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16. 참으로 너를 도우리라.           주제: 11. 구원.      2018. 11. 11.

서론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시다. (8-20)

하나님께서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켜 열방을 굴복시킴으로써 열방들은 두려워 떨 것이나

    이스라엘에게 이것은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었다.

    열방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되시는 것이다.

 

1.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격려하시고 구원을 약속하신다. (8-16)

장차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압제로 고통을 당할 것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격려와 구원의 약속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1)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다. (8~9)

먼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호칭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알 수 있다.

   ①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19:5-6),

   ② "내가 택한 야곱아"(4:37; 7:6-8),

   ③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대하 20:7; 2:23)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조건 없이 큰 사랑을 입고 백성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그분의 영예로운 종이었던 것이다.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받고

   가나안 땅으로 나온 사실을 가리키는데, 당시에 가나안 땅에서 갈대아 지역의 우르는 "땅 끝", "땅 모퉁이"에 있는 먼 곳이었다.

   '먼 곳'으로부터 아브라함을 친히 불러내 자기 백성의 조상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택한 종을 싫어하여 버리지 않으셨다.

2)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이다. (10)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입은 택함 받은 종'이라는 그 사실에 근거하여 위로와 격려를 주신다.

하나님의 위로는 먼저 소극적으로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이어서 적극적인 말로 "굳세게 하리라" "도와 주리라" "붙들리라" 고 위로 하신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서로 "나의"(my)"너의"(your)라는 소유격 표현에서 나타나듯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다. (11~12)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멸망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네게 노하던 자들", "너와 다투는 자들", "너와 싸우던 자들", "너를 치는 자들"이라는 사중의 표현으로 강조된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장차 어떻게 파멸 당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이제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세력들의 멸망은 허무한 것(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같이 될 것이디.

비록 이스라엘이 환난 중에 있을지라도, 그들을 대적하는 자들의 운명이 이렇게 될 것을 안다면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이유이다. (13)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붙들고 "두려워 말라" 격려하면서 그들을 도우셨기에,

   바벨론과 같은 대적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허무하게 사라지고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구원이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이스라엘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5)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하나님이다. (14)

하나님께서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그들이 얼마나 비천하고 미약한 상태에 있는 존재인가를 분명히 일깨워 주심으로,

   그들이 구속자 되시는 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버러지같이 미천하고 약한 존재일지라도 자신들의 구속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확신한다면,

    절망적인 상황 아래서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이스라엘의 구속자로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15~16)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 버러지 같은 야곱, 곧 미천하고 미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로 변화된 사실이다. (타작기계로 곡물의 껍질을 벗겼던 것이다.)

열국들은 이스라엘 앞에 놓인 곡물이 된 것이다.

    이런 극적 변화는 이스라엘의 구속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셨기 때문이다. (13~14)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 타작 기계와 같은 권세로 열국을 타작하는 때이다. 그것은

   ① 역사적으로 이 예언은 마카비 시대에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② 궁극적으로 이 예언은 예수께서 모든 대적들을 깨뜨리고 영원한 메시야 왕국을 세울 때, 교회는 그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곤고함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회복 시키시셨다. (17~20)

포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곤고함이 출애굽 당시의 곤고한 광야 생활에 비유되고 있다.

포로 기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셨다.(32:10-12)

이제도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을 약속해 주신 것이다.

1) 곤고함 중에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17)

"가련하고 빈핍한 자" 자기 땅에서 추방되어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의 가련하고 빈핍한 상태는,

     마치 광야에서 갈증으로 혀가 타들어 가고 고통중에 서서히 죽어가는 자와 같았다.

"갈증"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은 내버려 두면 고통중에 파멸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의 약속이 주어졌다. (17)

(1) 그들에게 '응답하겠다'는 것입니다.

"응답하다"는 말은 '귀기울여 듣다'. '주목하다'는 의미.

    갈증으로 죽어가는 자는 "도와달라"는 소리조차 크게 외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귀를 기울여 들으시리라는 것이다.

(2)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스스로 하나님께 버려진 존재라고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버리거나 잊지 않으셨다.

2)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결과로 이루어질 일들이 구체적으로 열거된다. (18~19)

벗은 산나무가 없는 고지대의 산을 말하는데, 이곳은 결코 수원(水源)이 될 수 없으며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메마른 땅을 물이 슷구쳐 나오는 샘 근원지로 만들 것이다.

불모지인 그곳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감람나무가 무성할 것이다.

    사막에는 잣나무 소나무 황양목의 무성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나무들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줄 것이다.

    풍성한 물과 시원한 그늘이 있는 그곳은 더 이상 광야가 아니라 '오아시스 지대'가 될 것이다.

3) 이스라엘은 누가 이 일을 행하셨는지를 헤아리며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20)

광야의 샘물과 사막의 숲은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한 바"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그 일을 이루셨다(창조)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언제나 마음 속 깊이 간직해야 했던 것이다.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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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