.

다만 이런 철학적 근거들을 깨닫게 됨으로 말미암아  종교적인 타인들의 생각을 알게된다.

적어도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관상상태에 대해 이해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상상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한 동 서양인들의 철학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많이 읽고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  2016. 1. 20.  고려수도원 --------------------------------------------------------------------

부록 1  철학적 기초




서양의 정신분석학 : 무의식의 분석
                        심리장애 극복의 길 1
                                                                          한자경, 명상의 철학적 기초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1) pp.203-242.


1. 서양 철학에서의 의식과 무의식

   1) 명석 판명한 의식성: 데카르트의 인간 규정
   명상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 그 이상'이라는 예감에서 출발하여 그 감춰진 나를 발견하고 깨닫고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자아에 대한 진정한 앎이 아닐 수 있다는 자각에서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소크라데스의 구호는 명상을 향한 첫걸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내린 결론은 '무지의 지'이다. 이는 인간 인식의 한계에 부딪힌 좌절을 보여줄 뿐, 일상적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서 참된 자아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명상의 태도는 아니다.
   그 후 서양 철학이 언제나 명상과 일정 거리를 유지해온 것은 인간을 늘 '이성적 존재'로 정의하면서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언어적 사려분별 능력을 인간의 본질로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동양적 사고는 도가에서의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나 불교에서의 "언어도단 불립문자"가 말해주듯 대개 한 사태의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개념화와 명료화를 넘어서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이나 명료한 의식을 인간의 본질적 핵심으로 보기보다는 인간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부분으로 해석하며. 인간 자체의 본질을 오히려 그러한 합리와 논리. 인간의 의식 영역을 초월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물론 서양이나 동양이나 인간의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않의 한계를 의식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동양에서는 인간이 비언어적이고 초논리적인 방식으로 그 한계 너머에 대한 통찰을 가질 수 있다는 초이성적 직관에 대한 신념을 가진 데 반해, 서양에서는 인간은 그 한계 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유한성의 의식과 따라서 그 한계를 끊임없이 확장시켜나가야 한다는 합리주의적'성향을 갖게 된 것이라고 본다.
 인간 및 우주 존재를 가장 표피적인 제6의식인 분별 의식의 차원에서 이해한 것이다.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과 세계는 명료한 의식 표층에서 처음 접촉하는 별개의 개별 실체들일 뿐이다. 따라서 의식보다 더 깊은 심층에서 일체 존재를 아우르며 우주 및 타인과 소통하는 일심(一心)또는 '심위태극(心爲太極)'의 마음은 감지되지도 사유되지도 않는다. 이렇게 인간을 철저하게 유한한 개체로만 간주한 것은 일체를 아우르는 전체의 하나를 인간이 아닌 신의 경지로만여기면서 인간과 신을 구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마음 심층을 배제한 채 제6의식의 관점으로 인간을 규정한 자가 바로 근세의 합리주의자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는 절대적 진리, 즉 거짓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확실한 앎을 발견하기 위해 의심의 방법을 사용한다. 거짓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확실한 앎을 발견하기 위해 데카르트가 고안한 방법이 의심의 방법이다. 어떤 인식이든 그것이 거짖일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포함하고 있다면 설사 그것이 거짓임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절대적 참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마치 거짓인 듯이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방법적 회의를 통해 데카르트가 발견한 것. 절대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것이 바로 회의하고 생각하고 있는 자아의 존재이다. 이하 본문에서 간략히 논의한 의심의 과정과 자아 존재의 통찰에 대해서는 데카르트의 성찰. 권1과 권2 참조.
  내가 감각하는 외부세계는 감각적 착각일 수도 있고 꿈일 수도 있기에 거짓 가능성이 남아 있어 의심 가능하므로 절대적으로 확실한 앞이 아니다. 수학적 관념적 진리조차도 모든 인간의 정신이 악령에 의해 기만당하여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으므로 거짓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설혹 모든 것이 착각이거나 꿈속의 환영이거나 기만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착각하거나 꿈꾸거나 기만당할 수 있는 나는 존재해야 한다. 그런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 가능 근거도 찾을 수가 없다. 의심을 하면 할수록 의심 활동을 하는 나는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착각, 꿈, 기만, 의심 등 일체의 의식 활동을 '사유'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의심의 방법을 통해 그가 얻어낸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얼마 동안 존재하는가? 사유하고 있는 동안 존재한다. 데카르트. 성찰, 권2, 6절. 이현복 역, 성찰, p.46.


   그렇다면 이렇게 존재하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자아가 사유하는 한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아의 본질이 사유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러한 사유자로서의 인간 본질에 대해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사유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일 어떤 힘이 [나의 본질로서] 내 안에 있다면 나는 분명히 그것을 의식해야만 할 것이다. 데카르트. 성찰, 권3, 32절. 이현복 역, 성찰 (문예출판사, 1997), p.75


   자아는 그게 바로 나이므로 자아가 무엇인지는 나의 의식에


안내표가 많은데 표가 깨어져서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이하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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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22 부록1 서양철학-의식과 무의식.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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